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장난감 – 지식인 엄지극장 vs 액션피겨[문화저널 백도씨 0808]

!@#… 솔직히 어린이 이야기는 핑계고, 지식꾼들의 아동틱한 심리를 건드리며 긱스런 유머감각을 슬쩍 선보이도록 만드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뭐…

 

지적 장난감 – 지식인 엄지극장 vs 지식인 액션피겨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의 대다수 부모들은 아이들의 소위 ‘교육’에 목을 매고 산다. 사실 대부분의 노력은 진짜 교육다운 교육이 아니라 그냥 명문 대학이라는 간판을 달아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기에,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교육 쌩쑈와 그 따위 추세에 오히려 맞춰가 버리는 황당한 공교육 정책이 난무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천박한 난리통의 시작점은 점점 빨라져서, 그 천박함을 온몸으로 반영하며 새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신 어떤 분은 초등학교 경쟁을 자신의 교육철학으로 선포하고 나서셨다. 그런 와중에서 자녀들의 장난감을 골라주는 것(골라주기라도 한다면) 마저 아이들의 즐거움보다는 어떤 ‘교육적’ 기능이 있기를 바라게 되는 상태가 이미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지능개발 블록이니 퍼즐이니 뭐니, 각 아이들에게 실제 효과가 어떤지도 모르겠고 정말 재미있는지도 모를 물건들이 난무한다.

그런데 살짝 비틀어보면 어떨까. 즐거운 장난감에 교육적인 목표를 일부러 넣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지적인 물건들을 즐거운 장난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며 조악한 내용물에 가격만 올려 잡고 어른들과 소통은 단절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애들이 가지고 놀면 어른들이 같이 붙어서 마구 설명해주고 싶어지는 것들 말이다. 나아가 아예 웬만한 어른들도 스스로 지적이지 않으면 뭐가뭔지 고를 수조차 없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도 얼마든지 같이(혹은 오히려 자신들이 더) 즐길 수 있을 터이다. 지능개발 장난감이 아니라, 정말 지적 장난감들을 추구하는 셈이다. 레고 마인드스톰? 물리적인 구조물 그런 것은 너무 복잡하고 정교해진다. 그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당대의 지성인들을 장난감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성인스러운 코드의 유머러스한 아이템에 주력하는 회사 “Unemployed Philosopher’s Guild”(백수 철학자들 길드)의 엄지극장 세트들이 그런 훌륭한 사례다. (사진 클릭) 이 제품들은 손가락 위에 씌우는 작은 인형과 간단한 소형 무대장치로 이루어진 패키지로, 인형놀이 역할극을 하는 식으로 가지고 노는 물건이다. 손에 동물 인형 뒤집어쓰고 목소리 넣어가며 전래동화 흉내 내면서 놀던 그런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제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그 인형극의 등장인물들이 예쁜 동물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바로 당대의 지식인들이나 정치적 인물들이다! 예를 들어 “혁명가들” 세트는 만델라, 간디, 체 게바라, 트로츠키 4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혹은 “철학자” 세트를 고르면 헤겔, 니체, 플라톤, 칸트가 나온다. 좀 더 민감한 느낌의 “악의 축” 세트를 고르면 어떨까. 김정일, 카메네이, 사담 후세인, 그리고… 부시 대통령이 나온다. 그 정도만으로는 그래도 미국 중심 시각에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악의 축 3탄” 세트도 있다. 라이스, 체니, 부시, 럼스펠드로 구성되었다. 혹은 뭔가 무대장치가 더 구체적이었으면 하는 분들을 위해서, “심리학자” 세트는 프로이트, 안나 프로이트, 융, 그리고 카우치 의자 하나가 함께 나온다. 각 인형은 물론 별로 재미있게 생긴 구석 없는 실존인물들을 무척 귀엽게 헝겊인형화 시켰을 뿐만 아니라, 안에 작은 자석을 넣어서 인형놀이를 하지 않는 평소에는 냉장고에 붙여둘 수 있다.

인형극이 너무 저연령층스럽다고 느껴서 좀 더 청소년스러운 물건이 필요하다면, 액션 피겨로 스위치해보자. Accoutrements 라는 회사에서 제작하는 매니악한 액션피겨(클릭)는 TV나 만화속 영웅들의 장난감이 아니다. 칼 융, 예수 (빵 2개와 생선 5마리와 항아리가 들어있는 디럭스 버전도 있다), 반고호, 제인 오스틴, 다빈치, 에드가 앨런 포, 셰익스피어 등 실존 인물들이 가득하다. 나아가 좀처럼 액션 피겨 같은 것과 관계가 없을만한 특수한 직업군도 갖춰져 있다. 남자 간호부, 고양이 키우는 할멈, 도서관 사서, 급식 아줌마 종류 말이다. 혹은 상징적 아이콘도 있다. 페미니즘의 상징처럼 된 한 포스터 속에 등장하는 팔뚝을 들어 올린 여성, 리벳공 로지의 액션피겨마저 출시되어 있다. 보통 액션피겨의 경우는 인형과는 달리 남자애들이 가지고 놀면서 서로 싸움을 붙이는 이야기 놀이에 활용된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이 회사의 출중한 감각 덕분에, 우리는 예수와 모세가 기독교 세계관의 헤게모니를 놓고 주먹으로 맞짱을 뜨시는 실감나는 막장 놀이를 할 수 있고, 포와 반고호가 서로의 우울함을 놓고 크로스카운터를 날릴 수도 있다. 뭐 슈퍼맨과 배트맨이 맞붙는 식의 즐거움과는 미묘하게 다르겠지만, 은근히 중독적인 재미가 있다.

물론 실제로 교육적인 목적이라기보다는 지적인 코드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개그 아이템에 가깝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이토록 재미있는데 말이다. 아이들이야 여하튼 가지고 놀 것이고, 지성의 여력이 좀 있는 부모라면 같이 차근차근 설명하며 놀아주며 자신의 교양 수준을 마음껏 자랑할 수 있다. 혹은 약간은 공부를 해야할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솔직히 아이가 “슈퍼맨은 왜 빤스를 바깥에 입어?” 같은 질문을 할 때 대답을 못하면 그냥 아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나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여기 혁명가 세트에 들어있는 트로츠키는 뭐하던 사람이야?” 라고 물어보는데 대답을 못하면 자신이 무지한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무척 부끄러워지지 않겠는가. 여하튼 이런 것이야 말로 궁극의 오락과 교육기능의 조화인 셈이다. 너도나도 지성 레벨을 향상시키고, 황당한 아이템을 모음으로써 재미도 느끼고 말이다.

문득, 한국 버전으로도 비슷한 것을 만들면 적잖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한국 현대사 버전 ‘악의 축’ 패키지를 만든다든지 하면 아마 명예훼손이 어쩌니 하면서 무진장 압박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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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 ‘백도씨’에 연재중인 토이/아이템 칼럼. 뽐뿌질 50% + 아이템 소개를 빙자한 놀이문화의 본질적 측면 살짝 건드려보기 50%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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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houghts on “지적 장난감 – 지식인 엄지극장 vs 액션피겨[문화저널 백도씨 0808]

Comments


  1. 와, 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저도 나중에 존 레논같은 인물들을 다루는 위인전(…)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이런 장난감에서부터 이미 이런 것이 있었다니 대단합니다 ㅠ_ㅠ

  2. !@#… erte님/ 한국에도 정식 수입사가 생기면 그것도 나름대로 훌륭한 성과…;;;

    dcdc님/ 좀 더 막나가는 방향이라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예, 액션물입니다). // 참, 아직 살아있다고 해서 맥카트니 무시하지 마세욧 –;

    nomodem님/ 제가 바로 ‘요한 캡콜드 2세’입니다. 지옥에서 왔어요.

  3. 예수 (빵 2개와 생선 5마리와 항아리가 들어있는 디럭스 버전도 있다)

    ==> 빵 5개 물고기 2개…지만 이미 출판됐나요 ㅠ

  4. !@#… 지하생활자님/ 앗! … 뭐, 편집진에 크리스챤이 계시면 아마 알아서 수정을 해주셨겠지 싶습니다.

  5. 크리스찬이 있지만, 옥에 티를 주자는 편집방침으로 넘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