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온 사진

!@#… ‘뜨거운 인기’ 셀카봉에 관한 불편한 이야기(한국일보)를 읽고.

나를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사진의 목적이라면, 즉 인증샷이라면, 자신이 프레임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상하다. 봉으로 팔을 늘여 더 넓은 풍경을 담아내면 증거로서의 효력은 더욱 커진다. 원래 사진 찍을 수 있는 매수가 매우 한정되었던 필름시절에도 웬만한 진지한 사진 취미가 아니라면 애초부터 대부분 캐주얼한 사진들은 기념사진이라는 이름의 인증샷이 주목적이었고, 매수 제한이 사실상 사라진 지금은 온라인 공간의 발달로 자신을 만천하에 널리 드러내는 습관이 늘어나며 여전히 인증샷의 세상이다.

그런데 내 경우는 사진을 찍는 목적이, 내가 간 곳, 내가 본 풍경의 기억, 내가 사진을 찍고 있던 그 순간의 감각을 언젠가 다시 회상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이란 메커니즘은 무언가를 창고에서 인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관되었던 감각들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생리적 행위라서, 그것을 위해 필요한 매개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사진 안에 담긴다면 그건 남의 시선이지(거울이나 유체이탈이 아니고서야) 내가 내 시선으로 본 기억이 아니고 기억의 매개물로는 오히려 약해진다. 그렇기에 마치 FPS처럼 내 시선인 사진이 좋다. 웬만한 그림엽서 각도에는 남기지 않는 엉뚱한(멋 없는) 파편적 풍경, 이상한 각도면 더 좋다. 대신 남들에게 인증샷으로 자랑할만한 요소는 미미한데, 다행히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딱히 즐기지 않는 편이다.

결론은, 그래서 나는 내가 나온 사진이 별로 없다… 는게 아니라, 사진을 무엇을 위하여 찍는지 목적을 상기하고, 그것에 적합한 방식을 선택하면 되는 것. 남들이 그들 자신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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