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마가 동네에 살아도 살아가기 [팝툰 44호]

!@#… 연말의 훈훈한 분위기를 맞아서 팝툰에 올린, 연쇄살인마 이야기… 를 빙자한, 평소 늘 하는 세상사 적응하며 사는 이야기.

 

만화로 배우는 생존법:
연쇄살인마가 동네에 살아도 살아가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세상에서 살인자보다 이웃으로서 더 부담되는 부류가 있다면, 아마 연쇄살인마일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늘 바보짓을 만천하에 알리고 사는 어떤 바보 정치인들과는 달리, 그런 부류일수록 더 똑똑하기 마련이라서 체포되기 전에는 그다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도 별로 없다. 특별한 계기가 더해지거나 혹은 막을 만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아서 그런 성향이 촉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본성’ 자체가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도 종종 신빙성 있게 이야기될 정도다보니, 뭐 어떻게 잘 조화롭게 같이 살아가는 것도 영 틀렸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보니 어디인가 사람 사는 곳에 살고 있기 마련이고, 그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우리 자신의 생활을 망치지 않고도 여하튼 살아가야 한다. 암약한 연쇄살인마와 한 동네에 살아가는 방법을 연쇄살인마 스릴러 만화 『이웃사람』에서 살짝 배워보자.

건강한 의심은 좋은 것.
온 세상에 대한 의심으로 불안에 떨며 위축되면 인생이 피곤하겠지만, 건강한 수준의 의심이라면 무척 이롭다. 즉 곧이곧대로 무조건 믿지는 않지만, 당장의 무리가 없을 경우 우선 너무 에너지 낭비하지 않고 인정은 하는 수준 말이다. 혹은 반대로, 이상이 없어 보이면 우선 믿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항상 한 켠에 열어두는 자세이기도 하다. 의심이 중요한 것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사람』에서 모든 주인공들은 여하튼 살인마 아저씨를 접한다. 피자가게 고객이든, 1층집 이웃이든, 가방 사는 손님이든 말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를 의심할만한 기회를 얻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그냥 지나친다. 하기야 피해자를 연명시키기 위한 피자, 지하에 피해자를 감금고문하기 위한 1층집 고집, 토막시체를 옮기기 위한 가방이라는 생각이 난데없이 떠오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평범한(?) 이웃이 연쇄살인마일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닫아버리는 순간 피해자는 늘어난다. 그렇다고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볼 필요는 당연히 없지만, 최소한 만약 의심해야할 계기가 생길 경우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시나리오는 미리 짜둬도 나쁘지 않다. 최소한 의심에서 신고까지 걸리는 시간도 짧고, 이미 실시간으로 사건 진행 중일 때 비로소 고민하느라 시간낭비하지도 않는다.

공권력도 좀 믿어줘라.
『이웃사람』이라는 작품의 미덕은 평범한 동네 이웃들이 나서서 연쇄살인마도 때려잡고 여고생도 지키는 훈훈함이다. 하지만 반대로 각 개인들이 알아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무척 비정한 세태 묘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류는 사회제도 속에 공권력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으니, 이왕이면 써먹으면 좋다고 본다. 물론 공권력 하면 많은 분들은 무능, 뒷북, 민중의 몽둥이 뭐 그런 이미지들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더러 있겠지만(한국 현대사 속의 원죄랄까), 그렇다고 너무 과소평가할 것까지는 없다. 이런 것은 밥 공기 속의 돌과도 같아서 한 그릇에 돌 한 두 개만 씹혀도 “젠장 밥에 돌이 가득해”라고 외치게 되지만, 그렇다고 밥을 버리면 되겠나. 분위기 흉흉하고 의심이 가면, 경찰에 신고해서 순찰도 좀 부탁하고 종종 드나들게 만드는 쪽이 좋다. 대한민국 경찰, 완벽하지는 않다고 해도 흔히 묘사되는 것보다 무능하지 않다. 특히 단순한 일상적 치안업무 이상으로 나서야 될 확실한 ‘이유’가 주어진다면 더욱 그렇다. 물론 그러다가 집값 떨어진다고 걱정된다면 답이 없지만.

백업 필수.
이야기의 후반에 가면 각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 연쇄살인마를 거의 확정하지만, 각자 자신의 마음 속에만 판단 근거를 간직하고 있다. (스포일러 시작) 덕분에 가방집 아저씨는 신고 직전에 살인마에게 잡혀서 오랜 봉변을 당한다(스포일러 끝). 만약 그 아저씨가 자신이 의심하게 판단하게 된 근거를 백업해놓았더라면, 그 아저씨가 어떻게 되든지 이야기는 훨씬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 사서함에 음성메모를 남긴다든지, 블로그에 비밀글로 메모를 저장해놓는다든지, 가게에 몰래 메모를 붙여놓는다든지, 아니면 단순히 누군가와 그런 손님이 있다고 간단히 이야기라도 나눠두든지 말이다. 물론 그 경우 지나치게 단언함으로써 공연한 악성 헛소문으로 만들지 말고, 딱 자신이 발견한 팩트까지만 남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하튼 백업 필수라는 교훈은, 날려먹은 하드디스크 속 야동에서만 배울 것이 아니다.

이독제독.
수많은 이들의 각자의 노력이 결합되기는 했지만, 결국 연쇄살인마를 때려잡는 것에 큰 공을 세우는 것은 이웃집 깡패 사채업자다. 문신 깡패라고 의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여하튼 살인마를 막을 만한 무력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는 말처럼, 이왕 이웃에 수상한 사람들이 몇 명 있다면 그들이 서로 싫어하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내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은 완벽한 거짓말이지만, 내 적의 적은 그 적을 견제한다는 것 정도는 확실한 팩트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이웃들 사이에 미움의 씨앗을 뿌려서 만인이 만인을 견제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만, 이왕 서로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정도는 인지상정.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나를 적으로 돌리는 쪽으로 힘을 합치지 않도록 각각에 대해서 적당한 거리감각으로 대해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긴장은 나쁠 것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은 매일 어느 정도씩 겪는 기초적인 ‘처세술’이니까 말이다.

***

생각해보니 최근 수년간 대중문화 작품 속에서 “우리 동네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경우가 부쩍 눈에 들어온다. 숫자가 많아졌는지는 세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워낙 연달아서 대형 히트를 치고 있다. 어쩌면 그 이유는 단순히 실제 범죄로서의 연쇄살인보다는 동네 살인마의 패턴 그 자체, 즉 암약하고 있다가 뒷통수 때리는 초강력 민폐에 대한 불안이 사회 속 여러 차원에서 발견되어 친숙한 것일지도 모른다 – 국가 경제나 민주주의 제도들을 연쇄살인한다든지 말이다. 여하튼 어떤 경우든지 간에 건강하게 의심하고, 공적 시스템을 통한 해결을 포기하지 않고, 기억을 백업하며, 견제의 균형을 생각하면 조금은 상황 대처능력이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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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만화로 보는 생존법’ 칼럼: 험난하고 이상한 세상의 어떤 괴이한 조건에서라도 여하튼 그럭저럭 살아가보기 위한 지혜를 만화에서 빌려보자는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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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연쇄살인마가 동네에 살아도 살아가기 [팝툰 44호]

Comments


  1. 아아 팝툰에서 역시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만… 편집에는 직접 참여를 안하시는듯… 뭐랄까, 그냥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편집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한페이지 연재시보다 요즘 글이 눈에 잘 안들어오는 기분이라서요…(블로그꺼 말고 팝툰에 나온거요) 내가 문제인건가….

  2. !@#… erte님/ 물론 편집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고, 그렇기에 장점이 많죠(제목, 소제목, 도판, 키워드 뽑기 등은 편집부가 훨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음… 글이 잘 안들어오는 건 역시 저처럼 문자중독증이라서? (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