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질주는 브레이크부터 [팝툰 26호]

!@#… 사실 이 비유는 왜 capcold가 사회발전에 관한 방향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닥치고 돌파력이 아니라 바로 성찰과 시스템이라고 강조하는지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마침 이런 타이밍이라서 이쪽 칼럼에 써먹었다.

 

전력질주는 브레이크부터

김낙호(만화연구가)

자고로, 자동차의 본분은 앞으로 힘차고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긴 거리를 많은 것들을 싣고 이동한다는 것의 실용적인 효과는 따로 말해봤자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기능적인 것뿐만 아니라, 엔진의 회전에서 나오는 고속의 움직임이 주는 쾌감은 실로 아드레날린을 펌프질한다.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뭇 청년들의 로망인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하지만 실험실이나 망상세계가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 자동차가 질주하려면 약간 다른 조건들이 필요하다. 실제 세상의 질주라면, ‘산길 레이싱’ 만화 『이니셜D』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두부가게 아들 타쿠미가 두부 배달로 쌓은 운전 실력을 바탕으로, 한물 간 옛날 차로 혁혁한 최신예 기종들을 모는 드라이버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내용이다. 이 만화는 무슨 레이싱 전용 서킷에서 질주하는 신기한 머신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있는 산길에서 실제로 도로 위에 운전하는 차들이 벌이는 경주로 가득하여 더욱 재미있다. 그런데 차들이 제대로 질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물론 강한 엔진이 중요하다. 여하튼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그런데 엔진만으로 모든 승부가 나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엔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잘 듣는 브레이크, 확실히 도로에 달라붙는 타이어, 안정적인 핸들 등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심지어 자동차 바깥의 주변 환경까지도 활용할 줄 아는 능숙한 운전 실력이 그 조건들이다. 즉 제대로 방향을 잡고 정확한 타이밍에 제대로 속도를 줄일 수 있는 기능이 되어 있으며, 실제로 그것들을 적절히 구사해야만 오히려 진짜 질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에 우리 멍한 표정의 주인공은 경쟁자들보다 턱없이 부실한 엔진을 장착한 차로도 열심히 이기고 명성도 얻고 여자친구도 얻는다.

그런데 이런 것은 비단 자동차만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치다. 제동 장치가 없는 강한 추진력은 민폐고, 제동 장치와 엔진을 적절히 활용하는 균형을 잡지 못하면 차는 파멸의 절벽으로 떨어진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군대/회사/동호회/가족/학교 가운데 어디에선가 그런 민폐성 추진력 때문에 피해를 입으며 치를 떨어본 경험이 있으리라. 게다가 어차피 인간세상은 하나로 고정되기에는 너무 변인이 많은 곳이라서 하나의 마스터플랜, 하나의 지도로 해결할 수 없다. 그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어디론가 움직이고 변해나가는 그 세상사 속에서, 최소한 차가 뒤집어지고 폭발해버리지 않을 정도의 장치, 혹시 달리는 와중에서 짐이나 승객이 하나쯤 떨어져버리면 잠시 스톱해서 뒤로 돌아가서 다시 태워줄 수 있는 정도의 장치는 필요하다.

속도계도 안보고, 기름 잔량도 확인하지 않고, 브레이크는 아예 발도 안 댄 상태로 달리는 사회. 차가 이상 신호를 보내며 털털대자 오히려 뒷좌석에 탄 사람들과 짐을 밖으로 내던지고 더욱 더 엑셀만 밟은 사회. 언제 자기가 내던져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오히려 차의 속력 탓으로 돌리며 하염없이 엑셀만 밟자는 사회.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엑셀만 밟아줄 야매꾼들을 아직도 신봉하며 새로운 대박을 쫒는 곳. 이제 브레이크도 밟고 좌우 턴도 좀 하고, 폭주가 아닌 ‘운전’을 할 시기다.

그렇기에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때에 만들어 놓는 것은 중요하다. 엔진이 강해보일수록 더욱 필요하다. 그런 시스템을 적절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브레이크 밟는 능력은 좋은데 애초에 브레이크가 없으면 어차피 말짱 도루묵이다. 그것을 위한 민주주의고, 그것을 위한 3권 분립이며, 그것을 위한 선거제도다. 모든 집단에 그런 것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확실하게 있다면 써먹어야 하지 않을까. 질주의 꿈은, 브레이크 점검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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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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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전력질주는 브레이크부터 [팝툰 26호]

Comments


  1. 오른쪽 깜박이 틀고 유턴하는 그 분 이야기군요.

    아니, 제가 오해한 것이겠죠?

  2. !@#… 미고자라드님/ 그러게 말입니다.

    흐흥님/ 그것도 무려 일방통행로에서 호쾌하게 유턴하시다가 지금 전복 직전인 그 분 이야기가 좀 들어가 있죠.

    erte님/ 오오 그런 바람직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