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과 판촉(下) [만화규장각 칼럼/60호]

!@#… 지난 회에 이어서 계속. 상품과 판촉 위주 사고의 기초 그 두 번째 시간.

 

칼럼: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상품과 판촉(下)

김낙호(만화연구가)

지난 회에는 상품과 판촉이라는 기본 개념의 구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물건을 내놓는 사람이 상품과 판촉을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것과,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상품은 돈의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 저항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우선 단순한 차원이라면 자기 돈이 나가는 것에 대한 대가가 어떻게 돌아오는지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고 만약 손해를 본다고 느낄 때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즉 (지극히 주관적인) 돈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값어치의 판단 기준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것은 바로 내 손에 무엇이 남아있는가, 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만화 산업에서 상품과 판촉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첫 번째 ‘난관’, 바로 문화콘텐츠의 속성 그 자체가 등장한다. 비단 만화뿐만 아니라 출판물 일반을 위시한 문화콘텐츠 전반의 시장 모델은 물건을 파는 것이었다. 즉 만화라는 창작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만화가 담겨있는 책이라는 물건을 상품으로 놓은 것이다. 그런 개념으로 보자면 수많은 죽은 나무 덩어리 가운데 하필이면 이 물건을 사야하는 차별화의 이유, 즉 판촉에 가까운 개념으로서 만화가 활용되었다. 상품으로서 거래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책이라는 물리적 실체였고, 모든 제작비도 규제도 판매도 거기에 묶였다. 몇 명이 얼마나 자세히 읽고 즐겼는가보다 책이 몇 부 팔렸는지가 상업적 성공의 잣대다. 이 모델은 매체의 제작 자체가 비용이 많이 들고 지극히 한정적인 전문영역이었을 때는 어차피 콘텐츠와 매체가 불가분의 관계라서 큰 무리 없이 운영될 수 있었지만, 잘 알려졌다시피 20세기 말부터 매체 복제 기술이 비약적으로 저렴하게 보편화되면서 크게 흔들렸다. 영상에는 비디오가 등장하고, 음악에는 먼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나중에 CD 복제, 급기야는 mp3를 위시한 손쉬운 디지털 압축이 등장했다. 애초부터 정품의 가격과 (불법)복제의 가격 차이를 줄여놓고 여유를 부렸던 출판물도, 타이핑과 스캐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매체라는 물건 상품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더욱 저작권법으로 대표되는 제도적 보호를 강화하기는 했지만, 매체와 콘텐츠가 분리되는 현상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런데 가치의 부여라는 측면에서, 매체는 소유고 콘텐츠는 경험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경험에 상품 가치를 부여해온 대중문화 장르들, 예를 들어 (영화가 아니라)극장이나 콘서트 등 공연예술은 이런 기술적 진보의 소용돌이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다. 그러나 소유에 중점을 잡고 산업을 꾸려온 분야는 난감한 상황이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매체라는 물건에 대해서 돈을 지불했지, 콘텐츠의 경험에 대해서 지불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만들었기에 더욱 그렇다. 간단히 예를 들어, 특정 음악가의 공연은 다른 공연보다 비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무대 설치비가 아니라 그 콘텐츠의 경험에 대한 기대 가치에 따라서 말이다. 하지만 만화책은 어디 그렇던가. 책의 장정에 따라서 차등화는 있지만, 경험에 대한 가격 차등화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콘텐츠의 상품으로서의 입지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전자송신의 시대 속에서 기존 매체 중심 산업이 콘텐츠 자체를 다시 상품의 영역으로 놓고자 하는 시도들이 자꾸 시도되고 있는데, 생각보다 더딘 것의 이유이기도 하다. 유료형 웹만화 시도의 성과가 아직도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해당 문화상품 장르에 대해서 콘텐츠를 판촉으로 매체를 상품으로 생각해온 소비자들이라면, 유료 콘텐츠는 판촉에 돈을 내라는 것이나 다름없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난관은 갈수록 세련된 모델들을 뿜어내고 있는 ‘공짜의 경제학’이다. 공짜는 최근 미국의 IT문화 전문잡지 와이어드에서도 특집으로 다루었을 정도로 중요한 트렌드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이나 유통 혁신 등에 힘입어 등장한 상품과 판촉의 경계를 거의 허물다시피하는 방식인데다가, 하필이면 문화콘텐츠 분야에 가장 적합하다. 공짜 경제학의 핵심은 전통적으로 상품의 영역에 있던 것들을 판촉의 영역으로 바꾸고, 전혀 다른 분야를 실제 상품으로 연동시키는 기법이다. 기존 상품 영역에서는 무려 공짜라는 최강의 가격경쟁력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대신 새로 개척한 다른 상품시장에서 수익을 낸다. 라이터를 공짜로 나눠주고 담배로 수익을 내는 격이다. 혹은 이미 정착할 만큼 정착한 공짜 경제학의 사례인 지상파 TV방송을 예로 들어보자(시청료를 징수하는 KBS1은 제외). 자본과 노력을 들여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콘텐츠를 시청자들에게 공짜로 제공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돈은 막대한 규모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바로 광고 때문이다. 이 상업모델에서 프로그램은 사실은 시청자들에게 광고를 보여주기 위한 판촉물이다. 그렇다면 광고가 상품인가? 그것도 아니다. 광고도 공짜로 보여주니까. 상품은 바로 방송시간이고, 소비자는 광고주다. 이쪽 거래에서는 시청자들의 눈, 즉 시청률이 판촉이 되어준다. 똑같은 30초라도 시청률이 높은, 즉 판촉 요건이 잘 되어 있는 시간대가 더 비싸게 팔린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공짜를 누린다.

사실 만화의 경우도 공짜까지는 아니지만, 공짜에 가까운 방식의 상업모델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가장 부수가 많은 3대 주류 소년 주간지들이 오랫동안 200엔 이하의 엄청난 저가 공세를 펼쳐온 것은 어떤가. 소위 ‘잡지 팜플렛’ 방식인데, 염가 종이 염가 인쇄로 잡지를 저가에 최대한 보급하여 그것을 판촉물로 삼아 실제로는 연재물을 엮은 단행본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류 모델로 일본만화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던 바 있고, 한국에서도 역시 이 모델을 적용해보고자 90년대 내내 노력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초반에는 다소의 성과를 거두는 듯 했으나, 이내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공짜에 가까운 이런 박리다매 방식의 모델을 하기에는 한국의 만화 출판 시장 전반의 조건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총판 중심의 불투명한 유통, 잡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 특정 작품에 집중하는 기획 마케팅 능력의 부족, 대여 문화라는 변인, 출판 시장 규모 자체의 부족함 등을 포함, 여러 요인들이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상품과 판촉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물어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는 방식으로서의 공짜의 경제학은,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필요로 한다. 전통적인 상품시장을 허물어도 될 정도로 다른 연동 시장이 이미 존재하거나 바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판촉과 상품의 개념이 흔들리고 관계가 바뀌는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어떤 것이 결국 진짜 ‘상품’인지 매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자체다. 현재 내가 파는 것이 결국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판촉으로 동원할 것인가. 파는 것 가운데 어느 정도까지를 판촉용으로 그냥 공짜로 풀 것인가. 혹은 다 공짜로 풀고 다른 시장을 몰래 개척할 것인가. 판촉이 내 상품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만화로 돈 버는 마인드의 첫 걸음은 만화의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스스로 확실하게 잣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항상 변하는 상황 속에서 매번 새롭게 말이다. 그럼 다음 회부터는 작가, 출판업자, 판매업자 등 만화판의 각 참여자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상품과 판촉을 세울 수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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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만화정보센터 만화규장각 매거진에 연재중인 칼럼,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만화를 돈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기획 마인드에 대한 칼럼. 단순히 사업 모델보다는 사고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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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상품과 판촉(下) [만화규장각 칼럼/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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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음..좋은 이야기인데,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는 이 논설을 만화로 풀어낸게 있으면 참 좋을듯.(금상첨화 라고 해야 할까요)

  2. !@#… nomodem님/ 물론 그런 건 저도 대대대환영이죠! (설마 저보고 직접 도전하라고 하시는 것은…;;;)

  3. 제다이 캡콜 선생님께서, 만화가 몇분에게 포스로 속삭이시면 가능할 것입니다.콜록…

  4. !@#… 마나각님/ 좀 더 연재분량이 쌓이면 한번 만화화를 염두에 둔 요점정리 간략버전을 해볼만 하겠군요. 캄솨!

    nomodem님/ 저는 다크포스쪽이라서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