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의 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 메이드 인 경상도 [기획회의 381호]

!@#… 돌아보고 성찰하는 메이드 인 *** 시리즈가 여기저기서 계속되기를 기원하며.

 

지역주의의 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 [메이드 인 경상도]

김낙호(만화연구가)

만약 개념에 인격이라는 것이 있는 세상이었더라면, 한국사회에서 지역주의라는 개념은 여러모로 억울했을 것이다. 정치개혁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역주의 청산을 논한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통된 정치성향을 보이는 것은 지역 산업의 속성 때문이든 행정 단위로서 겪게 된 어떤 정책의 여파 때문이든 좀 더 추상적 수준의 문화적 공감대 때문이든 전혀 특이한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어떤 지역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대해서 좀 더 친근한 감정을 가지거나 상성이 잘 맞지 않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문화 및 산업 단위로서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일정한 결속력을 다져서 좀 더 생활 밀착형 수준에서 사회적 통합을 돕는 순기능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지역주의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대표적인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의 발탁에 있어서 ‘지연’이라는 요소를 비합리적으로 강조한 악습이고, 또 하나는 바로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가하는 이유로 호남이라는 출신 지역을 낙인찍은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기본적으로 부패 내지 무능의 문제고, 후자는 전형적인 인종차별일 따름이다. 혹은 특정 지역의 정치적 보수성을 이야기한다면, 그 동네가 정말로 다른 곳보다 더 보수적인지, 그런 보수성이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 봐도 일관적인지, 따라서 그런 보수성에 좀 더 직접적인 이유는 없는지 보는 것이 옳다. 그렇듯 지역 내지 지역주의는 그런 여러 무지막지한 사회적 역기능성에 동원된 작은 소재일 뿐이다. 지역주의, 지역감정의 폐해와 극복 방법에 대해서 성찰을 한다는 것은 이런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출발점을 잡을 때, [메이드 인 경상도](김수박 / 창작과 비평)은 좋은 도우미가 되어준다. 이 작품은 오늘날 사람들이 경상도에 대해서 떠올리곤 하는 문화적으로든 정치 선거 결과에서든 늘 권위적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에 대해서, 도대체 왜 경상도는 그렇게 된 것일까 탐구한다는 목표를 표방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딱딱한 역사 분석 논문으로 가기보다는, 80년대 경상도에서 작가 자신의 가족이 겪어온 일상적 생활을 일종의 미시사로 자세히 들춰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작가가 보여주는 자전적인 이야기는 화장지 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라든지 세부 상황은 개별적이지만, 그 생활이 담겨있는 시대의 광경은 무척 평범하다. 어른들은 장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다툼을 벌이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적당히 훈계를 받고 인권을 유린당하면서 그럭저럭 커간다. 세종대왕 동상이 밤에는 움직인다는 흔한 괴소문도 있고, 서울에 놀러가보니 뭔가 다들 동경하는 것 같은 대단함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별 것 아닌 현실감도 있다. 아이들끼리 텃새와 경쟁을 벌이던 이야기도 있고 어른들이 서로 갑질을 하는 이야기도 있다. 80년대의 민방위 훈련과 반공 교육 이야기도 있고, 어느 날 그간 무심히 모르고 지나쳤던 광주 민주화 항쟁의 참상을 배우고 혼란에 빠지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전라도민에 대한 경계심을 학습시키고, 나서지 말라는 정치적 보수성을 주입시키는 밥상머리 교육의 기억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은 구체적이지만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고 있는 기억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펼쳐진다.

경상도에서 자라온 여러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정서는 다들 먹고 사는 것을 신경 썼을 뿐이라는 것, 항상 사회는 불안을 일상화시켰다는 것, 그리고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진실을 딱히 설파하기보다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며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보수적이거나 가부장적인 모습은 경상도의 대단한 특징이 아니라, 독재 속에서도 경제 성장이 이뤄지고, 반공 불안 분위기를 조성한 와중에도 일상적 생활이 진행되고, 너무 곤궁하지도 그렇다고 다들 풍요 속에서 새로운 자아실현을 꿈꿀 정도로 여유롭지도 않은 현실에서 적당히 서로에게 눈치를 보고 눈치를 주며 부대껴 살아온 평범한 한국식 가족의 모습일 따름이다.

다만 경상도는 정권의 특혜 속에 한 발짝 먼저 경제적으로 성장가도를 타고, 운 좋게도 호남의 5.18 같은 지역 단위의 기억에 깊게 뿌리내린 트라우마가 없었다. 그렇기에 각 가족들은 오롯이 자신들의 먹고 살 길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렇게만 할 수는 없는 호남을 불편해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선제적으로, 그들이 이쪽에 가지고 있을 반감을 증폭하여 상상하며 그들을 차별하고 외면할 구실로 만들어버린다. 광주에서 대구 사투리를 쓰면 식장에서 밥도 안 준다는 식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들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비단 경상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 누군가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관례화된 부실 경쟁 구조를 애써 덮어버리고 그저 자신의 먹고 살 길에만 집중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서울 수도권에 살면서 “경상도는 구제할 길 없는 가부장 보수 동네다”라고 낙인 찍는 모습은, 경상도의 어떤 사람들이 전라도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자들’ 운운하는 것과 한숨 나올 정도로 비슷해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경상도만의 어떤 악마적 조건 같은 것이 아니라 꽤 보편적인 80년대의 풍경임을 뛰어난 디테일로 묘사하여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일상적 성장 에피소드의 힘이다. 경상도에 결부되는 특징들은, 결국 군사독재 아래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우리 사회 일반에 파고든 문제에 가깝다는 메시지다. 자신이 피해자 입장이 아닐 때라면 민감하고 불편한 사회적 사안에 침묵으로 대충 넘어가는 유구한 전통은 독재 치하에서의 안전 의식일 수도 있고,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 열심히 먹고 살 길부터 찾자는 가족 단위 각자도생의 습관일 수도 있다. 당시의 상황들을 극적 과장을 배제한 건조한 연출과 덤덤한 회상으로 묘사해 나아가며, 개인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을 절묘하게 균형 잡는다.

결국 작가가 직접적으로 던진 결말 부분의 메시지가 모든 것을 함축해낸다. 특정 지역에 대해, 지역감정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아니 모든 종류의 일상화된 차별에 대해 성찰할 때 우리 각자가 자문해야할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침묵의 빚’이 마음에 걸려서 자신의 선택을 더 고집하는 것 같심더.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않습니꺼? 똑바로 보고 개선하는 것과 이전의 선택을 더 강하게 고집하는 것 말입니더. 후자를 선택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심니꺼?”

메이드 인 경상도
김수박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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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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