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원천봉쇄에 대한 대처 단상

!@#… 한국의 후진적 집회/시위 관리 문화의 핵심은 사실 딱 하나로 압축된다. 바로… 원천봉쇄. 그 원천봉쇄라는 편의주의적 야만에 대한 대처를 궁리해보는 단상.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함의 그런 것 살짝 떠나서… 집회/시위 역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서 그 안에서 소통력이 잘 갖추어진 것과 허접한 것이 나름의 시장경쟁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비유하자니 좀 토나오기는 하지만, 주목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여러 주체들이 기회를 잡고 활용하는 경쟁을 하는 ‘홍보 분야’니까 말이다(집회를 통한 내부 조직 결속 기능은 논외). 그 시각을 좀 더 확장하자면, 원천봉쇄 남용은 사상의 자유시장 경쟁으로 입장들이 시민들의 선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공권력이 직접 개입해서 취사선택을 해주고 전반적으로 그 분야의 활성화를 틀어막는 지극히 반시장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행태 되겠다. 아, 마음은 조낸 독재깡패를 꿈꾸기 때문에 민주주의, 다양성 그런거 영 활성화하고 싶지 않다면야 뭐 어쩔 수 없고. 여튼 무언가를 허용하고 시스템화시키고 잘 관리해서 긍정적 에너지 부분만 극대화시키고 하는 복잡한 사회운영의 정도를 걷기보다, 닥치고 틀어막아 박제된 침묵의 질서라는 꼼수를 선호하는 후진적 리더십은 민폐다.

그런데 바로 그 원천봉쇄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 두 건의 중요한 판결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옥외집회 사전신고제 위헌 소송 패소. 내역이야 잘 알려져있다시피, 옥외집회는 관할 경찰청에 사전신고하게 되어있는데 경찰청이 갖은 이유로 불허를 날리고 강행시 형사처벌을 하는 등 원천봉쇄하는 일이 잦은 것. 즉 신고제가 각 경찰청에 의해 사실상 허가제로 활용되어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헌재의 판결은 신고제 그 자체는 충분한 취지가 있고 신고제 자체가 허가제인 것은 아니라고 7대1, 6대2로 패소. 여튼 재판관 다수의견은, “일정한 신고 절차만 밟으면 일반적ㆍ원칙적으로 옥외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므로 집회에 대한 사전신고 제도는 헌법상 `사전허가금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라는 이야기다.

아하. 개인적으로는 소수의견에 더 동의를 하지만, 그게 현재 헌재의 법리적 판단이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가야할 방향은 뚜렷하네. 법적으로 “일반적ㆍ원칙적으로 옥외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데 불허한 사례들을 찾아서 조져 놓는 것. 그런데 천만다행, 중요한 판결이 나와주었다. 상경투쟁을 원천봉쇄한 경찰청에 참여자 1인당 10만원씩 배상 판결. 명백한 범죄를 예상할 증거가 없는데 그냥 감으로 원천봉쇄하면 법적으로 발린다, 라는 중요한 판례다. “…집회에서 사용하면 신체·재산에 위해를 초래할 위험한 물건을 소지했다고 볼 증거도 없어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에 해당하지 않는다” 같은 중요한 조건들이 구체적으로 나와줬다고.

사실 1인당 10만원은 적절한 타이밍에 자기표현을 해야만 하는 홍보효과를 망쳐놓은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는 턱도 없이 적은 액수라는 생각이 들지만… 원천봉쇄 당한 인원이 10만명, 100만명이라면 어떨까. 고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집회를 거부당한 서울광장에 써먹자… 그 장소를 피해서 모인 인원수는 물론이고, 원천봉쇄당한 일수도 곱해보자. 행사 이틀전에 난데없이 봉쇄당한 인권영화제도 써먹자(클릭)… 이전 행사를 기반으로 관객수 예상 뽑고, 청계천 지나다가 우연히 보러올 관광객도 마구 집어넣자. 한번 경찰청이 벌금으로 거덜나는 꼴을 보자. 물론 모든 건에서 승소한다는 보장은 없고 무조건 1인당 10만원으로 책정할리도 없지만, 경찰청을 무척 괴롭힐 수 있고 향후 원천봉쇄 같은 짓거리에 대해서 몸을 1그램쯤 사리도록 만들 수 있다.

!@#… 홈페이지에 리플 100개 다는 것 보다, 법적 소송으로 괴롭히는 것이 100배 효과적이고 향후 사례를 남기는 것에 있어서도 바람직하다. 실제로 미국만 해도 시민자유와 관련된 중요한 순간에는 대체로 “ACLU v. ***” 로 표시되는 법정 판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시민단체 ACLU가 정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누군가와 법정에서 붙어서 판례를 이끌어내고, 그것이 이후 정책들의 향방을 결정하는 분기점이 되어준다는 것. 사실 한국은 시민운동 진영이 민변 같은 훌륭한 우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하고 법적으로 이슈화해내는 집중력과 지속력이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여튼 그런 의미에서 좋은 기회에 좋은 사례가 등장해주는 것이 유용한데, PD수첩의 최근 방송이 일으킨 큰 반향에서 볼 수 있듯 2009년 6월이라면 집시법과 경찰의 원천봉쇄 관행이 좀 대중적 관심 끌기 딱 좋은 소재다. 어서 시민단체들이 집중력을 발휘해서 뭉치고, 법조 전문가들이 달라붙어서 사사건건 관할 경찰청과 시 당국을 고소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주기를 기원한다. 물론 미디어는 개인이든 언론기업이든 이런 맛있는 떡밥들을 제발 열심히 확장시켜주고. 뭐 대충 그런 단상이다.

* 발아점: 집회시위의 자유에 관한 국가인권위원회 성명 (2009.06.03.)

PS. 사실_그들의_정체는_솔로부대_질투가면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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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집회 원천봉쇄에 대한 대처 단상

Comments


  1. 전략적인 면에서 효과적이긴 한데… 저렇게 일일이 소송을 하려면 소송비용이라는 초기투자비용이 드니까, 사람들이 잘 안하려고 할 거 같네요… 그리고 만에하나 패소할 경우의 데미지란것도 있고…

  2. !@#… erte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처럼 분연히 일어난 개인이나 작은 모임들이 소송을 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걸로 전문적으로 다뤄주는 조직을 육성할 필요가 있죠(미국의 ACLU의 경우처럼). 사실 아예 정당들이 해주는게 가장 훌륭하겠지만.

  3. 집단소송! 집단소송! (…)
    아니 뭐, 실제 미국만 해도 초기의 직장내 성추행 건도 집단소송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으니까요…그리고 재판 자체의 승소 여부를 떠나서 쪽팔림 대미지가 포인트.

  4. 꽤나 쓸만한 방식이군요. 단, 요즘 분위기에서 경찰이 소송 자체를 신경 안 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쯤 되면 진짜 독재지만요. 질투가면에서는 그냥 웃음만 나오네요 –;;

  5. !@#… 지나가던이님/ 소송이 좋은 점이, 신경 안 쓸래야 쓸 수 없다는거죠. (핫핫) 여튼 지금도 한국이 결코 소송이 적은 나라가 아닌데, 이런 시민권리 부문도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해서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바우치님/ 그리고 소송의 과정 중에 상대의 자세가 종종 바뀌어나가죠. 예를 들어, 오픈웹의 공인인증서 소송이 없었다면 공공기관들의 웹표준화 논의가 이만큼이나마 진전이 되고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 전부터 정보운동진영에서 논리를 설파하고 캠페인을 했다 해도, 역시 소송만한 것이 없음.

  6. 여담이지만 딱 김영삼정권 말이었지요. [레드 헌트] 사건으로 인권영화제가 탄압받고 서준식씨가 구속되었던 것이.

    인권영화제에 대한 탄압은 어찌보면 영화계의 여론 전체를 움직일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데 현 정권이 참 안이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당한 자극은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오히려 활력소가 될수도 있어요.

  7. !@#… Y_Ozu님/ 지금도 이명박정권 말기니까 얼추 비슷하군요(핫핫).

    덱스터님/ 반정부인지는 모르겠으나, 반합리-반이성-반상식-반시스템인 것 정도는 얼추 확실하다고 봐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