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블로그 문화의 현주소 [특집/기획회의 250호]

!@#… 기획회의 250호 커버스토리로 ‘블로그의 진화’라는 좀 짱인 특집을 했는데, 총론과 각계에서 활동하는 유명 블로거들 – 고재열, 김홍기, 조안나, 구본준, 이경훈 – 의 진단글으로 구성. 이것은 그 중 capcold가 기여한 총론 원고인데, 보통 그렇듯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 받았으나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꾹꾹 참고 눌러 담은 글… 역시 연재칼럼이나 단행본 챕터가 필요할지도.

 

한국 블로그 문화의 현주소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자고로, 연속선상에 있는 어떤 발전 상황 속에서 새로운 분기점을 인식하는 가장 편한 방법은 바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특히 개별 매체의 발달 상황이 빠르고 다양하고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공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지난 수년간 인터넷 안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온갖 미디어에 오르내린 대표적인 개념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큰 망설임 없이 바로 ‘블로그’라는 용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5-6년 전에 본격적인 버즈워드로 떠오른 이래로 블로그는 1인 1대중매체라는 인터넷의 포부를 실현시킨 모습, 즉 기존의 제도화된 저널리즘, 출판, 나아가 일상적 소통의 관행까지도 바꾸어 놓는 혁신의 상징으로 칭송되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아직도 블로그의 민주적 가능성을 예언하고 전문성의 영역이 해체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면, 상당한 시대착오의 기미가 있다. 그 본래의 포부가 무엇이었든, 이미 블로그는 완전히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것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인터넷 시간 기준으로). 민주적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민주적 기능을 하고 있고, 지적 반달리즘의 역할도 하고 있고, 일정부분 상업화의 함정에도 빠지고, 사람들을 특정한 문화로 묶어주기도 격차를 키워주기도 하고 있다. 이미 블로그는 ‘전망’하기보다 현주소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블로그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화된 담론 공간, ‘블로고스피어’가 한국에 자리 잡은 현재의 모습과 이슈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블로그와 블로고스피어

누구나 대충 알고 있지만 사실은 별로 명확하지 않은 것이, 과연 블로그를 무엇이라고 정의내리는가의 문제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 블로그는 문자 그대로 웹로그, 즉 웹상에 어떤 기록을 적어놓는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로그라는 속성에서 나타내듯 날짜를 포함해서 자주 업데이트하고 축적한다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그것을 홈페이지라는 정보 노드로 구성되어 있는 웹이라는 인터넷 사용 형태를 바탕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90년대 말 초창기 블로그들은 그냥 통짜 HTML 웹페이지에 수동으로 그날그날의 기록을 가장 위쪽에 추가하는 경우도 많았고, 무버블타입 같은 블로그 엔진의 선구자도 초기에는 그런 식의 통짜 HTML 웹페이지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웹저작툴일 뿐이었다. 그 동안에도 전자게시판이나 토론방, 실시간 채팅 등의 방식은 이미 널리 보급되고 있었고 말이다. 즉 블로그는 어떤 기술적인 범주의 혁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개인 미디어로서 자주 내용물을 업데이트 하고 이전 것을 알아보기 쉽게 축적해놓는다는 사용 방식을 놓고, 그것을 지칭하는 좋은 용어를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의 세계적 보급과 함께 제도권 언론의 취재가 사실상 커버하지 않는 장소와 관점들이 그런 개인미디어를 통해서 표현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예를 들어 폭격당하고 있는 이라크에 사는 소년의 생생한 시각이라든지), 그 흥미로운 현상과 결부시켜 제도권 언론들이 블로그라는 개념을 적극 확산해줬다.

그런데 블로그 운영자가 늘어나자 하이퍼텍스트 기능을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위치한 내용상 관련 있는 글에 이쪽으로 오는 링크를 자동적으로 심어 넣는 기술인 ‘트랙백’이 도입되었다. 즉 개별 내용들이 각 매체의 주인장의 수동 처리가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 새로 관련 내용을 만드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도 링크로 이어지는, 한층 적극적인 네트워킹을 도입한 것이다. 블로그라는 용어의 붐을 일으킨 것은 개인 미디어라는 속성 때문이었지만, 사실 웹2.0 시대의 총아로 발돋움하게 만든 것은 트랙백 기술이나 계속 업데이트되는 링크 소개 등으로 이루어진 담론 네트워크의 확장이라는 속성이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기능 자체보다, 블로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담론 공간인 ‘블로고스피어’를 핵심적 매력으로 파악하는 접근이다. 블로그를 콘텐트별 퍼마링크와 트랙백 같은 특정 기술로 규정하고 싶어 하며 미니홈피 같은 것을 블로그로 간주할 수 없다는 일부의 입장들은 사실 이런 발상의 확장형이다.

그렇듯 따지고 보면 개인미디어로서의 블로그는 결국 기존의 홈페이지에 약간의 사용 편의가 더해지고 사용방식이 부여된 것에 불과하고, 블로고스피어 역시 하이퍼링크라는 웹 본연의 컨셉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진화시킨 것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블로그는 그 자체로는 어떤 내용으로 어떤 식으로든 쓸 수 있는 그냥 빈 공책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블로그라는 용어의 세계적 히트와 함께 업계와 대중의 관심 속에 급격하게 규모가 커지자, 블로그를 기존의 전통적인 매체양식과 대비되는 무언가로 설명하는 시도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다시금 그것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한쪽에서 블로그는 조직 속의 직업인들이 만드는 제도권 언론과 대비되는, 새로운 형태와 내용의 저널리즘으로 위치지어졌다. 또 다른 쪽에서 블로그는 난독증을 유발하고 출판과정이 오래 걸리는 전문 학술 저술과 대비되는, 좀 더 유연하게 진지한 아이디어들을 공개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모두가 평등하게 활짝 열린 공간에서 어지럽게 난전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는 게시판포럼과 대비되는, 운영자 개인이 좀 더 차분하게 중심을 잡고 발언을 할 수 있는 전자토론 공간을 블로그 속에서 발견하는 이도 있다. 혹은 회사의 홍보자료와 대비되는, 개인적 경험에 의거하고 입소문으로 퍼트리는 새로운 제품 마케팅 경로에 환호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 와중에서 블로그와 블로고스피어는 기존 매체와 그들의 활용 관행들을 겹겹이 흔들어놓았고, 몇몇 분야의 경우는 기존 기반의 산업과 영향력의 붕괴 속에서도 블로고스피어와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모색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여러 가지 실험들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축에 드는 저널리즘 분야라든지, 블로고스피어를 필진 발굴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출판계 등이 그 예다.

형식과 내용의 영향관계

블로그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각종 개인미디어와 네트워크화된 공간이 일상적 주류가 되면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콘텐츠를 향유하는 방식 그 자체다. 그것이 장문의 글이든 재미있는 그림이든 노래의 한 대목이든 동영상 한 조각이든 말이다. 화면을 읽을 때는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식의 심리학 인지실험 결과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하이퍼텍스트성 덕분에 좋게 보자면 적극적인 의미의 재구성, 나쁘게 보자면 파편화된 독해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서 게재되는 내용 역시 결국 그런 독해를 감안하고 작성되는 방향으로 간다. 전형적인 블로그 글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확고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비슷한 내용을 담아내는 인쇄매체와 비교하자면 훨씬 더 날 것 그대로의 초고 같은 느낌을 강조하곤 한다. 또한 완성된 하나의 큰 덩어리를 올려놓는다기보다 일기를 축적하는 듯한 감성에 가까운 미디어인 만큼, 그 안의 글도 단행본보다 잡지 연재물의 느낌을 준다. 해당 블로그에서 연재물이 모여서 단행본 분량으로 묶인 카테고리 아카이브 페이지를 열어본다 하더라도, 세부 포스팅 글들이 각각 지니고 있는 작성 시기 속성이 비교적 뚜렷하게 느껴진다.

개별 매체가 아니라 블로고스피어라는 네트워크 자체도 특정 내용을 더 장려하거나 홀대한다. 사실 블로고스피어는 하나의 커다란 통일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술적 요인 혹은 관심사에 따라서 여러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서로 엮이는 식이다. 예를 들어 특정 포털 사이트 혹은 기타 블로그 서비스 업체에서 제공하는 개인 블로그들은, 해당 업체의 메타블로그 페이지를 매개로 해서 더 쉽게 교류할 수 있게 되어있다.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처럼 노골적으로 자사 블로그들을 모든 링크와 검색결과 등에서 우선시하는 폐쇄적 정책으로 시작한 곳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이글루스 같이 높은 사용자 자유도를 매력으로 내세웠던 서비스 역시 ‘이웃’ 등록이나 자사 블로그에만 적용할 수 있는 포스팅 추천 제도 등을 사용해왔다. 이론적으로야 모든 주제에 열려있는 블로고스피어를 상상하기 쉽겠지만, 자체 블로그 계정서비스 없이 외부 RSS로 포스팅을 분류하고 추천하는 메타블로그인 올블로그만 하더라도 2008 우수 블로그 행사 당시 스포츠 분야 유명 블로거들이 평소의 ‘홀대’를 이유로 후보 자리를 거부한 바 있을 정도로 부문별 편중이 생기곤 한다. 여기에 기술적 요인들도 개입하는데, 예를 들어 독립 계정에서 비교적 덜 대중적이지만 특정 기능이 우수한 블로그엔진을 사용하는 블로거들은 IT에 대한 일정 정도 전문적 관심을 보인다든지 하는 식이다. 반면 사용자 측의 기술력 문턱을 거의 제로로 낮추었으며 대중적 공감추천 기능을 높인 네이버 블로그는 음식과 여행 이야기 천지다.

매체이식: 출판의 경우

이런 미묘한 역학 속에서라도 분명히 어떤 블로그들은 적절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부러움 속에, 출판을 이야기한다. 무엇이 부러운가 하면, 출판을 하면 콘텐츠 자체로 인한 직접수익이 생겨나고, 온라인으로 만나지 못했던 대상층에까지 펴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처음 생산된 내용을 다른 매체로 이식하는 것은 어떤 식일까. 우선 가장 손쉬운 방식은, 인기 블로거 가운데 글의 완성도가 높은 이들의 포스팅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이든 어디든 블로그 활동으로 돈을 벌고 싶어하는 이들의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난관이 있는데, 하나는 블로그글을 그대로 단행본으로 옮기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초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는 통신 연재소설을 책으로 내는 것과 달리, 많은 블로그 포스트들은 출판 원고로 치자면 문장을 다듬은 수준이 초벌급인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글을 끊는 타이밍,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사용하는 호흡과 글의 분량 등이 온라인과 출판물은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단행본에 어울리는 글로 통째로 윤색할 수 있는 필자이거나 아니면 편집자가 반쯤 죽어나거나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른 하나의 난관은, 애초에 블로그 글로 히트쳐서 출판까지 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원래 글의 프로라는 것이다. 인기블로거로서 단행본이 묶여 나온 최근의 사례인 허지웅, 한윤형 등이 알아보기 쉬운 사례다. 잡지 기자 등을 거치며 크고 작은 출판 지면에 실제로 글을 연재해온, 출판에 적합한 글을 만드는 것에 수련이 되어있는 이들이니 말이다. 별반 기반 없이 그냥 블로거로서 성공하는 것은 세상 다른 어떤 분야와 다를 바 없이 성공확률이 희박하다.

블로그의 내용이 출판으로 이식되는 모델의 좀 더 유용한 사례는 웹만화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자기 블로그, 혹은 자기 블로그 및 홍보에 도움이 되는 좀 더 큰 게시판 공간(예를 들어 네이버, 다음 등의 작품 도전 게시판)에 작품을 연재한 후, 그것이 발탁되면 정식 수입이 생기는 프로작가로 발돋움하는 신인 만화작가 데뷔 경로가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일부는 포털사이트라는 온라인 유료연재 지면을 거치고 그곳에서 인기를 끌면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포털연재 없이 곧바로 출간되기도 한다. 팬층의 강력한 지지 속에 인기를 끈 2008년의 『본격2차대전만화』(굽시니시트 저/애니북스)가 그런 사례다. 물론 제대로 된 책으로 이식하려면 만화 그림의 시각적 흐름이라든지 그림체 변경이라든지 내용 보충 같이, 글을 다듬는 정도 이상으로 고된 재조정 작업이 필수다.

이런 출판물은 당연히 블로고스피어의 입소문을 중요한 홍보 통로로 활용하게 된다. 애초에 블로고스피어에서 일정 정도 이상의 지명도를 확보하였기에 출판사가 필자를 선택하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내용에 대한 추천(과 비추천), 온라인판과 출판물의 장단점 비교 등이 블로그 포스팅과 덧글 속에서 오가며 다시금 온라인 공간의 담론을 채워준다. 다만 이상적으로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활발한 토론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키워내는 선순환을 이뤄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국내에서는 도서에 대한 평가와 온라인을 후속토론의 장으로 직접 연결시키는 과정이 덜 발달한 편이지만, 해외의 경우 미국의 법학교수 로렌스 레식이 자신의 저서 ‘코드’의 내용 토론과 개정판 작업을 위해 블로그 토론은 물론 위키 방식의 공동 참여까지 열어놓아 그것을 기반으로 개정증보판 ‘코드 2.0’을 출간한 사례도 있다. 물론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필자 본인이 블로고스피어에 적극적으로 공헌하는 열정적 블로거로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발전의 타이밍

기술적 속성만 바라보면, 개인미디어의 네트워크화라는 블로고스피어의 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하기 쉽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의 소통 과정과 관심사라는 측면으로 보면 보다 현실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논쟁이 막싸움으로 변질되는 패턴, 당당한 의견으로 엉터리 논리를 주장하는 사이비 논객들의 발생, ‘순수한’ 소통 공간의 상업화 문제, 자정작용 부재… 많은 이들이 블로그 문화의 모습으로 지목하고 있는 이런 것들은 대부분 이미 블로그가 주류가 되기 이전의 인터넷 게시판 문화에도 거의 그대로 엿보였고, PC통신 시절에도 나타났다. 좀 더 혁신적인 새로운 소통매체가 열리는 순간에는 그 매체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실험해보는 시도들이 이어지지만, 그것이 히트를 치고 보편화되어 사람들이 많이 붙을수록 진입장벽을 높이는 규칙들은 바람직함이나 유용함을 떠나 흐지부지된다. 실제 사회보다 훨씬 강력한 예의표시를 시도했던 ‘네티켓’이 흐지부지되었던 과거처럼, 촘촘한 출처 링크를 생명처럼 여긴 초기 블로깅 규범들은 원클릭 펌질 문화로 대체된지 오래다. 소통의 내용 역시 그런 측면이 있어서, 자기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이나 상호 커뮤니티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블로그 서비스인 이글루스의 메타공간인 ‘이오공감’에 주로 나열되는 추천 포스트 및 그에 대한 반응들의 논조 흐름을 보면 PC통신 하이텔 토론방의 90년대 후반을 연상시킨다. 개인미디어라는 속성으로만 보더라도 블로그 붐의 이전에는 미니홈피 열풍이 있었고, 그 전에는 무료 접속사업자들이 무료 개인 계정을 보급한 개인 홈페이지도 무척 강조되었고, PC통신 전자게시판 상에서 더욱 작은 규모의 소모임과 개인사 중심의 게시판들을 만드는 움직임도 있었다.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이 주는 긍정적인 모습은, 기존 매체들이 구축한 갑갑한 상황을 뒤집는 대안으로 등장해서 영향력을 확보해나가는 바로 그 타이밍에 나타난다. 특히 그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탈중심화와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지는 복합적 개방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특정한 활용 방식만이 남아 주류화되는 상황 직전이 바로 핵심이다. 즉 사용자가 많고 사용 패턴이 익숙해져서 영향력을 확보하되, 너무 많아지고 고착화되어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는 상황까지는 도달하지 않은 시기를 말한다(복잡계 사회이론의 ‘혼돈의 가장자리’). 예를 들어 개인 미디어로서는 현재의 전형적인 블로그 형태에 밀려나다시피 한 싸이월드 미니홈피도, 4년 정도 전에 한껏 떠올랐을 때는 일종의 생활혁명이었다. 개인들의 사회 연결망이 급격하게 온라인/오프라인 경계를 흐리며 확장되고, 홈피 꾸미기를 통해서 새로운 온라인 시장이 생기고 음악이든 만화든 새로운 산업가능성이 만들어졌던 바 있다. 다만 미니홈피의 경우 개인미디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텍스트의 상호 연계성을 퍼마링크와 트랙백으로 강화하기보다는 사람들 자체를 인맥으로 엮는 것에 중점을 두는 선택을 했고, 덕분에 단순히 소문 소식의 확장 말고 담론 자체를 발전시키는 기능은 처음부터 약했다.

이것은 반대로 보자면, 블로고스피어 역시 매체 자체보다, 블로그를 이해하고 쓰는 방식, 블로그 사용 문화가 단순한 패턴으로 압축되어가는 과정을 거부하고 새로운 소통의 발상을 이어갈 때 긍정적 가능성을 계속 실현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와중에서 어떤 시도들은 좀 더 도움이 되게 정착하고, 어떤 것은 처절하게 묻히지만 말이다. 즉 너도나도 손쉽게 “블로그, 블로거, 블로고스피어란 이런 것이다”라고 단순화한 이미지를 부여하기 시작하여 고착화되는 타이밍에, 또다시 새로운 상상력의 사용법으로 더 재미있는 시도를 해서 돌파구가 만들어져야 블로그에 대해서 사람들이 걸었던 보다 열린 소통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계속 추구될 것이다.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은 바로 전문성과 호소력을 지닌 각각의 실력 있는 블로거들, 그리고 그들 사이의 활발한 교류다.

집단지능과 커뮤니티성

블로고스피어의 긍정적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의 기반에는 바로 집단지성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고, 집단지성이 발현되기 위한 최초 조건은 바로 커뮤니티성이다. 성찰의 의미가 부여된 ‘지성’과는 달리 현실세계에서 이뤄지는 것은 그저 집단 ‘지능’, 즉 협업 속에서 어떤 최적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상당히 기계적인 과정이다. 물론 집단 지능의 발현만 해도 사실 굉장한 과업인 것이, 정보를 취합하고 정리하는 소통 방식에 따라서는 집단이 모이면 모일수록 오히려 멍청하고 비합리적이 되기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단의 다양한 발상 속에서 어떤 기발한 것이 나왔을 때, 기록을 축적하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기반으로 삼을 때 ‘지능’의 단계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금 반추하고 성찰하여 적극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소통작업을 집단적으로 해낼 때, 집단지성의 단계까지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즉 우연히 기발한 발상이 나타난 특정 사례를 홍보하며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기보다, 그런 것을 지능과 지성의 수준까지 올려놓을 수 있는 소통 시스템을 궁리하는 것이 중요한 셈이다. 한국의 블로고스피어 역시, 모두 각자의 이야기만 목소리 높이는 거대한 심야 포장마차의 길이 주류가 되느냐 아니면 의미 있는 성찰과 사회적 움직임을 만드는 공론장의 길이 주류가 되느냐가 여기에 걸려있다.

온라인 상의 협업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겠지만, 시장법칙에 따라서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경우에도 커뮤니티성을 떼놓고 보기는 힘들다. 누구나 참여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경우도 겉으로 보면 개인들이 돋보이는 일 없이 각각 익명으로 자기 전문지식을 그 안에 투여하고 수정하는 단순한 과정 같지만, 내막은 커뮤니티로서의 속성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각 항목에 붙어있는 ‘토론’란에는 필자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전문성을 동종분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의 표시가 가득하다. 참여자들은 개인 프로필 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누가 어느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는지가 자랑 및 경쟁거리가 된다. 나아가 편집자 권한 역시 등급이 차등화되어 있어서, 커뮤니티 내부의 사회적 위계로 작용한다. 그런 커뮤니티성이 있기에, 사람들이 협업의 동기를 부여받는다.

블로고스피어에서 커뮤니티성이 주로 드러나는 방식은 집단으로서는 메타블로그 사이트들, 개별 매체로서는 링크와 덧글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한국은 서비스업자의 사업모델 덕분에 같은 서비스 소속의 블로그들이 쉽게 커뮤니티적 연동을 얻게 되는 반면, 같은 관심사라고 하더라도 타서비스 소속 내지 개별 계정 블로그의 경우 연동하기가 훨씬 불편하다. 이것은 외부와 표준화시켜 연동시키는 것에 약하지만 내부에서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여 바깥으로 나갈 필요성에 대해 둔감하게 만드는 한국형 포털사이트들 일반의 ‘아파트 단지’적 특성과 맞닿아 있다. 또 다른 한국적 속성은 바로 블로그라는 개인미디어가 전문지보다는 종합지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공간을 표방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운영자가 느끼는 여러 생활 속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욱 흔하다. 특히 정치 논평은 마치 일정 정도 이상 지명도를 가진 블로거의 거의 필수요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블로그에 나온 글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 운영자라는 ‘사람’을 축으로 커뮤니티성을 추구한다. 이것 역시 주제 관심사에 집중하는 미국 등의 온라인 포럼 커뮤니티와 달리 항상 ‘자유게시판’을 만들어 직접적 커뮤니티 설립 취지와 관련이 없더라도 종합적인 세상에 대한 견해 (혹은 단순히 유머소재)를 교류하는 한국적 온라인 문화와 연동이 되어있지 않을까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즉 가장 한국 블로고스피어 상황에 적합한 집단지능/집단지성 발전용 소통모델을 궁리하겠다면, 블로고스피어의 커뮤니티성에 이런 아파트단지와 종합지 속성들이 반영되어 있음을 반드시 감안해야 할 것이다.

블로그 시대 그 다음?

미국의 기술문화잡지 ‘와이어드’는 2008년에 “블로그는 너무나 2004년식”이라며 트위터의 시대를 예고한 바 있다. 이들이 이야기한 블로그 시대의 특징이란, 여전히 길이가 상당한 ‘글’을 쓴다는 것이고, 글이 중심이 된 상태에서 이미지나 동영상을 첨가하는 정도라는 점이다. 하지만 트위터의 시대에 텍스트는 140자짜리 파편이 된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와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가 블로그를 매개로 할 필요 없이 직접 표현과 대화의 장이 되고, 그저 짧은 한 줄 멘트와 링크를 던져주면 그만이다. 대신 자주, 더욱 다양하게 형성되고 흩어지는 집단에게 던져주는 것이 핵심이다. 혹은 현재 개발중인 구글 ‘웨이브’의 모습은, 메일과 게시판과 블로그 및 뉴스 들을 한꺼번에 융합해버린다. 즉 어떤 주제의 특정한 대화에 관하여 온라인상의 여러 매체 양식이 실시간으로 한꺼번에 묶이는 셈이다. 이렇듯 더욱 긴밀한 융합이 온라인의 현재 발전방향이고, 그 와중에 블로그의 역할이나 형태는 또다시 바뀔 것이다. 1인 취재보다 집합적 뉴스 기여가 강조되는 트렌드 속에서, 블로그의 저널리즘 역할은 다시금 집합적 시민저널리즘의 하위개념으로 흡수되어 버릴 수 있다. 개방형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트랙백과 링크보다는 추천과 의미망 분석에 의한 검색을 통하여 연동되는 방식이 더 부각될 것이다. 트위터를 한 때 ‘마이크로 블로깅’이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그냥 트위터질이라고 하게 되었듯, 아예 블로그라는 명칭까지도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것을 더욱 진화된 블로그의 형태로 보든, 블로그 이후의 새로운 무언가로 보든, 아마도 마케팅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항상 좀 더 특수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광고 수익모델이 아직 빈약하다는 점이 아니라도, 개별 내용보다 특정 인간을 중시하는 성향이라든지, 개방형 플랫폼에 대한 소극성이라든지, 저널리즘이 제 기능을 종종 못하고 있고 전문 학술 영역의 소통 능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전문적 내용을 만드는 블로거들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높다든지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며, 더 적극적으로 블로그의 우수한 내용들을 언론기사로 픽업하고나 출판물로 만들고, 개인잡지를 넘어 개인방송국을 만들고, 새로운 수익성을 실험하고, 기존 매체도 블로고스피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 여러 시도들을 축적하며, 블로그가 전체 매체 환경의 일부라는 사실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블로그와 블로고스피어를 그 내부 뿐만 아니라 전체 매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 모델을 실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블로그를 단순히 특정한 기술이자 시대적 유행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온라인 소통이라는 커다란 사회 기능의 현재적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좀 더 보편화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주제 분야와 문체와 지지층을 확보하여 단순한 인기인이라기보다 상당한 매체적 영향력을 지졌다고 볼 수 있는 우수 블로거들이 해줘야할 역할이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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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Nakho Kim

    http://capcold.net/blog/3731 도서잡지 ‘기획회의’ 지난호 특집, "한국 블로그문화의 현주소". 항상 주어진 지면분량보다 많은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져서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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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주간 기획회의..250 …

    기대했던 기획회의 이번호. 사장님도 꽤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부장님도 특별히 읽어보라며 갖다주셨다. 이번호 특집이 이거다 ‘블로그의 진화’ (취직하고 나니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그래도 영화지 시사지를 비롯한 몇몇 잡지가 회사로 제깍 온다는거다..회사에서 볼 타이밍이 없어서 문제지. 그냥 여기저기 굴러다닐즈음 조용히 들고온다..) 이 잡지. 언제나 심플하게 매호 다른 커버 컬러로 승부하는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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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좋은 글입니다. 왠지 이번 분량은 적절하게 글쓰는이의 하고 싶은 말이 다 써져있는듯한 느낌….(지면위로)

    말미에 ‘소통’이라는 단어가 요사이 너무 여기저기서 소통 소통 하여 좀 반갑지 않고 질리는 감이 있긴 하지만(소통이라는 단어를 대체할만한 단어도 잘 안보이더라구요.), 후일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서로 트랙백으로 온라인 소통하는 날을 꿈꾸게 되는 좋은 부분이군요.

  2. 이란 사태랑 연결짓든 촛불이랑 연결짓든 인터넷상의 텍스트 창출은 고민할 것들 투성이가 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3. ‘기획회의’ 독자로, 기사에 대한 감상에 트랙백을 감히 걸었습니다.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이름 뿐이 아니었네요. 좋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블로그를 알게 되었구요..

  4. !@#… nomodem님/ 사실 소통이라는 단어가 남용되야 제 분야가 판이 커져서 유리합니…(핫핫) // 오오 한겨레와 조선일보 키배 일기토!

    dcdc님/ 뭐 각 개인은 그저 자기 잘하는 것 하나씩 해나가면 됩니다. 그 안에서 뭐든 만들어지고, 또 어떤 이들은 방향을 유도해내고 그러면서 가는 것이죠. 깊은 고민 장중한 결의라도, 편하게 편하게 :-)

    exmio님/ 기획회의라는 잡지가 참, 대중에게 이미지가 낯선 감이 있으나 펼쳐보고 나면 우월한 기사 품질에 놀라게 만들곤 하죠. 흥미로운 감상, 감사합니다 :-)

  5. 제 블로그 링크도 걸어주셔서 감사해요.
    이 포스트 제 오픈캐스트 No. 46 에 담아갈게요^^

  6. 오래된 글인데 검색해서 찾아왔습니다. RSS구독 중인줄 알았는데 없었네요. OTL
    블로그에서 글 쓰며 수련 중입니다만, 내공이 쌓이면 대중과학서적 하나 써볼 생각으로 공부 중인데 어떤 식으로 수련을 해야할지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7. !@#… 실피드님/ 헉 글쓰기 자체에 관한 글은 아니니 참조사례라는 이야기실텐데… 모범사례입니까 타산지석입니까 (핫핫)

  8. 나름 연재글이라고 쓰면서 자기만족보다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출판사에서 일하는 지인도 ‘다듬으면 된다’는 말을 자주해서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이 글을 보면서 추상적으로나마 그 작업이 뭔지 알게 됐습니다. (둔해서.. OTL)

    훗.. 저야 과학바보니까요. OTL

  9. !@#… 실피드님/ 아 그 이야기였군요…;;; 옙 그런 작업입니다. 편집자분을 잘 만나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