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아랍인을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 – 미래의 아랍인 [기획회의 388호]

!@#… 모순과 위선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보는 디테일의 힘이 가득한 작품. 중동 현대사 학습용으로 치부할 것이 아닌, 우리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기 좋다.

 

더 나은 아랍인을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 – [미래의 아랍인]

김낙호(만화연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전제인 사회에서 살아가다보면, 다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가장 간명한 방식은 거대하고 일관된 이분법적 범주로 나누는 것이다. 우리와 타자, 문명과 미개, 진보와 보수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인식수준에서는, 나와 남의 진영을 나누어 챙기는 것이 지상과제다. 좀 더 경험이 쌓이면, 사람이 살아가며 남기는 발언과 행동은 그런 식의 개념적 범주에 깔끔하고 일관되게 들어맞지 않아 모순이 많음을 안다. 이런 인식수준에서는, 위선자라고 조롱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더욱 사회적 삶을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면, 사람의 가치관이란 개별 사안에 대한 다양한 판단 층위와 기준들이 겹치고 모여서 생겨나는 느슨한 집합임을 알게 된다. 이 지점에 도달할 때, 비로소 타인과 인식을 공유하는 범위, 연대할 수 있는 사안들을 고민하고 소통하며 손을 내밀 수 있다.

[미래의 아랍인](리아드 사투프 /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1권 발매중)은 한창 정치적 격변기였던 80년대의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작가가 회고하는 자기 가족의 경험이다. 그의 아버지는 시리아 출신으로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그곳에서 프랑스인인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랍인들의 미래를 그려내고자 아랍 국가에서 교육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리비아, 그 다음에는 고향인 시리아에서 교직을 찾는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가서 목격한 세상은 녹녹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리비아는 카다피가 ‘인민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쿠데타로 권좌에 올랐고, 시리아는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가 국가적 빈곤과 폭발하는 사회 갈등을 유태인에 대한 적대와 권위주의로 억누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금발 곱슬머리의 꼬마 리아드는 그를 ‘미래의 아랍인’으로 키워내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 작품의 기본 서술 방식은 여러 사건들의 기억을 담담하게, 종종 아예 유머러스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작가는 당시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재해석을 자제하고, 모든 것은 개별 에피소드와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통해서 암시될 뿐이다.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건 혼혈아라는 작가의 중간자적 위치인데, 해당 사회에 녹아들어갈 동기와 낯선 거리감이 공존하여 한층 건조하게 상황을 묘사해낼 수 있게 해준다. 시각적 표현도 탁월하여, 가볍게 카툰화된 그림체임에도 공간의 현장감에 정성을 들였다. 칸 안의 조형이나 각 지역의 건물이나 동네 분위기, 사람들의 분위기를 뚜렷이 구분하는 것은 물론이고, 리비아는 사막의 노랑색, 프랑스는 해안가의 청색, 시리아는 국기의 빨강색을 따와서 아예 의미를 담아 색조까지 나누었다.

이 작품은 아랍 현대사에 대한 충격보고서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성장담도 아니다. 그보다는, 유학파 아랍인과 프랑스 부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꼬마로 이뤄진 가족이 여러 국가에서 겪는 생활을 통해서 다양한 가치관의 중첩과 충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장 중심적으로 응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아들이 미래의 아랍인이 되기를 바라지만, 딱히 하루에 수차례 기도하지도 않고 돼지고기도 먹는 세속인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현대적 민주제를 옹호하면서도, 카다피나 알아사드의 독재에 대해 필요성을 주장한다. 아랍인들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다른 더 나은 직장 제안조차 마다하고 당시 리비아와 시리아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감수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돈을 모아 벤츠를 굴리고 싶어 한다.

이런 양면적 모습의 묘사는, 모순을 끄집어내어 위선자로 조롱하기 위함이 아니다. 아버지가 여러 사안에서 보이는 서로 충돌하는 듯한 개별적 인식들은, 작품이 진행되면 될수록 섬세하게 맞물려 들어간다. 아버지에게 아랍인이란 무슬림이라는 종교 문화적 정체성보다는 느슨한 인종 또는 민족 정체성이며, 그가 꿈꾸는 것은 아랍 국가들이 더 근대화된 세속적 사회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반민주적 독재자 카다피를 옹호하는 것에는 한편으로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오랜 반목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적 평등사회를 실험하는 것에 대한 지지가 있다. 하지만 직접 그곳에서 생활하다보면, 가족이 살아가는 자기 집 같은 기본적인 사유재산조차 보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인 사회상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가족은 소중하지만, 자신이 물려받았어야할 고향의 토지를 형이 마음대로 처분하고 삼켜버린 것에는 크게 상심한다. 시리아를 통치하는 알아사드에 대해서도, 그가 독재자로 군림하는 현재의 시리아가 열악한 사회기반 위에서 적개심과 억압으로 버티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뒤떨어진 아랍인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어설픈 정당화를 시도한다.

여기에 더하여 상황을 한층 복합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은 주변 사회의 모습에 맞추어 적응하고 변해간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젊은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연애하고 연구하며 살았다. 리비아에서는 당시 리비아의 황당한 생활 규칙에 따르며 교직 계약 기간을 채운다. 그리고 시리아에서는 주변 친척과 이웃들의 분위기에 적응하며, 그들의 가부장적 모습이 베어나게 된다. 억지로라도 아직 아랍어도 못하는 아들을 지역 학교에 보내려고 한다든지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스펀지처럼 흡수하고나 갑자기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함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곳 사회에서 살아가고자 애써 적응하며 변하는 과정이다. 어떻게 하기 어려운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아버지는 코를 훌쩍이는 버릇이 있는데, 작품이 흘러갈수록 그 코를 참 자주 훌쩍이게 된다.

민족적 정체성, 오랜 진영론, 압축적 근대화에 대한 열망, 엘리트로서의 역할 인식, 물질적 편의에 대한 현실적 욕구 등 여러 가치관들이 함께 엮이며 작용한 결과가 바로 아버지라는 사람이다. 자신이 태어난 시공간의 전근대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힘으로 다음 세대를 교육시켜 선진적 사회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동시에 현실의 여러 문제를 어쩔 수 없다며 눈감아주거나, 쉬쉬하거나, 난처해할 따름이다. 그렇게 적당히 훌륭하고 적잖이 비겁하며, 전체를 비난할 수도 전체를 보듬어 줄 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자연스럽고 세밀하게 쪼개준다. [미래의 아랍인]은 80년대를 살아간 무슬림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치관이 엮이며 급하게 발전하는 사회를 겪어온 이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유효한, 최상의 성찰 소재다.

미래의 아랍인 Vol.1
리아드 사투프 지음, 박언주 옮김/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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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만화로 보는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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