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특공대 액션 – 『진진돌이 에볼루션』[기획회의 259호]

!@#… 항상 느끼는 바지만, 웹연재만화를 종이출판 전에 웹으로 연재중일 때 곧바로 진지하게 다뤄줄 정규지면이 절실하다. 개인블로그들과 만화게시판의 “나 이 작품 좋아” 선언이나 줄거리 요약형 단순 소개 말고, “이게 좀 이런 면에서 훌륭하다”고 정식으로 평가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정직한 특공대 액션 – 『진진돌이 에볼루션』

김낙호(만화연구가)

소위 특공대 모험물이라는 명칭으로 어렴풋이 묶어볼 수 있는 일련의 작품들이 있다. 각각 다른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여러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정예팀을 이뤄서, 무력을 필요로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다. 임무는 대규모 전면전이 아니라 침투와 기습 같은 것이며, 유능하지만 작은 팀이 능력을 발휘해서 강력한 적대 세력의 허점을 파고들어 승리를 거두는(혹은 거둘뻔하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 각자 뚜렷한 능력과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다툼과 우정은 필수다. 한마디로, 매력덩어리의 액션물 공식인 셈이다.

『진진돌이 에볼루션』(김기정, 윤종문 / 매직북)은 80년대 ‘소년중앙’에서 연재된 『진진돌이』의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일종의 속편 겸 리메이크를 시도하는 작품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고전명작만화 리메이크 제작 지원 도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어 네이버만화에 온라인으로 연재된 일련의 작품들 가운데 한 편이다. 사실 원작의 내용은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동물 군대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모험담이기는 하지만, 알맹이는 주인공 진돗개가 군대에 입대해서 새들, 물고기들과의 전쟁에서 활약하고 승진한다는 매우 단선적인 보훈만화였다.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 상호작용이나 군대와 전쟁에 대한 관점 등은 사실상 제외되어 있다(『똘이장군』 같이 너도나도 노골적으로 반북반공 메시지를 쑤셔 넣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자면, 어떻게 보면 신기한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진돌이 에볼루션』은 동물들의 속성을 캐릭터의 특수능력으로 살짝 동원하는 원작의 캐릭터와 동물들의 군대라는 이야기 설정을 가져와서, 웰메이드 특공대 모험물로 탈바꿈시켰다. 이 작품에서 진진돌이와 그의 동료 동물병사들은 의인화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동물들을 특수 군인으로 활용하기 위한 실험 프로젝트의 결과 탄생했으며, 프로젝트 폐기 후 출중한 군사능력을 속이고 인간세상 속에 숨어 살아간다. 그러다가 비슷한 실험으로 인하여 지능과 군사능력을 확보하게 된 새들이 세상을 정복하려하자 그것을 막아내고자 특공 작전을 벌인다.

그런데 주인공 동물병사들이 움직이는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도 인간에 대한 충의도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 뿐이다. 아예 진돗개인 주인공 진진돌이의 성격 자체가 산전수전 다 겪은 하사관마냥 모든 돌아가는 패턴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며 적당히 허무주의적이고 그래도 움직일 때는 움직이는 그런 식이다. 특히 자신이 인간세상 속에 사는 ‘개’임을 항상 자각하고 있다. 원작의 착한 소년병에서 하드보일드 중년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특공대 동료인 너구리, 생쥐, 물개, 곰 역시 진진돌이와 함께 작전을 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지, 다른 거대한 대의명분을 위해 나서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건다. 끈끈한 개인적인 집착이 아니라 한 팀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 함께 하는 캐릭터들인 것이다. 임무의 과정은 물론 가차 없다. 적은 강하고 동료들은 죽어나가며, 팀원들 말고는 딱히 의지될 만한 외부 협력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과 맞서서 동물들끼리 손잡자는 그럴듯한 포섭의 유혹도 주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적은 각각의 동물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극복해나가고, 동료들의 죽음은 미리 각오한 것이기에 비장하게 넘어서고, 포섭의 유혹은 가뿐히 무시한다. 뭐랄까, 주류 장르만화판에서 섬세한 감성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인 시대에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선 굵고 마초적인 매력이다. 나아가 능력 상성 관계에 따른 복잡한 퍼즐 플레이에 의한 해결이 아니라 무력에 의한 돌파라는 점에서 정직하기 그지없는 특공대 모험물의 본연을 느끼게 해준다.

작품이 주는 재미의 핵심에 놓여야 할 모험 자체의 박진감 역시 썩 훌륭하다. 침투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즉 절벽을 올라가며 습격을 당한다든지 저격수와 맞선다든지 하는 세부 이벤트들은 주인공들을 적절하게 괴롭혀준다. 각각의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무기와 대처 전략을 구사해서 하나씩 넘어서는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액션물에서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액션과 스토리가 따로 놀아서 액션이 스토리를 잘라먹고 스토리가 액션 사이의 땜방으로 동원되는 것인데, 이 작품은 다행히도 바탕에 있는 거대한 정치적 음모 같은 것에 분량을 많이 할애하지 않고 액션 자체를 통해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능숙한 흐름을 자랑한다. 지나치게 큰 혹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덜어냄의 미학이다. 『진진돌이 에볼루션』의 효과적인 연출방식 가운데 하나가 각 챕터의 머리에 붙어있는 한 장씩의 옛날 사진인데, 동물이 군인으로 훈련받았던 과거 주인공들의 장면을 하나씩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어떤 경험을 했기에 현재 이런 캐릭터가 되어 있는지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덕분에 쓸데없는 플래시백으로 이야기 전개를 끊어먹지 않고도 캐릭터들에게 필요한 만큼씩은 이입해서 읽을 수 있다. 이렇듯 시원시원한 전개가 큰 장점이다. 퇴역한 일당백 군인(들)이 특정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다시 활동해서 판을 들쑤시는 80-90년대의 액션영화들이 주던 호쾌함을 닮았다.

반면 아쉬운 지점들은 군사 액션을 좋아하는 이들이 쉽게 주목하게 되는 고증 부분이다. 군사 장비, 전략의 현실성 등에 매몰되어 이야기 자체의 모험성을 즐기지 못하는 지나친 매니악함은 작품의 창작에도 감상에도 종종 민폐가 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설정들이 스토리와 연관되어 세심하고 촘촘하게 박혀있음을 하나씩 새로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으면 좋다. 특공대보다 옛 육군 보병에 가까운 장비들, 좀 더 동물병사들의 특성을 살린 기발한 침투작전 구상, 각 진영에 따른 복장과 조직의 개성 차이 같은 것이 부족한 점이 다소 아깝다.

단행본은 한 권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완결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원작 『진진돌이』의 관련 에피소드 두 개가 같이 수록되어 있다. 다만 단행본의 경우 시장층이 좀 애매한 구석이 있는데,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고증이 눈에 차지 않고,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작품 자체가 지나치게 성인취향이며(!), 성인일반을 대상으로 향수에 호소하기에는 리메이크작에 비해 원작이 임팩트가 부족하다. 작품 자체의 재미는 상당한 웰메이드 액션물이기에 연재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겠지만, 따로 책으로 간직해둘 만한 추가적인 매력을 좀 더 발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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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진진돌이 에볼루션
윤종문 그림, 김기정 글/매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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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정직한 특공대 액션 – 『진진돌이 에볼루션』[기획회의 259호]

Comments


  1. 네이버 웹툰을 통해서시도된 리메이크(이거 사실 좀 의미가..) 물 중에서 단연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그래도 캡선생님의 눈에는 그런 단점이 보이셨다니, 역시 보통독자와 오타킹의 차이인가(펑!)

    그건 그렇고 정말 정규지면이 필요합니다. 연재되는 그 순간이 참 중요한건데. 이 훌륭한 피드백의 시대에 퍼블리셔들이 눈을 못 뜨고 있는걸까요?

  2. 확실히 리메이크작들 중에선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지요.
    다른 작품들이 영 아니어서 진진돌이가 더 눈에 띈것도 있겠지만…
    번데기스는 명랑만화의 느낌을 살리려 한 것 같았지만 맹꽁이서당 같은 작품을 볼 때 느꼈던 그 느낌이 안난달까요.. =_=;;

  3. !@#… nomodem님/ 어떻게 보자면, 그 작품들 가운데 가장 원작으로부터 자유롭게 뻗어나간 덕분이죠. // 연재중인 온라인 만화에 대한 비평적 소개를 통해 이득을 추구하는 지면이 어떤 것이 가능할까 궁리를 해봐야죠 뭐. WIRED 같은 테크(긱)문화 잡지 같은 것이 딱일텐데, 거기에 해당할 만한 한국지면은 과연 어떤 것이…

    언럭키즈님/ 이번 리메이크작들의 전반적인 품질은… 애매하게 부족해서, 따로 정색하고 해부해줘야할지 아니면 무관심을 시전하는 것이 나을지 내내 고민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