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는 일터 – 그라제니 [기획회의 368호]

!@#… 하지만 그나마 야구니까 망정이지, ‘글쟁이라는 일터’로 이런 작품을 만들면 99% 망하겠지(…)

 

야구라는 일터 – [그라제니]

김낙호(만화연구가)

어떤 직업에 있어서 ‘프로페셔널’이라는 개념은 종종 높은 전문적 숙련도 혹은 강력한 직업 윤리의 뉘앙스를 담아내곤 하지만, 아주 기본적 의미는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이다. 생업으로 삼기 때문에 그것에 자기 생활의 꽤 많은 부분을 진지하게 투여하고, 그 과정에서 숙련도가 생겨나든 직업윤리가 적용되든 할 따름이다. 그리고 생업이 되면, 결코 물질적 측면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자신이 직업적으로 하는 일을 통해 어떤 크고 중요한 꿈을 실현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라 한들, 생업으로서의 성공 역시 그 꿈으로 가는 조건이자 사실은 그 꿈의 일부이기도 하다. 밥벌이를 논하는 것은 속물이라서가 아니라, 프로의 조건이다.

프로스포츠 선수에게 있어서 연봉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현재 실력과 인기를 반영하는 자존심의 일부이자, 신체의 길지 않은 절정기에 바싹 모아놓고 여생을 그 위에서 보내야 하는 현실적인 생계다. 이런 측면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그라제니](모리카타 유지 / 학산문화사 / 2권 발매중)는, 여느 야구만화가 아닌 ‘프로’야구 만화다. 많은 야구만화들이 스포츠 승부의 뜨거운 매력이나 승부를 매개로 흘러가는 인간드라마에 집중할 때, 이 만화는 연봉에 집중한다.

작품의 주인공 본다 나츠노스케는 일본 프로야구팀 스파이더즈의 중간계투 전문 투수로, 연봉은 1800만엔이다. 특출난 에이스 선발 투수의 뜨거움도, 피말리는 승부의 뒷문을 잠그는 마무리 투수의 긴박함도 그의 일이 아니다. 경기의 흐름을 잘 이어가는, 회사로 치자면 중간급 간부를 연상시키는 그런 기능적 역할이 바로 그의 일이다. 승부 자체를 중심에 놓는다면 참 애매한 지위의 주인공이겠지만, 연봉의 세계에서는 바로 그런 애매함 때문에 가장 치열한 상황에 있다. 꽤 재능이 있어서 프로 선수가 되었으나 빛나는 재능으로 수십억을 긁어모으는 스타는 아닌 선수로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경기 중간의 기회에서 어떤 식으로 일을 풀어내야 조금씩 더 많은 연봉을 협상해낼 수 있는지 항상 궁리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만큼 받아야 인생이 손해를 보지 않는지 늘 고민하고, 상대선수의 실력을 연봉 데이터에 기반하여 분석하며, 본다는 프로야구계에서 선수로 오늘도 계속 생활을 유지한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좀 더 재능이 뛰어난 친구, 이른 은퇴 후 경기 해설자라는 또다른 기회와 연봉을 놓고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분야에 들어간 선배 등 여러 사람들이 있다.

[그라제니]는 연봉을 고민하는 생활의 일부로서 야구경기의 승부가 들어가는 식이다 보니, 전반적 분위기는 일상 코미디에 가깝다. 제목 자체부터가, 야구장 ‘그라’운드에는 ‘제니’(돈)이 묻혀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본다가 바라보는 야구는, 일반 직장인보다는 연봉이 높지만 그 대신 할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하고 언제 불의의 부상이든 기타 환경변화로 그만둬야할지 모르는 분야다. 야구를 좋아하고 인연이 닿아서 선수까지 하고 있지만, 야구는 꿈이 아니라 생활이라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집요할 정도로 모든 선수들의 연봉을 외워가면서 비교를 하다못해, 급기야는 자신보다 연봉이 낮은 선수에게는 강하고 높은 선수에게는 약한 경기력을 펼칠 정도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돈 계산으로만 움직이는 기계 같은 남자라기보다는, 그저 모든 프로 선수들이 생활인으로서 신경 쓰고 있는 연봉이라는 기준을 좀 더 오타쿠적으로 파고 드는 청년이다. 그것도, 연애에 꽤 서툴고 적당히 주변 사람들에게 애착도 가지고 있는 26세 솔로일 따름이다.

본다가 주인공으로서 좀 더 노골적으로 집중해서 그렇지, 프로스포츠계의 모든 이들이 자신의 연봉에 대해서, 또 야구 관련 일을 얼마나 계속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잔머리든 인간관계 가꾸기든 뭐든 온 힘을 다 한다. 그리고 절대 다수는 최고도 최저도 아니라, 중간 어디쯤에 있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은 선발투수, 중간 계투요원들, 아직 안목이 미숙하지만 그나마 자기 과거 소속팀에 대해서는 상황 파악이 밝은 신인 해설가, 주전 말고 백업 포수 등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일터로서의 야구이기에, 예외적인 소수의 극적인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그 판에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란, 노력이 반드시 보답 받는 것도 아니고, 요행수가 꼭 원하는 순간에 터져주지도 않는다. 약간 더 운이 좋게 일이 잘 풀리면 예상치 못하게 연봉이 오르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대박이 터지는 것도 아니라 딱 더 받을 수 있는 만큼의 현실적 조건 만큼만 오른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는 순간이라도, 감독이 하필 그 때 다른 조건들 때문에 소심해져서 기회를 빼면 어쩔 수 없게 된다. 힘들게 노력하면 보답이 온다는 행운은 그냥 동화 속 이야기다. 그렇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지옥도 아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재능 넘치는데도 불운하게 기회를 못 잡은 미운오리새끼도 아니고, 그렇다고 프로선수로 뛸 정도가 되는데 아주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모든 환경에서 자기 생업을 추구하는 것, 그 소시민적 순간들이 온갖 형태로 펼쳐지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다. 밥벌이의 숭고함이 아니라, 그런 일상의 방식이 바로 우리들의 기본적인 삶이라는 공감대다.

홈런과 삼진을 남발하며 야구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적당히 쉽게 이해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재 특성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들이 상당히 명료하게 전달되도록 만드는 이야기 솜씨 또한 발군이다. 연봉 협상을 유리하게 끌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경기에서 어떻게 충족시켜야하는가를 주인공 본다의 머리 속에서 치열하게 그려내고, 그 중 일부는 실현되고 일부는 의외의 방식으로 틀어지는 자연스러운 리듬감 속에 섬세한 전문 지식들을 녹여내는 식이다. 본다든 다른 인물들의 사연이든, 각자 어떤 상황에서 이득을 보고 손해를 입는지 손익 시나리오를 펼치며 전개가 시작되고, 그것이 과연 정말로 그렇게 되는가 의도와 우연이 뒤섞이는 현실에서 펼처지는 내용과 비교하는 것을 통해 극적 재미를 이끌어낸다. 이렇듯 설정이 곧 전개의 일부이기에, 따로 한꺼번에 누군가가 교육 같은 느낌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편안하게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야구만화가 너무도 오랜 전통 속에서 아무리 해도 이전 명작의 반복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 무렵, [그라제니]는 꿈으로서의 야구가 아닌 일터로서의 야구라는 새로운 초점을 발굴해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승부와 인간드라마라는 전통을 계승하기도 한다. 다만, 승부는 연봉을 올리는 과정이고 인간드라마는 연봉의 상승 또는 삭감을 둘러싼 생활인의 고민일 따름이다.

그라제니 1
모리타카 유지 지음, 아다치 케이지 그림/학산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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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섬과 섬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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