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네트워크 사회를 바라보기 [싱크 6호]

!@#… 말랑한 소재는 취급하지 않는다, 이 코너(…)

 

네트워크 사회를 바라보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최소한 90년대 후반부터, 특히 인터넷과 IT관련 산업들이 잔뜩 스폿라이트를 받기 시작하면서, 네트워크 혹은 연결망이라는 개념은 무척 자주 여러 방식으로 버즈워드로 동원되어 왔다(가깝게는, 최근의 SNS 즉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생각해보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회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네트워크다. 사람들이 맺는 관계가 연결이고, 그 관계 속에서 정보든 권력이든 친분이든 사랑이든 뭐든 흐르고, 그런 것들이 대규모로 긴밀하게 엮이며 사회가 형성된다. 다만 그런 것이 국가 행정이든 공권력이든 각각의 제도로 굳어오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집단이 특정한 모습들을 보인 과정이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연결망이라는 요소보다는 집단의 속성 또는 제도틀 자체가 부각되어 인식되어왔을 따름이다. 하지만 한 세대쯤 전부터, 점차 사회의 기반에 있는 네트워크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원래는 80년대의 기술혁신 속에 세계화된 생산을 타고(대니얼 벨의 소위 포스트산업사회론) 논의되었고, 한층 급격하게는 90년대 중반 이후 통신망 혁신과 함께 대두되었다(마누엘 카스텔의 ‘네트워크사회 연작’의 기여가 컸다). 일부에서는 역사의 종말이라느니 거창한 레토릭으로 설레발을 칠 정도로 냉전 이후 다극화와 블록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사회 현실 속에서, 새로 의지할만한 사회현상 설명 기제란 결국 가장 근본적인 지점인 연결망 속성이었던 셈이다.

그렇듯, 사회 속 개인은 연결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게다가 확실히, 갈수록 더 많은 연결, 기존과 다른 방식의 연결, 혹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이제야 뚜렷하게 보이게 된 연결들이 등장하여 우리가 사회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세상에 대한 시야란, 연결 속에 있는 사람들,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와중에 생겨나는 사회적 가능성들을 관찰하고 또 상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당장 무거운 학술서를 들춰보기가 곤란하다면, 사람들의 연결망에 대해 생각거리를 주는 몇 가지 만화 작품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낙천적 믿음, 비관적 상상

사람들 사이의 연결망이 넓어지는 세상을, 지구촌 한마을 같은 낙천성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연결의 방식이 기존의 여러 사회적 관례의 제약이 많이 작용한 관계를 넘어, 서로에게 그저 진심으로 부딛힐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온라인을 통한 사람들 간의 연결에 대한 낙천적인 상상이 바로 그런 식이다. 온라인이 너무나 일상이 되어서 그래봤자 어디든 사람들 관계의 격차는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흔히 체감하고 있는 오늘날조차, 좀 더 ‘진심이 될 수 있는’ 소통도구가 나오면 – 예를 들어 1~2년전의 트위터 – 다시금 그런 낙천성을 꿈꾸곤 한다. 그런 상상에 기반한 가장 유쾌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전차남](무명씨 원작 / 하라 히데노리 만화)이다. 전차남은 일본 인기 익명 게시판 커뮤니티인 2ch에 익명의 사용자가 일정 기간에 걸쳐 자신에게 닥친 연애 사건을 사람들에게 중계한(실제인지 가상인지는 아직까지도 결론난 바 없다) 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오타쿠 성향의 인기 없는 주인공이 우연히 전차에서 한 세련된 여성을 구해주고, 연애를 모르는 그 남자가 2ch의 불특정 다수 사용자들에게 조언을 구하여 실행하고 그것을 보고하고 다시금 조언을 구하며 결국 사귀는 것에 성공하는 이야기다. 04년에 올라온 이래로 일본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여러 작가에 의한 만화화,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이 제작되어 각각 히트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오로지 오타쿠의 연애를 위해 성심성의껏 선의를 모아준다는 뼈대를 가지고 있다. 온라인 연결과 오프라인 연결이 다른 층위에서 이뤄지면서도, 결국 하나의 인간관계로 엮이는 모습이다. 물론 실제 2ch는 여느 대형 게시판 커뮤니티와 다를 바 없이 서로에 대한 악담과 막말이 적지 않은데, 선의 부분만 증폭된 편향된 네트워크를 그려내고 있기는 하다. 여기에는 90년대의 한국영화 ‘접속’ 같은 작품에서도 종종 드러낸, 아직 본격적으로 누구나 사용하며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상당히 대중화되어 화제거리가 되는 온라인 네트워크에 대한 호기심어린 경외감이 작용하고 있다.

낙천성에 대한 상상의 또다른 면모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수준의 연결망 기술을 그냥 당연한 일상으로 삼는(그럼에도 우울해지지 않은) 근미래를 그려내는 것이다. 만화 [붐타운](우치다 미나코)은 90년대초에 나온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 온라인 서비스이 사회의 일상이 된 시대를 다루고 있다. 만화보다 10년 뒤에 나온 웹서비스 ‘세컨드라이프’를 연상시키는데, 다만 모니터 속 아바타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변환하여 완전히 그 세계 안의 존재가 되는 방식으로 접속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세계를 둘러싼 엄청난 숨겨진 음모와 인간성 소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해당 온라인서비스의 버그를 수정하는 젊은 관리자 직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온라인 중독도 나오고, 온라인 접속만 하느라 오프라인 인간관계에 소원해지는 이도 나오지만, 주제전달을 위한 과장된 드라마가 아니라 그것조차 그 세계의 당연한 일상일 뿐이다. 냉소적이지 않게, 그저 그런 기술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비슷한 맥락에 놓여있되 한층 더 실제 구현에 가깝게 다가온 내용을 담는 만화로는 [브레이크 에이지](바토 치메이)를 들 수 있다. 로봇형 병기에 탑승하고 서로와 싸우는 가상현실 대전게임이 큰 히트를 치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로봇을 프로그램해서 경쟁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게임 회사들간의 알력과 개발 과정의 애로사항을 다루지만, 성장과 꿈 같은 의외로 건전한 청소년 학원물 같은 주제들이 주축을 이룬다. 이 세상 역시 온라인으로 서로 접속하여 게임을 매개로 서로의 실력을 겨루며 친구가 되고 라이벌이 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오락실이 아니라 PC방과 개인 책상, 거대 콕핏이 아니라 마우스와 헤드셋일 뿐 결국 이제는 이미 오늘이 되어버린 미래다.

정반대로, 온라인을 통한 연결망에 대한 한없는 비관을 할 수도 있다. [르상티망](하나자와 켄고)는 인기 없는 평범한 못생긴 공장 직원이 가상현실 게임에 빠지면서, 그 세계 안에서는 유능한 미남의 아바타로 살아가고 나아가 비밀을 간직한 미소녀 컴퓨터 캐릭터의 애정을 받는다. 그리고 점점 더 빠져들어가면서 오프라인의 일상 생활에서는 원래도 문제가 있었지만 점점 더 폐인이 되어, 자신을 바라봐주는 다른 이들마저 밀쳐내게 된다. 그 바탕에는 인간관계의 재규정을 노리며 세계의 파멸과 혁신을 목표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음모 같은 큰 모험도 흘러가고 연애 과정의 여러 감정선이 흘러가지만, 역시 이 작품의 기본 시야는 온라인에서의 대리만족으로 인한 오프라인 생활의 소거다. 두 가지 다른 생활이 공존하지 못하는 비극, 즉 다른 인생으로서의 온라인과 현존하는 물리적 자신과 조화시키지 못할 때 생기는 문제를 극단적으로 그려낸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보이듯 결국 찌질한 남자 주인공에게 온전한 해피엔딩은 아니라도 나름의 성장과 자그마한 희망을 주는데, 그것은 오늘날 현실세계의 여러 층위의 연결망 속에 자신을 위치지워 놓은 독자들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희망일 것이다.

세상 자체가 네트워크다

연결 자체가 가장 중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 온라인 네트워크를 다룬 작품들을 지금껏 소개했지만, 당연하게도 네트워크는 비단 온라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서로의 관계, 사연들이 복잡하게 엮이고 그 안에서 비로소 무언가 의미 있는 행위를 할 수 있을 때 이미 네트워크다. 마블사 소속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시빌 워] 계열 작품들은, 다수의 민간인사상이 발생한 비극적 사건의 결과 미국에서 슈퍼히어로 정부등록법을 둘러싸고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져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는다. 히어로들은 그간 길게는 수십년간 축적되어온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에서 형성된 여러 연결 관계에 따라서 서로를 설득하거나 반목한다. 함께 싸우던 이들이 적이 되고, 적이었던 이들이 동맹을 맺는다. 특정한 초능력을 지닌 이들을 연결망을 통해 확보하는 진영이 싸움에서 유리해진다. 수많은 연결망이 작품 줄거리와 함께 계속 바뀌어나가고, 여러 작품들을 읽어가며 그런 연결고리를 많이 알고 있는 독자들일수록 모든 주인공들의 상황을 더 잘 파악하고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작품, 아니 작품군으로서는 꽤 복잡하게 사람들의 인연이 꼬이는데, 그래도 현실세계는 더욱 복잡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속에서뿐만 아니라 그저 삶의 모든 것이 늘 연결되어 있는 연결망의 사회에서, 그것을 악용하면 감시천국과 개인의 소멸 같은 부정적 결과도 상상할 수 있다. [브이포벤데타](앨런 무어 / 데이브 로이드)에 등장하는 가상의 경찰국가 현대 영국처럼 말이다. 파시즘적 정권 하에, 사람들은 감시당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그 속에서 서로를 감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일상이 된지 오래라서, 불만보다는 그냥 적당히 편안하게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 – 다만 그들이 애써 외면하는 그늘에서, 누군가가 인권을 훼손당하고 끌려갈 뿐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테러를 통해 사람들을 각성시키려는 불온한 정체불명의 인물, 가이포크스 가면을 한 속칭 ‘브이’가 활동한다. 작품은 인터넷 같은 네트워크가 보편화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사람과 카메라에 의한 감시를 보여주지만, 압제를 가하는 사회시스템에 그런 식으로 늘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 대한 묘사는 조금도 낡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작품은 그런 세상을 뒤엎을 혁명의 씨앗을 살짝 남기는 방식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작품 이야기를 떠나,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한국사회는 어떤 네트워크일까. 어떻게 서로들 연결되어 있고 어떤 모습의 사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당장 만화만 하더라도 최소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웹툰’ 연재를 즐기며 곧바로 평점과 답글을 달고, 어쩌다가 서로 논쟁도 붙고, 작가가 그것을 보고 기뻐하거나 좌절하고 다시금 그것을 반영한 내용을 그려내는 정도의 사회이기는 하다. 큰 사회적 사건이 있을 때는 그 작가 시국 만화를 그려서 자신의 팬들과 함께 촛불 들고 길거리로 나올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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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만화잡지 격월간 [싱크]. 이미지프레임 발간. 테마별 만화들을 소개하며 인문사회적 화두를 넌즈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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