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음가짐은 소통 [팝툰 32호]

!@#… 지난 팝툰은 여행 특집호였다. 따라서 칼럼에 주어진 선택은 “여행에 관해서, 혹은 (당시 한창 촛불시위의 기세가 피크를 이루던 시기였던 만큼) 시국에 관해서” 였다. 음… 뭐, 결국 시국을 여행과 엮어봤다. -_-;

 

여행의 마음가짐은 소통

김낙호(만화연구가)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여행이라는 행위의 목적 또한 무수히 많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일상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여행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진귀한 구경거리를 위해, 또 다른 이들은 어떤 업무를 보기 위한 수단으로 여행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 어떤 목적을 표방하든지간에 여행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바로 사람 간의 소통이라고 본다. 여행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고, 그렇게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또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통하게 해준다. 그리고 혹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서로 다른 모습들 속에 있는 인간 본연의 어떤 공통된 모습들을 발견하며 어떤 인간적인 목소리, 의견,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과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 하나 생각난다. 박흥용의 『호두나무 왼쪽 길로』라는 만화는 누군가를 찾아서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 곳의 풍경과 그 속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주인공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독자들에게 매개하는 역할인데, 사람 사는 모습의 희로애락은 너무나도 별 것 아닌 듯하면서도 절절하다. 무거운 듯하면서도 일상적 즐거움과 재치가 있다. 엇나간 연애, 뒤늦게 깨달은 정, 실없는 장난으로 엮여진 인연, 대단할 것 없지만 간절한 바람. 여행길은 구불구불, 인간사도 구불구불, 그리고 그들과 주인공 사이에 수많은 소통이 이루어진다. 여행을 통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 모습들이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 누군가를 찾는다는 여행의 목표는 원래 있다고 해도, 정작 그보다 더 큰 깨달음을 주는 것은 여행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모든 소통들이다. 여행이라는 소통 속에서 주인공은 성장하고, 덤으로 그 과정을 간접 체험하는 독자도 같이 성장한다.

이렇듯 여행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마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란, 사람을 대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귀감이 되어줄만 하다. 예를 들어, 한 사회를 통치하는 것은 어떨까. 통치는 여행을 닮았다. 사람을 헤아리는 것,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즉 소통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소통을 위해서, 여행객은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대등해진다. 아니 그쪽은 붙박이 생활인이고 이쪽은 그 역할에 잠시 머무는 지나가는 입장이니까, 상대보다 더 낮추기도 한다. 머슴이니 어쩌니 헛된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여행은 단순한 공간이동이 아닌 진정한 여행이 되어준다. 소통은 단순히 의지가 아니라, 관계에서 나온다는 진리는, 여행의 과정에서는 아주 평범한 경험이다. 이런 것은 모든 종류의 통치 과정에서도 당연히 갖추어야할 조건들이다.

이런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서 오히려 쉽게 잊어버릴만하지만, 그래도 정말로 잊어버리면 다시금 상기시켜줘야 한다. 수 만 명이 매일 같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야 겨우 듣는 척을 할까 말까 하면서, 모습으로만 고개를 숙이고 말로만 소통을 이야기하는 통치세력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여행의 마음이다. 여행자로서 여행지에서 그 곳의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관계의 정립,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오는 열린 소통을 배우셔야 하지 않을까. 당장 그 분들에게 오토바이 무전여행 한 달씩 다녀오시라고 하기는 어려우니, 우선 소통이라는 여행의 마음가짐만이라도 가지도록, 그리고 여력을 발휘해서 그런 소통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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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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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houghts on “여행의 마음가짐은 소통 [팝툰 32호]

Comments


  1. 아아 하지만 이번호 팝툰은 몇몇 작가 꼭지를 빼면 대체적으로 안습이었다능… ;o; 물론 캡콜님의 칼럼은 그 안습아닌 꼭지였지만요;;;

  2. !@#… erte님/ 에잇, 아무리 캡콜닷넷이라고 하더라도, 더욱 솔직하게 이야기하셔도 됩니…;;;

  3. 소통… 자신이 말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고 말한다면 소통이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작금 인터넷 여론에 드는 생각..

  4. !@#… nomodem님/ 온라인이 보편화되면서 언젠가부터 기본이 되어버린 선리플 후감상 문화의 위력이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청와대 그 분도 인터넷 세대와 코드가 통하는 부분이 있군요!

    인형사님/ 조중동이라도 과연 제대로 읽는지에 대한 확신은 그다지…;;;

  5. 조중동 신문 자체라기 보다는, 그것으로 대변되는 일정한 집단들의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요.

  6. !@#… 기불이님/ 123.38% 동의합니다! 아예 국영수를 죄다 국어공부로 바꿨으면 좋겠어요. 영어로 국어를 배우고, 수학적으로 국어를 분석하고…

    인형사님/ 이야기하신 그 집단들의 마음마저도(!) 그다지 헤아리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던 것이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신 분이라서.

  7. 어쩌면 그 마음의 집 자체가 타인을 헤아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누가 되었건 완급은 있어도 여기까지 오는 것은 변함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8. 후후 캡선생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죠…

  9. !@#… nomodem님/ 하지만, 마주쳐도 별로 좋은 소리가 날 것 같지는…;;;

    인형사님/ 어떤 식으로든 방향을 틀 것을 획책하는 저 같은 부류에게 있어서는 그 완급도 무척 중요합니다. 항상 이야기하듯, 50보와 100보는 큰 차이니까요.

  10. !@#… Skyjet님/ 만평에 대해서 논하면서 비유와 팩트를 구분하지 않고, 덤으로 아무 소스 없이 편견만으로 대상층을 규정하는 식의 비판이라면 제가 30초 이상 신경을 할애하기 귀찮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