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우면 강하다 [팝툰 28호]

!@#… 소통전략이란, 중요하다. 모든 담론활동에서 단순한 자위행위와 사회적 움직임을 만드는 행위를 구분 짓는 핵심 잣대니까. 그래서, 가끔 귀여운 이야기를 할 필요가…;;;

귀여우면 강하다

김낙호(만화연구가)

그저 그런 경영상태가 계속되던 독일 베를린 동물원이, 작년에 다시 독일은 물론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자 관광 명소로 치솟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 보호와 인간의 자연 개입 등에 대한 관심까지 덩달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그 모든 계기가 된 것은, 한 마리 백곰 때문이었다. 물론 어미에게 버림받고 인간사육사에게 키워졌다든지 하는 식의 사연도 사연이지만, 사실 그 모든 힘을 발휘한 것은 아주 명쾌한 한 가지 이유에서 기인했다. 바로, 압도적으로(!) 귀엽다는 것. 그 어떤 경영전략도 교양 캠페인보다도, 귀엽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가히 이 시대 최강의 이미지는 바로 ‘귀여움’이 아닐까.

사실 귀엽다는 것은 오랫동안 일종의 폄하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귀엽다는 지칭 속에는 어떤 유아스러움이나 뭔가 미숙하다는 이야기가 들어있기 마련이었고, 진지하지 못한 작고 장식적인 것의 느낌이 있었다. 따라서 귀여운 것을 추구하는 것 역시 정도 차이는 있지만 유치한 하라는 업신여김의 뉘앙스를 감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틈에, 귀여움은 강해졌다. 귀여움은 더 이상 부족하고 약한 것보다는 하나의 즐거운 취향으로서 자리매김했다. 그 속에는 귀여움을 단지 표피적인 모양새가 아니라, 마음을 여는 창구이자 나아가 그 대상과 관련된 다른 모든 것을 다시 읽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로 만들어낸 대중문화의 특유의 느슨함이 큰 힘을 발휘했다. 즉 마음을 여는 만큼, 수용자 자신의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귀여움의 정수와도 같은 만화 『요츠바랑』을 들어보자. 이 이야기는 무척 명랑하고 쾌활하고 아무 생각 없는(!) 5살 꼬마소녀 요츠바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요츠바가 번역가로 재택 근무하는 아빠, 이웃집 자매들, 몇몇 동네 사람들과 노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외계인의 침공도 없고, 가슴시린 로맨스와 불륜도 없고, 청춘의 성장통도 없다. 그저 일상적 상황과 소소한 웃음뿐이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깊이도 없고 극적인 사건도 없는 심심한 생활 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압도적 귀여움이라는 요소와 맞물릴 때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심심한 세상사가 일상의 발견과 즐김에 대한 한없이 낙관적이면서도 가끔은 꽤 철학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귀여우니까 몰입하고, 납득하고, 함께한다. 작품 자체가 철학적이라기보다, 작품을 읽으며 미소 짓고 오히려 자신의 상황 속에서 그런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게 만드는 힘이다.

귀여움은 엄청난 무기다. 그것을 한 절반 정도쯤은 깨달았기에 지난 총선의 그 수많은 온라인 플래시 정당광고들이 나름대로 앙증맞은 그래픽을 구사하려고 노력을 했겠지. 그리고 선관위는 (정작 자신들은 투표권도 없을) 미성년 미소녀 그룹을 선거 독려 캠페인 모델로 내세우고 말이다. 물론 그 분들이 그다지 귀여움에 대해서 깊이 추구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대체로 귀여움보다는 조악한 유치함으로 다가왔지만 말이다. 정말 강력한 귀여움은 단순히 마음을 파고들어 그 구멍으로 의미를 부어넣기 위한 도구 따위가 아니다. 바로 시대적 동기의 코드이자 참여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마치 ‘멋지다’는 것이 시대의 핵심 동기여서 멋짐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회운동에 뛰어들기도 하고 특정한 유행도 발생하곤 했듯 말이다. 귀여움은 이렇듯 강하지만, 아직까지 그 역량이 충분히 활용되고 있지 않다. 캐릭터 상품으로서 발휘하는 상업적 역량은 어느 정도 진전이 있지만 그보다 더 큰 힘, 바로 사람을 참여시키고 움직이는 힘은 아직 개척 정도가 미미하다. 자발적 이해와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진보의 움직임을 독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끝없이 반복적인 계몽이 아니라 압도적인 귀여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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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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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귀여우면 강하다 [팝툰 28호]

Comments


  1. 안그래도 이거 올라올때가 되었는데.. 하고 있었습니다 ㅋㅋㅋ 여긴 요츠바 삽화가 없어서 쬐께 아쉽군요 ㅋㅋㅋ 아즈망가 대왕에서 사카키가 치요에게 했던 대사가 있는데(“귀여운건… 강해”), 그게 이렇게 의미가 커질줄이야. ㅋㅋㅋ

  2. 전 제목보고 딱 여자친구 생각 났다는…
    저항할 수가 없어요…ㅠ.ㅠ
    (그렇다고 로리취향은 아니지만)

  3. 귀여움에 열광하지도, 귀엽지도 않은 저로서는 참 씁쓸한 세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4. !@#… erte님/ 핫, 저도 그 대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했던 겁니다. :-) 생각할수록, 삶의 진리더라는.

    nomodem님/ “이것은, 좋은 것이다.”

    ullll님/ 2번이나 리플을 달게 만들 정도로 강하신가보군요!

    모과님/ 어허, 은근히 인기많은 녹용군을 부인하실 작정입니까

  5. “We shall not use cuteness to champion crass commercial ventures, for that use merely serves to corrupt and defile, twisting cuteness from beauty into ugliness. Nor do we live in a fantasy world where we pretend that suffering does not occur. Rather, we fight for beauty and purity and we fight to make the world a more joyful place. This is the cute manifesto.”

    -Jame Kochalka (Superstar)

    http://www.indyworld.com/kochalka/manifesto.html

  6. !@#… Dreamlord님/ 헉, Kochalka가 이런 귀여운 선언을(왜 이제야 처음 봤지…)! 저는 정치성, 이 분은 순수함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역시 귀여움을 옹호하는 이들은 어딘가 통하는 곳이 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