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FAQ [ㅍㅍㅅㅅ / 130901]

!@#… 게재본은 여기로. 여기는 기고본+PS.

Q.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인가.
A. 통진당 비례대표 현역 의원 이석기가 참여한 비선조직이, 북한과 전쟁나면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하자고 계획을 세웠다는 혐의. 국정원이 04년부터 혐의를 두고, 10년부터 본격 수사하고(영장에 의거한 감청 포함), 이제 공개적으로 터트려 압수수색 들어가고, 검찰은 사건을 맡음. 죄목은 형법상 내란음모죄와 국보법과 뭐 그런 것들.

Q. 결론부터 알려달라. 간첩단 적발인가? 공안정국 시작인가?
A. 간첩단이냐하면.. 지금 문제가 되는 ‘경기동부’ NL주사파계는 자생적 남한 주체사상 신봉자들이라서, 북한정권의 사주로 못박기는 힘듬. 그쪽과 접촉을 해서 뭔가 넘겨주었는지 또한 아직 미지수. 공안정국 시작인가 하면.. 내란음모죄라는 가장 큼직한 혐의로 자신있게 걸었으니, 그에 합당한 범죄가 진행되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공안정국 조성을 노렸다고 비판받을만 하겠다.

Q. 왜 지금인가?
A. 그러게. 자료를 상당히 오래 모아왔고, 그 모임에서 내일 게릴라전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알게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즉 아무때나 쓸 수 있는 카드였는데 지금 뽑은 셈.
시나리오A: 국정원이 댓글여론공작 사건으로 한창 개혁의 대상으로 압박받는 와중, 국내 임무의 정당성과 존재감을 설파하기 위해 지금 꺼내듬.
시나리오B: 우리는 알지못할 무언가로, 증거가 무효화될만한 위험이 임박했던 것.
시나리오C: 촛불시위로 정권의 위협을 느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엄청난 음모.
A는 개연성은 있고, B는 알 길 없음, C는 황당. 정답은 국정원이 안알랴줌. (추가설명: 그러니까 뭐든, 이석기 사건을 이해하는 것 자체에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말임.)

Q. 주사파, 경기동부, NL 자꾸 이야기되는데 그게 뭐냐? 책 한권 계보 읊지말고, 요점만.
A. 사회모순이 넘치는데 권력층의 횡포가 공고해서, 사회운동을 통해 뜯어고쳐야겠다고 해보자. 모순이 왜 생겼는지 설명을 해내야 움직일 수 있고, 그게 ‘이념’이다. 그런 여러 이념들 가운데 NL은 외세의 부당한 개입으로 모순들이 생겨났고 민족의 해방, 즉 자주성 확립을 통해 그걸 해소하는 걸 골자로 한다. 그런데 안그래도 민족 개념으로 접근하다보니(그 자체가 이미 적잖이 우파적 요소가 있음은 차치하고서라도) 북한에 대해 신기할 정도로 온정적이고, 그 중 과격한 일파들은 하필 북한에서 써먹던 ‘주체사상’과 이념의 삘이 통해서 그걸 배워가며 자생적 남한주사파로 자리매김. 경기동부는 NL계 지역모임인데 강성 주사파 이념으로 무장하고 특히 행동력이 과격해서(예: 대놓고 경선 부정) 문제가 된 동네.

Q. 그럼 이석기 동네 모임이 한 모의의 내용이 얼마나 심각한거냐?
A. 한국일보가 입수해 공개한 회의 녹취록으로 판단하자면, ‘군자산의 약속’ 수준으로 워게임 돌려본 것. 한마디로 현실감각 없이 스케일만 큰 중2병 망상 쩔기 때문에, 이들의 내란을 걱정하는 것은 여력 낭비다. 그보다는 이딴 인간들이 머릿수 꼼수만 부려도 근간이 확 무너져버리기를 반복한 한국사회 진보 정치의 취약성에 한탄을 하자.

Q. 현실성이 그렇게 부족하면, 왜 문제인가?
A. 국정원/검찰의 명목인 ‘내란’ 즉 국가의 정권을 찬탈해낼 수준이 아니니까 우스워보이는거지, 그냥 대민 폭력행위에 정치적 신념을 담는 ‘테러’라면 개조 비비탄 총 들고(장난감이라고 비웃을게 아니라, 약한 공기총 수준까지 만들 수 있다) 정유소 들어가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내란 모의라는 어마무시한 명목과 국정원 발표의 노골적인 타이밍을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현역 국회의원이 낀 비선 집단이 그런 활동에 연루되는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정치적 책임을 지워야 옳다.

Q. 그래도 모의만 했는데,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아닌가?
A. 골방 청년들이 아니라 규모 있는 정당, 현역 국회의원이 연루되어 있다면, 모의 대로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그 모의의 방향으로 힘껏 사고를 칠 가능성을 상정해야 한다. 전쟁나면 적군에 붙을꺼얌 같은 수준의 인식틀로, 테러에 준하는 무력행사를 진지하게 거론하는 내용이라면, 못하게 막기는 해야지. 자유는 자유, 책임은 책임.

Q. 운동에는, 체제 내에 복속되는 것이 아닌 전복도 필요한 것 아닌가.
A. 회의 내용이 북한이랑 전쟁나면 게릴라전으로 북한정부군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이었음을 기억하자. ‘북한의 군국주의 유사왕조 독재체제의 한반도 전역 적용’과, ‘전복을 해서라도 반드시 얻어내야할만한 명백한 사회 진보’는, 엄청 멀리 떨어져있잖아아!!

Q. 왜 저런걸 하고 있냐? 지난 십수년동안 정식 대중정당에, 의회정치라는 지극히 주류질서적 경로를 선택하고는.
A. 저런 식의 비장한 종교적 결의가 바로 자신들의 조직 내 권력을 만들어낸 단합된 조직력의 비결이라서. 정말 저런 식의 부실한 이상을 진심으로 신봉하고 있기도 하고.

Q. 왜 이런 사고수준의 사람들이 저 정도까지 중심으로 진출할 수 있었는가.
A. 재밌는 이야기도 아닌데 길게 하긴 그렇고.. 주사NL동네의 조직력이란, 압박수비와 비슷한 것. 전체 판에서의 규모나 영향력이 거대하다기보다, 딱 자기들이 장악할 수 있겠다 싶은 섹터(예: 선거구)에 우루루 이동 집결하여 실체 이상의 힘을 발휘. 반면 그 행동력과 머릿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멋도 모르고, 혹은 알고도 그래도 좀 통제할 수 있겠지 하고 안일하게 그 독배를 끌여들인다. 구 민주노동당도, 구 통합진보당도 그렇게 그 동네에게 장악당하고 나머지가 짐 싸들고 나온 바 있다.

Q. 그럼 왜 진보 정치는 그런 문제 많은 주사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가. 청산하면 문제 해결이라는 것 아닌가.
A. 턱없는 소리다.
첫째, 앞선 대답처럼 주사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쪽의 동원력에 손을 벌린 안일한 ‘전략적’ 선택, 혹은 그것도 안하면 아예 망하는 여타 진보정치 계파나 영역들의 취약성 문제들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정책을 열심히 만들어봤자 동원력이 부족하면 말짱 도루묵이거든노회찬서울시장출마). 즉 적지 않은 진보정치 계파와 영역들이, 지금껏 좋든 싫든 피해자이자 동시에 공범이었다. 특히 그들에 대한 지지를 대중들에게 독려한 글쟁이들. 청산 이전에, 반성과 역량강화할 구석만도 코가 석자다.
둘째, ‘청산’을 규정하기 힘들다. 사상 불법화는 자유권에 위배. 그 사상에 입각한 정치활동 규제는 법률의 영역. 즉 정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상으로 움직이는 이들과 결별인데, 그건 이미 해봤는데 뭐 그냥 인지도만 폭망하더진보신당.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여전히 그들의 그런 행동에 묶여있는 한은, 진보진영은 뭘 해도 그런 사상/행위를 청산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될 뿐이다. 즉 진보를 간판으로 걸고 반진보적 사상/행위를 펼치는 경우에 대해, “진보란 그런 꼬라지다”가 아니라 “그런건 진보가 아니다”라고 사회적 인식을 바꿔내는 것이 숙제다. 당연히 끝장나게 어렵다.

Q. 그래서 어떤 처벌을 하려는거냐. 또 어떤 처벌이 실제로는 합당할까.
A. 초당적 협력으로 국회의원 제명부터 시작. 그리고 통진당 차원에서 근본적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의회/행정에서는 모든 정치적 협력 거부. 시민들은 다음 선거부터 그 동네를 계속 폭망시키기. 반면 내란음모죄는 과잉이라고 보는 것이, 공안정국 조성 위험에 대한 경계 같은 것과는 별개로, 판례로 볼 때 실현력을 갖추지 않으면 유죄가 나오기 어렵다. 다만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말처럼, “통합진보당에서 그러한 문제로 촛불집회를 한다고 하면 저부터 가지 않아야 한다.”

Q. 그런데 이 건으로 묻히고 있는 원래 큰 건들은 어쩔거임?
A. 국정원의 온라인여론공작 건과, 이석기와 경기동부의 NL중2병질 건은 두 가지 별개 사안임을 온 세상에 계속 설파하시길.

 

…물론 이건 8월 30일밤까지 공개된 정보들을 기준으로 하는 문답이고, 그 뒤는 어찌될지 또 모름.

PS. 모처에 남긴 댓글내용으로 몇 가지 보론:
– “왜 지금이냐” 질문을 포함한 것은, 답에서 이야기했듯 이걸 정권 음모로 확대해석하는 짓을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 정권 차원의 음모 시나리오를 황당한 것 치부한 이유에 대해: 정권 사주가 없어도 국정원이 알아서 터트릴 수 있으며, 청와대-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굳이 이런 수를 쓰지 않아도 그 전 상황이 딱히 대단히 나쁘게 돌아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 건으로 묻히고 있는 원래 큰 것’에 해당하는 국정원 댓글공작에 대해서는 두 개가 별개 사건이고, 이석기 건 자체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주장하듯 ‘내란’수준이 아닐 뿐 중히 처벌받아 마땅. (즉 댓글공작건이 커다란 사안이며 결코 가벼이 덮여서는 안된다고 해서, 이번 건이 작은 것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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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석기FAQ [ㅍㅍㅅㅅ / 130901]

Comments


  1. 그런데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비행기 테러”를 알카에다가 저지른 전례를 볼 때, 미친 짓거리, 혹은 가능성이 없는 짓거리라고 해서 그렇게 큰 일이 아닌것처럼 치부하는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란죄 항목을 봐보면 내란죄로서 처벌이 가능할것도 같고요. 물론 충분한 증거가 있으면 말이죠.

    개인적으론 국정원이 계속 건수를 못잡다가 이 시기에 드디어 건수를 잡아서 지금 터트린 듯 싶습니다. 사실 국정원은 그냥 지금은 버티기만 해도 덧글 건을 그냥 묻을 수 있으니 굳이 무리할 이유야 없을듯.

    사족이지만, 이번 건에 대해서는 친노계열 역시 어느정도의 책임은 있다고 봅니다.

    • !@#… 듀얼코어님/ 테러급(즉 폭력 피해) 계획이니 큰 일 맞습니다. 현실성면에서는 내란급으로(즉 정권 장악) 보기 힘들 뿐. //
      국정원이 3년간 수사를 했으나 이번 공개된 5월 녹취록이 비로소 첫 증거였다면 가능할 이야기지만, 그 전에 계속 허탕만 쳤을 것 같지는 않은게 애초에 주요 녹취록들이 여러 가지라고 흘러나왔으니까요. //
      예, 애초에 그쪽으로 적극 동원을 한 이들이니 그에 대한 책임감을 표시하고 회자정리를 해야 옳은데… 뭐 많은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 내란이 정권 장악만을 내란죄로 보는게 아닙니다. 폭동도 내란죄로 보걸랑요. 충분히 내란선동죄는 가능하다 봅니다. 그리고 첫 증거가 아니라 결정적인 증거를 여기서 잡았다 이렇게 보면 뭐 국정원이 지금 타이밍에 터트린것도 어느정도 설명할 수 있을듯… 따지고 보면 딱히 국정원이 무리를 해서 이 타이밍에 터트릴 이유는 없을듯…

    • !@#… 듀얼코어님/ 판례상(클릭) 내란선동죄도 내란음모죄만큼이나 구체적 실현력 없이 유죄나오기 어렵습니다. //

      예, 글을 쓴 이후 더 드러난 정황들은, 그간 확실한 증거를 딱히 못 잡고 있었고 이번에 큰 건을 잡자 오히려 설익은채로 터트렸다는 쪽의 가설도 가능하게 하더군요. 다만 본문의 보충설명처럼, 사건 자체에 관해서는 타이밍은 부차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