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판매하기 (하)[만화규장각 칼럼/64호]

!@#… 이번 회까지는 다소 창작자 대상의 의식 무장(?) 같은 느낌이 묻어나왔지만, 다음 회부터 좀 더 본격적으로 장사꾼 시각으로 돌입.

 

창작을 판매하기 (하)

김낙호(만화연구가)

창작의 수익을 창작품 자체로 놓고 보지 않고, 창작이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단계와 방식에 따라서 나누어 생각하는 발상은 중요하다. 오로지 작품 자체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작품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말이다.

흔히 알려진 만화 연재라는 창작 방식을 예로 들어보자.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작품이 완전해져서 생명력이 시작되어야 하는 순간은 바로 완성이 될 때다. 하지만 연재의 경우 정반대의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연재가 지속되는 기간에 생명력을 지니고, 완결이 되는 순간부터 약간의 추억만을 남긴 채 급속하게 잊혀져 가는 것이다. 따라서 연재를 한다는 것은 완성된 작품을 내밀고 평가를 받는다기보다, 작품에 빠져들고 감상하는 과정을 창작자와 독자가 함께 진행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즉 그 경우 콘텐츠 수익성은 연재 진행 과정에서 이루어내야지, 나중에 다 끝난 뒤 단행본을 냄으로써 이루겠다는 자세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창작을 파는 입장에서 보자면, 연재 자체의 매력과 상업성(이 경우, 고료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승부하기)을 극대화하는 것이 단행본에서 인센티브를 협상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준다.

이렇듯, 창작을 팔 때는 창작이 소비되는 각 단계에 대해서 얻을 수 있을 수익들을 서로 조율하는 발상이 항상 필요하다. 서로 상충되는 것을 막고, 서로 상승작용을 만들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 정리해보고, 그 바탕으로 창작의 전개 방향을 잡는다. 그런 사고방식에 관해서 정해진 모범답안은 물론 없지만, 최선의 조율을 하기 위한 몇 가지 룰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각 단계가 서로 방해하지 않게 하는 것부터 들어가보자. 첫째, 우선순위의 책정이다. 어떤 경우라도 결국 지금 가장 미는 핵심 버전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에 중심을 두고, 이전의 다른 버전들이 현재의 핵심 상품에 방해되지 않도록 구상해야 한다. 앞선 사례에서는 연재가 우선순위가 되어 있는 시기였다. 연재를 통해서 독자와 같이 감상의 과정을 겪는 단계에서 그에 맞추어 작품의 전개와 방향을 끌어나가고 인지도를 올려서 몸값을 불리기가 우선순위다. “단행본을 염두에 두고” 연재를 투른다든지 하지 말고, 우선순위에 충실한 것이 좋다. 물론 애초부터 연재는 홍보성 밑밥이고 본체는 단행본인 프로젝트라면, 우선순위는 바뀐다. 지당한 이야기같지만, 의외로 쉽게 잊혀지곤 하는 룰이다.

둘째, 지난 단계의 결과물은 적당히 유통기한을 만료시켜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기 블로그에서 연재하고, 포털에 원고료를 받는 연재작품으로 발탁되고, 그것이 다시 단행본화 하는 최근 꽤 흔한 패턴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지금 돈을 받는 그 상품 이전의 것을 적당히 유통기한을 만료시켜줄 필요가 있다. 무조건 다 지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닥치고 후다닥 모두 내리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곤란하다). 다만, 누가 보더라도 현재 이곳에서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고 진짜다, 라는 무게중심을 부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층을 한 곳에 최대한 집중시켜야 몸값을 올리기 위한 좋은 근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일부 경우는 형태에 따른 것 뿐만 아니라, 지면의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이런 식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미국의 신문 코믹스트립에서 보편적인 수익모델은 하나의 작품을 여러 지역지에 동시 배급해서 각각의 신문사로부터 수익을 얻는 것으로, 신디케이션 모델이라고 부른다. 이 모델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의 보편적 호소력과 각 신문지면의 제한된 유통망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셋째, 새 버전을 구해서 봐야 할 명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연재를 할 때는 연재에 모든 우선순위를 부여했더라도, 새로운 연재방식이나 단행본이나 기타 새로운 돈벌이용 버전을 낸다면 각각의 특성에 맞도록 약간씩 새로운 미끼를 던져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새로운 버전의 창작을 구입하는 사람(독자든, 출판사든, 포털사이트든)이 이전 버전만으로 만족해버리지 않도록 부추켜야 한다는 말이다. 조금씩이라도 새로 살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의외의 좋은 사례는 만화 ‘타짜’다. 이 작품은 원래 신문연재를 한 후 단행본이 나오고 영화도 제작되고 온라인으로도 여러 유료 서비스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같은 신문에 그대로 재연재했음에도 다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경우 재연재를 읽어야 하는 매력적인 미끼는, 그 유명한 작품을 신문 연재로 다시 본다는 것 그 자체다. 신문 일일 연재의 호흡과 스포츠신문이라는 독서 맥락으로 만들어졌던 작품을, 가장 원래의 방식 대로 읽는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약간 더 나아가서, 각 단계가 서로 방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좀 더 적극적으로 상승시키도록 하는 것 역시 생각할 구석이 많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지도의 루트를 계속 열어둬야 한다는 것이다(앞서 이야기했던, 서로 방해하지 않도록 정리한다는 것의 연장선 격이다). 예를 들어 포털에서 연재한 작품을 단행본 발간 후 그냥 통째로 사이트에서 내려버리는 것은, 돈이 되는 단행본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는 좋겠지만 포털이라는 훌륭한 홍보 루트를 내다버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포털에는 작품의 요약판이라든지, 외전이라든지, 설명서라든지 하는 식으로 계속 창구를 열어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천문학적 돈을 홍보에 쏟는데, 이미 있는 인지도를 없애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

둘째, 각 버전을 합치면 새로운 가치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 있다. 새 버전에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일념 하에 뒤로 갈수록 더 엄청난 것이 되어 앞의 것은 버려도 된다면, 소비자는 애초부터 앞의 것을 취할 필요가 없다. 기껏 출시일에 정가에 산 영화DVD의 스페셜에디션이 한 달 뒤에 반값으로 나오는 패턴이 반복될 때 소비자는 현명한(!) 판단을 해서 영화가 염가로 떨어질 때 까지 사지 않고 버티고, DVD시장은 붕괴된다. 반면, 초기버전에는 있는 무언가가 이후 버전에는 없어서 초기버전을 산 사람의 만족도는 유지시켜주며, 나중의 것도 사도록 만든다면 훌륭하다. 출판사에서 부록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창작자가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작품 속에서까지 적극적으로 진행하면 더욱 훌륭해질 수 있을 것이다(디렉터스컷 출시?). 연재로 챙겨볼 때의 재미와 단행본으로 보는 재미가 각각 있는데, 둘 다 보면 더 재미있게 하는 요소를 배치한다든지 말이다. 특정한 연출효과라든지, 두 버전을 다 봐야 드러나는 미세한 캐릭터 관계, 여러 에피소드를 합쳐서 봐야 만들어지는 정서 같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원주민’의 경우, 한겨레21이라는 시사지에 두 페이지씩 들어가는 단편적 에피소드로는 맥락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단행본으로 묶어서 읽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창작자의 측면에서 모두 챙기기가 힘든 부분이 많다. 그냥 작품 그리기에도 바쁜데 언제 이런 잔머리까지 굴리겠나. “단행본 발매시 연재분을 적당히 차폐하여 홍보 버전으로 바꾸도록 계약하자” 정도까지만 기억하고, 다음 버전을 낼 때는 이왕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것 정도까지만 명심해도 훌륭하다. 나머지는, 그런 잔머리를 굴리는 것으로 돈을 벌어먹고 살며 창작을 그런 방향으로 채찍질해줄 기획자, 편집자를 파트너로 삼는 것으로 보충하도록 하는 편이 좋다.

창작의 판매라는 요소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할 것은, 협상의 중요성이다. 어떤 전례와 관행이 있더라도, 개별 작가와 작품은 모두 개별 사례다. ‘단체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업계 관행 현황에 대한 가이드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아가 ‘작가단체’라면 보통 작가들끼리만 뭉치기 쉬워서, 전체 상을 보지 못하고 동질성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크다. 작가로만 구성된 100명의 거대 동료진보다는, 작가와 기획자, 제작자가 섞여있는 4-5명의 동료진이 유용하다는 말이다. 여하튼 창작을 구매할 이들과 하는 협상은 결국 개별적이다. 대결적 자세보다 협조적 인식이 중요하다. 같이 작품을 만들 이들이지 나를 벗겨먹는 적들이 아님을 먼저 고려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같이 창작을 한다는 식의 유연함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창작열의 김이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

작품을 탄생시키는 첫 역할은 창작에 있기 때문에 창작을 먼저 이야기했지만, 역시 돈 벌기의 가장 핵심에 있는 것은 제작자의 측면이다. 다음 회 부터는 기획단계, 제작과정, 홍보와 유통, 반응 관리 등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생각해볼만한 점들을 뽑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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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만화정보센터 만화규장각 매거진에 연재중인 칼럼,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만화를 돈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기획 마인드에 대한 칼럼. 단순히 사업 모델보다는 사고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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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그런면(어떤면이냐고 물으면 두리뭉실 넘어가기) 에서도, 이 글을 효과적인 만화로 전달해주면 참 좋을텐데요. 만화가 아쉬워~

  2. !@#… 암연님/ “우훗, 멋진 남자!” 의 느낌이… (핫핫)

    nomodem님/ 한 1년 정도어치 원고가 더 쌓이고 나면, 한번 만화시나리오화를 궁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기는 합니다. 물론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 혹 책으로라도 나오면 팔릴지 같은 것은 무척 전망이 어둡습니…;;;

  3. 책으로 내시면 삽니다. (독자 1인 확보… 가지고는 한참 모자라지만;;)

  4.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현재 ‘자기 블로그에서 (기약없이) 연재하고, 포털에 원고료를 받는 연재작품으로 발탁되고, 그것이 다시 단행본화’되기를 고대하는 저 같은 자에겐 가슴에 새겨둘 만한 글이네요. 독자 하나 더 추가요!

  5. 유령1도 슬금슬금 기어나와봅니다. 저도 책으로 내시면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