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합니다 [팝툰 25호]

!@#… 헉, 벌써 팝툰이 1년이 되어버렸다니. 잡지 창간을 목전에 두고 응원 기사를 써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참… 빠르다. 마감 한 이십몇번 하면 1년인 것이 격주간지의 페이스. 여튼, 앞으로 더욱 번창하고 비슷한, 혹은 더 나은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를.

생일 축하합니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풍습이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땅히 축하받아야할 일이라고 취급하는 엄청난 낙천성의 발현이랄까. 혹은 그런 낙천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세상은 살만 하다는 인식을 보급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생일을 축하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오히려 축하받지 못하면 비참해지는 쪽이 된다. 뭐랄까, 인생 별 것 없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축하받지 못하는 생일이란 무척 효과적인 캐릭터 전개 장치로 쓰이곤 한다. 2004년 앙시 페스티벌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여 유명세를 탄 애니메이션 작품 『축 생일』은 한국전쟁 당시 집안에 혼자 노는 한 소년이 놀다가 우편물을 받는데, 열어보고 선물처럼 즐거워하지만 알고 보니 가족사진과 군번줄이 들어있던 것이었다는 내용의 서정적인 작품이다. 전쟁의 비극이라는 큰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축하받지 못한 생일이라는 장치가 무척 효과적으로 사용된 사례다. 불쌍함을 오히려 캐릭터의 매력 요소로 전면에 내세운, 아직 국내에서 발간된 적 없지만 이미 각종 루트로 널리 알려진 만화 『빈쵸탄』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설정상 항상 빈곤하게 살아서 불쌍하도록 만들고 있지만, 역시 백미는 생일이다. 생일이지만 축하해줄 사람이 없어서 홀로 “생일 축하해”를 되뇌이며 잠드는 모습은 불쌍함을 극치로 올려주고, 뭇 오타쿠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반대로 생일을 축하는 것에는 좀 더 큰 효능이 있다. 예를 들어 생일을 축하받지 못할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대대적으로 생일을 축하받는다는 깜짝 파티 에피소드라는 손쉬운 감동의 코드는 어떨까. 평소에는 보잘 것 없는 인생 같지만, 사실은 주변인들이 항상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다는 잠시 동안의 따듯함에 취하는 것. 보통은 바로 다음 에피소드부터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성장한 것 같고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느낌이랄까. 물론 이 코드를 다시 비틀어서 깜짝 파티를 기획하다가 실패하고 더 침울한 분위기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생일 축하는 호러 장르가 아니라면 발전적 전개를 위한 일종의 필살기다. 축하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관심의 표명이기에, 축하받은 주인공의 성장 동력이 되어준다.

현실세계라도 기본적인 패턴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사람이든, 제도든, 기관이든 무엇의 생일이든 마찬가지다. 생일을 제대로 축하하는 것은 지난 한 해 동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겠지만 여하튼 온전히 받아들여준다는 의미이자, 앞으로의 시간도 더욱 발전하며 좋은 모습으로 존재해주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나아가 점점 정보는 늘어가고 기억력은 짧아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한번쯤 그 상대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또한 축하를 받는 대상도 스스로 자신을 정리해본다. 그런 식의 축하이기에, 축하를 받은 상대가 그것을 자신의 양분으로 받아들이고 차후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음 생일 때 축하받지 못하는 불쌍함에 말려들지 않고 더욱 좋은 축하를 받기 위해서, 한 해 제대로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팝툰 창간 1주년, 첫 생일을 축하한다 (덤으로 새 정부의 영번째 생일도 축하할까 했지만, 혹시나 막장 대운하에 대한 지지로 오해할까 두려워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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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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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생일 축하합니다 [팝툰 25호]

Comments


  1. 저는 제 생일을 축하받는게 싫어서 젊었을때는 제 생일날에 혼자 밖에 나가서 하루종일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며 돌아다니다가 밤 12시가 넘어서 다음날이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집에 들어가곤 했었죠. 요즘에는 처남이 저희집에 같이 살고 있는데, 공교롭게 처남과 제가 생일이 같은 날이라서 처남을 봐서라도 할수없이 생일을 지낼수밖에 없게 되었죠.

    생일에 관한 만화라면 빼놓을수 없는 작품:

    http://en.wikipedia.org/wiki/For_the_Man_Who_Has_Everything

  2. !@#… Dreamlord님/ 그 에피소드는 제가 Alan Moore의 DC만화 모음집에서 처음 읽고 한동안 다음 작품을 읽기가 싫어졌던 명작이었죠. Gibbons 특유의 우울한 표정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Watchmen 저리가라 수준이었고… 여튼 최고의 생일 관련 만화라는 것에 엄지손가락 세 개라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