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즐김은 돈: 미국의 성인 대중문화 [문화저널 백도씨 0801]

!@#… 퀄리티에 비해 존재감이 바닥을 기는(…그러게 과월호용 웹사이트 만들라고 내가 몇 번을 제안했건만;;;) 타블로이드 판형 문화콘텐츠 잡지 ‘백도씨’의 이번 호의 특집은 무려 성인문화에서 미국 관련 꼭지. 어차피 다른 분들이 에로는 다 커버하겠지 해서 표현보다 내용, 그리고 향유자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봤다.

 

‘성인’의 즐김: 미국의 성인 대중문화

김낙호(만화연구가)

솔직히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자면, ‘성인’ 대중문화라는 용어는 별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대부분의 대중문화는 성인들이 만들어내고 성인들이 향유할 것을 전제로 되어 있고, 미성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의 세부적 취향에 좀 더 맞추어 들어간 청소년 문화, 아동 문화는 여기에 비하면 소수 영역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다만 격한 표현 수위에 있어서 성인에게만 허용된 것들을 어렴풋이 성인용이라고 흔히 일컫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다지 유의미한 구분이 아니라서, 표현만 ‘성인용’이지 정작 작품 속의 정서는 온가족용인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어 총질과 폭발과 피바다가 쏟아지는 R등급(미국의 ‘성년 보호자 동반시 관람가’ 등급) 액션 호러영화라고 해도, 사실 싸움질 속 성장과 영웅만세의 성장기 청소년 같은 감수성에 가까운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 의미에서 ‘성인용’에 제대로 접근하는 방식은 역시 내용의 측면이다. 성인 수용자들에게나 통할만한 복잡한 구도나 주제 의식 (예를 들어, “인생의 쓴 맛”) 같은 것이 좋은 예다.

미국의 성인향 대중문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굳이 이런 개념부터 언급하며 시작하는 것은, 풍부하기로 세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성인의 취향’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사실 명백하게 성인들만 보도록 전제되어 있는 대중문화 작품들을 나열하는 것은 쉽다. HBO같은 자본력 좋은 케이블TV 방송사들 덕분에 부흥한 과격한 표현수위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은 어떨까. 성형외과를 다루는 ‘닙/턱’, 로마제국의 정치를 다룬 ‘롬’, 연쇄살인마의 추리극 ‘덱스터’ 등 한국의 속칭 미드 매니아들에게 이미 낯설지 않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노출과 폭력의 향연이라서 성인용 딱지를 벌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용이 되는 이유는 그 속에서 리얼하게 묘사되는 욕망이 구덩이 때문이다. 모호한 도덕성, 강렬한 욕심에 기반한 파탄적 인간관계들, 씁쓸한 뒷맛의 카타르시스,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들은 역시 성인 전반의 취향이라기보다는, 특정 장르와 소재를 다루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성인 전용으로 분류되어 있을 뿐이다. 극단적 표현은 덜하지만 ‘섹스앤더시티’류의 성인 생활 트렌디 드라마가 오히려 보편적인 성인 대중문화에 가깝다. 혹은 아예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의 아침드라마에 해당되며 우연적 사고와 불륜을 연료로 타오르는 ‘솝 오페라’류 연속극들도 더할 나위 없는 성인(아줌마)들의 즐거움이다. 혹은 이런 정서를 각종 사연과 삶 속의 논픽션으로 옮겨내는 ‘오프라쑈’라든지 말이다. TV를 끄고 바깥으로 눈을 돌려서 다른 대중문화 양식 가운데에서도 그런 성인용 장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이라면 컨트리 음악, 성인지향락(AOR), 올드팝 같은 것들. 영화로 치자면 CG로 만든 우주선들과 하늘을 나르는 격투가들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블록버스터 말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생역정 드라마들 같은 것이 미국에서 성인 취향 장르에 해당된다.

사실 이런 식의 성인 취향 장르 같은 패턴이야 굳이 미국이 아니라 어디라도 있을 것이다. 다만 대중문화기 워낙 잘 발달되어 있다 보니 이런 것들이 좀 더 명확하게 산업의 한 장르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을 뿐. 어느 나라의 성인들은 뽕짝과 지루박을 듣고, 어느 나라의 성인들은 컨트리를 듣는다고 해서 대단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성인향 대중문화의 진짜 매력은 그런 작품들이나 장르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바로 성인 향유자들이 대중문화를 즐기는 방식에 있다. 미국의 성인들은 세계에서 대중문화를 가장 열심히, 적극적으로 즐기는 쪽이다. 대중문화가 일상적인 문화 생활 아니 여가 일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며 , 나아가 미국식 ‘전통’의 중요한 일부분으로까지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를 활발하게 즐기는 미국 성인들의 패턴은 성인 취향 장르들의 극장 수입, DVD 구매, 음반 판매 등 대중문화 시장의 규모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의 적극성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전용 장르’가 아닌 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즐길 때다. 예를 들어 소위 ‘키덜트’ 문화라고 폄하 아닌 폄하를 당하곤 하는 일련의 취향이 있다(성인 긱(geek)들의 문화 중 상당 부분이 이것으로 취급받는다). 키덜트 문화는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단순하게 어른 주제에 애들 작품을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다. 이 취향의 상당 부분은 진짜 어린이용이 아니라 그런 취향의 어른들을 위한 감수성이며, 성인과 미성년들이 같은 작품들을 향유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청소년은 즐길 수 없는 성인만의 취향과 방법으로 즐긴다. 바로, 돈과 집착적 노력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스타워즈’ 영화를 보고 다스 베이더 흉내를 내는 것은 청소년이고 어린이고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크기가 수 미터에 달하는 엑스윙을 나무로 직접 만들고 소형 로켓 엔진을 집어넣어서 하늘로 날리는 것은 성인의 영역이다. 돈과 시간, 전문 기술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동영상 포털사이트에 TV프로그램의 클립을 올려놓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대중문화 작품의 동인 영상물을 만들어서 배포하는 것이 더 즐겁다. 그 와중에서 팬필름 ‘배트맨: 데드 엔드’의 경우처럼 컴퓨터그래픽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해서 블록버스터급 예고편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것 역시 성인들의 즐거움이다. 만화책을 동네 가게에서 사서 읽는 것은 전연령 누구나 하지만, 슈퍼맨이 나오는 액션 코믹스를 수십년 전 것부터 전질 수집하는 것은 성인에게만 해당된다. 혹은 좀 더 보편적인 부분으로 내려가더라도, 드라마 ‘로스트’를 TV에서 보는 것은 청소년들이라도 충분하지만 DVD 박스 세트를 시즌마다 제 값 주고 꼬박꼬박 사들이는 것은 성인들이다.

대중문화를 미성숙한 것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계속 즐겨나가는 것은 비디오게임이라는 장르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80년대초의 유년기에 아타리로 우주선을 격추시키다가 패미컴으로 마리오를 만났던 세대가 완연한 30대가 된 지금, 비디오게임은 청소년 매니아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서 일상의 영역에 들어온지 오래다. 그런데 비디오게임이야말로 사실 청소년보다 성인들이 더 유리한 장르다. 자신들이 버는 돈으로 자신들의 취향을 위해 쓸 수 있으니 좀 더 비싼 최신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들을 불법복제로 입수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보니 청소년들도 별 차이 없이 쉽게 구하지만, 미국은 빡빡한 법제도 덕분에 정착된 정품 문화로 인하여 좀 더 ‘성인 대중문화’로서의 속성이 잘 정착되어 있다.

미국의 성인 대중문화의 매력은 대중문화 산업의 발달 덕에 상당한 양으로 쏟아지는 거친 표현수위의 작품들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더 매력적인 것은, 성인용 작품이라는 틀에 갇혀있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성인으로서 지갑을 열고 적극적으로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성인들의 향유 마인드 그 자체다. 성인 대중문화는 작품이 성인용이기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향유자들이 성인으로서 향유를 하기 때문에 비로소 성인용이다. 그런 방식을 통해서 미국은 성인 대중문화, 결국 대중문화 일반이 가장 발달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듯, 만약 다른 나라에서 성인 대중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교훈을 얻고 싶다면 그저 작품들 자체가 아니라 향유문화를 만들어내는 방식 그 자체에 집중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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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thoughts on “‘성인’의 즐김은 돈: 미국의 성인 대중문화 [문화저널 백도씨 0801]

Comments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성인으로서’ 향유하는 것이 장점일까요, 아니면 향유하는 것 자체가 장점일까요. 우리나라 성인들은, 문화를 향유하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니면 높은 계층 따라하기 자체가 문화가 되어 있거나 하는 애매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2. !@#… HHH님/ 그런 의미에서, ‘자기’ 문화를 향유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죠.

    이승환님/ 그러게 말입니다. 커버스토리 기획 한번 제안해봐야겠어요.

  3. 전 30 중반을 바라보는 비디오게임 키드인지라 대중문화의 발전의 한 행태로 예를 들어주시니 어쩐지 기분이 좋군요. ^^;; 솔직히, 지금 만큼 정도만 대접을 받게 된게 기적이라 할 만큼 전자오락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죠. 물론, 세계 어디서나 그리 호의적인 취급을 받지 못했던 비디오게임이긴 하지만요.

  4. !@#… 지나가던이님/ 그때 구박받으며(“이런 하찮은 게임이나 하고!”) 계속 비디오게임을 하던 소년소녀들이, 이제는 장성해서 복수를 하는 겁니다(“이런 현대 대중문화의 총아도 모르다니!”). 핫핫

  5. 비디오게임과 애니메이션의 각종 uber edition 콜렉션과 (부록으로 딸려오는 것들까지) 액션 피규어, 포스터, 냉장고에 다는 자석까지 난무하는 저희 집을 보고 친정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장난감 가게 같구나.’ 다른 한국 분은 중학생 방같다고도.
    근데 정작 콜렉션은 늘어나는데 그걸 즐길 시간은 청소년보다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소장 욕심이 너무 많은 거겠지만…

  6. !@#… Rui님/ 현실을 직면하세요: 오타쿠이신겁니다! (핫핫) 그런데 확실히 즐길 시간이 더 있으면 가장 좋지만, 손만 뻗으면 되는 위치에 소장하고 있기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는 것으로 우선은 위안을 삼으시길. :-)

  7. 신 키덜트 양성소 Kid Robot도 언제부턴가 미국성인문화로서 자리를 굳히고있는 덕분에
    요즘은 진짜 ㄱ나ㅅ나 toy 매니아, 콜렉터..
    솔직히 힙스터들 상대로 거기서 거기인 디자인 용품들을 조낸 비싸게 파는걸 볼때는 쓴웃음만 나오지만
    마케팅은 정말 열심히 잘 하는거 같더라구요.
    정말 질투납니다.

  8. !@#… Roll님/ 남 돈 버는 것에 질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의 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