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힘에 관한 오락 – <데스노트>[기획회의041102]

여러분들에게, 다른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뭐랄까, 하늘을 날아다닌다든지 순간이동을 한다든지 괴력을 발휘한다든지 하는 소박한 초능력과는 비교가 안되는 막강한 권세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과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최근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애니메이션의 원작인 <고스트 바둑왕>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 그대로 바둑을 소재로 하는 만화인데, 이 작품이 연재된 일본에서는 청소년들 사이에 바둑 붐을 일으켰을 정도로 큰 인기와 영향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아무리 뭐든지 한번 히트하면 확실하게 붐이 일어나는 일본이라지만, 젊은이들의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확실하게 쇠퇴하고 있던 일본 바둑을 다시 일으킨다니… 범상치 않은 무엇인가가 있는 내용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펼쳐본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바둑이라는 분야) 스스로도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소년이, 다듬어진 천재인 강력한 라이벌을 만나면서 각성, 뜨거운 우정과 경쟁의 관계 속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는 주인공 소년의 각성과 성장을 지도해주는 트레이너(이 경우는 과거 바둑의 명인이었던 유령)가 존재한다. …너무 뻔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든 것은, 결국 두 주인공 사이의 팽팽한 긴장관계다. 서로 완전히 대조되면서도 사실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적대 관계이면서도 서로 우호적이며, 라이벌이자 서로의 성장의 원동력. 바둑이라는 상당히 정적인 활동인데도 불구하고, 두뇌싸움을 넘치는 박진감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했던 것이다.

바로 그 작가, 오바타 타케시(스토리: 오오바 츠쿠미)의 신작이 최근 발간되었다. <데스노트>라는 작품인데, 무려 고등학생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이다. 저승사자(사신)들은 공책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그 ‘데스노트’에 이름을 적히는 사람은 죽는다. 염라대왕의 명부라는 오래된 테마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셈인데, 사신 중 하나가 인간계에 그 노트를 떨어트리고 주인공이 노트를 주우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름대로 끔찍한 도구를 손에 쥐고 고뇌하고 갈등해야할 주인공…을 기대하겠지만, 이 작품은 약간 다르다. 하필이면 그 주인공은 천재 고등학생이었고, 이 노트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세계의 범죄자들의 씨를 말려서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곳의 지배자로 군림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그 연쇄살인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세계 최고의 탐정, 가칭 ‘L’이 달려드는데…

전작과는 다른 스토리 작가 덕택에 소재는 완전히 하드하게 바뀌어버렸지만, 작가는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인 두 천재 사이의 두뇌싸움을 들고 왔다. 다만 이전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 즉 범인과 탐정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트레이너가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전히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대결이 이루어지고, 대부분이 대화와 표정연기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미를 주면서 히트작으로 등극하고 있다. 덕분에, 아무리 소재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불리우는 일본의 주류 만화판이라 할지라도 유수의 대중적인 소년만화 잡지에서 무려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인 만화를 연재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모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소재 선정의 특이성에 특화되어 있는 일본만화계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경우지만, 동시에 적지 않게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몇몇 천재소년들이 아니라, 바로 ‘데스노트’라는 도구 그 자체다. 절대적인 힘이 주어질 때,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상황이 주는 재미가 바로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다. 공책을 주운 주인공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범죄자들을 일방적으로 살인한다는 설정이 주는 부도덕한 쾌감도 잠시에 불과하다. 곧 그가 살인 대상을 그의 정체를 추적하는 수사관들까지 확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섬뜩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를 추적하기 위해서 여러 명의 희생을 전혀 개의치 않는 추적자 탐정의 행동 역시 즐기기 힘든 자극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불쾌함이 극에 달하는 부분,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두 명이 서로 다른 곳에서 “내가 바로 정의다”를 외치는 장면까지 오면 이 기이한 소년만화의 사악한 재미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특별히 어떤 성찰적이거나 교훈적인 무언가를 표방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 주류 만화판의 소재 중심 제작방식의 첨단에서 나온,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주류 오락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복합적인 심경을 느끼고야 마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로서의 입장에서 지어낸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전혀 갈등하지 않는 확신에 찬 – 마치 야구에서 우승을 따내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다짐을 하며 좀 더 효율적인 살인에 매진하는 주인공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무언가 모를 찝찝한 자극을 느끼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이유가 없다. 나도 그런 힘이 주어지면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감의 능력이 발동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공감’이야말로 대중 오락에서 생성되는 재미의 근원이 아니던가.

‘권선징악’이라는 명제는 항상 결과적으로는 참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기는 자가 ‘선’이고, 진 자는 자연스럽게 ‘악’으로 사후 규정되는 세상이니까. 가끔은 그런 냉엄하고 부도덕한 현실을 대놓고 직면시켜주는 주류 오락물이 나와서 히트치더라도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주변에 ‘데스노트’가 떨어져있지나 않은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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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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