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질서에 관하여 – <니나잘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마찰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갈등을 해결해야만 하는데, 모든 것이 원만한 합의로 이루어지면 참 좋겠지만 많은 경우 강제적으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선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공인받은 강제적인 권위와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가 어떻게 누구를 감시하고 심판할 것인가에 대한 질서가 필요하고, 그러한 권력의 양을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요구된다. 서열, 계급, 직급, 사회원로, 뭐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다. 

국산 학원폭력물 가운데 가장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니나잘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명문 학생 주먹조직 스콜피온, 그 리더인 이후, 그리고 차기 리더 후보 3인방의 수련과정이 전체 스토리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장르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학교의 주먹 조직이 있고, 그 조직 내부에서 또는 다른 학교 조직들과의 마찰 속에서 완력이 탁월한 주인공들이 싸움을 통해서 자기 위치를 굳혀나아가는 이야기. 그 와중에는 우정도 있고, 배신도 있고, 연애담도 있고, 개그도 있다. 하지만 핵심적으로는 조직적 서열 관계 속에서 실력을 증명하고 점차 위로 올라가는 이야기로서, 성인만화의 가장 인기있는 장르인 조직폭력물(넓게 보자면, 무협만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범주에 속한다)을 청소년용으로 변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이들의 조직이 아예 학교의 평화와 안녕을 다스리는, 일종의 공인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완력이라는 단순명쾌한 비교척도와 선후배라는 서열개념이 결합되어, 완연한 힘에 의한 질서를 구축한 이상적인 조직형태. 심지어 문제아 집단이 아닌 치안유지자로 받들어지기까지 한다.

오한이 든다.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폭력은 나쁜 것이니까? 아니다. 이유는 좀 더 단순한 곳에 있다. 바로, 누구나 그러한 방식의 ‘질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도 아닌, 단지 질서를 위한 질서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당연한 미덕으로 떠받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즐겁게 만화를 읽다가도 난데없이 머리 속에는, 관습헌법 같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가져다 붙이면서 자신들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질서’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괴인들과, 여기에 아무 생각 없이 환호하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다. 이왕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싶어서 뽑아든 장르오락물인데… 현실도피에 또다시 실패했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11. 5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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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네이버 덧글 백업]
    – soju – ;;; 2004/11/15 16:18

    – 주안 – 모랄해져드;;; 2004/11/21 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