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영년(박흥용) [시사인 328호 별책부록]

!@#… 시사인 2013년 연말 ‘올해의 책’ 추천 별책부록에 기고. 잘 안 팔린 책에서 선정해달라고 하여, 그렇게 했다. 기본적으로는 일전에 썼던 서평과 대동소이한 내용.

 

[영년] (박흥용)

스케일에서 오는 복잡성의 차이는 당연히 있지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에는 대체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공동체 바깥에서 오는 위협에 대처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고, 성원들이 서로 싸우며 공멸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일련의 룰이 있으며, 그런 것들이 명시적 규율을 넘어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는다. 공동체의 지속은 그럴듯한 간판을 통한 강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합의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이뤄진다. 현실적으로 가장 크고 탄탄한 공동체 단위인 국가도 마찬가지라서, 국가와 민족을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지속적인 자문과 성찰을 필요로 한다. 특히 오늘날 한국사회 특유의 정신 없는 질주, 그 와중에 민주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마저 거스르려고 하는 이들의 폭주를 생각할 때, 더욱 요긴하다.

그런데 당장 앞의 말조차 그렇듯, 근본적 고민들은 쉽게 추상적 관념의 영역으로 넘어가며 난해해지기 쉽다. 그렇기에, 생각을 자극하는 절묘한 우화의 역할은 늘 소중하다. 박흥용의 [영년](박흥용 / 김영사 / 1권 발간중)은 한국전쟁 직후 한 마을민들의 피난과정으로 그려내는, 오늘날 한국이라는 국가 공동체에 대한 우화다. 돌팔매 싸움으로 잘 알려진 한 마을에서 남북 각각의 이념적 명분으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 꼬리표를 붙이며 죽이는 상황이 오고, 그간 닦아놓은 터전이 무너지며 모두에게 공멸이 다가온다. 주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징용노동자들이 어딘가에 숨겨놓았다는 군량미다.

그러자 새로운 목표 아래 여정을 떠나는 남은 주민들 사이에서, 다시금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난다. 유일하게 장소를 알고 있는 젊은 아가씨를 군량미를 노리는 다른 집단은 물론 집단 내의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규율과 체계가 생겨나고, 얼마 없는 여행물품으로 주민들이 함께 살아남아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분배가 이뤄진다. 규칙을 합의해가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순탄하지 않고, 그 안에서 온갖 의심과 식량 다툼 등이 가득하다. 공유고 사유고 간에 남북의 이념을 딱히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휘말려 들게 된 큰 비극 안에서, 주민들은 부지불식간에 이기심과 나눔, 경쟁과 협력 사이의 줄타기를 맨바닥부터 해나가게 된다.

허허실실 선문답 같은 대화가 흐르는 롱테이크, 직유법 넘치는 시각요소들, 과감하게 건너뛰는 시점 전환 등 작가 특유의 표현력이 이런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낸다. 독자들의 적절한 관심 속에 무사히 흐름을 유지하고 완결에 도달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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