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길다 – 섬과 섬을 잇다 [기획회의 370호]

!@#… 북콘서트도 열린 겸, 약간 타이밍을 당겨서 재게재.

 

싸움은 길다 – [섬과 섬을 잇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걸리는 기간은 길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문제의 깔끔한 해결이 쉽지 않아 조율이 오래 걸리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것을 반영하여 중간 절차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강한 쪽이 그 절차를 악용해서 문제를 질질 끌며 약한 쪽이 나가 떨어지기를 유도하기 때문일 때도 있다.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사건조차, 관심이 유지되는 시간보다 실제 싸움이 지속되는 시간이 훨씬 긴 경우가 태반이다.

별 권력이 없는 이들이 강고한 기업, 국가조직 같은 상대와 맞서야할 때 이런 패턴은 가장 힘겹다. 돈이든 의결권이든 힘의 역력한 부족함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은 작은 힘들을 최대한 합치는 것에 있는데, 당사자들만으로는 종종 역부족이고 보다 폭넓은 연대, 특히 시민 일반의 지지까지 끌어 모아야 겨우 버틸만한 힘이 모인다. 그러나 관심이란 유한한 자원이고, 문제적 사안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반대로 그 관심을 모으기는 점점 더 힘들다는 함정에 빠진다. 그러나 그만큼 절실한 일이기에, 어떻게든 모든 다른 것들을 희생해가며 버티고 또 버틴다. 그렇게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조차 못받은 노동자들이,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채로 자신들의 생활터전이 뒤집힐 상황에 처한 이들이 지금도 거리에서 누가 듣는지도 모를 힘겨운 호소를 수년간 외치고 있다.

[섬과 섬을 잇다](이선옥, 마영신 외 12인 / 한겨레출판)은 오늘날 진행중인 그런 현장 가운데 7군데의 사연을 담아내는 책이다. 각 현장은 한 편의 만화, 한 편의 르포, 그리고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이뤄져있다. 여기에는 쌍용자동차 부당해고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는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있다. 노동자 신분조차 부정당하고도 싸울 수 밖에 없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있다. 세계 음악인들의 기타를 만들다가 헌신짝처럼 버려진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저항밴드를 만든 사연이 있다. 해군 기지를 만드는 것을 막고자 하는 제주 강정마을 평화 활동가들이 있다. 동일노동 차별대우에 대해 싸우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있다. 10년이나 계속 싸우다보니 버티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코오롱 해고자들이 있다. 각각의 현장은 긴 싸움 속에 식어버린 관심 때문에 하나의 섬처럼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런 섬들의 이야기를 모아 다루어 함께 이어주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 책은 각 사안들에 관심을 기울여 본 적 없거나 피상적으로만 몇몇 이름을 들어보았을 이들에게, 장기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전반적 그림을 그려주는 식으로 다뤄지고 있다(솔직히 사측 / 정부측의 반론이야 주류 보수 매체통로에 차고 넘치니 따로 노력할 것도 없이 쉽게 접할 수 있다). 각 사연은 만화와 르포의 이인삼각 구조를 지니고 있다. 만화작가와 르포 작가가 한 팀으로 하나씩 현장을 취재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만화와 르포가 동일한 이야기를 형식만 바꿔서 반복하는 식이 아니라, 만화로 다루는 측면과 르포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며 소개를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만화로 감성적 흥미를 자극하고 르포로 세세한 설명을 하는 방식을 떠올릴 수 있지만, 결과물은 그보다 좀 더 복합적이다. 완벽하게 동일한 틀을 따르기보다는 각 작가팀마다 역할 분배가 조금씩 다른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분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김성희 만화, 하종강 르포로 구성된 재능교육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라고? 재능교육 이야기’ 챕터다. 만화 부분은 작가의 전작 [먼지 없는 방]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문제를 다루면서 어떻게 공장 현장이 굴러가고 왜 건강 취약요소들이 즐비한지 정밀한 설명서처럼 해부해낸 실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학습지교사가 처한 특수고용이라는 난감하고 복잡한 신분, 즉 명실상부한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서의 노동권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기묘한 위치를 차근차근 어렵지 않게 설명해낸다. 그 직군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담담하게 풀어내면서, 실질적으로 고용관계에 있고 생산수단을 스스로 소유하는 것과 거리가 먼 현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급 조직의 꼼수에 속수무책 당하고 마는 메커니즘이 펼쳐진다. 여기에 하종강의 르포는 그런 위치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재능교육 교사들이 수년간 어떻게 투쟁해왔는지 과정을 세부적으로 풀어내서 힘겨운 싸움의 그림을 완성하는 팀워크를 발휘한다.

콜트/콜텍 현장을 다룬 ‘No Workers No Music’도 다른 방식으로 좋은 역할 분담을 이루고 있다. 마영신의 만화는 자신들의 오랜 투쟁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밴드를 만들어 노래를 하고 있는 이들을 하나씩 인터뷰한다. 여기에는 이렇게 노래를 해서라도 전하고 싶은 요구사항이 진솔하고 간절하지만 놀랍도록 담담하게 구술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큰 관심을 못 받는 냉혹한 현실도 자연스러운 만화 장면 연출로 소화된다. 여기에 합쳐지는 것은, 그들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맥락을 담아내는 르포다. 직장폐쇄와 정리해고, 오랜 법정 공방, 그 과정에서 세계 음악인들과 연대의 손길을 맞잡은 드라마틱한 사연이 압축되어 있다. 반면 효과가 좀 더 미묘한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어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다룬 챕터의 경우는 책의 통일된 배치와 달리 르포를 먼저 읽고 만화를 읽어야 의미가 확실해진다. 이경석의 만화는 쌍용자동차 사태 자체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강제로 철거되는 분향소에서 오가는 감정을 강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방식이라서, 만화가 인트로 역할을 해주는 여타 챕터와 달리 에필로그에 가깝기 때문이다. 형식적 통일성보다는, 독서 흐름을 중심에 놓고 약간 더 느슨하게 접근해도 좋았을 듯하다.

예술의 사회참여, 르포 저널리즘을 이런 가장 관심이 절실한 사안들에 접목시킨 이런 시도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고, 또 각 챕터의 설명력 또한 전반적으로 뛰어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개별 투쟁사례를 넘어 그런 섬과 섬을 잇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글로 된 짧은 서문 하나로 끝났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만화로 풀고 르포로 논하기 좋았을 부분인데, 이런 책을 기획하고 작가들이 현장들을 찾아가 조사하는 참여와 협업의 과정이 바로 연대이기 때문이다. 연대의 의미를 보여주는 이런 사연이 바로 독자들도 참여의 연대를 함께 공감시키며 퍼트리기 좋은, 책에 실린 일곱 현장에 더해지는 여덟 번째 현장이다. 혹은 수많은 또 다른 작은 섬들인 개별 독자들을 장기 투쟁 현장이라는 섬과 연결하는 것이다.

작가들은 이후에도 이번에 담아내지 못한 여러 장기 투쟁 현장을 찾아가며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좋은 시도가 큰 호응을 얻고 현장에 도움이 되어, 몇 권 지나지 않아 소재가 떨어져버리기를 기원한다.

섬과 섬을 잇다
하종강 외 지음/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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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브레이크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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