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면 허세, 안통하면 병맛

!@#… ‘허세근석’이라는 포스트가 요새 펌질계에서 유행이다. 기본적으로는 꽃미남배우 장근석의 싸이에 자신이 올린 자기 간지 사진과 같이 붙여놓은 나름대로 폼잡은 문장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자뻑 정서에 다들 압도당하고(…)있는 것. 그런데 그 주옥같은 어록 가운데에서도 가장 못 사람들을 설레이게 한 부분이 있으니…

“샹젤리제에서 외치고 싶다: 뉴욕헤럴드트리뷴!”

!@#… 리플들을 훑어볼 때 느낌은, 이 외침이 거의 “클린업클린미세스!”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 몇 군데 올라가고 엄청난 리플이 달려도 마찬가지다. 허세를 부렸으나, 허세의 기반이 되는 맥락이 전혀 공유가 되지 않자 그냥 병맛이 되어버리는 비극의 순간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동 묵념)

사실 이건 장뤽고다르의 영화이자 시네마떼끄 키드들의 전공필수였던 ‘내멋대로 해라’에서 여주인공의 핵심 대사다. 파리 사는 미국유학생인데, 샹젤리제 한복판에서 뉴욕헤럴드트리뷴을 외치며 신문을 팔았다. 뭐 뉴욕헤럴드트리뷴 자체가 70년대가 오기 전에 사라진 신문이기는 하지만, 당대에는 ‘미국적’인 느낌을 주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으니 미국의 펄프를 재발견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던 당시 까이에뒤시네마 계열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인들의 정신세계가 빤히 보이는 선택. 영화 자체도 파격과 새로운 멋스러움으로 화자되고 있고. 여튼 장근석의 저 한마디는, 나도 샹젤리제 한복판에서 ‘네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이 되어보고 싶다라는 정도의 이야기로, 비슷한 투의 이야기라면 “나도 로마에서 분수 앞에서 오도방정 떨며 헵번 흉내 내고 싶어염” 이라든지 “여기가 바로 준상의 집! 오오 욘사마의 향기가…” 같은 것이 있다.

!@#… 아마 이게 좀 히트치고 있으니 다음주 언젠가쯤 모 스포츠신문이나 모 연예뉴스사에서 “이런 게 히트치고 있다”고 병맛 기사를 하나 써줄테고(덤으로, 한 곳에서 쓰면 다른 곳에서도 다 쓴다), 장근석 인터뷰 하나 끼워넣으면 고다르 이야기도 결국 나오고 말겠지. 하지만 마치 개그를 설명하면 개그력을 잃듯이, 공감이 통하지 않은 허세는 슬프다. ‘멋’은 그것을 같은 관점으로 바라봐주지 않는 수용자들에게 ‘허세’로 읽히고, ‘허세’는 맥락의 코드가 공유되지 않으면 ‘병맛’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한 연예인의 중2병에 한정되겠는가. 넓게 봐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발표문 같은 것도 마찬가지 범주다. 스스로는 뒷산에서 촛불보고 아침이슬 들렸다고 하면 동감의 감동 코드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또 안통하면 대략 낭패인 것이다. 아침이슬의 상징적 느낌이니 촛불을 뒷산에서 바라보는 사뭇 비장한 정서 그런 게 울림을 주는 것이라면 멋은 날라가도 허세라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어쩌겠나. 유신시절 운동권(…)을 자처하는 대통령이 세대적으로 가졌던 아침이슬의 비장한 맥락은 이미 바뀐지 오래고, 오늘의 대중은 “거기서 무슨 수로 소리를 들어, 뻥치지마!” 라고 느낄 뿐인 것을. 이렇듯 소통, 특히 감성적 소통은 어렵고도 어려운 것이다. 1) 자주자주 해서 아예 익숙하게 만들거나, 2) 정말로 상대의 문화 속에 확실하게 파고들거나 할 수 밖에. 아니면 3) 그냥 처음부터 소통이고 자시고 자뻑을 컨셉으로 잡거나.

1)은 완전히 만성적인 바보취급당할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 2)는 모범답안이기는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가장 어렵다(이회창옹의 피카츄를 기억하라). 사실 capcold는 수년 전에는 원래 그 분은 3)인 줄 알았는데(클릭), 요사이의 행보를 보면 무려 1)을 동경하는 듯 해서 심히 불안하다. 만성적인 멋부림을 표방한 허세는 자칫하면 만성적인 병맛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냥 담백하게, 진심으로 정치를 좀 하면 안될까.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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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thoughts on “통하면 허세, 안통하면 병맛

Comments


  1. 전 걔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뉴욕헤럴드트리뷴’이라고 썼는지 궁금해요.
    그게 뭔지 정말 몰랐던건지.. -_;

  2. 알고 한 말이라고 일단 생각해 줬습니다만 그걸 보는 사람들이 ‘그 말의 함의’를 몰라서 일단 웃음거리가 됐죠. 배경이 그런 거다, 라고 나중에 신문 인터뷰 때 고다르 나오면 그 때는 ‘오오 근석’ 이런 모드로 들어가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고다르도 안다’ 까지 포함해서 모든 글이 중2병 맞다는 느낌은 절대 변하지 않네요. 말 안하는 게 가장 현명한 때가 있는데- 음음. -_-;;;;

  3. 낄낄 결론은 “명박이훃 병맛이야”를 자상하게 설명해주신거구뇽 ㅋㅋㅋ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어쨌든 장근석의 허세는 지못미라능~

  4. 문화는 문화적 허영을 거름삼아 자라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꼭 부정적으로만은 보이지 않는군요.

  5. 스물두살짜리 혈기 넘치는 예술가에게 중2병은 재산입니다. 나이 먹은 정치인이 그렇다면 문제지만.

  6. !@#… 미고자라드님/ 물론 알고 썼겠지만, 어째서 여주인공에 이입하고 있는지는…;;;

    우유차님/ 중2병, 뭐 재미있기만 한데요 뭐. 누구한테 피해주는 일 없고.

    erte님/ 그 분의 중2병을 진단하기 위해, 도구로 동원된 장근석씨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인형사님/ 그럼요!

    모과님/ 달아 놓으면 미얀마 재해복구 성금 적립되는 배너입니다. 클릭해보시고, 하나 업어가세요.

  7. 기죽이지 말고 잘 기르면 영원한 봉이 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두고두고 뜯어 먹는 것이 남는 장사겠지요.

    MB의 경우는, 거참, 속이 빤히 보이는 비위 맞추기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8. 대통령의 비극이 어떻게 나오는 건가 하는 부분이 오늘 잠시 느꼈던 사건과 겹치네요.
    이 상황을 정치적 반대파에 의한 것으로만 보는 어르신을 보면서(진보신당이나 민노당은 정치 세력이라 생각지도 않으실 분이니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때문에 작금의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하시고 하신 말씀 같지는 않고) 구세대의 문제 인식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길거리 나와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소위 정당 기반 정치집단은 아닐진대… 어르신들은 문제를 그리 보시는구나. 그러니 해법이 나오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9. 소위 ‘같은 바닥’임에도 여기서 ‘허세근석’을 처음 알았습니다ㅎㅎ 뭐 20대 초반의 남자가, 그것도 오만에 가까운 자존심이 아니면 버틸 수 없는 연예인이 중2수준의 ‘허세’를 가지는 거야 귀엽다, 하고 넘어가면 될 문제. 20대 꽃미남 연예인과 같은 수준의 정신세계를 가진 60대 대통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비극.

  10. 그러고 보니 이번 MB의 퍼포먼스는 87년 김병조씨의 푸념과 닮은 것 같군요.

    그 당시 뭐라고 했더라?

    나도 아는 것 다 알고, 지식인이라고 했던가요?

    오히려 김병조씨의 경우가 희극적 비극미가 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비극적 희극미인가요?

  11. !@#… 덧말제이님/ 하지만 그 분들도 유신반대세대니, 419세대니 하면서 스스로의 민주시민의식을 자랑스러워 하시거나 혹은 하셨겠죠. 뭐, 세상이란.

    진석/ 귀여우니 살짝 비웃음 당하고 대신에 더 관심을 받고 인기를 끌면 그만이지. 그런데 60대 대통령은…;;;

    인형사님/ 지금 청와대 그 분의 경우는, 그냥 비극적 비극미인 것 같습니다.

  12. 우와 주인장님 필력이 엄청난 포스를 풍기는 것 같네요. 우연히 검색으로 들렀는데 잘 보고 갑니다. ^^;

  13. 잘 정리해주셨네요.
    정말 요즘같은 세태에
    병맛으로 매도되는게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만은..
    장근석껀은 좀 웃기네요..ㄲㄲ

  14. !@#… Adroc님/ 하지만 역시, 이유야 어찌되었든 유머꺼리는 유머로 끝나줄 때 가장 아름답죠.

    나그네님/ 찬찬히 이것저것 둘러보다 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