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도전 [한국문학번역원 LIST 09여름]

!@#… 올해는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으로 여기저기서 만화특집을 다루고 있음. 그냥 재미삼아 슬쩍 때우려는 대중 지면은 기자가 사업회 측의 보도자료를 대충 요약해서 일반론이나 썰 좀 풀고, 좀 더 전문성을 표방하는 지면은 좀 더 타이트한 꼭지들을 기획해서 전문필자들에게 의뢰하고 뭐 그렇다. 여튼 그 중 명백히 후자인 한국문학번역원의 외국인 대상 계간지 LIST도 이번 여름호가 한국만화 특집. 그 중 ‘젊은 작가들’ 관련 한 꼭지 맡았다. 해외 대상으로 한국만화판의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글인데,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한국만화판의 상황들을 잘 모르지 아마… -_-;;; 이미 잡지는 나왔고, 6월 하반기 쯤 공식사이트에서 서비스. 원래는 영어와 중국어판이 출판되었는데, 캡콜닷넷에는 친절하게도 원래의 한국어판 원고로 게재.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도전

김낙호(만화연구가)

새로운 희망과 트렌드를 읽어내기 위한 접근으로, 어떤 대중예술 장르에서든 흔히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도전을 묶어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흔하게 간과하는 부분은, 우선 어디까지가 “젊은” 작가이며 어느 정도로 새로운 시도일 때 “새로운” 도전인지 뚜렷하게 규정하기란 힘들다는 점이다. 그나마 가장 간편한 방식은 익숙하게 주류화된 기성작가들을 먼저 정의하고, 그 패턴을 그대로 따르기 거부하는 새로운 세대와 그들의 시도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에서 새로운 도전을 일괄한다면 결국 대중예술로서의 체계적 산업화가 덜 되어 있는 분야 내지 경향들을 따져보는 것이 합당하다. 즉 상대적으로 확고하게 체계적 산업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매체 형태만 봐도 그 안에 담길 내용 일체가 떠오르는 소년 소녀 대상 만화잡지를 매개로 하는 ‘코믹스’ 판형 장기연재 단행본 시리즈, 일간신문 연재 성인만화, 대본소용 일일만화, 아동대상 컬러 학습만화 등을 우선 제외하고, 문자 그대로 판을 아직 일궈내고 있는 영역을 보는 것이다.

도전의 동력

한국만화에서 의식적으로 주류를 거부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90년대 중반 가량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된 두 가지 대안만화적 흐름인 인디와 언더를 떠올릴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의식적으로 하위문화적 속성을 강조하고 주류적 감성을 거부하는 경향이었으며, 인디 즉 독립만화는 90년대 초 이래로 급격하게 장르공식에 얽매이게 된 주류 코믹스 계열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이들이 공동체적 집단을 형성해서 소규모 자가출판을 하던 방식이다. 두 경향은 90년대 동안은 사실상 영역이 완전히 겹쳤다가, 점차 운동체적 구심력이 사라짐에 따라서 다양한 개성의 작가들이 개별 출판사와 작업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중 좀 더 대안만화적 감성에 집중하는 곳으로는 ‘새만화책’ 같은 출판사가 단행본 출간과 함께 여전히 잡지형 모음집을 비정기적으로 발간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결과물은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하지만 부천만화정보센터나 서울애니센터의 작가공모전 역시 주로 대안만화적 감수성의 작품들을 후원하고 있다. 대안만화적 감수성의 작가주의는 한국만화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중요한 동력원으로 기능한다.

새로운 판을 만들고자 하는 또다른 동력원은 대학의 만화관련 학과, 민간 문화학교와 학원 내지 온라인 만화 커뮤니티에서 나오기도 한다. 만화에 대한 작가주의적 자의식을 배우고 장르 공식에 맞추는 것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하는 교육과정 속에서 훈련받은 작가들이 90년대 후반 이래로 만화판에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그림 자체의 완성도에 집중하여 만화풍 일러스트 디자인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혹은 아예 새로운 매체 환경에 도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유럽, 미국권 등 다른 만화문화권의 낯선 환경에 둥지를 트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혹은 어린이용 입문서의 형식을 지니는 주류 학습만화의 방식이 아니라, 고급 교양정보를 온전히 풀어내는 인문서적의 방식으로 기존의 인문서적 환경에 도전하는 시도도 있다. 나아가 아예 종이매체를 떠나서 웹으로 가기도 한다. 웹페이지의 구조 속에서 만화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표현적 이유는 물론, 무엇보다 산업적인 이유에서 최근 수년간 크게 부각되었다. 출판업 전반의 장기침체 속에서 온라인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각광받게 되었고, 그 속에서도 다시금 대형포털을 중심으로 사업모델을 서서히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따라서 이미 많은 작가지망생들 및 매체 적응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젊은 기성작가들이 웹에서 주류 장르화되거나 혹은 그것에서 다시금 살짝 벗어나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동력들은 종종 서로 겹치며, 한국만화의 젊은 시도들을 잉태하곤 한다. 그 속에서 오늘날 비교적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내용이나 형식상의 경향으로 다음의 것들을 꼽을 수 있다.

담담하고 개인적인 일상

각각의 개성이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함께 묶는 것은 쉽지 않지만, 우선 개인사적 느낌의 일상 이야기를 리얼리즘적 접근으로 담담하게 묘사하는 일군의 작품들이 있다. 현대 생활의 편의에 미묘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도시생활담인 김수박의 『아날로그맨』, 자전적 성장담인 정송희의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성장과정 소년의 심리를 신화적 모티브로 풀어내는 김한조의 『소년의 방』, 낙서형 잡상록의 형식으로 자기 생활을 고백하는 앙꼬의 『앙꼬의 그림일기』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인간 사이즈의 바퀴벌레와 친구로서 동거하는 이야기를 담은 장경섭의 『그와의 짧은 동거』같은 또 다른 일군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더 강조한 기이한 설정을 바탕으로 해놓고는 결국 내용은 다시금 일상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들은 일상의 건조한 비루함과 반복성 속에 다른 사람들의 만남과 약간의 성장 요소를 녹여내는 방식을 구사한다. 이러한 경향성 위에 최규석의 경우 사회참여적 요소를 좀 더 강조하여 ‘발전’에서 소외된 계층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대한민국 원주민』, 반지하 자취방에 사는 청년들의 자조적 유머를 부각하여 『습지생태보고서』 같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 부류의 작품들은 픽션인 경우라고 해도 내성적인 감성과 자전적 회고담의 느낌이 대체로 강한데, 개성적 그림체를 통한 뚜렷한 분위기 조성이나 만화 특유의 자유로운 독백과 나레이션, 대사의 교차 운용이나 칸의 반복적 연출을 통한 시각적 리듬을 십분 활용하곤 한다.

시각적 재미의 추구

만화에서 주류 산업으로서 장르화된다는 것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림체 등 시각적 요소들 역시 정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반대쪽에는 바로 그런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재미를 추구하는 시도들이 있다. 꿈 속 세계에서 벌어지는 책과 소통에 대한 기이한 모험인 김한민의 『혜성을 닮은 방』이 보여주는 만화 공간 연출의 실험성은 이해나 공감이 어려운 경우라 해도 충분히 감탄할 만 하다. 혹은 좀 더 전통적인 의미의 극화적 느낌이 강하면서도 확실하게 세부적이고 역동적인 필력으로 현실감을 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야기 자체도 소소하거나 숫제 비루한 현실성을 강조할 때 좋은 조화를 이룬다. 변기현의 『로또블루스』, 최규석의 『공룡둘리』, 석정현의『Expression』등 단편집들이 이런 부류에서 눈에 띈다. 혹은 아시아 신화의 상상력을 동양화 필치로 그려내는 오연의 『이스트 아시아 판타지』, 대체역사풍 SF로 담아내는 민중투쟁담을 수묵화로 묘사하는 김홍모의 『항쟁군』등도 주목할 만 하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시각적 실험의 재미를 깊게 파고들었던 작가 가운데 일부는 현재 실험적 애니메이션(이애림, 변병준 등), 일러스트(아이완 등) 같은 인근 분야에 더 집중하고 있기도 하다.

웹만화의 새로운 주류화와 도전

오늘날 한국의 웹만화는 만화판에 있어서 가장 역동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분야다. 강풀의 『순정만화』, 양영순의 『1001』, 그리고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등이 대형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큰 히트를 기록한 이래로 웹 장편 연재만화의 장르 규칙들이 세워지다시피 했고, 『또디』부터 『트라우마』,『츄리닝』까지 형식상으로는 스포츠신문 연재작이지만 인터넷에서 더 큰 히트를 친 일련의 회당 4페이지 이하의 짧은 상황개그만화들 역시 명실상부한 주류가 되었다. 이들은 불과 수년 전에는 새로운 도전이었으나 히트를 치자 삽시간에 많은 비슷한 형식과 내용의 추종자들을 끌게 되었고 포털사이트라는 대형 매체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반면, 웹만화는 빠르게 주류 장르화되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끊임없이 개성적 돌파구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웹의 장점인 독자와의 실시간 호흡, 그리고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면 얼마든지 전위적 시도도 할 수 있다는 점이 결합하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 젊은이들의 생활과 취업도전을 다루는 주호민의 『무한동력』은 연재를 하며 실시간으로 현실사회와 호흡하며, 메가쇼킹만화가의 『탐구생활』은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댓글을 통해서 함께 작품과 놀아줄 것을 종용한다. 전위적 시도는 대형 사용자 커뮤니티인 디씨인사이드의 카툰갤러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서툰 그림 솜씨와 절묘한 일상의 유머가 결합된 소위 ‘공감툰’에서 적나라하게 구현된다. 이말년, 귀귀 같은 작가들의 경우처럼 기발하게 허탈한 폭소를 구사하거나, 겸디갺처럼 끝없는 암울함으로 일반적 의미의 주류에서 도저히 구사하기 힘든 표현들이 독자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점은 포털사이트 및 몇몇 출판사들이 이런 다양성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를 주류 지면으로 발탁한다는 점이다. 언더그라운드와 메인스트림이 유기적 생태계로 결합하는 판이 서서히 형성되는 셈이다.

해외만화계 진출, 지식만화 및 기타 경향들

주류 장르 만화로서의 성공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장르만화판의 좁은 틀을 벗어나고자 해외 만화계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즉 산업적으로 더 규모가 큰 장르시장에 도전하는 것인데, 단지 만화를 해외에 수출하는 식이 아니라 현지의 만화환경과 장르적 코드에 맞추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방식에 가깝다. 일본의 경우는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례가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양경일 그림 윤인완 글의 『신암행어사』, 박성우 그림 임달영 글의 『흑신』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본격적으로 창작 스튜디오 자체를 일본 현지에 차리고 연재작업을 하는 박무직의 SF단편들이 큰 주목을 받은 바 있고, 고진호, 더블-S, 박중기 등이 최근 수년간 그림작가로서 일본의 러브콜을 받아 활동한 바 있다. 미국권의 경우 200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현지의 주류 만화시장을 노리고 작업한 침프대디 스튜디오가 『디파이언스』등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으나 뚜렷한 성공사례로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에 실패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아시아권 만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면서, ‘미국산 망가’로 분류되어 출간된 김유월의 순정만화『12 Days』의 경우처럼 한국 작가들의 진출 여지 또한 다시 넓어졌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갈만한 경향은 바로 고급 교양을 담은 지식만화 분야다. 어리석은 전쟁의 역사와 현재를 풍자적으로 엮으며 풀어내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차대전을 대중문화 패러디로 다루는 굽시니스트의 『본격제2차대전만화』, 뼈아픈 기억을 담담하게 캐내는 정경아의 『‘위안부’리포트』, 미술 감상 만화인 김치샐러드의 『그럼 보여주는 손가락』 등이 대표적이다. 내용이 부족해지더라도 무조건 쉽게 풀어주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풍부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제시하되 만화적 재미를 잃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류 학습만화 장르에 대한 대안이자, 재미에 의한 정보습득 동기부여를 포기한 대다수 인문서적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여러 경향을 하나씩 짚어봤지만, 결국 이야기는 한가지다. 바로 기존의 주류만화의 스테레오타입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다양함이 현재진행형이고, 그 중 일부는 심지어 새로운 주류로 자라날 가능성까지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주류 출판 만화 산업의 장기 침체와는 별개로, 만화라는 장르 자체는 아직 꽤 활기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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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한국만화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도전 [한국문학번역원 LIST 09여름]

Comments


  1. 그렇군요.

    요새 깨닫는 사실인데, 어떤 이는 자신의 전문분야라고 자랑을 하면서도 지면을 채우기 위해 고생을 하고… 어떤 이는 그런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꼭 말하고자 하는 부분들의 양에 비해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서 고생을 하는 티가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한정된 지면때문에 고생을..ㅋㅋ

  2. !@#… nomodem님/ 짐작하신 바 대로, 원래 15매로 해달라는 것을 제가 25매로 기억하고 “헉 그 다양한 가지치기를 어떻게 25매로?!” 라고 툴툴거리며 썼다가 결국 더욱 경악하며 최종 제출원고를 더욱 깎아낸 사연이 있습니다. -_-;

  3. !@#… 모과님/ 이게 이미 25매(사실 29매…) 짜립니다. 얼마나 분량 한계의 압박이 심한지 절절히 드러나지 않습니까;;; // 참 100C 출간 축하! 알라딘US로 한창 바다 건너고 있는 중임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적절한 작품이 되어가니 것참…;;;

  4. !@#… 모과님/ 헉 정기적으로 책 주문할 때 신간 소식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챙겨넣었건만;;; 뭐 둘 다 도착하면 한 권은 소장용, 한 권은 포교용(…)으로 역할분담을 해야겠군요. :-)

  5. 아~ 얼마전에 번역원에서 무한동력의 영문 중문 타이틀을 알려달라고 했던게
    이 글 때문이었군요! Infinite Force 라고 보냈는데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적절한 번역인지
    캡콜드님께 진작 여쭈어볼걸 그랬네요 ㅠㅠ
    아참! 무한동력 한창 단행본 작업중인데 책에 들어갈 추천사좀 굽신굽신…
    (출판사 쪽을 통해서 정식으로 의뢰를 드려야 하는거겠죠? 제가 잘 몰라서)

  6. !@#… 호민님/ 아, 그건 제가 영문판 최종 감수 들어온거에서 Perpetual Engine 으로 고쳤습니다. 공학에서 이야기하는 무한동력엔진의 나름 정식(…)용어. // 추천사 당근 써야죠! 출판사 통해서 의뢰는 필요하지만(결국 출판사에서 편집해서 넣는 만큼), 의뢰는 108% 접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