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기능은 상호작용의 재미: 인터액티브 티셔츠들 [문화저널 백도씨/0901]

!@#… 문화저널 백도씨의 아이템 연재 칼럼 마지막 원고. 이번 경우 역시 그다지 일신상 이유는 없고, 지면이 제작비 지원 중단으로 휴간…;;; 웹서비스가 없고 구독자 배송 방식이라 보급율이 좋은 잡지는 아니었지만, 꽤나 쓸만한 특집들이 많이 나와주어 종종 참여한 지면이었는데 좀 아쉽다(캡콜닷넷에서 ‘백도씨’로 검색). 하지만 뭐 그 지면의 노하우를 이어갈 다른 방도가 또 있겠지.

 

옷의 기능은 상호작용의 재미: 인터액티브 티셔츠들

김낙호(만화연구가)

태초에, 옷은 체온 보존을 위한 도구였다. 아니 뭐 지금도 사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옷은 멋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옷의 두께나 내구성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에 신경 쓰게 되었으며, 그것은 자신의 지위나 성향, 혹은 현재 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상징이 되었다. 돌려 말하자면 어떤 의미를 담아내고 표현하는 미디어가 된 셈인데, 현대에 와서는 특정한 문양이나 문구를 표시한 티셔츠라는 의복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래동안, 그 미디어는 꽤 일방향적이고 고정되어 있었다. 한번 옷의 형태로 고정된 메시지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으며 (물론 성한 청바지를 찢어서 입는다든지 하는 식의 방식은 있지만), 입은 사람이 한번 외치고 마는 단발성 울림에 가까웠다.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정신, 기술의 진보 등 몇 가지 요소들이 맞물리면 그 정도 한계는 금방 극복할 수 있다. 쌍방향적이고 역동적인 미디어로서의 옷, 오늘날 이미 상용화된 인터액티브 티셔츠들을 소개한다.

우선 새로운 기술을 결합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디자인 아이디어만으로 상호작용성을 만들어내는 사례부터 보자. 일상적인 생활용품의 컨셉을 티셔츠에 결합시켜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티셔츠 전문제작사 시카사이의 오델로 티셔츠는 어떨까. 원래 이 회사의 전문인 흰 티셔츠 위에 검은 선과 일부 돌출요소로 그려내는 디자인 방식은, 격자무늬 보드 위에 흑백의 알로 승부를 보는 오델로 게임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티셔츠 자체는 보드를 제공하고, 그 위에 흑백의 둥그런 핀 배지를 알을 놓듯 끼워 넣는다. 이런 티셔츠를 입으면 그날의 기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게임의 ‘형세’로 나타낼 수 있다. 한쪽 돌이 완전히 패배직전인 사면초가든, 지금 막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한 상황이든, 교착국면이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향한 메시지는 유동적으로 배치된다. 무척 재미있는 방식으로 (클릭).

하지만 사실 티셔츠라고 하면 그 위에 문구를 써놓아서 세상에 대한 자기주장을 하는 것으로 많이 사용되어왔다. 바지와 달리 사람들이 지나치게 뚫어지게 쳐다보며 메시지를 읽어도 민망한 분위기가 되지 않을 뿐더러, 외투나 와이셔츠류와 달리 앞 면이 갈라지지 않아 충분히 활용 가능하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다만 여전히 한계라면, 아무리 개성이 넘치는 메시지를 주장하는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에 주목하기는 했는지 알 길이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걸어가는데 난데없이 세워놓고 티셔츠 꼬라지가 이게 뭐냐고 시비를 거는 무례한 참견쟁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보다 좀 더 세련되게 메시지에 대한 공감이나 반감을 표현하는 방법, 즉 티셔츠를 매개로 해서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미 현존하는 약간의 통신기술을 결합하면 된다. 리액티(‘반응 티셔츠’. 클릭)라는 회사의 서비스에 바로 그런 방식의 실마리가 담겨있다. 리액티는 고객이 주문한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맞춤 제작해주는 회사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티셔츠에 해당 고객의 고유 키워드를 같이 삽입해준다.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해당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을 본 사람은, 리액티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티셔츠의 고유 키워드를 입력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의견은 티셔츠 착용자에게 문자메시지로 송신된다. 리플문화가 주는 소통의 재미가 현실세계로 확장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유연한 결합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왕 인터액티브 어쩌고 이야기를 하는 김에 뭔가 더 본격적으로 컴퓨터 기술, 전자제품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들을 실망시켜드릴 수는 없다. 자신의 ‘테크 긱’스러운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자, 이왕이면 세상과 함께 커뮤니케이션에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기능성이 담겨있는 전자 티셔츠들이 이미 나와 있지 않을 리가 없다. 가장 노골적인 제품이라면, 무선인터넷 네트웍 탐지 티셔츠가 있다(클릭). 무선인터넷 전파가 잡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탐지기를 티셔츠에 결합한 방식인데, 일반적인 개인 컴퓨터에서 수신율을 보여주는 전파탑 아이콘의 모습을 그대로 도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파가 더 잘 잡히는 곳에 가면 가슴에 박힌 전파탑에서 빛나는 전파를 내보내는 모습이 되며, 전파가 약한 곳으로 가면 불이 사그러든다. 인터넷이라는 현존하는 궁극의 소통망과 호흡하는 티셔츠라니, 확실히 재미있는 소통 수단이 되어준다.

혹은 티셔츠를 통해서 주변 환경의 어떤 감각적 조건들을 반영하거나 아예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아예 실시간으로 시각적 메시지 이외의 다른 감각까지 결합하여 상호작용하는 무척 그럴듯한 방법의 매개체로 티셔츠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바로 ‘소리’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우선 주변 환경의 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어떨까. 티-퀄라이저가 바로 그런 아이템이다 (클릭). 흔히 음악 재생기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퀄라이저 방식의 소리 시각화 막대를 티셔츠의 가슴팍에서 구현한다. 주변의 소리, 카페의 배경음악이든 사람들의 대화든 길거리의 소음이든, 지금 들리고 있는 것이 실시간으로 티셔츠 위에 시각화되어 움직인다. 그저 콘덴서 마이크와 투박한 LED장치만으로 구현해낸 독특한 상호작용성의 재미다. 혹은 소리를 반영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소리를 만들어내면 어떨까(클릭). 사운드트랙 티셔츠는 가슴에 스피커를 달고 있는 옷이다. 스피커에서 소리를 냄으로써 어떤 행동을 하는 순간에 자신만의 배경음악을 깔아놓을 수 있다. 이미 내장되어 있는 소리를 낼 수도, SD카드로 자신만의 소리를 20개 까지 추가할 수도 있다. 상상해보라.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낸 순간, 어디선가 빵빠레가 울려 퍼진다.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해서 뻘쭘해진 상황에서, “띠용”하는 소리가 들린다. 폼 잡고 등장하는 순간 스타워즈 ‘제국의 테마’ 음악이 흘러나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발되곤 하는 상황별 배경음악이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흘러들어온다. 바로 티셔츠를 통해서 말이다. 소형 재생기와 스피커를 티셔츠에 붙인 것 뿐인데, 재미는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선다.

굳이 ‘입는 컴퓨터’ 어쩌고 하는 거창한 개념의 상용화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소통에 대한 아이디어, 재미를 추구하는 정신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금 있는 기술만으로도 더욱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실 굳이 티셔츠가 아니라 모든 미디어에서 그래왔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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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 ‘백도씨’에 연재중인 토이/아이템 칼럼. 뽐뿌질 50% + 아이템 소개를 빙자한 놀이문화의 본질적 측면 살짝 건드려보기 50%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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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옷의 기능은 상호작용의 재미: 인터액티브 티셔츠들 [문화저널 백도씨/0901]

Comments


  1. !@#… Joyh님/ 전기 부품 파트만 탈착 가능합니다. 사실 약간의 공학 기질을 발휘하고 부품만 잘 구하면 자작해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