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말려야 한다” 프레임을 제안하다

!@#… 큰 문제가 터졌는데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이 명확할 때, 사람들은 한가지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항상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떤 쪽으로 자신과 자신의 행위를 틀짓기하느냐에 따라서 이후의 판도가 크게 바뀔 수 있다.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바보‘냐 ‘나쁜 놈‘이냐.

1> 바보를 선택하는 경우: 의도가 없음을 통해서 죄과를 누그러트린다. 대신 무능하다고 찍힌다.
2> 나쁜 놈을 선택하는 경우: 의도가 있으니 만큼, 죄과가 누그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쁜짓을 한 능력은 인정받는다. 대신 그 능력이 뛰어날수록, 나쁜 짓에 사용했다는 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더해진다.

물론 실제로는 바보이자 나쁜놈인 경우도 있다. 나쁜 의도가 있으나 그마저 바보같이 진행해서 결국 들키는 것. 그러나 상식의 이항대립은 결국 둘 중 하나를 더 바라보게 만든다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실은 이 지옥의 취사선택의 틈새에는 막강한 제3의 길이 있으니,

3> 한 쪽으로 선언을 하지 않고 계속 뭉개는 경우: 바보냐 나쁜 놈이냐 의견이 분분하여, 어떤 식으로 이 사건을 바라볼지 애매해진다. 그 해석 과정에서 다툼이라도 일어나주면 금상첨화, 물타기는 완성된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다른 안건이 발생해서 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아주 그만이다.

!@#… 가까운 예로, 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BBK 경제사범 사건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하고 다닌 영상이나 명함 등의 물증이 있기에 그냥 잡아뗄수는 없다(노력은 해봤지만). 여기서 선택의 기로가 다가온다. 젊은 사기꾼에게 속은 바보냐, 아니면 젊은 사기꾼과 같이 해먹은 나쁜 놈이냐? 선택은 바보 쪽이었다. 그런데 웃긴 일이 벌어진 것이… 그 쪽이 바보 선언을 했으면 우왕ㅋ굳ㅋ 하면서 바보라는 측면에서 공략을 했어야 할 모 당이, 자꾸 나쁜놈 쪽으로 들고 간 것이다. 그 결과 BBK 떡밥은 모호한 미결사건마냥 지연되고, 도움 안되는 정쟁의 이미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당선 후 특검이야 어차피 요식행위(정말 조사한다고 불러내서 밥먹었다는…). 1>을 선택했는데 상황이 3>을 만들어주다니, 이렇게 운 좋기도 참 힘들다. 만약 바보라는 부분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어 주기만 했다면 청계천 시장 운운하던 유능함의 허상에 조금이나마 타격이 갔을 터인데. 뭉개지 못하도록 신속 확실하게 바보로 낙인찍었어야 했다고!

!@#…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말고 한 쪽으로 낙인을 찍으라는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물론 최근의 쇠고기 협상 이야기에 대한 정부측의 각종 혼선 만땅 발표 때문이다. 영어 해석의 오류를 범했다느니,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다느니, FTA와 연관되어 있다느니 없다느니, 구두 약속을 받았다느니, 사실은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느니… 담론을 만들어나가는 입장이라면, 오히려 이런 국면일수록 큰 틀을 명확하게 해야한다. 이들의 이런 삽질은, 바보인건가 나쁜 놈인건가. 군중의 뜨거운 가슴이야 물론 나쁜 놈을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 자신들이 벌 돈에 눈 멀어 국민을 팽개치는 나쁜 놈, 미국의 탐욕 어쩌고.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영양가 없다. “나쁜 놈 거꾸러트리자”는 세계관이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 한두번 일시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정의감에 호소함으로써 명랑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오히려 지금 그리고 앞으로 더욱 절실한 것은 “바보를 말리자” 세계관이다. 민주화든 경제든 뭐든, 나쁜 놈 쓰러트린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굴릴 만한 관리 능력이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반 이상쯤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회의 경우, 사회적 사안의 결정과정에 민주적 소통경로가 필요한 것은 나쁜 놈을 때려주기 위해서라기보다 바보를 말리기 위해서다. 어설픈 협상으로 카드를 다 주고 얻은 것도 없고 위기관리 절차도 무장해제하고 덤으로 전국적 패닉 사태까지 일으킨 것은 나쁜 놈이라서가 아니라 바보라서다. 바보짓에 손실을 입고 있는 중이고,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나쁜 놈 탄핵이 아니라, 바보를 말릴 수 있는 민주적 제도를 이야기해야 한다. 나쁜 놈 세계관에 박혀있으면, 쇠고기 재협상해라 책임자 옷벗어라 그리고 끝이다(탄핵 이야기야 워낙 오버질이지만). 하지만 바보 세계관으로 바꿔타면, 좀 더 구체적이고 쓸만한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다. 이런 바보같은 짓이 왜 발생했는가, 그것을 앞으로 막으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계속 제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무소불위의 막가파 야매 정부와, 조만간 시작될 한나라당 과반 국회가 바보짓을 할 때마다 막을 것인가? 국회 레슬링?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촛불시위 참여? 그보다 좀 더 제도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해야지. 정보공개 의무의 확대, 국회의 정책 감시 권한 강화와 국민소환제 도입, 언론 다양성을 위한 언론법 개선과 취재 합리화,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표현자유를 위한 선거관리법 개정… 대운하가 아니라 이런거야 말로 진짜 대한민국 개조 프로젝트일 듯.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편리한 경로가 바로 “바보를 말리자” 세계관이라는 말이다.

!@#… 협상 비스무리한 구두발언들이라도 조금씩 오가고 있는 만큼, 어떤 이들이 희망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촛불은 다시 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끌고 가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것은 마치 고기 구워먹겠다고 불 피우는 행위와도 같다. 처음 불을 피울 때는 종이나 휘발유 등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현란한 불꽃이 삽시간에 피어오른다. 하지만 그 화려함에는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가득한데다가, 빠르게 소모된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해주면, 그 불이 화덕의 진짜 연료인 석탄이나 숯, 땔감 나무 등을 점화시켜준다. 휘발유로 겉불만 붙었을 때는 아무리 불길이 화려해 보여도 고기를 굽지 못한다. 익지도 않고, 검댕 투성이가 되고, 잡내만 잔뜩 들어간다. 탄에 불이 붙어서 강하고 일관적인, 잡티 없는 강한 열기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태가 되어주어야 비로소 고기를 굽는다. 잘 붙은 불일수록, 고기는 맛있다.

!@#… 좀 더 잘 굴러갈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분노로 불타다가 끝날 것인가. 담론의 프레이밍은 바로 전자의 방향을 가기 위해 동원해야할 중요한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바보는 말려야 한다”라는 심플한 명제의 세계관으로 현 정부의 실태들을 묶어내고 싶은 것이다. 사실은 비슷한 취지의 ‘야매척결‘이라는 표어를 훨씬 좋아하지만, 요새 사람들이 야매라는 말에 공감대가 무척 부족한 듯 하여 눈물을 머금고…;;;

여하튼 뭐 그렇다. 모두 함께 외쳐보자.

“바보는 말려야 한다”

[바보는 말려야 한다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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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thoughts on ““바보는 말려야 한다” 프레임을 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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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modifier 5년전에 그렇게 생각들 해줬더라면…(먼산) 여튼 언제 이 캠페인이나 http://t.co/ovjyKcIa 제대로 다시 다듬어보기는 해야하는데 말이죠. @pp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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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psskr 정이 넘쳐서(…) 바보는 동정표를 얻을 뿐이고, 어쨌든 이 프레임 http://t.co/Il55BmC6 을 넘어서지 못하면 어려울 듯요^^;

  13. Pingback by 치즈

    @ppsskr 정이 넘쳐서(…) 바보는 동정표를 얻을 뿐이고, 어쨌든 이 프레임 http://t.co/Il55BmC6 을 넘어서지 못하면 어려울 듯요^^;

Comments


  1.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캡선생님이 아까운 지면을 통해 소비(블로그 공간도 에너지의 저장소이며, 여기에 쓰여지는 개인의 뇌세포활동과 시간은 그야말로 막대한 에너지라는 점을 감안할때 시간당비용으로 캡선생의 지적능력활동을 계산해보면 오마이갓)해야 할정도로 우매함이 넘쳐 흐르는 세상…

  2. 바보를 말리는 쪽으로 몰아야 된다라… 신선한 시각이군요.
    오늘 글도 잘 봤습니다 ^^

  3. 저는 둘 다 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얘만 쫓아내고 다음부터 바보를 말리는…도둑놈 심보군요 OTL)

  4. 제가 항상 주장하는 바. 국가의 녹을 먹는 자들은… 그냥 무능한 겁니다. 무능해서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는 거죠.

  5. 하지만 전 아직도 “야매척결”이 입에 착착 붙고 더 좋지 말입니다;;;

    BBK때 바보프레임을 적용하지 못한 이유는, 그 자신들도 바보였기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만;;

  6.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6
    글 전체에선 어쩐지 우리말/글도 못하니 다른 건 오죽하랴, 라는 자칫 위험한 비난의 유혹이 느껴지지만, 어쨌거나 사례 하나하나는 재밌네요. 뭐, 남 실수는 언제나 재밌는 거니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 정도면 실수 수준을 넘어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7. MB님과 측근들의 개그 질부터 말려야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8. !@#… nomodem님/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건설적인 일을 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핫핫)

    愛天님/ 나쁜 놈 찾기 삽질하는 것에 올인하는 것이 워낙 안타까우니까요…;;;

    dcdc님/ ‘나쁜 놈’과 싸우려면 순간 최대출력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데, 저는 저혈압형 인간이라서요.

    민무늬님/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레벨업하시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박진석/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녹을 ‘주는’ 자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권력을 현명하게 행사해야한다는 것. ‘국민’들이 권력자로서의 자각이 부족해!

    erte님/ 물론, 고렙 유저들을 위한 제 표어는 여전히 야매척결입니다! :-)

    Jens님/ 개그라는 자각이 없어서 탈이죠. 웅장하고 거대한 탈.

  9. 바보를 말리는 것보다 놀리는 게 언제나 훨씬 재밌다는 게 문제죠. ㅎㅎ
    이제 바보 말리는 제도에 대한 다음 글을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10. 캡콜드님 덕분에 하루하루 레벨업 해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나쁜놈 쫓아내기”를 하려고 해도 제대로 시행 될 것 같진않고(미디어 다음 서명으로 탄핵시키려 한다는건 참…) 일단 당장 일어나고 있는 바보짓들 이라도 말려야겠죠.

  11. !@#… 모과님/ 공짜로는 안되죠. (핫핫) 그보다, 안전장치로 작용하는 제도들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쏟아냈지만, 그것을 “바보를 말리기 위한” 것으로 틀짓기해내어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 부족했죠. 기회될때마다 하나씩 건져올려서 포장해줄까 합니다.

    언럭키즈님/ 뭐, 시대를 악을 물리치는 히어로보다, 멍청함을 말리는 상식인을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요.

  12. 대통령이 된 후에도 전형적인 ‘생색내기’형 정치인(?)인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제발 일일이 다 건드리지 말고 차라리 그대로 놔둬줬으면 하는데, 생색을 내야 하니 다 엎고 있고…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요? 요새는 ‘대중이 말씀을 전해듣지 못해 무지몽매하니 이런 일이 일어났노라.’라고 정국을 파악하고 계시는 모양입니다만…

  13. 제도를 딱딱하고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된 텍스트가 아닌, 현실 차원에서 들여다보게 되는 그 지점이 바로 일반인이 통과하기 힘든 병목지점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14. !@#… Harawish님/ 간단무식한 방법: 대중이 말씀을 전해듣고 무지몽매함을 벗어나… 더욱 더 반발하면 됩니다. 한나라당 최신 자체결과, 지지율 23% (한나라 30%). OTL

    모과님/ 그러게 말입니다. 결국 병목을 넓히거나, 병 안으로 더 잘흐르는 미끈한 물질로 바꾸거나, 부어넣는 기술을 더 연마하거나.

  15. !@#… Ha-1님/ 그래도 레벨5 바보와 레벨10 바보의 차이 정도는 있고, 나름대로들 약간씩은 바보레벨을 낮추려고 노력하기는 하겠죠. (에에… 뭐 그래줬으면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