일베에 볼테르를 [한겨레 칼럼 130527]

!@#… 당초 약속은 지켰으나, 시기상 본론은 일베 관련 내용으로 점프. 딱히 많은 이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는 측면을 그냥 확 정론으로 다뤘는데, 뭐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게재본은 여기로(*경*마침내 사진 변경*축*).

 

일베에 볼테르를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수년 전, 1등을 자부하는 보수성향의 모 신문에서 모 논객의 글을 밀어주며 이슈화를 시도한 ‘실크세대’라는 표어가 있었다. 그런데 이 기획은 청년 세대의 어떤 중요한 현실을 반영하여 진단내리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그들을 특정한 이념적 규범으로 유도하려는 훈계성 캠페인이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우파적 감성을, 개혁진보진영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시, 조롱 또는 비판했다(우석훈의 한겨레칼럼 정도가 예외였는데, 그에 대해 상당히 비판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개혁진보성향의 모 신문에서 ‘진주녀’라는 표어를 내놨다. ‘진취적이고 주도적인 여성’들이 주변부를 돌아본다는 규범적 젊은 여성상을 세워놓고 열심히 훈계성 캠페인을 펼친 것이다. 용어 자체도 타자화 효과가 충만하며, 직관성도 세련됨도 결여되어 있었다. 이 기획이 어떻게 고안된 실패작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겨레신문이 지니는 개혁진보진영 담론에 대한 대표성의 이미지 덕분에 인터넷 일각에서 해당 진영 전반의 이중잣대로 손쉽게 조롱당하고 말았다. 보라, 당신들은 저들을 비판했으나 그 잣대를 스스로에게는 들이대지 않고 같은 짓을 하지 않는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드넓은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 이중잣대에 대한 조롱은 가장 우익적인 사고를 모아내는 기반이 되어 있다. 누구나 위선으로 가득하며 일관된 기준보다 자기 유리한 쪽만 정당화하는 세상이라면,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연대와 진보가 아니라 그런 정의감 넘치지만 공허한 표어에 대한 조롱과 개인들의 자력갱생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자력갱생 신화가 도를 넘어가면서 각종 차별과 배제조차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사회적 사안의 대처에 있어서 이중잣대를 지적당하는 것은 개혁진보진영이 훨씬 잃을 것이 많다.

이런 와중에, 개혁진보진영이 이중잣대로 크게 조롱당할 것인지 아니면 일관된 기준으로 발전된 사회상을 제시할지 분기점이 될 만한 사안이 하나 생겼다. 하필이면, 최소한의 인간 존중마저도 잃어버린 조롱이 폭주하고 극우적 음모론이 넘치는 한 온라인 공간을 둘러싼 소동이다. 문제시되고 있는 ‘일베’는 한때 하이텔 플라자, 디씨 코갤 같은 곳들이 일임했던 담론의 한 쪽 극단을 오늘날 담아내고 있는 서비스다.

이중잣대로 조롱당하지 않으려면, 조롱의 대상이 사뭇 달랐던 다른 사건들에서 내밀었던 기준, 내 발언을 가로막고자 했던 이들에게 저항하면서 사용했던 논리를 생각하면 된다. 국가보안법의 횡포에 반대하고 보수정권에 대한 공격적 풍자의 처벌을 반대할 때 늘 사용했던 “사상의 자유 시장 위에 작동하는 민주제의 필수 요소인 표현의 자유” 같은 것 말이다. 개별 서술의 심각한 악의적 허위와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민사 소송으로 바로잡고, 잘못된 정보의 확산에 대해서는 담론의 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정확한 소통을 하며, 혐오발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토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뻔하고 정론적인 접근법 말이다.

그런데 첫 단추를 이상하게 꿰었다. 민주당은 일베 폐쇄라는 사실상의 사전검열 조치를 추진하고 있고, 사건을 다루는 언론들은 일베의 막장스러움을 취재하느라 바쁜지 이를 진지하게 비판은 커녕 사실상 눈감아주고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우되 표현의 자유 자체는 보장한다는 원칙이라면, 일베 같은 막장화된 곳조차 인정받아야 한다. “당신의 글은 경멸하지만, 당신이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목숨을 걸겠습니다.” 볼테르의 사상을 정리한 홀의 경구는 이럴 때 인용하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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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필진 로테이션. 개인적으로는, 굵은 함의를 지녔되 망각되기 쉬운 사안을 살짝 발랄하게(…뭐 이왕 이런 코너로 배치받았으니) 다시 담론판에 꺼내놓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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