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축복, 소멸의 여운 – 달이 내린 산기슭 [기획회의 378호]

!@#… 웹 연재 당시 남겼던 예전 IZE 글의 확장판.

 

존재의 축복, 소멸의 여운 – [달이 내린 산기슭]

김낙호(만화연구가)

이름을 통해 존재는 생명을 얻는다. 셰익스피어나 김춘수를 잇는 문학적 논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분류를 하고 이름을 붙여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서 인식이 된다는 것이다. 나누고 이름을 부르기에 뭉쳐있는 살점 가운데 어떤 부분이 꽃등심이라는 존재가 되고, 지구 위 어떤 특정한 땅 덩어리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존재가 되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격하게 고조된 감정은 분노라는 실체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 분류와 이름을 잃을 때, 사라진다. 개별적 존재는 커다란 다른 덩어리 속으로 자연스레 흡수되고, 거기에 그대로 있음에도 적어도 개별적 인식에서만은 서서히 희미해진다. 그것은 결코 단번에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사람들의 기억력이 그렇듯 조금씩 옅어지고 마지막에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어떤 상태로 향해간다. 그리고 완전히 없어지기 직전 문득, 큰 아쉬움을 남기며 한번씩 다시 상기된다.

지질학이라는 다소 딱딱한(중의적 의미다) 소재와 평온한 로드무비 감수성, 그리고 판타지적 요소를 고루 배합한 만화 [달이 내린 산기슭](손장원 / 학산문화사 / 올컬러판 1권 발매중)은 바로 그런 지점을 다루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기본 세계관은 온갖 산과 지층 등 땅 위의 모든 현상에는 작은 령부터 산신령급까지 다양한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정령은 속성과 능력에 따라서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할 수도 있고, 상당한 경력의 지질학자처럼 땅의 탐구에 마음이 열려있는 이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주인공 오원경은 떠돌이 화석 채집 판매상이자 원래 유능한 지질학자다. 어느날 그는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흥월리 지층의 정령과 조우하게 되는데, 사실 십년 전에 그 지층은 학계의 재분류에 의해 다른 층에 통합되고 더 이상 개별적 지층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우연히 지층 밖에서 현신한 정령은 원래 자신의 자리인 돌 속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고, 그 김에 차라리 세상 구경이나 마음껏 해보겠다고 오원경과 함께 여행에 나선다.

흥월리라는 지층을 이루는 실체는 인간과 무관하게 이미 원래 존재하던 돌이다. 그러나 하나의 독립된 지층으로 나눈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분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 또한 인간의 인식이다. 그렇기에 흥월리라는 개념을 형상화하여 현신한 정령은 인간의 그런 인식에 기대고 있다. 그렇다면, 현신은 있는데 애초의 분류가 사라질 때 어떻게 되는가. 분류가 사라지고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인간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소녀 월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답은 그다지 큰 비밀이 아니다. 바로 인식에서 천천히 사라지는 과정에서 마지막 매듭을 짓는 것이다. 무언가에 실체를 부여하고 마음을 쏟았는데 그 중 어떤 것을 부득이하게 다시 소멸시키는 것이란, 선을 긋고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느 이별과 마찬가지로 이별의 온전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오원경과 월리의 여행은 겉으로는 아저씨와 조카뻘 소녀의 국토기행이자, 인간과 정령의 담담한 일상의 모험이자, 동시에 한 지질학자가 자신이 관심을 쏟았으나 이제는 없어진 어떤 ‘개념’과 작별을 하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별의 과정이 그렇듯, 이 작품은 월리를 살리고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담아내지 않는다. 정당한 근거에 의해 분류가 사라진 흥월리 지층이라는 개념을 어거지로 다시 도입한다고 해서 정령이 생명을 얻는 편리한 세계관이 아니다. 비록 분류는 사라졌지만 정령만은 그와 별개로 계속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순박한 무리수를 두지도 않는다. 월리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피노키오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등장인물 누구도 순리를 거스를 수 없고, 그런 현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지질학자도 못하고, 월리 본인도 어떻게 할 수 없다. 함백산 산신령이라도 그런 것은 못하는데, 그저 더 확고하게 존재가 규정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존재이기에 월리가 지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줄 수 있을 따름이다. 마치 분류에서는 없어지게 된 어떤 개념에 대한 기억이, 다른 좀 더 큰 분류와 엮어서 다시 이름이 불릴 때 조금 더 오래 인식에 남게 되듯 말이다. 그렇듯 오원경과 월리의 여행은 기적적 해결책을 찾는 모험이 아닌 이별의 과정이다.

점점 존재가 희미해져가는, 그래서 머리색조차 옅어져가고 점점 더 잠이 많아지는 월리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독자들이 목격하는 것은, 인간 세상에 완전히 함께 녹아들어가 있는 정령들 즉 땅 그 자체의 일상성, 땅을 세밀하게 탐구하여 현재와 과거를 읽고자 하는 이들의 우직한 모습들이다. 이별의 과정을 완성시켜주는 것은 바로 세상은 변하는 부분은 변하고 이어지는 부분은 이어지며 여전히 굴러갈 것이라는 이런 관조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현상들도 그렇듯 계속 흘러간다. 동료 지질학자들의 일을 돕고, 서로 조금씩 마음을 나누고, 지난 사연과 지금 만들어내는 조그마한 사연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달이 내린 산기슭]은 적지 않은 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진 작품이다. 원래 출판만화계의 큰 축인 학산문화사의 만화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당선된 단편 [산]의 세계관을 확장하여 장편으로 해당 출판사의 만화잡지에서 연재를 시작했으나, 지면이 접히고 같은 출판사의 다른 잡지로 이전되었다가 결국 조기 중단되었다. 격투 판타지와 학원 코미디류로 틈새화될 대로 틈새화된 소년만화잡지의 독자층과, 고즈넉한 감성이 핵심인 이 작품의 색이 아무래도 상성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다음에서 온라인 연재 웹툰으로 다시 선보이면서 일정한 지지층을 확보해내는 것에 성공하며 무사히 완결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화려한 배경보다는 인물들의 담담하되 섬세한 작은 표정들에 특화된 연출 등은 아무래도 흑백 잡지 연재보다는 컬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더 선택의 폭이 넓고, 덕분에 한층 완숙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이전에도 학산문화사에서 흑백 연재를 기준으로 단행본 한 권이 나온 적이 있으나, 이번에 새로 내는 것은 채색 온라인 연재분을 기준으로 하는 ‘올컬러’ 판본이다. 지면의 소실과 함께 작품의 존재가 서서히 사라질 처지였으나 온라인을 통해 다시 생명을 얻고, 완결이라는 정상적 이별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내용과 작품 현실의 묘한 조화인 셈이다.

존재하는 동안은 존재 자체가 축복이 되어주고, 소멸하게 될 때는 이별의 과정을 제대로 갖추며 마지막 여운까지 온전히 소화해낸다. 지질학자와 지층의 정령이 엮어내는 심심하고 평온한 여행기는, 이런 속 깊은 관조의 정서를 통해서 마음을 울리는 아름답고 고즈넉한 이야기가 된다.

달이 내린 산기슭 1 (올컬러판)
손장원 지음/학산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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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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