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떡밥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 토막들

!@#… 최근 역사교과서의 강압적 개정 문제나 교과부 공무원 물갈이 압박 등으로 역사떡밥도 넘실넘실하니, 몇가지 생각의 토막들을 토해내게 된다.

!@#… 토막 하나. 김구 테러리스트 vs 독립운동가 떡밥. 테러에 대한 입장은 sonnet님의 꽤 이전 포스팅, 그 이분법의 멍청함은 kirinha님의 최근 포스팅을 읽으면 충분. 하지만 역시 재미있는 것은 그 뉴라이트 (무려 ‘교과서’가 되겠다고 자처하는) 역사서의 서술전략. 요새 인터넷상에 열심히 돌고 있는 본문(클릭)을 읽어보자. 테러활동 어쩌고 그 자체는 그냥 떡밥이고, 저자들이 특유의 폄하 의도를 담아내는 서술 전략의 핵심은 사실 간단하다. 텍스트를 그대로 읽다보면, 일제점령기에 무슨 단체들 조직한 것 말고 실제 활동을 한 것이라곤 테러밖.에. 없다! 그 다음엔 뭐 반대만 하고 실패하고. 게다가 마무리는 주어를 생략한 ‘건국 불참여’로 묘사한다. 이 사람 별로 뭐 딴지만 걸었지 한게 없잖어,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저널리즘의 틀에서 보자면 아주 기초적인 수사법의 이미지 유도 전략이다. 테러 떡밥을 물고 파닥거리고만 있으면, 그런 진짜 이미지 유도는 그냥 안착한다.

그러니 만약 김구라는 역사적 인물의 위상을 놓고 싸우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쪽 전선에서 싸워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즉 그의 활동들의 성과가 무엇인지, 다시 말해 어떤 식으로 당대 그리고 이후 한국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는지 말이다. 그게 더 관람하기도 재밌고, 역사토론으로서도 알차고, 성찰을 통해서 현대의 우리 삶에도 더 도움이 되겠지. 물론 capcold는 그쪽 분야에 과문한 만큼 그저 관람.

!@#… 토막 둘. 심심하면 한번씩 나오는 일제 시대 근대화론 어쩌고 하는 소리다. 그런데… 근대화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영어 속담으로 표현하자면 ‘opening a can of worms’ 다. 한번 열면 감당이 안된다는 말이지. 근대화라는 컨셉은 서구의 학자들이, 세상이 어느 순간 급격하게 변했고 그 현상을 사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종합하고 단순화시킨 것이다보니 개별 사례에 다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힘들 때가 많다. 특히 근대화라는 개념을 도입한 서구와 역사적 경로가 달랐던 비서구라면 더욱 더. 따라서 철학적 논의를 고스란히 성찰하며 세밀하게 따지고 들어가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대충 적당히 붙일 말이 아니다. 그래서 좀 진짜 논의를 하고 싶다면 좀 더 구체화하기 좋은 산업화나 서구문물 유입 같은 용어로 제한하곤 한다(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클릭). 그런데도 세부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도 여하튼 붙인다면, 그 개념의 복잡성을 모를 정도로 무지하거나 아니면 특정한 정략적 의도를 가지고 캠페인을 하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다. 특히 후자의 경우, 근대화라는 말이 통속적으로 주는 어떤 ‘발전’의 어감을 끌고 오면서도, “사실은 학문적인 의미에서의 추상적 컨셉인 근대화로 한정지은 거에염”하며 유사시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식의 접근이 무척 흔하고 또 유효하다.

여기에 대처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일상적 용례에서도 근대화가 가지는 그런 뭔가 필요이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탈신화화하는 것. 하지만 그게 아무래도 지난한 과정인 만큼, 그냥 매번 물어보는 게 나을 수 있다. “니들이 이야기하는 근대화가 도대체 뭔데?” 하고 말이다. 설명하고 설명하다가 결국 스스로 궁색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낫다(“근대화란 **이 되어야 한다.” “아니 그럼 **만 되면 된다는 거냐? 이상하잖아?” “에에… 사실은 **은 거기까지는 아니고… 앗 혀 꼬였다” 패턴). 근대화란 것이 원래 좀 그런 개념이다. (사실 식민지근대화 논쟁을 할 때 훨씬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근대화’쪽보다 ‘식민지’쪽이라고 본다… 권력관계가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은 물론, 현재상황에 대한 연결고리도 훨씬 흥미롭다)

!@#… 토막 셋. 역사 교육 열심히 뜯어고치기 난리통에 관해서도 한 마디. 글쎄, 정권의 의지에 의한 역사교육 논조 수정은 충분히 반대하고 있지만, 사실 뜯어고치기 전에도 과연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으로 무언가 엄청난 사관을 형성하기는 했었나 싶다. 물론 잠재적 영향들이 축적된다는 것은 알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역시 핵심은 교과서보다 선생이라고 본다. 교과서보다 선생님의 강의 필기와 선생님이 골라준 문제집이 핵심이었다. 하기야 요새 같으면 선생보다 인터넷의 소통 집단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그러니까, 현 정권의 의지를 이어받은 교과부의 급 삽질과 뉴라이트를 자처하는 진영의 멧돼지 공세 덕분에 자꾸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이슈화가 되어주는 것이 해피한 것과는 별개로, 역사학/역사교육계는 교과서 파동에 대응하는 와중에도 진짜 역사’교육’이란 훨씬 복합적인 경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대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생들 이전에 당장 선생들의 사관부터 좀 합리적으로 다잡고, 최신 역사연구 성과들을 지속적 정기적으로 좀 공부하게 독려하고, 교과서 말고도 대중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와 이벤트들을 좀 다채롭게 시도하고, 온라인 환빠들 좀 어디 적당한 보건시설로 보내고, 바닥이 드러난 역덕들은 가볍게 무시하는 생활자세를 좀 퍼트리고.

!@#… 토막 넷. 우파를 자처하는 분들 가운데 자학사관이 싫다,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근간이 필요하다는 이들이 꽤 있는 듯 한데, 그 심경이야 뭐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진짜 자부심은 자랑스러운 과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되물으며 과오를 새롭게 발견하여 반성할 준비 및 고쳐나갈 수 있는 학습능력을 갖출 때 성립되는, 자랑스러운 현재에서 나온다. 역사에 대해서 논한다면,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어쩌자는 거냐”라는 틀에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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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houghts on “역사 떡밥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 토막들

Comments


  1.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

    두번 째 토막의 일제시대 근대화론 이야기는 사실 꽤나 케케묵은 주제가 아니었나 하네요. 적으신대로 그리 쉽게 일반화할 수 없는 개념입죠. 써먹기는 근대화 수퍼마냥 참 쉽게 말했던 용어인데…. 어렸을 때 동네 수퍼 이름이 정말 근대화 수퍼였지요.. ^^ (박통의 유산)

  2. !@#… 지나가던이님/ 무려 ‘근대화’ 개념을 동원하시는 분들이, 자신들에게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듯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들이 재수뽕 토쏠림만땅인 것도 사실 꽤 오래된 패턴이죠 (그렇기에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회과학 연구라면 근대화 개념을 사용할 때는 정치성의 역할을 항상 중요하게 고려하도록 되어있건만). // 그런데 이 공간은 뭔가 뿌리부터 묵직한 느낌의 이야기를 담은 포스팅을 올리면, 역시 반응이 무척 미미하군요 (핫핫)

  3. 캐캐묵은 얘기지만 몇십년 전에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인간이 소와 돼지를 돌보고 먹이는 것은 정녕 소와 돼지를 위한 일인가?]라고 쏘아붙힌 경제학자가 있다고 해서 물론 인간이 가축과 다르긴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핵심을 짚어낸 발언일지도~하고 그려러니 했는데 요즘 정세가 뒤숭숭하여 전세계적으로 복고풍이 유행이라 그런지 그냥 한국이 트렌드를 느리게 잡아서인지 아직까지 저걸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OTL…차라리 서구화나 산업화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요? 뭐 근대화만큼 긍정적 약발(…)이 안 서서 그런가 내지는 말하는 본인들도 뭔 말인지 모르고 그냥 말하는 건가..[혐한류]에선 철도 지어주고 그걸 아직까지 쓰고 있다는 걸 주된 근대화(…) 근거로 삼았지만 대개 저런 분들의 근대화는 그런 변명조차 안 덧붙이는 뭔가 추상화된 거대개념(혹은 허상)인 듯.

  4. 시바우치님// 비슷한 얘기라면 기억나는게 하나 있군요. 탁석산씨가 쓴 책에 그런 구절이 있었는데 “일본은 한국을 근대화한 적이 없다. 식민지였던 조선을 근대화했을 뿐이다”라고요. 물론, 여기서 근대화라는 건 대충 산업화나 이런저런 사회 시스템을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제가 어느정도 인정해 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혐한류에서 했던 말이 사실 저 대안교과서에 적힌 구절하고 같은 종류죠. 우리가 수십년간 떨치지 못한 케케묵은 주제이기도 하고요. 철도가 그런 부류에서 대표적인 거고 그 일부인 한강철교도 그렇습니다. 성수대교 무너졌을 때 일제껀 튼튼한데 우리껀 왜 저모양이냐라고 한 영감님들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5. 개인적으로 실제적인 의미에서도 식민지 시절 이루어진 ‘근대화’에 대한 일본의 역할에 대해 꽤나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산업화야 그렇다쳐도 근대제도의 경우, 식민지가 아니었더라도 그럭저럭 도입해서 굴렸을 것 같아요. 개화가 필요하다는 걸 구한말 쯤이면 다들 인지했고 실제로 우편제도는 조선이 주체적으로 설치해서 성공적으로 굴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업화는 그 때 만주와 연계하는 일본제국 경영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현재 우리의 물적기반이 되주지는 못했습니다. 6.25 때 다 날아가서 사실상 처음부터 쌓아올려야 했거든요. 이건 남북한이 마찬가지.

  6. !@#… 시바우치님/ 그래서 자고로 식근론에 매달리는 분들은 골치를 시큰거리게 만들곤 하죠. 그나마 수치 데이터를 발굴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유사종교적 정치캠페인이라는 도구적 요소만 놓고 보자면 환빠들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 지나가던이님/ 그러게 말입니다. 인프라론은 한국전쟁과 공장의 북한지역 배치라는 두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전후 남한과 연계고리를 상실하고, 제도론은 식민지라는 전혀 근대적이지 않은 제한 조건에서 죽어도 벗어날 수 없죠. 그냥 개별 요소의 도입 자체만 놓고 “이거봐라 한국은 그때 그걸로 근대화!”라고 주장함은, “한국이 수백년 전에 먼저 활자인쇄 발명했으니 구텐베르크 즐!” 수준의 유치함을 연상시킵니다. 단지 그게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회를 근본부터 ‘근대사회의 패턴으로’ 바꾸어놓았는가가 핵심이죠.

    !@#… 댕글댕글파파님/ 소문도 열심히 내주세요 (핫핫)

  7. 오오오 과연 보는 이의 골치를 시큰거리게 해서 식근론! 납득! (…)
    그나저나 궁금한 것은, 환빠들이야 영광스러운과거에흐뭇흐뭇하는 자위적 기분이라도 맛볼 수 있으니 동기가 이해가 간다고 쳐도 식근론(이미 이 용어로 통일…)의 매력(?)이랄지 동기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것도 구 지배자측에서 하는 말이라면 정당화 논리에서 이해가 가지만 피지배측에서 식근론에 끌리는 이유는? 흔히들 [식근론 믿는 우파들이 친일파 후손이라 그렇다]고만 하지만 기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서구식 자본주의경제 만능주의 논리? 아니면 일본과의 외교적 친화를 도모하려는 의도? 내지는 소위 자학사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극단적 대안?

  8. !@#… 시바우치님/ 식근론을 바탕에 깔면 친일청산 미비를 방어하는 논리가 생성됩니다. 친일청산 미비를 방어하면 그쪽 성향 분들이 그리도 좋아하는 이승만정부건국정통성박정희근대화아버지류 종합선물세트를 주장하기에 무척 편리해지죠. 좀 집착할만 합니다.

  9. 예, 물론 그런 든든한 이념적 뒷받침도 있겠지만 좀더 문화론적이랄지 감성/심리적 호소력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해진 요즘이라서요. 뭐 박정희땅 항가항가로 충분히 포괄적이고 강력하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여자이름으로도 들리니까 뉴라이트에는 이미 모에화 버전이 돌지도.

  10. !@#… 시바우치님/ 감성적 호소력! 이라면 역시 조선이 식민지시대에 일본 대중문화의 본질을 열심히 흡수해서, 오늘날의 한국 오덕들이 근대화의 상징이자 결정체인 모에코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믿으면 낙성대학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