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만화, 역사교과서 [팝툰 39호]

!@#… 역사교과서 파동이 벌어지고 이 원고를 넘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뒤 경제도 휘청이고, 자살사건 연타에, 표현의 자유 억압 악법 추진, YTN 낙하산사장 사태 급악화 등 뭐 그리 강력한 난리통들이 또 연타를 때리고 있는 것인지… OTL

 

역사만화, 역사교과서

김낙호(만화연구가)

뻔한 이야기지만, 기억은 현실을 지배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그럴싸한 실존적 질문이 되었든, 연애 상대와 어떤 이벤트로 인해서 어떤 기념일이 생겨났는지에 대한 기억같은 더 가볍고 실용적인(아니 사실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이 걸릴 수도 있겠다) 것이든 말이다. 과거의 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서 현재의 자신이 규정되고, 이후 행동의 잣대가 되어준다. 그렇기에, 자신은 물론 타인의 기억까지 최대한 자신의 현재 이익에 부합하게 맞추고자 하는 것은 무척 큰 유혹일 수 밖에 없다. 그 유혹에 빠져드는 수준에 따라서 밀도의 측면에서는 특정 사실의 부각부터 노골적인 왜곡이 있고, 포부의 측면에서는 개인적 설득에서부터 국정교과서 개편까지 있다. 만약 정말로 지지리도 운이 나쁘다면, 노골적인 왜곡으로 국정교과서를 지배하고자 하는 무척 문제적인 집단이 지배세력이 되어 한 사회의 건전한 상식은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남의 동네 이야기라면 비웃어주고 혹은 걱정 좀 하고 끝날 일이지만, 자신의 동네 이야기라면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사실 그 모든 것은 역사교과서를 문자 그대로 ‘교과서’ 취급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기초 사실, 그대로 외워둬야 하는 진리마냥 접근한다는 말이다. 물론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담겨있고 그것에 관한 나름대로 표준적인 해석을 담아내지만, 그 와중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세상을 굴려온 이야기로서의 맥락이 사라지고 여러 충돌하는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부분은 사라지기 쉽다. 적어도 교과서를 대하는 방식이 공식을 외우기 위한 자료지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닌 한국의 보편적 학교 교육방식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역시 차라리 잘 만들어진 역사만화 쪽이 속이 편하다.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실록』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조선의 사회적 현실을 현대적 화법으로 재구성한 우수한 역사만화다. 이 작품은 실록의 객관적 사실 위주로 접근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 사회에서도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갈등 구조 및 사회적 인과관계를 부각시킨다. 즉, 풍부한 재미를 지닌 일종의 드라마풍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작품이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현대의 우리 사회에 넌지시 각종 문제제기를 해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만화라는 매체형식이 상상력과 작가적 해석의 개입에 대한 관용을 높여주고 있기에, 독자들은 오히려 좀 더 똑똑하고 능동적인 독서가 가능해진다. 바로 “이것은 역사라는 기억에 대한 하나의 접근이며, 이 접근법이 말이 되는지 어떤지 여러분이 읽고 같이 판단해보시죠” 라는 제안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너무 히트를 친 나머지 거의 교과서 취급을 받곤 하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경우마저도 내용의 오류나 정치적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데, 이것은 그만큼 읽는 이들 스스로도 그것을 불변의 진리보다는 그저 하나의 시각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함의를 지닌다.

사실 그래서 국정교과서도 역사만화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능동적 참여, 이것 참 자유민주주의적 발상 아닌가. 하지만 하나의 책을 지정해주는 것인데 단순히 하나의 ‘작품’이 되면 편향성 시비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여러 작품의 소개, 즉 학자들이 역사적 사실들을 바라보는 여러 학설들을 나열하는 쪽이 좋겠다. 특히 자신의 역사라면, 다양성의 근간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비판적 성찰의 시선의 학설이 필수적이다. 역사교과서에 대한 이런 접근은 시장주의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무척 모범적이다. ‘아이디어의 시장‘에서 폭넓은 다양한 상품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기에, 경쟁적 연구에 의하여 역사관이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이런 상식적인 방식을 반대하는 분들은, 말로는 좌편향과 자학사관을(어쩌면 용어 선정부터 이렇게도 일본 극우와 상통할까 모르겠다) 바로잡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시스템을 무척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뭐, 결국 보수주의의 ‘지능안티’라는 이야기다. 아니면 아예 어떠한 지능도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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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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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역사만화, 역사교과서 [팝툰 39호]

Comments


  1. !@#… 시바우치님/ 미묘하게 들어가 있기에, 발견하시는 분들에게 보람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은근히 섬세한 캡콜닷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