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을 누릴 줄 안다는 것 [팝툰 22호]

!@#… 갈수록 건전사회 캠페인이 되어가는 칼럼(…), 팝툰 만화프리즘. 이번의 메시지는 “불쌍한 척 좀 하지마”랄까.

 

가진 것을 누릴 줄 안다는 것

김낙호(만화연구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쓸 줄 안다는 것은 별로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나마 원래부터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온 이들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쓰는 훈련을 쌓아오기라도 했지만, 나중에 획득했거나 혹은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의식해보지 않은 이들은 뭔가 어색한 경지에 이르기 십상이다. 가지고 있는 ‘재산’이 돈 같은 구체적인 물건이든, 교양이나 외모, 권력 같은 좀 더 추상적인 대상이든 말이다.

한국에서 영화화되어 큰 히트를 기록한 ‘미녀는 괴로워'(스즈키 유미코 작)라는 만화가 있다.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못생긴 외모의 주인공이 전신성형을 통해서 절세미녀로 거듭나지만, 못생겼을 때의 생활 습관들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각종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내용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그 속에는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주가 되면서도 오히려 역설적인 의미의 옹호도 들어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주인공이 미녀로서의 매너와 당당함에 익숙해지면서도, 부족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없는 자의 시선’을 겸비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다. 없는 자의 시선을 잊지 않는 것의 미덕은 바로 자신이 가진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가진 것에 도취되지 않고 바람직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세니까 말이다. 그것이 미녀라고 허영 넘치는 멍청이로 비하하지 않고, 미녀가 아니라고 해서 비굴한 천민으로 싸잡아 몰아붙이지 않으며 폭넓게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내는 이 웰메이드 코미디 만화의 가치다.

좀 거창한 논리적 점프지만, 민주주의라는 ‘재산’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주인 노릇을 자연스럽게 원래 해온 사람들도 있고, 주어진 특혜에 즐거워하면서도 그저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주인이 되었으면 주인에 맞는 매너와 행동이 있다. 주인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있기에, 주인으로서 지는 책임도 있다. 그런 품격을 지키지 않거나 아예 모르고 있으면 코미디로 직행할 뿐이다. 작품으로서의 코미디는 민폐도 가상의 것이고 감동의 결말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현실의 코미디는 가급적이면 방지하는 것이 좋다. 정치적 입장 표명의 자유라는 권리를 얻었으면, 근거를 가지고 말을 꺼내며 근거로서 반증되면 깨끗하게 입장을 수정하는 자세가 주인의 품격이다. 투표권이 권리라면, 누군가를 뽑아준다는 것이 가져올 함의에 대해서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을 하는 것이 품격이다. 무언가 잘못 굴러가고 있을 때 그것을 숨김없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권리라면,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반대해서 방향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품격이다. 그것은 특히, 민주주의의 주인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의 시선 역시 잊어버리지 않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가능하다. 각종 권리들은 후천적으로 얻어낸 것들이며, 그런 사실은 가진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바람직하게 활용해야할 동기가 되어준다.

물론 책임이 싫으면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좋든 싫든 ‘민’에게 ‘주인’의 권리를 이미 부여해버린 시스템이다. 노무현을 까든 이명박을 까든 무려 대통령을 ‘깔’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일반 선거제도와 기타 참정권이 폭넓게 보장되는 곳이다. 이미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있으면서, 책임만 피해가는 주인은 꼴불견이다. 아니 꼴불견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종종 화려하게 망하곤 한다. 힘이 없으니 책임도 없던 불쌍한 민초 시절의 기억은 소중히 활용하되, 민주주의의 정치적 최고 결정권자로서 품격을 좀 지키며 주어진 것을 누릴 시기가 되었다. 별 것 없다. 각자 자기 투표권 행사하는 것 만큼씩만 그리고 자기 발언하는 양 만큼씩만이라도 제대로 신경 좀 쓰고 살아야 한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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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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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가진 것을 누릴 줄 안다는 것 [팝툰 22호]

Comments


  1. !@#… 미고자라드님/ 건전명쾌 전문 블로그로 거듭날까 합니다.

    기린아님/ 여기다가는 항상 이미 지난 호의 원고를 올리니까요. 그런데 정작 그날 토크 직후에 써서 송고하려던 ‘그’ 토픽은 다음 호가 하필이면 설 특집이라서 또 한 호 밀려나게 됐다능…;;;

  2. 원래 건전 명쾌한 블로그인데 뭘 더 거듭나신다구…
    명쾌가 명랑 쾌활의 약자라고 쳐도 이미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