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때 – 『음주가무연구소』[기획회의 223호]

!@#… 그런데, 술을 먹지 않아도 이미 바보인 자들에게는 약이 없다(특히 그 상태로 정책 의결까지 하고 있다면). 지난 호 게재분.

 

뭐 어때 – 『음주가무연구소』

김낙호(만화연구가)

성인들에게는 누구나 주사의 기억이 있다. 아니, 기억이 없어서 더 난감한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그 결과 술을 싫어하게 되었든 오히려 더욱 좋아하게 되었든, 이성의 끈을 살짝 놓을 정도까지 술을 마셔보는 경험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보편적이다. 애초에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사회와 자기 자신이 부여한 여러 이성의 속박을 느슨하게 하기 위함인데, 그 속박이 풀릴 때 스며 나오는 정직한 알맹이는 어떤 방향이 되었든지 간에 정상인(즉 취하지 않은 사람)의 기준으로 보자면 무척 바보스럽다. 근엄한 정치인이 사실은 성추행 욕구로 불끈거린다는 것이 드러난다든지 하는 불쾌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재미있게 망가짐으로써 주변을 즐겁게 만드는 유쾌한 경우도 있다. 전자는 제도의 쓴맛을 보여주어야 할 영역이지만, 후자는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되어준다. 이왕, 또 다른 술자리에서 안주가 되어주면 더욱 제격.

『음주가무연구소』(니노미야 토모코 / 애니북스)는 한 유명 여성 만화가의 음주편력에 대한 유쾌한 기록이다. 아니 음주편력이라기보다 주사편력에 가까울 것이다. 술 먹고 놀며 바보가 되는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일화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음주에 대한 자신의 대단히 낙천적인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이것은 이은홍의 『술꾼』이나 송채성의 『취중진담』같은 작품들과 달리, 적절한 낭만에 젖은 시적인 권주가가 아니다. 술 한 잔에 담긴 인생을 논하는 것도, 술을 매개로 감정의 소통을 하는 따뜻함에 취해보자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좁고 구체적이고 명확한 소재를 추구한다. 바로, 술을 먹고 바보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술에 대한 철학은 생명의 물이라느니 하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사람들 속의 바보를 이끌어내는 도구다. 술을 먹는 이유, 술을 먹고 변하는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최종 결론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지인들과 만든 음주가무연구소가 사실 연구는 거짓말이고 그냥 술판이라고 후기에 고백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식으로 음주를 매개로 한 사람들의 유쾌한 바보스러움에 대한 멋들어진 통찰이 은근히 여러 가지 담겨있다. 앞서 언급한 술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준다는 것도 그렇고, 술꾼들의 사고방식의 습성인 “뭐 어때”에 대한 통찰 역시 훌륭하게 배꼽을 잡게 만든다. 낙천적으로 “뭐 어때”라고 얼버무리지 않으면, 어제의 주사가 도저히 오늘의 제정신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다. 어제의 추태는 술주정뱅이였지 자신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추태에 대해서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낙천성 아닌가. 물론 주변에 끼친 민폐는 충분히 수습해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온 주변이 다 비슷한 “뭐 어때” 정신으로 무장한 술꾼들인 자리였다면, 온 가게가 합심해서 옷 벗기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고 있다한들 뭐 어떤가. 자신들끼리는 마냥 즐거울 정도로 이미 술 먹고 바보가 되어 있는데. 야밤에 폭죽을 한 아름 들고 데이트 족들을 놀라게 하여 떨어트려 놓겠다고 돌아다니는 이상한 만취상태 2인조가 있어도, 뭐 어떤가. 아, 불장난으로 불상사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말이다.

『음주가무연구소』에 등장하는 작가와 주변인물(즉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술꾼이다. 혈뇨와 혈변이 나와도 술자리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술자리의 즐거움이란 술 자체보다도 우선한다. 술을 안 마셔도 거나하게 취해서 주사를 부릴 때나 사실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정도로, 역시 핵심은 알콜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바보로 변신하는 패턴 그 자체다. 술꾼이기 이전에 유쾌한 바보들인 것이다. 바보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언제라도 계기를 마련해서 서로 바보스러움을 떨치며 즐거워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힘든 집중노동 후에 뒤풀이 격으로 가는 술자리라 할지라도, 힘든 삶에 대한 한탄이 아니라 지금의 술자리를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도저히 처절하고 비장한 감정선이 없고, 그저 술을 마시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자신들이 있다. 삶의 고단함을 술로 달래는 인생의 무게가 아니라, 기꺼이 술을 먹고 바보가 되는 이들의 현재형 즐거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특별히 사회적 잣대를 놓고 볼 때 대단히 잘 산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집세 고민하고, 각자의 노동력으로 생활비를 버는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는 등 그저 자신들의 즐거움을 추구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그리고 술을 매개로 할 때 그 즐거움을 가장 극대화시키고 말이다. 다르게 보자면, 그것이 바로 이들에게는 인생의 페이소스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술을 매개로 해서 사람들 속의 바보 기질을 이야기하고, 그 바보 기질을 매개로 해서 낙천적 사고에 대한 탐구를 하는 작품인 셈이다. 아니 뭐 정말로 이렇게 진지하게 분석하며 접근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 끝없이 즐거운 음주행각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정도까지 생각이 닿더라는 말이다.

물론 그런 식의 유쾌한 음주에 대한 공감대나 대리만족보다는 액면상의 ‘엽기’ 슬랩스틱 개그에 먼저 눈길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여하튼 실화라고는 해도 그만큼 일류 코미디니까. 혹은 같은 작가가 이후에 탄생시킨 어마어마한 히트작 『노다메 칸타빌레』와 연관을 지어, 이런 작가니까 그런 주인공들을 탄생시키는구나, 하는 식의 계보학적(…) 감상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냥 아무 젊은이의 술버릇 일기라기보다는 그쪽이 훨씬 화제성도 있고 몰입해서 보기도 좋으니 말이다. 각 에피소드나 캐릭터들이 어떤 식으로 나중에 여러 작품으로 스며들어갔는지 머리를 굴려보는 것은 팬으로서 즐거운 향유활동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작품을 계속 읽다보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작품의 핵심에 놓인 그 유쾌한 낙천성에 빠지게 될 수 밖에 없으니, 뭐 어떤가.

한국에 출시된 『음주가무연구소』는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음주가무연구소 에피소드들, 술 마시는 것을 주제로 한 단편 연작 『한 잔 하러 가자』, 그리고 작가의 결혼과정이나 일상생활에 대한 짜투리 만화 몇 가지를 같이 묶어낸 판본이다. 응집력은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종종 술로 인해 발휘되는) 말도 안 되는 낙천성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묶여주기 때문에 그래도 꽤 만족스러운 독서를 할 수 있다. 바다와 맥주잔 모양으로 시원하게 멋을 부리고 장난끼를 섞은 한국판의 표지 역시 출판사가 이 책을 얼마나 즐겁게 만들었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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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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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가무연구소
니노미야 토모코 글, 고현진 옮김/애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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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뭐 어때 – 『음주가무연구소』[기획회의 223호]

Comments


  1. 아아, 이 만화 정말 유쾌하지요!!! 비록 체질상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실 수는 없지만 (랄지…취하기 전에 의식이 날아가는;;) 그럼에도 배를 잡고 웃게 만드니 역시 무서운 작가랄까요. 실은 제 주위에도 겉보기엔 멀쩡한 직장여성인데 즐거운 무리 속(혹은 홀로) 취하면 막장으로 저 만화 속의 초민폐 바보급이 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본인에겐 그렇게 말하지 않고 단지 끝내주게 유쾌한 만화니 강추!…만 했지만…) 왠지 취해서 바보가 되는, 일명 ‘전인류 바보화 현상’도 나쁘지 않을지도?!–라는 기묘한 설득력이 있달까요. 동시에 젊은 날이기에 가능한 유쾌한 광기(…)의 초상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피를 토해도 미친척하고 계속 마실 수 있지요…사적이지만 작가가 [시마과장] 작가에게 결국 술을 얻어 먹었는지 궁금하덥니다.

  2. 술을 마시고 떠들썩한 바보가 되는 것의 즐거움만 그려낸 재미있는 만화였어 ^^

  3. 돈도 없는데 이 만화 사서 유쾌하게 봤습니다. 노다메를 워낙 재밌게 봤는지라. 대체로 공감은 되는데 작가일당이 주위에 끼치는 민폐가 제법 공포스런 수준이라 저런걸 그냥 낙천적으로 넘어간다는게 좀 최연희 같더라구요. 술판에 다이빙해서 깨먹은 그 수많은 접시와 술잔은 나중에 변상해 줬는지 궁금.. ^^;; 아니라면 유쾌한 주정뱅이 바보들이 아니라 매우 민폐스런 주정꾼으로 생각해야 될 듯 합니다.

  4. !@#… 시바우치님/ 아니,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젊어서도 그런 짓은…;;; 그리고 이 책이 나간 후에는 아마 그 누구에게라도 술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infini/ 괴로움만 그려낸 만화도 한번 해보면 장난이 아닐지도.

    지나가는이님/ 변상은, 일본이니까 대충 넘어가지는 못했을겁니다. 게다가 그 인간들은, 사고친 가게에 이후로도 계속 단골을 하는 경우 투성이라… (핫핫)

  5. !@#… stirner님/ 물론 그 돈으로 나는 술을 한 번 더 사먹을꺼야! 라고 하시는 분들이라면… 음 이 만화책의 정신을 더욱 열렬히 실현하시는 것이 되겠군요.

  6. 국내판 제작비화.. 랄것도 없지만.. 처음 책의 디자인 계획은 일본판(아마 개정판..)과 비슷하게 표지에 온갖 술주정뱅이 사진을 공모하여 강한 이미지로 갈 예정이었으나 … 독자제군의 참여율저조로 지금의 모습이 된듯.. 하더군요. 출판사블로그에 의하면…
    술먹고 ..주사하는 정도야 일본이나 우리나 그닥 큰 차이는 없겠지만 그걸 사진으로 찍어둔다던지 .. 더군다나 책표지에 실을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이 우리나란 많지않은 듯합니다.
    특히 안좋은 쪽으로 사진이 퍼진 모습을 많이 보게 되니….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듯…

  7. !@#… t님/ 하기야 미국에서도 술먹고 황당한 짓 하는 사진을 마이스페이스에 올렸다가 나중에 취직면접에서 뻘쭘한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하곤 하죠. 역시 세계공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