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지리멸렬한 파멸 – <십자군 이야기2> [기획회의050804]

!@#… 2년이 걸리고, 200페이지를 새로 그리고 나서야 나왔다는 2권. 3권에서는 그 콤비네이션을 따르지 말아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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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지리멸렬한 파멸 – <십자군 이야기2>

성격 안좋고 힘센 나라가, 자신의 잇속을 위해서 마음대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는 그것을 ‘전쟁’이라고 불렀다. 그 다른 나라의 지도자도 하필 상당히 문제많은 인간이었기에, 그 명분은 무려 민주화였다. 여하튼 침략은 전쟁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썼고, 잠시의 화려한 쑈를 거치더니 이내 전쟁은 끝났다. 아니 단지 이번에도 일방적으로 끝났다고 선포를 당했다. 실제로는 전혀 끝나지 않아서, 그 뒤 2년여가 다 지나도록 아직도 세계 도처로 무대를 확장하고,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추악한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민주화 해방’ 되었다는 이라크는 국가 분열과 내전의 위기에 몰렸고, 런던에서 많은 안타까운 죽음을 낸 지하철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모든 것은 이 지리한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전쟁을 처음 시작하는 책동가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의 승리로 마무리되어 깔끔하게 털고 일어설 것을 항상 계산하지만, 실제로는 길고 긴 늪으로 빠져들어 버린다. 미국의 또다른 현대사에 길이 남을 전쟁 책동 공작이었던 베트남전으로부터 인류가 얻은 교훈 따위는 전혀 없는 듯 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전쟁이라는 충돌형태의 원인에 대하여 날카롭게 분석해서 독자들을 전율시켰던 한 만화가 있었다. <십자군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만화는, 중세 십자군의 ‘성전’을 통해서 누군가에 의해서 전쟁이 책동되고,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동원되고, 그 와중에서 누군가가 희생당하고 누군가는 잇속을 챙기는 메커니즘을 해학적으로 풀어놓았다. 그리고 2년여가 흐른 후, 여전히 전쟁이 진짜로 종식될 가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오랫동안 고대했던 속편이 나왔다. <십자군 이야기2>(김태권 / 길찾기)는 전작이 끝난 부분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 1권이 군중십자군의 우매하고도 비극적인 개전을 통해서 십자군 전쟁의 전체 패턴을 압축적으로 묘사해냈다면, 이제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정규군에 의한 전쟁이 시작된다. 귀족 제후들, 종교지도자들이 정식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동쪽으로 간다. 군중 십자군이라는 무지한 욕심꾼들을 슬기롭게(?) 극복한 동방 로마제국은 이번에는 아예 자신들을 통째로 먹어 삼키려는 진짜 침략자들을 맞이하게 된다. 이슬람은 오합지졸 군중십자군을 퇴치하고는 방심하다가, 예루살렘까지 일시적으로 빼앗기는 패배를 겪는다. 그리고 물론 그 와중에는 정복에 눈이 먼 십자군이 자행하는 비인간적인 학살과 (문자 그대로) 포식에 희생 당하는 불특정 다수의 주민들이 있다.

2권의 핵심 정서를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주인공은 바로 기사 보에몽이다. 그는 강력한 무력과 높은 지도력으로, 전형적인 전쟁 서사극 주인공의 됨됨이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멋진 영웅담과는 무척 거리가 멀다. 승리의 순간에 이야기를 끝내거나, 비장한 죽음으로 여운을 남기며 나머지 이야기를 바람속에 흐트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쟁에 쉬운 결말 따위는 없다. 당초 십자군의 명분이었던 예루살렘 탈환을 이루고 난 후에도, 십자군은 끝나지 않는다. 1차 십자군의 강력한 군사적 리더 보에몽이 완전히 몰락해버리고 나서도, 끝나지 않는다. 끝끝내 질리지도 않고 계속 지리멸렬하게 계속 꿈틀대는 전쟁의지 속에서, 당초의 책동가들도 이미 스스로 예상한 이득의 궤적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횟수의 “제*차 십자군 원정”이 이어질 것을 역사적 지식으로 알고 있는 현대 독자들은 정말이지 질려버릴 노릇이다. 전쟁은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예상치 못한 요소들이 점차 붙어나가면서 결국 헤어나오기 힘든 커다란 수렁이 되어버린다.

전작의 프롤로그가 서방세계의 중세 이전 전쟁사를 다루었다면, <십자군 이야기2>는 우리가 ‘이슬람 세계’라고 부르는 그 중동 공간에 존재했던 이슬람 종교 이전의 문명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현재까지도 사람들은 종교가 어쩌니 하고 명분을 세워서 싸움을 찾고 있지만, 사도 마호멧 이전의 문명사도 사실 별다를 바가 없다! 원래부터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엔진으로 하는 전쟁들이 넘실댔으며, 그 속에서 균형과 부조화가 번갈아가며 세상을 지배했다. 1권에서만큼 프롤로그와 본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느낌은 적지만, 십자군에 맞서는 이슬람 진영의 처지를 좀 더 본격적으로 집중할 3,4권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다리를 시사하고 있다.

전작 이후로 흘러간 2년여의 시간은, 작가의 표현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고전적 드라마와 현대적 풍자, 극중 이야기와 작가의 직접 개입을 넘나드는 서술 솜씨는 한층 능란해졌고, 그림 역시 더욱 통일성 있게 다듬어졌다. 각종 해학적 농담은, 더욱 농밀하면서도 전작에서 가끔 보였던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 양념의 역할로 좀 더 확실히 자기 자리를 찾고 있다. 200여 페이지를 다시 그려야 했다는 작가의 후기가 그간의 과정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지적인 성향 역시 여전해서, 작품 뒤 빼곡이 차있는 참조도서에까지 해설을 한마디씩 더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아직 좀 더 다듬어졌으면 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정사와 야사, 가설을 만화 자체의 서술 속에서 뚜렷이 구분되게 묘사해 내는 방법론이 더욱 연마되어야 한다.  분명히 극중 십자군이 벌이는 이야기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작가의 여러 현실풍자적 해설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군중십자군의 은자 피에르가 1차십자군에서 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그 피에르와 동일인물이라는 가설을 실제 극 속에 풀어 넣음으로서, 픽션의 요소들이 녹아들어가버린다. 그리고 모든 것을 직접 현재진행형의 사건이자 사실로서 보여주는 관행에 익숙한 만화라는 매채에서, 그것은 자칫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인상, 나아가 전체 내용의 신뢰성을 흐리는 폐단을 낳아서 작품의 큰 주제와 맥락에 누가 된다.

분명히 <십자군 이야기2>는 이 시리즈의 전작을 뛰어넘는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십자군 이야기3>이 더욱 뛰어난 모습으로 돌아와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역시, 인류가 조금만 더 현명해져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과 메시지들이 하나도 신선하고 충격적이지 않은 조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이상주의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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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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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전쟁이라는 지리멸렬한 파멸 – <십자군 이야기2> [기획회의050804]

Comments


  1. [네이버댓글 백업]
    – 펌킨잭 – 음 확실히 1권보다 2권이 더 나아진느낌입니다. 그림도 내용도,, 2005/08/12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