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썼던 게시판 의사소통 관련 이야기…

!@#… 97-98년동안(그러니까, 무려 학부시절…그것도 군인 신분도 못벗어난 상태에서), PC통신 나우누리에 있던 심리학과 사이버 과방에 주말 연재(?) 칼럼을 끄적였던 적이 있다. 꽤 다방면의 주제를 종횡무진한 만담반 진담반의 물건. 비록 그 통신 공간은 이제는 사라졌지만, 게시판 및 자료실 내용은 모두 백업해놓았던 덕택에 오랜만에 한번 다시 캡춰했던 것을 들춰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어이쿠… 정말로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아이디어들이 마구 날라다니는구나… 라는 인상. 하지만 여러모로,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여러 세계관의 원형적인 모티브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어서 내심 푸훗하고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런 것이 일기장의 효용일까?

…여튼 전에 언급했던 전자게시판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부분이 보이길래 살짝 퍼왔다. 당시 심리학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 상에서 익명 게시판을 중심으로 많은 트러블이 있었던 맥락에서 나온 질책성 글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렇게 순박하게 문제에 접근했구나, 라는 느낌. 머리가 마구 굵고 복잡해진 지금으로서는 꿈도 못꿀 명쾌한 도덕주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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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낙호] 까투리의 헛소리….(47)

올린이:서울심리(서울심리) 98/12/07 11:19 읽음: 0 관련자료 없음

(전략)

!@# … ‘게시판 의사소통’

현실세계의 심리과 과방에는 두 대의 컴퓨터, 랜 단말기가 있다. 그것도 나란히. 그 두 대를 잡고 서로 채팅을 하면 어떨까… “대화의 단절의 시작”이라 명명하기로 그냥 결정해버렸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대화를 단절하는 행위라. 생각해보니까 참 재미있군.

(아직까지의) 컴퓨터 통신이라는 매체, 그 중에서도 ‘게시판’ 이라는 물건은 참 신기하다. ‘글로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대가리가 커다란 인간들, 그 중에서도 ‘지식인’ 흉내를 자주 내는 대학생이라는 계급은 ‘논쟁’을 벌일 때 글이라는 매체로 해서 그 권위를 높이려는 ‘자기 위안 행위’를 자주 해왔다(게다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여러 사람들에게 듣도록 하는 자본력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전례로서 대자보 문화, 집단 잡기장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보존성이라는 측면에서 – 따라서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게시판에 비길 바가 못된다. 물론 대중성이라는 말은 아이디라는 (유료!) 출입증의 필요성을 우선 논외로 할 때 말이다. 오랜 시간의 보존성과 접근장소의 자유로움으로 인하여 한 번 재기된 화두는 오래오래 남는다. 한 인간이 어떤 안건에 대하여 대자보를 잔뜩 써서 벽에 붙였다. 좀 있다가 그 자리에 그에 반박하는 대자보가 붙는다. 좀 더 있으면 또 그에 대한 반론이 나와 붙는다. 몇번 후면 처음부터 관심깊게 쳐다본 소수의 인간들을 제외하고는 청테이프 쪼가리가 엉겨있는 벽면이 짜증날 뿐이다. 대자보 논쟁의 단점, ‘중간에 끼어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 집단 잡기장 문화는 어떤가. 가장 가까운 예로 ‘심동일기장’을 들 수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이건 과방에 눌러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동일기장을 가지고 나가서 집에서, 독서실에서, 까페에서 떠오르는 자유로운 생각을 적을 수 있을까. 또한 그 수많은 악필들 속에서 필체가 아닌 순수한 내용만을 보기도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힘들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프린터로 뽑아서 일기장에 풀로 붙여놓는 것도 별로 보기가 안좋지…).

하지만 컴퓨터 통신이라는 새로운 매체는 또다른 대안이 되어주었다. 게시판. 대자보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한 정돈성. 심동일기장과 다를 바가 없는, 자유로운 ‘말’ 같은 ‘글’을 용납해줄 수 있는 공간. 아, 정녕 게시판은 꿈의 ‘논쟁’ 매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말이 되나. 매체의 특성을 한순간이라도 잊어버리면 그것은 바로 우리를 덮쳐온다.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모든 장점은 곧 그 단점이 된다. 보존성, 그에 따른 대중성이라는 것은 논쟁의 당사자들 이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논쟁을 노출시킨다는 것이고, 그것은 특히 ‘오해’라는 것과 결합될 때 꽤 일을 꼬이게 만든다. 글과 말의 결합. 말을 하듯이 글을 쓴다. 아니, 말이 곧 글로 남는다. 그 속에서 맥락의 부재, 맥락의 변화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말’로 하면 대화 당사자와 주변 관찰인물들의 직접적인 관계속에서 그 맥락을 새로이 조절해 나갈 수가 있지만, 그것이 ‘글’로 이루어질 경우 이는 훨씬 힘들고 느려진다. ‘듣다가 중간에 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간에, 얼마나 애초의 맥락에서 비껴나가든 간에 끝까지 들어주고 반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상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글실력으로 반박하는 것에 실패하면 논점은 상대방의 것으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논쟁의 약육강식 논리는 ‘말’보다 ‘글’에서 그 위력이 더욱 배가되는 것이다.

또한, 게시판에서는 말을 하다가 글이라는 측면을 잊어버리며, 글을 쓰다가 말이라는 측면을 잊어버린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다른 개입이 없는 한) 영.구.적.으로 남아서 (전혀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접근한적이 없는 이도 포함한) 모두에게 공개된다는 것, 말 그대로 그 문제가 당사자들간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가 된다는 것. 그 문제의 초점에 ‘개인’이 있다면? 간단히 ‘이지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원했든 말았든 간에. 거기에 말을 한다는 생각을 넘어서 ‘글을 쓴다’는 생각만이 지배한다면 어떤 헛소리라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강제로 주입하는 행태까지 (…찔리는군) 생겨난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 한둘쯤 바보 만들고 전체가 콩가루가 되는 것은 식은 죽먹기라는 것이다.

그런 위험을 애초에 알아차린 초창기 통신인들은 엄격한 네티켓을 만들어냈다. ‘님’자 호칭과 극존칭의 사용, 다수의 권고에 의한 자진삭제, 네트상에서 생긴 문제들을 네트상에서 풀어서, 문제가 커짐을 공유한 모두에게 문제의 해결까지도 같이 공유하게 만들어주는 문화 등등.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통신인구가 폭발하면서 이는 거의 Recycle Bin으로 쳐넣어졌다 (그 대신 오히려 초창기에는 ‘장난’으로 했던 언어해체 – 어솨요, 안냐세요 같은 – 들에 장난이 아니게 집착한다… 마치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로 쓰면 바보라도 된다는 듯이). 그와 함께 통신은 점차 ‘잡스러워 졌다’. 통신은 애초에 의도한 ‘대화의 장’이 아닌, ‘자기 푸념의 장’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이다.

개인적 대화로서 맥락부터 파악을 하고, 아마도 개인적 대화로서 끝날 수 있었을 논점을 다짜고짜 공개적인 ‘게시판의 장’으로 끌고 나오는 것은, 특히 사고의 깊이, 글솜씨, 게다가 덤으로 해당 사회집단에서의 위치마저 손위인 인간이 손아래를 대하는 것일 경우는 그 자체로 이지메다. 그것을 온갖 인간들이 다 달려들어서 거들어주면 그건 바로 ‘왕따’다. 행동에, 발언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논점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그 인간이 더 좋고 싫고가 공개적인 발언이 되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격함’을 위장한 ‘무례함’은 그에 걸맞는 정중함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하지만 걸어온 시비에 대해서 정말로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굴한 짓이다. 자신을 해명하고 변호하며,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논쟁의 기본자세다. 상대가 나보다 좀 강하면 어떠한가. ‘학습된 무기력’ 탓이나 할 것인가. 그리고 토라져 있다가 ‘떠나버릴’ 텐가.

음… 너무 질책성으로 흘러가는군. 사실 이미 어쩌다가 이런 화두에 관해서 생각하고 말을 꺼내게 되었는지 너무나 뻔한데 말이다. 단지 문제가 나오고 그것이 풀어져나가는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감히 보기가 안좋았기에 한마디 뱉어보았다. 이런 노골적인 질책성 문건도 그냥 ‘헛소리’로 포장해서 내보내는 이 까투리도 매우 보기가 안좋지만 말이다… 어쩌겠어. 무책임한데 (정.말. 무책임하군…). 여하튼 아름다운 게시판을 보고싶다는 소망만은 ‘참소리’겠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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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 아니.. 그걸 백업해놓다니..역시 나코형… 2004/05/20 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