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은 멀고 법은 가깝다 – 동네변호사 조들호 [기획회의 376호]

!@#… 예전 IZE 웹툰정주행 리뷰의 확장판.

주먹은 멀고 법은 가깝다 – [동네변호사 조들호]

김낙호(만화연구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격언만큼 복합적 씁쓸함을 주는 격언은 드물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제도에 대한 학습된 불신, 결국 자신의 무력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헛된 다짐이 압축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법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정도로 억울한 사연에 대한 구제를 못 얻은 사람들일수록 더욱 자신의 무력보다는 제도의 힘을 필요로 한다는 역설까지 담겨 있다. 무리한 충돌을 방지하고 더 원활하고 합리적인 사회로 기능하기 위한 고도의 틀거리가 바로 법인데, 현실에서 쉽게 벌어지는 여러 충돌로 가득한 일상에서 오히려 그것이 멀게 느껴진다면 그런 모순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동네변호사 조들호](해츨링 / 사람in / 3권 발매중)는 에피소드 방식의 법정드라마다. 하지만 온 사회를 들끓게 만들 기묘한 살인사건, 국제적 이목이 쏠리는 과학 사기극, 거대한 정치비리 같은 것을 충격적이고 극적으로 끝없이 다뤄내는 방식의 작품이 아니다. 그저 제목 그대로 큰 로펌보다는 동네변호사에게 의뢰할 법한 스케일의 사건, 달리 말하자면 아무리 커져봤자 신문의 사회면 한 쪽 구석에서 살짝 언급되고 끝나버릴 정도의 것을 다룬다.

주인공 조들호는 검찰청 강력계에 있다가 동네에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변호사다. 사무실의 인원은 본인과 황이라라는 대학 휴학생 초보 인턴이 전부다. 검사를 그만둔 것이 어떤 항명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복선이 적잖게 깔리고, 특히 어떤 대형 로펌과 오랜 안 좋은 관계에 있음이 제시되며 그의 정의감을 슬쩍 드러내지만, 기본적으로는 별로 깔끔한 인상도 사근사근한 성격도 아니다. 다만 일을 맡으면 그 안에서는 사람을 존중할 따름이다.

조들호의 사무실은 동네의 작은 곳이다 보니 당연히 동네의 작은 사건들만 들어온다. 거창한 건설 비리가 아니라,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할머니가 있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 같은 것이 아니라, 부정경쟁으로 망해가는 작은 벤쳐 기업이 있다. 종합병원의 무시무시한 납품비리와 약물스캔들이 아니라, 평범한 비혼모의 의료 소송을 당해 위기에 놓인 동네 의사가 있다. 살인사건이라고 해도 무고한 음모를 뒤집는 천재 변론이 아니라, 구제불능의 살인자 곁에 있게 된 국선변호인의 딜레마를 이야기한다.

이렇듯 이 작품이 전개되는 방식은 여느 TV나 영화에서 흔히 선보이는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선악의 대결이나 자극적 난투극이 아닌, 좀 더 회색인 현실에 가깝다. 사람이 사람을 등쳐먹는 것은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문제들은 서로 얽혀서 한 쪽의 작은 승리는 다른 쪽이 크게 잘못한 것이 없어도 큰 슬픔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유죄지만 실제보다 더 큰 처벌을 받는 것만 막아내고자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그냥 법정으로 가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해결인 경우도 있다. 이런 여러 상황에서 영세한 변호사 조들호가 그저 조금 더 영세하고 불리한 위치에 놓인 쪽을 변호해줄 따름이다.

생활형 사건이기에 복합적이고 회색인 지형을 풀어가는 방법은 상당한 양의 디테일이다.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극적 흐름의 선악 대결 롤러코스터로 사람들의 감정 파도를 타는 것이 아니라, 법 논리와 처리과정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분쟁에 연루된 세부적인 법적 개념차이, 법정에서의 자잘한 마찰 과정이 영웅의 전투 서사의 장식품처럼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서사의 핵심 틀거리가 된다. 특히 동시대적 사안을 자주 소재로 활용할 때 이런 접근법이 더욱 빛나는데, 어떤 사회적 논란거리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결구도와, 실제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잘잘못을 제도적 틀로 판가름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극명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보호법 편에서는 미성년자의 온라인 게임을 특정 시간대에 금지하는 속칭 ‘셧다운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다루며 어떤 법 논리가 양쪽에서 오가는지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심지어 층간 소음으로 법정 분쟁으로 커지려는 상황을 다룬 주택법 에피소드는, 법정 논리 너머 한국 현대 도시 생활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집값 집착까지 건드리고 만다.

이 작품의 매력은 정의구현의 드라마틱한 쾌감과는 살짝 다른 곳에 있다. 여차하면 겪을만한 사안에 적용해볼 수 있을 세세한 법정보를 알려주는 유익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교양학습만화라는 측면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법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해야 하는지를 끝없이 되묻는다. 이런 것이 거시적인 사회구성체의 틀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들의 시야에서 이뤄진다.

이러다보니 조들호가 만들어내는 법정 승리는 드라마틱하지 않다. 이후 삶을 위한 최저한의 보루, 혹은 작가가 오마이뉴스에 실린 인터뷰에서 표현했듯 “공사장의 (안전)그물”일 따름이다. 승리한다고 해도 통쾌함보다는 한쪽은 약간의 해방감, 다른 쪽은 무거움으로 가라앉는다. 태아 건강 검진에서 오진을 해서 소송을 당한 동네 의사는 조들호가 법정에서 지켜내지만, 반대편에서 소송을 제기했던 이는 비혼모 신분으로 무일푼에 몸이 아픈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지경에 놓인다.

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거나 줄여주기 위해 지금껏 만들어낸 것이 법 제도고, 그 사실은 아무리 권력자들이 제도를 자신들의 욕심을 부당하게 채우는 쪽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한들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법이 원래 그런 것임을 제대로 자각하고 조들호의 대사 그대로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길 처지에 있는 그 사람의 잃어버릴 것을 지켜주는” 사람을 동네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먹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지 않기에, 법이라도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동네변호사 말이다.

원래 이 작품이 웹에서 연재되는 버전에서는, 이야기의 성실한 디테일이나 복합적 시선이 주는 즐거움에 비해 시각적 쾌감이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었다. 칸 속 구성이 다소 비어 보이는데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칸이라든지, 표정이나 몸짓연기의 매력이 밋밋하다든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단행본 버전은 오밀조밀한 칸 구성을 통해서 돋보이는 구성의 칸과 줄여야할 칸을 한층 잘 배분해내고, 나아가 연출의 리듬감을 한층 살려내어 “보는” 재미를 살려냈다. 웹 연재로 이미 즐긴 독자라도 한층 나아진 버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110점
해츨링 글.그림/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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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슈토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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