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서 학교를 읽다 [학교도서관저널 1111]

!@#… 학교에서 만화를 읽다라고 쓸 뻔했다. 아니 사실 학교에서 만화를 좀 적극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보니까 이 지면에 연재를 하는 것이지만.

 

만화에서 학교를 읽다

김낙호(만화연구가)

학교라는 제도는 참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다. 실생활에서 학교는 어린/젊은 시절의 상당부분을 억지로 훈육당하며 보내야하는 나름대로 상당히 지겨운 곳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숫제 괴로운 곳이지만, 이야기로서 활용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 요소로 가득하다. 아름답고 좋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야기거리로서 적합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후 이야기로서 회상할 때 학창시절의 일화들이 단골소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학교는 기본 속성상, 성장의 공간이다. 그 안에 있는 학생들은 성장기에 있다고 전제되며, 그렇기에 캐릭터들의 성장이 주요 테마가 되는 대부분의 서사물과 궁합이 좋다. 게다가 성장이 학년, 학기라는 단위로 간편하게 구분되어있기까지 하다. 혹은 학년 격차는 계급이라는 권력관계로 환원되기도 한다. 나아가 반이라는 공동체 구분까지 존재하기에, 또래 집단의 결속, 결속을 빙자한 비겁함 등을 효과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다. 그런데 학교는 독립된 소우주다. 인간사의 여러 모습들이 좀 더 간편하게 알아볼 수 있는 규칙들로 압축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합리적이거나 인간적인 모습도, 관료적이고 모순적이며 폭력적인 모습도 있다. 그 모든 모습은 바깥 사회를 닮아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격리되어 있기에, 본격적 사회 갈등을 겪는 것으로부터는 살짝 유예되어 있는 듯한 안도감을 준다. 다만, 그런 안도감을 일부러 깨트리면서 – 가장 전형적인 예는, 부모의 재력이다 – 더욱 이야기를 두텁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존경의 대상이든 증오의 대상이든, ‘선생’이 존재한다. 반면교사로서 혹은 가이드로서(요새 유행 속에 남발되는 용어인 ‘멘토’ 같은) 다른 층위에 있는 존재가 이야기 전개가 막히지 않도록 돕는다. 이런 장점 속에, 너무 현실적인 모습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초월적 요소도 삽입 가능하다. 기숙학교 판타지로서 00년대 최고 대작으로 자리매김한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를 기억해보자. 게다가 마지막에 드라마틱한 결말을 맺기도 좋다. 졸업을 해서 성장의 완성을 이루거나, 중도에 퇴학/자퇴를 해서 충격을 주거나 말이다.

학교를 다루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당대 학교생활의 모습을 적절한 생활 코미디로 그려내며 성장기적 고민들을 같이 집어넣는 것이다. 동경의 대상이 될 만한 발랄한 교사가 하나쯤 있으면 더욱 좋다. 나름대로 하나의 황금공식인데, 아주 모범생은 아니고 적당히 적응해가며 사는 주인공, 그 주변에 좀 더 다양한 인간군상 학우들이 서로 여러 에피소드들을 펼쳐나간다. 만화에서 그런 공식을 가장 깔끔하게, 그리고 유머와 진지한 시선의 균형을 잘 맞춰낸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가 [굿모닝 티쳐](서영웅 저)다. 발랄하고 건강한 여자 체육선생, 그리고 적당히 고민하며 성장하는 청소년이 가장 중심에 놓인 인물들인데, 학교는 장식일 뿐 사실은 청소년 놀이문화 전반이나 그저 연애관계에 집중하는 수많은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정말로 계속 학교가 중심에 있다. 대부분 에피소드들이 학교생활을 다루며, 무엇보다 시험, 입시 등 청소년 독자 대상의 작품들이 쉽게 회피하는 고민거리들을 그대로 직면해버린다. 그 안에서 꿈, 성장 같은 내용들을 피상적이지 않게, 해결보다는 고민 자체를 보이는 식으로 소화해낸다.

그렇다고 해서 꼭 무거운 것을 다뤄야만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아니다. 소소함에 대한 추구도 집요한 디테일과 적절한 여백을 갖추면 뛰어난 읽을거리가 되어준다. [아즈망가대왕](아즈마 키요히코 저)은 연속 4칸만화의 형식으로 이뤄진 학교 개그물이다. 개성 강한 여고생 친구들이 학교에서 겪는 여러 짧은 유머러스한 내용들인데, 별로 대단한 일이나 갈등이 벌어지기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들에 대해 지극히 일상적인 반응을 하는 모습에 캐릭터들의 엉뚱한 사고방식을 합쳐넣는다. 심심해질 수 있는 이런 발상이 실제로는 대단히 성공적인 작품으로 완성된 것은, 캐릭터 구도와 디테일에 있다. 엉뚱한 사고방식의 소유자, 의욕만 넘치는 바보, 겉으로는 쿨한 이미지지만 속으로는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키 큰 소녀, 여러 차례 월반을 한 천재꼬마 등 현실에 있음직한 요소에 기존 장르만화들이 발전시킨 매력포인트들을 적절하게 섞어 넣었다. 일상에 대한 디테일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잘 때 눈꺼풀 안에 먼지 같은 것이 떠다니는 듯한 감각 같은 것조차 개그 소재로 삼는다. 각 일화는 4칸이라는 짧은 호흡 속에 분절되고, 그것이 여러 개 연결되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무한대로 연재를 끄는 일 없이, 주인공들은 결국 졸업한다.

학생 주인공들 사이의 코미디, 그 안에서 생겨나는 인간관계에 주목하기 위한 좋은 소재는 바로 특이한 동아리의 존재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도, 다시금 학생들 몇 명이 소그룹으로 모여서 좀 더 가깝게 인간관계로 묶인다. 삐딱하게 사람들을 거부하는 인간, 반듯해 보이지만 고민 많은 인간, 생각 없어 보이지만 여러 사람을 잘 연결시켜주는 인간 등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인간형들이 억지로 한 동아리에서 마주대하고, 점점 서로를 알고 인정해간다. [그들도 사랑을 한다](서문다미 저), [연민의 굴레](재활용 저) 등이 그런 부류의 작품이다. 학교라는 제도는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되지 않지만, 특이한 소재와 목적을 지닌(혹은 그런 것을 벗어나서 오히려 특수한) 동아리라는 좁은 맥락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이야기가 된다. 덕분에 많은 유머소재는 물론, 너무 이벤트 위주로 중구난방 흐르지 않고 얼마든지 사람들의 성장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다들 경험적으로 알다시피, 대부분의 학교는 밝고 모범적인 이들로만 채워진 곳이 아니다. 학교는 사회화의 공간인데, 그 어떤 다른 사회 룰보다도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폭력에 의한 서열이다. 소위 ‘짱’의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이 좀 더 발전하면, 조직화된 폭력에 의한 권력관계가 된다. 소위 ‘일진’이라는 형태다. 제대로 된 학교라면 선생들이 제도적 힘을 통해 그런 것을 최대한 방지하며 민주적 규칙과 합의에 의한 학내 평등사회를 가꾸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곳들이 훨씬 흔하다. 그런 현실, 그리고 무협장르 이래로 이어지는 폭력에 의한 정의구현이라는 판타지가 합쳐질 때 ‘학원폭력물’이라는 장르가 탄생한다. 폭력에 의한 질서가 난무하는 불량한 학교환경 속에서,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폭력학생들을 폭력으로 길들일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백마 탄 정의의 용사일 필요는 없다. 그저, 힘없는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고 뜯어먹는 악역들과 관심사가 다르면 된다. 서사적 완성도, 캐릭터 매력 등을 놓고 볼 때, 이런 장르에서 역시 가장 명작 중 하나는 [로꾸데나시 블루스](모리타 마사노리)다. 한국에서는 여러 해적판 제목으로 처음 알려졌고 97년 무렵 소위 ‘일진회’ 파동 속에서 불량만화의 대명사처럼 (정작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음이 명확한) 시민단체와 언론의 지목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남을 뜯는 식의 불량학생이 아니라 그저 권투에 홀린 바보라서 수업에 별로 충실하지 않으며 성격마저 착한 주인공이 계속 학교 내외의 여러 강자들과의 싸움에 휘말리고, 힘과 기술을 연마하며 이겨내는 내용이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딱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착한 바보일 뿐이고, 주인공이 이겨나가면서 그의 영향권 하에 점점 그런 식의 민폐 없는 불량아들이 늘어간다.

사실 진짜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런 근본적으로는 밝은 폭력판타지가 아니라 한국 현실사회의 입시와 진로 문제를 노골적으로 직면하는 작품이 더 효과적이다. [안나라 수마나라](하일권 저)에는 가난한 집안사정 속에서도 오히려 더 모범생이 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여자주인공,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기대 속에 계속 모범생을 하는 남자주인공, 그리고 그들의 현실로 찌든 일상에 난데없이 꿈과 환상의 차원을 보여주는 떠돌이 마술사가 등장한다. 마술사는 그들이 접어놓고 있던 꿈을 다시 보여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평탄한 아스팔트길을 달리느라 놓치고 지나가는 주변의 모든 풍경”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그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마술사는 요술쟁이일까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정신이상자일까. 작품 말미에 이르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와의 만남을 계기로 하여 이미 주인공들은 중요한 것을 스스로 이미 깨달았으니 말이다. 특히 이 작품은 꼴라쥬 형식의 실험적 화면이라든지, 성격의 변화를 외형으로 표현하는 등 시각적 시도들이 돋보이기도 한다.

학창생활을 즐겨라, 혹은 지금 열심히 해둬야한다, 그런 식의 뻔한 훈계 따위는 반복할 이유가 없다. 다만, 워낙 학교를 소재로 하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고 나중에 학교만큼 기억에 남는 이야기 거리도 드문 만큼, 작품들과 함께 비견해가며 즐길만한 자신의 경험도 가꾸어 나가면 좀 더 재미있는 인생이 될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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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학교도서관저널. 특정 컨셉 아래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을 묶는 내용으로, 만화를 진득하게 즐기는 것의 즐거움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적당히 배합해보자는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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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만화에서 학교를 읽다 [학교도서관저널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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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Nak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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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ingback by Kacew

    만화에서 학교를 읽다 « @capcold 님의 블로그님 http://t.co/vnOIJ5F1 굿티는 참 멋진 작품이었지요. 작가께서는 그 이후 행보가 좀 실망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Comments


  1. “학교에서 만화를 읽다”라고 보고 들어왔는데 제대로 의도를 파악한 것이었군요… 그나저나 캡콜님의 글들 재미있게 즐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2. 다른 얘깁니다마는 저희 학교에서 영어수업때 Persepolis를 교재로 썼던 적이 있는데,
    만화를 평소 많이 보는 저한테도 텍스트로써 만화는 신선한 충격이더라구요.
    저는 캡콜님 글중에서도 이런 소개글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정작 c모 블로그로 유입이 더 많다는 사실이 참…

  3. !@#… 레드렝님/ 이왕 말 나온 김에 봄학기 시작 전 언제 한번, “수업텍스트로서의 만화”로 묶어서 한번 소개해봐야겠습니다 :-) // 가끔 뭔가 그런 분들을 위한 서비스 페이지라도 하나 마련해놔야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야동페이지! 라고 해놓고 야구 동영상 올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