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팝툰 27호]

!@#… 국내에서 체포전담조 부활 논란과 해외에서 티벳 시위가 한창일 때 쓴 글. 하기야 이제 총선 결과에 따라서 더욱 온 힘을 다해 막아내야할 사안들은 많아지고 세상은 시끄러워질 수 밖에 없으니(마땅히, 시끄러워져야만 하니) 앞으로도 계속 시의적절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러브 앤 피스.

 

폭력은 홍보의 수단이 아니라니까
(실제 게재 제목: 그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김낙호(만화연구가)

폭력은 여하튼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항상 배우곤 하지만,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제3자들에게 메시지를 홍보하기 위한 폭력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재단하기 힘든 면이 더러 있다. 당장 메시지를 홍보하려는 대상들에게 직접 행하는 폭력이 아니라서 말이다. 물론 그런 폭력이 다른 폭력과 달리 대단히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고, 폭력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부대피해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폭력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그것에 대한 억제책으로 상대방의 폭력을 부르며, 또한 폭력에 대한 사람들 반응의 역치가 점점 올라가기에 한 층 강한 자극을 준비해야 하는 등 항상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폭력이란 강력한 화제성을 지니고 있기에,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누구라도 쉽게 동원하고 싶어진다. 강자는 그럴 힘이 있으니까, 약자는 다른 선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전 세계, 분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적대 세력들 사이에 발생한 인질 사건 등에서 거래를 터주는 것이 직업인 네고시에이터의 활약상을 그린 만화 『용오』에는 그런 상황들이 주구장창 쏟아진다. 독립운동을 하려는 소수민족, 계급적 원한 관계, 파벌간의 알력 등 어느 한쪽이 확고한 약자의 입장에서 폭력이라는 수단에 손을 뻗는 사례들이 넘친다. 그런데 주인공 용오는 어떤 쪽도 편들지 않는다. 단순히 중립을 지키는 것이 중개인의 의무라서? 그런 점도 물론 있겠지만, 이 주인공은 매번 상황의 복잡 미묘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의 폭력이라 해도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도 안다. 강자의 입장도 약자의 입장도 서로 상충하고 소통이 막혀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중개인으로 나서 열심히 고문을 당해가며(정말 열심히 고문당한다) 소통의 경로를 뚫는다. 그렇게 의뢰받은 상황은 해결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음에 아쉬워하는 주인공을 뒤로 하고, 각 이야기는 종결된다.

물론 아무래도 현실세계에는 중간에서 모든 폭력을 빨아들여 무화시키고 소통을 열어주는 그런 특이한 인간 샌드백이 존재할 리 없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주인공으로 상정하고 만들어진 만화에서조차도, 항상 한 가지 귀결을 벗어나지 않는다. 바로 폭력적 사태의 와중에,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해서라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그들의 메시지는 전혀 퍼지지 않는다는 것. 보기와는 달리 애초부터 폭력과 메시지 소통은 상극이다. 폭력을 써야 소통이 가능해진다고 처음에는 생각할지 몰라도, 폭력이 지니는 화제성은 오로지 폭력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즉 모든 이목을 폭력에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정작 아무도 메시지에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든다. 상황이 뭐 하나 바뀌지 않고 여전히 약자의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은 상황이라도 폭력이 진정되기만 하면 사태가 해결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쉽게 발생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기 위해서 아예 게릴라 전쟁을 하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 우리를 알아달라고 주목을 끌기 위해서 폭력이라는 수단을 쓰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순진하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노선은 중국의 식민지배로부터의 티베트 독립 필요성을 강변하기 위한 지금껏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죽창과 돼지 능지처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대세를 탄 호소력 있는 사진 한 장, 글 몇 마디가 더 설득력이 있다. 백골단과 최루탄이라는 폭력적 수단보다 각종 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소통 경로를 조금이라도 더 열어준 것이 선진 시위문화 추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었다. 모든 것이 오해다, 내 뜻을 내 맘대로 전달하지 않는 언론은 눌러주겠다고 폭력적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정말로 선진적 홍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낫다. 확성기를 단 불도저가 아닌, 진솔한 쌍방 대화가 가장 훌륭한 홍보다. 가장 급할수록, 당장 주목을 끌고 메시지를 뿌리고 싶을수록, 오히려 폭력적 방법들을 피하고 소통 자체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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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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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그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팝툰 27호]

Comments


  1. 그런식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뭔가 그런 심오한 뜻이 있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단지 피가 많아서 인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2. 글쎄요. 비폭력 노선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효과적이라는 명제야 맞다고 쳐도, 그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상황, 그러니까 억압된 상황에서도 비폭력이 효과적인 운동 방식일런지는 많이 의심스럽습니다. 가령 비폭력 노선의 승리로 꼽는 케이스가 보통 마틴 루터 킹과 간디인데, 이들이 모두 언론에 대한 통제가 그리 안 심했던 자유주의 국가(영,미)의 국민(혹은 식민지인)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들의 메시지가 언론을 타서 워싱턴/런던의 국민들과 정치세력을 움직였던 것인데, 애초에 언론 자체가 국가의 통제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은 중국에서도 이같은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인터넷 정도로는 좀 힘들죠. 달라이 라마의 노선이 정작 티벳에서는 반감을 사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3. !@#… ullll님/ 피가 넘쳐나서, 스스로 좀 빼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죠 확실히.

    우웅님/ 그래서 달라이라마도 자유주의 국가들을 열심히 돌면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죠. 반면, 중국 내부에서는 현재의 티벳 시위 정도 규모라면 아무리 폭력을 최대한 동원한다 할지라도 어차피 홍보루트로부터 차단됩니다. 총도 맞고, 효과는 없고. 쿠바마냥 게릴라전으로 정부를 전복하지 않는 한은 그렇습니다(누가 체첸에 관심이나 가지고 있습니까?). 달라이라마 노선이 비록 느리다 할지라도 효과가 있다는 것은 위구르와 비교해보기만 해도 쉽게 드러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