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동을 어떻게 소비하는가 [동국대학원신문 149호]

!@#… 동국대 대학원신문의 미디어비평 코너에 ‘우리는 아동을 어떻게 소비하는가: 오락에 치중한 기인열전식 소비’라는 제하에 실린 글. 지금은 다시 잠잠해진 신동 열풍은 언제라도 소재만 발굴되면 다시 불타오르겠지만, 성찰이 없으면 같은 패턴의 반복이겠지.

 

미디어, 신동, 기인열전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신동, 즉 천재 어린이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유서 깊다. 특히 입만 열면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으니 믿을 것은 인재밖에 없다고 강조해온 사회다 보니, 자녀 교육(의 탈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은 대학간판)에 대한 열기 속에서 부각될만한 조건이 충분하다.

하지만 얄궂게도, 미디어가 신동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수용자들이 이를 소비하는 방식은, 대체로 ‘기인열전’의 맥락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공부라는 코드가 한국사회에서 지니는 보편성이 기인열전에서 다루는 다른 종류의 개인기들(예를 들어, 이빨로 트럭을 끌고 간다든지)에는 없는 동경의 정서를 함축하기에 무언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 뿐.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책적으로 조성된 과장된 과학 장려 이미지 속에서 7-80년대에 이루어졌던 쑈 프로그램들의 노골성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몇 명의 아이들을 TV에 등장시켜서 암산이나 암기 같은 것을 시킨 후 그것을 얼마나 기계적으로 잘 읊어내는지에 따라서 신동의 능력을 인증하는 방식 말이다. 물론 최근의 스타 신동인 최연소 대학생 송유근에 대한 쑈 프로그램은 약간 발달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실제 과학 문제를 풀어보고 청중에게 설명을 하는 것으로 과학을 전공하는 성인 경쟁자들과 경쟁을 하는 형식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재주에 기반한 업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주 자체를 선보이는 것에 불과한, 보여주는 방법만 바뀐 기인열전이다. 다만 미디어 소비자들이 스스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재의 공부 재능”이 시대적 맥락에 따라서 암송에서 논술로 바뀌었을 뿐. 혹은 신동이 자신의 지적 수준에 맞춘 사회생활과 실제 연령에서 오는 생활 문화적 수준 사이의 괴리를 즐기기도 한다. 10살 대학생이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그에게 동심이 있기에 초등학교에 가면 아이처럼 기뻐한다,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여전히, 기인의 사회생활 적응 좌충우돌기다.

미디어가 신동을 천재적 업적이 아닌 기인의 재주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모차르트의 시대도 아니고, 천재적 두뇌를 바탕으로 업적을 쌓는 것은 현대사회에는 아무래도 더 시간이 걸리다보니 진짜 업적다운 업적이 이루어지려면 이미 신‘동’이 아니게 되니까 말이다. 다만 문제는 재주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인으로서의 천재, 기인으로서의 천재를 강조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이런 접근에서 천재란, 과학계와 사회 속에서 기여하는 학자가 아니라 골방에서 혼자 발명품을 찍어내는 괴짜 천재에 가까운 이미지가 된다. 신동을 개별 사례로서 오락적으로 소비할 뿐, 천재의 사회적 상호관계 속 발달과 그들을 사회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즉 인재를 그렇게 강조하기에 인기를 끄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동을 인재의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 셈이다. 심지어 뉴스에서 소재로 삼을 때도 신동의 재능을 키워주는 교육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재능을 어떤 식으로 사회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미디어 소비자들이 원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총체적인 사회적 사고보다는 개별 인물들의 드라마화된 내러티브를 선호하며, 모든 것이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즉각적 제시가 되어주기를 원하는 트렌드가 고작 신동이라는 소재에 한정되겠는가. 다만 이왕이면 오락적 가치, 흥미성 소재에 머물고 있는 기인열전식 소비 이외에도,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는 좀 더 진지한 미디어 영역도 필요하다는 주장을 할 수 밖에. 물론, 호응은 미치도록 낮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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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thoughts on “우리는 아동을 어떻게 소비하는가 [동국대학원신문 149호]

Comments


  1. 한줄 요약을 하면 ‘시청률 좀 그만 신경써라’ 가 되는군요.(거짓말)

  2. !@#… ullll님/ 사실, 우리는 야동도 기인열전으로 소비하곤 하죠.

    nomodem님/ 시청률은 계속 신경써야죠(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는…;;;). 인재의 사회적 의미도 탐구하고 재미까지 있는 공길동전 같은 좋은 사례를 열심히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버럭)

  3. 제가 느끼던 바를 짚어주시는군요. 이공계 위기라면서 어린 애들한테 헛바람만 잔뜩 불어넣어서 열정을 착취하고, 천재 한 명이 만 명을 먹여살린다면서 황구라같은 인간한테 혈세를 퍼넣으면서 정작 중추가 될 젊은 연구자들은 굶어죽이는 악순환이 이 나라 이공계 정책의 전부죠.

  4. !@#… 기린아님/ 이제부터 구글로 ‘야동’을 검색하면 캡콜닷넷이 순위권으로 등극한다든지…;;;

    흐흥님/ 그게 바로 인재가 재능을 발휘하고 제대로 대가를 받는 시스템을 생각하기보다, ‘스타’를 소비하며 붐만 일으키려는 얄팍한 야매정신 아니겠습니까. 뭐 갈 길이 멀지만 우선 전직금지 노예법부터 좀 깨야 할텐데, 호소력 있는 담론을 어찌 만들어야 할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군요(연구원 대우 부실에 따른 이공계 위기 뭐 그런 정도는 씨도 안먹히니).

  5. 아동 소비라 하니, 매우 SBS한 방식으로 아동을 소비하는 SBS스러운 프로그램 스타킹이 생각납니다-_-; 여기 나오는 애들보면 안쓰럽습니다. 저 애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한국에 태어나, 그것도 전국구로, 토요일 오후 5시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에 5,6살 짜리들이 섹시 댄스나 발리 댄스나 나이트 댄스;;를 춰야하나..
    이런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8%에 심지어 매일 밤 케이블에서 재방 되어야 하는가..하고 한탄하게 됩니다.
    뭐 당사자들이나 부모들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좋아하겠지만요 _-_

  6. 세상이 온통 즉자적이고 즉물적이라 도대체 적응이 안되는 1人….

  7. 천재론에 대한 대책은 훌륭한 조상님들께서 이미 해법을 내주셨는데, 어리석은 후손들이 잊어버리고 써먹지를 못하고 있죠.

    부여의 왕 처럼 비를 내린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비를 내리지 못할 때 목을 치면 됩니다.

    “이 장교가 혼자서 적군 대포 6 문을 파괴하고 터키군에 포로가 된 아군 10 명을 구출한 사람이군”
    “항상 자기 의무 이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고”
    “당장 처형하도록!”
    “이따위 행동은 정상적이고, 단순하고, 예외적이지 않은 삶을 살려는 보통 병사들과 시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저런 감정적인 사람들이 배를 흔들지 않아도 상황은 이미 힘든데 말이지.”

    Terry Gilliam의 ‘The Adventures of Baron Munchausen’에 나오는 대사이지요. Capcold님이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꼭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한 번 올린 글이 다음 멘트가 뜨면서 올라가지가 않아서 다시 씁니다. 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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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Jens님/ 제가 가장 황당해하는 노래가 바로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입니다. 텔레비젼에 왜 어떤 모습으로 나와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지 없이 그냥 닥치고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얼굴을 찾고 있으니 뭐.

    기불이님/ 저도 그 끝간데 없는 얄팍함이 가끔 적응이 안되지만(최근 “보도사진의 픽셀으로 시위참여자 수를 과학적으로 셀 수 있다!”라든지… 과학 지못미), 어쩔 수 없이 프로근성으로 버틴다는…;;;

    인형사님/ 저는 무척 인정이 많아서(하하), 그런 경우 모 아저씨처럼 공개 검증을 실시해서 비를 내리면 백만달러, 비를 못내리면 개망신!으로 해보고 싶군요. 참, 길리엄은 천재입니다.보통 개그꾼들의 사기를 떨어트려요. 당장 처형…;;; // 워드프레스의 Akismet 학습형 스팸필터가 스팸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해서 게재를 임시 유보해놓은 경우입니다(누군가 그 영화 DVD를 어딘가에 스팸광고했던 적이 있었나보죠). 그 경우 시차는 좀 생기지만, 제가 수동으로 인가하면 됩니다.

  9. 흐흐. 자꾸 미끼만 먹고 가시면 작살을 들 수도…

    각설하고. 저 영화는 이미 보셨겠지요. 괴벨스판 문차우젠은 보셨는지? 그것도 꽤 볼만하더군요.

  10. !@#… comixpark님/ 황당한 이야기지만, 최근 이 블로그의 HanRSS를 무심결에 봤다가 저도 야동이라고 읽고 잠시 좌절 OTL (이러다가 다음 원고는 진짜로 야동에 관한 미디어비평을 의뢰받는다든지… 백도씨에서 한번 특집 해보심이?)

    인형사님/ 음, 괴벨스판은 어째서인지 몇번 기회는 있었지만 결국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그 인간의 유머감각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도요… 노골적인 엘리트주의자가 유머감각이 없으면 정말 최악.

  11. 한 번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나찌 치하에서 괴벨스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영화더군요.

    대본을 쓴 사람이 ‘에밀과 탐정’의 작가인 에리히 캐스트너입니다. 이 사람은 평화주의자로 나찌 집권 후 그의 책이 불태워졌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출판금지가 된 사람인데, 이 영화의 경우 특별허가가 내려 가명으로 대본을 썼다고 합니다.

  12. !@#… 인형사님/ 캐스트너의 아동문학 작품들은 한때 정말 열심히 읽었는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르네 고시니, 미하엘 엔데 등 다른 그 장르 거장들과 함께), 이것 참 좋은 정보군요. 한번 도서관 DVD 자료실을 뒤져봐야겠습니다.

  13. 캡선생님이 케스트너를 스킵하실리가 없다는, 오히려 캡선생님과 해당 저서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텐데 하는 뻘생각이 간만에….(한때는 아버지와 아들의 만화가와 동일인물인줄 알았지 뭡니까.)

    솔직히 케스트너 아동문학시리즈는 지금 읽어도 굉장한 수작입니다. 아동의 눈높이에 맞게 글을 씀에도 불구하고 그 촘촘한 전개나 형식이 어른들 마음속에 있는 아이들을 다시 불러내는데 안성마춤이라고나 할까요.케스트너하고 어깨를 견줄만한 사람은 린드그렌과 아나톨 프랑스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4. !@#… 보라/ 이왕 착시현상이라면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체조 선수 ‘카탈리나 포노르’, 미야자키 하야오의 차기작 ‘절벽 위의 포뇨’, 에디슨의 축음기 ‘포노그라프’ 등은 되어야…;;;

    nomodem님/ 듣고 보니 플라우엔과 트리어는 그림 스타일이 때로는 비슷해보일 수도 있겠군요. 뭔가 독일 풍자화 전통 속에 연관이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