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블랙코미디, 즉 세상사 – 피노키오 [기획회의 369호]

!@#… 빈슐뤼스의 스타일이라면 음… 크리스웨어가 아이콘 도안과 우울-외로움을 줄이고, 악취미를 조금 더 막 달리는 것을 상상해보면 됨.

 

탐욕의 블랙코미디, 즉 세상사 – [피노키오]

김낙호(만화연구가)

이미 수 차례의 ‘잔혹한 동화’ 유행 덕분에 꽤 널리 알려져 있듯, 동화라는 것은 원래는 그다지 꿈과 희망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근대화 과정의 보편적인 아동 노동 착취에서 보듯 어린이를 특별한 보호의 대상으로 놓아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대단히 오래되지도 않았으니, 사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보다는 당대 어린이들에게 매력적일 것 같은 오락 요소들을 적당히 환상적 소재에 버무려서 결국 어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런 시각에서 보더라도 은근히 어두운 느낌이 가득한 것이 바로 피노키오의 모험이다.

가출과 타락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온갖 사람들은 주인공 피노키오를 벗겨먹으려 하고 피노키오 자신도 호구처럼 휘말릴 따름이지 딱히 착하지도 않다. 그 과정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하며, 아름다운 장난감 나라는 낙원이 아니라 아이들을 당나귀로 변신시켜 서커스에 넘기도록 돕는 일종의 마법 흥신소다. 결말은 피노키오가 고행으로 교훈을 얻어 착해지기로 해서 진짜 인간 소년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 과정에서 묘사되는 세상의 모습은 진기한 환상을 걷어내고 나면 탐욕으로 가득한 시궁창에 가깝다. 만약 동화로 팔릴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탐욕을 주제로 한 사회 풍자적 블랙코미디라고 내놓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피노키오](빈슐뤼스 / 박세현 옮김 / 북스토리)는, 피노키오 동화를 직접 이식하거나 모티브로 옮겨온 많은 작품들이 소년의 성장이라는 부분에 집중하고 세상사에 대한 냉소적 묘사를 희석해 왔던 일반적인 방향과는 정반대에 있는 작품이다. 목각 인형이 아니라 막강한 살상 능력을 지닌 로봇이 된 피노키오는, 휘말려 드는 소동 속에서 하나씩 교훈을 얻으며 성장하는 소년이 아니라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세상 곳곳을 누비는 여행자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각종 탐욕과 자기몰두로 망가진 사람들이 어지럽게 뒤얽혀 있는 엉망진창이다. 원작의 성실한 목수 제페토는 살상병기를 만들어 군대에 팔아서 크게 성공하고 싶은 발명가가 되어있고, 귀뚜라미의 영혼으로서 피노키오를 인도하는 지미니는 유명 작가가 되겠다고 몽상에 빠진 폐인 백수 바퀴벌레다. 다른 동화에서 백설공주의 일곱 난쟁이가 찬조 출연하는데, 공주 옷에 집착하는 악성 강간범들이다. 여기에 여느 느와르 영화에 나올 법한 만성적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넘치는 형사 자베르, 호러물에서 건너온 어둠의 장기 적출 밀매꾼 등 더욱 풍부한 비뚤어진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다양한 인물들의 추가가 주는 느낌과 달리, 이야기의 전체적 흐름은 원작 동화에 충실한 편이다.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만들고, 피노키오는 뜻하지 않게 가출하게 되고,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가고, 노동착취에 당하고, 장난감 나라에 가고, 살해당하고, 거대한 물고기 뱃속에서 자신을 찾아나선 제페토와 조우하고, 마지막에는 심지어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피노키오의 인격적 성장 과정을 밀어내고 세상사의 혼란을 중심에 놓기에, 내용이 펼쳐지는 방식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따로 펼쳐지고(누구의 이야기인가에 따라서 대사의 방식, 때로는 아예 그림체나 화면 구성 까지도 완전히 바뀌는데, [지미 코리건], [아이스 헤이번] 등을 연상시킨다), 그런 토막들이 서로 처음에는 느슨하게, 그리고 뒤로 가면 갈수록 긴밀하게 겹치고 엮여나간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다시 한참 앞 내용으로 돌아가서 이 사람이 그 때 이 사람이구나 외치며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모든 주인공들은, 이기적 탐욕, 제어되지 않는 욕정, 광기가 되는 열정, 의미 없는 허무 등에 몰두하느라 타인을 수탈해버리는 모습 일변도다. 여기에는 식민주의, 파시즘 , 전쟁, 노동착취적 물질만능주의, 광신적 종교 등 다양한 현실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은유가 노골적으로 가득하다. 어떤 이는 전쟁무기로 대박을 치고자 하고, 어떤 이는 아이들을 세뇌시켜 전쟁터에 내몰고, 다른 이들은 그저 성욕을, 자본을, 혹은 종말론적 믿음을 위해 기꺼이 다른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각 주인공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그들의 부정적 동기들이 폭주하다가 결국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다 주는 흐름의 다양한 변주다. 그리고 종종, 서로가 서로의 파멸에 직간접적으로 이유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가끔은 전혀 관계 없는 이유로 어처구니 없게 파멸하기도 하고 말이다.

[피노키오]는 꽤 정밀하게 짜이고 상당히 무거운 풍자를 가득 담아내고는 있지만, 노골적 표현수위에 대한 소화력만 갖추고 있다면 폭력적 느낌보다는 유쾌한 블랙코미디로 즐기기 좋다. 각 인물들의 탐욕과 막장성은 불편함을 넘어 노골적으로 과장된 기발함을 자랑하고, 누구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상황들의 연속은 어느 틈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된다. 그리고 이런 지점들은 탁월한 그림과 만나며 더욱 강조된다. 고전 애니메이션과 미국 7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들의 영향이 보이는 둥그런 캐릭터들을 기본으로 하는 그림체는 물론이고, 바랜 색감의 옛 인쇄 잡지를 떠올리게 하는 채색( [무슈 페라이유] 프로젝트로 이미 양철 로보트의 여행이라는 컨셉트를 함께 실현한 바 있던 동료작가 씨조가 담당)이 희극적 효과를 준다. 대부분의 진행은 현학적 글로 된 대사와 나레이션 같은 것보다는, 말없는 장면들이 보여주는 상황의 자연스러운 연속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19세기 대중 그림책, 미국 펄프 소설 표지, 신문 전면 연재 흑백 코믹스트립 등 여러 대중문화 장르를 모사하는 화풍들을 적재적소에 능란하게 활용하여, 무거운 풍자가 담겨있다 한들 가벼운 오락거리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원작이 세상의 난잡한 풍경들이 동화로 읽히도록 당의정을 입혔는데 동화로서 훌륭한 모양새를 갖추었듯, [피노키오] 역시 블랙코미디 개그만화라는 양식을 탁월하게 장착했다.

온갖 추악한 몰골의 세상 속에서, 아무런 부정적 감정도 긍정적 감정도 없이 그저 흘러 다니는 것은 강철 로보트 소년 피노키오뿐이다. 주변에서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그는 성인용품이 되기도, 사장의 탐욕을 채우는 장난감 제조 공장이 되기도, 대량 살상병기가 되기도, 그저 매달려 있는 고철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워낙 널리 알려진 원작 줄거리의 내용대로 그는 소년이 되는데, 그것은 요정의 마법에 의해 사람이 되는 식의 편의적인 해법이 아니다. 피노키오를 소중한 가족으로 바라보는 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몸은 여전히 강철로 된 대량살상병기 로봇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진짜 ‘소년’인 것이다. 이 피노키오는, 궁극의 도구이자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금 반영해내는 거울이다.

피노키오
빈슐뤼스 지음, 박세현 옮김/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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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그라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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