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치란, 아무 때나 진심을 드러내면 낭패를 보는 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피해를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이득을 도모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더. 한참 서울시장 선거의 유력 당선자로 발돋움하신다는 오세훈 후보가 한 건 올리셨다. 내용인 즉슨, “박근혜 대표님 감사합니다”. (클릭).

!@#… 뭐 사실 박근혜가 칼맞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한 사람들이라면 이 블로그까지 흘러들어오지도 않았으리라. 하나의 개인으로 놓고 볼 때는 안타까운 일이고 불의의 사고이며 쾌유를 빌어줄 일이다. 하나의 역사적 인과율로 놓고 볼 때는 유신공주로서 지니는 한국 현대사의 업이라는 것이 기형적 방식으로 귀결되고 있는, 또다른 안타까움의 사건이다. 박정희 시대의 불의에 대한 완전한 단죄와 그 유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철저한 성찰과 자기반성이 이루어져야지, 박근혜라는 하나의 작은 상징체에 헛된 보복심을 불태운다고 되겠는가. 그런데… 선거를 앞둔 시즌이라는 현실을 고려한 하나의 정치사건으로 볼 때, 이 것은 한나라당의 지지율에 무척 도움이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아무런 제대로 된 정책이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거나 능력을 증명하지 않고도, 날로 먹을 수 있는 지지율. 미묘하게 서로 연결이 되어있으나, 따로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운 세 가지 차원이다.

!@#… 도대체 그 공짜 지지율 확보의 정체는 무엇인가. 도대체 박근혜가 칼맞은 것과 한나라당 지지가 올라가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간단하다. 이 사건은 바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싶어서 미치려는 사람들에게, 자기합리화를 마련해주는 안전한 장치라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현 정권이, 열린우리당이 일을 못하고 나라 경제를 말아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한나라당을 찍어줄거라고. 하지만 아무리봐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지 않나. 이 명제는 한나라당은 일을 더 잘한다는 전제, 하다못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근거라도 있어야 성립된다. 아예 한 단계 더 나아가, 한나라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한나라당을 찍어준다는 사람들도 넘친다. 말인 즉슨, 현 정권에게 정신차리라는 의미란다. 아마 이런 사람들은 대통령 탄핵쑈 당시에도 황금 균형 어쩌고 스스로 변명하면서 명백한 반민주 헛짓거리를 저지른 한나라당을 찍어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이러한 주장이 성립되려면, 한나라당이 세력을 잡으면 이 정부 이 국회가 더 일을 정신차리고 공정하게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 근거 따위 없다는 것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론은 명백하다. 사람들은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면서도, 사실은 한나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란 합리화의 동물. 이유를 만들어서 채워넣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견딘다. 황우석 과학사기 사건 당시 마구마구 증거가 드러나도 각종 음모론을 던지며 황빠질을 했던 수많은 평범한 일반인들과 나름대로 지식인들의 무한 삽질 연타에서 여실히 증명되지 않았던가 (그러고보니 궁금해지는 것이,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언제 배째나?). 그래서 호시탐탐, 한나라당을 지지해줘야 할 만한 이유를 발견해내고 싶어서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나. 당수가 칼맞았네. 오, 그러면 박해받는 야당지도자네. 이거 딱인걸. 한나라당을 찍어주면 박해받는 사회정의를 회복하는 데에 일조한 셈이 되네. 비록 근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얼추 그런 모양새가 나오니까 적당히 납득하고 대만족.

아 그러고보니 여성지지율이 특히 더 올라간다고 한다. 몇년전에 씨네21에서 벌어졌던 최보은-김규항 설전이 다시 기억나누나. 최보은씨가 여성주의의 입장을 내세우며 강력한 여성정치인이 필요하기에 박근혜를 지지하자고 하자 민중계급 구도를 중시하는 김규항씨가 아주 버럭 화를 내버려서 각종 뻘타 경쟁까지 이어졌던 사건. 그때 최보은씨 논리를 상기한다면야, 강력한 여성 정치가가 칼맞았으니 한나라당 찍어줄 만한 이유를 드디어 찾아냈다고 납득하는 여러 여성 투표권자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할만 하다.

게다가 며칠 전으로 기억을 되감아보자. 박근혜 칼침 사건을 가지고 조선일보의 친한나라당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보도행태를 비판했던 노사모 노혜경 대표의 글이 올라와서, 불같이 비난받았다. 너도나도 또 노무현 탓이다를 외쳤다. capcold도 그 글은 내용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무진장 부적절하고 비전략적이고 한마디로 멍청한 처사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개인적 차원의 불행을 정치적 잣대를 통해서 이용해먹고자 할 때 도덕적으로 신중하지 못할 경우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오세훈 후보의 발언은 사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그다지 반응 없음이다. 참 놀라울 지경이다. 즉, 사람들은 애초에 정말로 노혜경의 발언의 도덕적 신중하지 못함을 비난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박근혜 칼침사건은 한나라당을 지지할 이유가 충분히 된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하기야 사실 이 모든 것의 근저에는 우리 대중들의 일반적 비겁함이 자리하고 있다.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욕은 하면서도, 그래도 한나라당에 표를 주는 사고. 아니 그렇다면 당신들의 사회계급적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지는 민주노동당을 찍으면 될 것 아닌가라고 물어보면 다 똑같다느니 현실성이 없다느니, 그리고 무엇보다 ‘사표’가 되도록 할 수 없다느니 하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것이 바로 사표방지 심리다. 결국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을 힘있게 만들어주기보다는, 힘있는 편을 지지하고 싶은 사고다. 내가 지지한 편이 힘이 있으니 나는 옳았다고 스스로 납득하고 싶어하는, 생활화된 비겁함이다.

!@#… 한나라당을 이유가 있어서 지지한다고? 고작해야 열린우리당을 싫어하는 정도 뿐. 사실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니까 이유를 찾는거다. 그런데 박근혜가 칼맞아서 그런 이유를 상당부분 제공해주었으니, 당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맙겠는가. 그런 고마운 마음이 얼떨결에 빠져나오고 말았다.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너무 솔직했다. 그런데, 솔직한 후보라고 더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아니, 이게 농담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역시… 재미있어” (사신 류크, <데스노트>에서)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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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칼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Trackbacks/Pings

  1.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빈부격차가 화제인가?…

    !@#… 요새, 굶어죽은 다섯살 아이와 360만원짜리 아이 생일 파티 기사가 돌면서 사람들이 열심히 분노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 가운데,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823…

  2. Pingback by 크리스탈 캣츠

    은영전으로 보는 한국 정치….

    지방선거가 하도 괴상하게 굴러가고 있어서인지 블로거들이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는듯. 나도 한마디 거들고 싶지만… 한나라당이 대선까지도 잡아먹을 가능성이 크다는점이 무척 불쾌하지…

  3. Pingback by 날개, 퍼덕이다..

    [펌] 그림 몇장으로 보는 한국 정치…

    그림 몇장으로 보는 한국 정치. 칼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4. Pingback by Roam의 버닝 룸

    외국에서 처음으로 맞는 투표일….

    지방의원 선거가 끝났군.

    20세가 지나고, 투표는 두 번 했다.2002년대통령 선거와 2004년 국회의원 선거. 이번의 지방의원 선거는 불가피하게 지나치게 되었다.

  5.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그대들, 한나라당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라

    […] 이번 지방 선거결과가 그것을 여실하게 증명해준다: 광역단체장, 한나라당이 사실상 싹쓸이. 균형감각은 얼어죽을.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조건반사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뿐이지.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지 말자. 당신들은 한나라당과 이미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단 말이다! 당당하게 커밍아웃하시길. 하기야 뭐 심지어, 박근혜 상해 사건 이후로 한나라당으로 지지를 결정한 사람도 6%나 된다고 한다(비록 조선일보 기사라서 신뢰성은 무지 떨어지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