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권력 [싱크 5호]

!@#… 이런 내용을 실어주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반겨주는 지면이 있다는 건, 참 특수한 일.

 

만화로 보는 권력

김낙호(만화연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두자. 권력에 관한 만화를 소개한다고 해서, 무슨 억압적 정부에 대항하는 혁명투사들의 영웅담 활극만 한 묶음 풀어놓으리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권력이란, 여타 부수적 연상 작용을 잘라내고 나면, 기본적으로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사회적 환경에서 자신의 뜻에 따라서 다른 이들을 행동하게 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이것은 무언가를 시키는 이, 그것에 따르는 이라는 두 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관계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도록 하는 원리는 서로 불균형한 폭력에 의한 것일 수도 (“빵을 내놓지 않으면 때려주마”), 문화적 요인에 의해서 일수도 (“장유유서의 나라에서는 젊은 것들은 자리를 양보해야지”), 제도에 의해서 일수도 (“땅을 내놓지 않으면 소송을 걸어주마”) 있다. 물론 보통은 어떤 식으로든 여러 가지 것들의 혼합에 의한 것이다: 조직화된 독점적 폭력인 공권력, 그리고 최소한 느슨한 문화적 합의라도 존재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권력은 사회적 관계로 맺어지는 사람들 사이라면 어디서든 어떤 식으로든 발생하기 마련이고, 크고 복잡한 사회일수록 더 강력한 권력부터 세세한 권력까지 여러 가지가 함께 작용한다. 권력에 관해 생각해본다는 것은, 굳이 푸코 같은 커다란 이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생각보다 훨씬 그런 관계들이 흔하게 우리의 사회적 환경 곳곳에 촘촘히 심어져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해체하여 평등한 민중세상을 만들겠다는 선언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것은 심각한 과장이지만, 권력 관계가 사회 작용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에 머물기보다는 발전의 가능성을 가로막아버리는 역기능을 하는 경우를 막아낼 필요는 있다. 반독재 투쟁부터 차별철폐, 부패해소와 각종 인권보장 같은 뜨겁고 커다란 토픽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반대로 몇 명으로 이루어진 소우주 사회를 통해, 즉 적은 인원들만 모여도 여느 커다란 사회에서 보아오던 여러 권력관계들이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통해 – 가장 기본적인 패턴들을 살펴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강하고 악한 ‘권력자’를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관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몇가지 만화로 바로 그런 계기를 마련해보도록 한다.

권력은 여타 사회관계와 마찬가지로, 게임으로 이뤄진다. 오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참여자들이 특정한 조건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것이 모인 결과가 돌아오며 다시 반응하는 과정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식으로 힘을 합쳐야 하고, 어떻게 남을 속일 것인가. 그것을 위해 어떤 식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혹은 복종해야 목표에 가까워지는가. 그리고 어느정도 행동패턴들이 규칙이 될 때, 즉 사람들이 조직화될 때 그 안에서 역할에 따라서 권력관계가 발생한다. 선의를 강조하는 도덕률에 의한 권력일수도, 공포에 의한 강제로서의 권력일 수도 있다. 만화 [라이어 게임](카이타니 시노부)은 게임이론으로서의 권력이 만들어지고 작용하는, 그리고 희미한 가능성을 통해 그것을 돌파하는 여러 패턴을 보여주는 만화다. 작품의 기본 얼개는 어떤 비밀조직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단으로 참여하는 여러 ‘게임’을 제안하여, 승자에게는 거액의 상금, 탈락자에게는 거액의 빚을 지우는 것이다. 주로 모두가 서로를, 혹은 팀을 이루어 다른 팀들을 속여 탈락시켜야 하는 아귀다툼의 두뇌게임을 요구하는 게임들인데, 가장 명석하고 잔인하게 남을 속이는 인간에게 권력을 부여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팀이 가장 확실하게 승기를 잡곤 한다. 오로지 여주인공만이 서로를 속이는 것보다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협력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찾아낸다. 하지만 특정인이 룰을 깨고 혼자 독식하지 않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늘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 아이러니다.

한 층위 더 파고 들어가면, 권력을 이루는 게임들에는 권력을 지니는 이들과 권력을 용인하는 이들이 있다. 그 과정에서 누가 권력을 지녔는지에 대한 여러 상충하는 인식들이 존재하고, 가끔 그 충돌이 희극을 만들기도 혹은 정신승리(‘아Q장전’ 참조)의 거짓 만족이라는 비극을 만들기도 한다. 아니면 그저, 그럭저럭 권력의 불평등을 적당히 참고 사는 하루하루에 대한 체념적 위안이거나 말이다. 유명 명랑만화 [아기공룡 둘리](김수정)가 바로 그런 모습으로 가득하다. 평범한 중산층 가장 고길동씨의 집에 눌러앉아 사는 아기공룡 둘리, 외계인 도우너, 타조 또치 등은 더부살이 인생이다. 하지만 도우너는 애초에 잘못된 지식을 지니게 된 바람에, 고길동씨를 애완동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런 인식과 별개로, 실제로는 이쪽이 매사에 구박을 받고 산다. 그렇다고 해서 고길동의 권력이 대단한가 하면, 명시적으로는 뚜렷하게 우위에 있는 듯 하지만 둘리와 친구들이 치는 각종 장난을 빙자한 대형 사고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그들이 벌이는 각종 기물파손을 감내하고, 그들에게 밥과 집을 제공하면서도 그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자 하지 않는다. 누가 권력자이고 누가 복종하는 것인가.

권력은 그렇듯 다층적이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중간 어딘가에 있다. 관계이기 때문에, 권력자/비권력자라는 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사람이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는 권력을 행사하고,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는 행사당하는 입장이 된다. 누구에게는 좋은 선임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말 잘 듣는 부하고, 평범한 아들이며, 혹은 누군가의 인생을 망쳐놓은 원수가 될 수도 있다. 인권만화 모음집 [사이시옷]에 실린 단편 [창](연상호, 최규석)에서 다루는 군대 내무반의 권력관계가 딱 그렇다. 모든 것에 권력 서열을 붙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식 사병문화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은 늘 함께한다. 모범군인 선임병과 고문관 후임병이 일궈내는 일화 속에서, 좀 더 복잡하게 사안의 결을 살펴보게 만든다. 작품 속에서 권력은 군대라는 사회에서 부여한 룰이 만들어낸 마치 공기와도 같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개인은 늘 중간 어디에 들어가서 재빨리 적응하고 순응한다. 아니, 그렇게 순응해야 그나마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고문관으로 낙인찍혀서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골칫거리가 된다. 섬뜩한 현실이다.

권력을 받아들여야 권력이 형성된다는 점은, 독재자에 의한 통제사회 같이 노골적으로 강력한 악을 상정한다고 해서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사회들일수록 개개인들이 권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무척 어렵게 만들지만 말이다. 자유로운 집회와 결사를 통해 개인들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을 막고, 자신들의 권력 행사에 방해가 될 만한 사고방식이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을 통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반대하면 결국 그런 사회 자체가 유지될 방법이 없겠지만, 통제의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그런 권력행사에 길들여질 때 통제사회는 결국 굴러간다. [브이 포 벤데타](앨런 무어, 데이빗 로이드)는 극심한 오르웰식 감시사회가 되어버린 가상의 현대 영국을 무대로 한다. 사회의 모든 것이 정부에 의해 감시되고, 많은 문화양식이 금지되고, 전체주의적 이상향을 홍보하는 프로파간다가 언제 어디에나 난무한다. 그리고 그런 암울한 사회에 저항하는 것은 바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의문의 초인적 테러리스트 ‘브이’다. 이런 설정을 놓고 보면 마치 브이가 정부를 전복하고 나쁜 권력자를 혼내주는 활극을 줄거리로 기대할 법도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바로, 사회의 권력행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브이가 그 사회 안에서 통제받는 것에 길들여진 여주인공 이비를 각성시키는 과정이다. 그다지 정의의 용사스럽지 않은 방법들로 이뤄지고, 작품의 결말 역시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또다른 누군가가 생겨나는 것이다.

양측의 동의에 의해(비록 한쪽은 동의를 강제 당했다고 할지라도) 이뤄지는 관계가 권력인 만큼, 가장 종합적으로 사람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저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세상 자체를 설정하고 주물러야 한다. 다른 방식이 존재하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 새로 익히지 않는다면, 현재의 권력관계에서 벗어날 동기가 없다. 그저 지금의 상태를 수호하기 위한 음습한 행위들을 계속 정당화하며 축적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 모든 세계관을 엮어서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삼을수록, 그런 ‘다른 세상’을 상상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끼](윤태호)에 등장하는 공간인 마을에서 이장과 주민들이 맺고 있는 권력관계가 바로 그렇다. 마을의 모든 이들은 이장의 지휘 아래에서 공범이 되어 있으며, 그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뭉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식이 가득하다. 작품이 진행되며 밝혀지는 바, 오랜 공동거주의 시간, 그 과정에서 종교에 가까운 사상적 인도, 금전적 이권, 그리고 무엇보다 그 폐쇄 공동체 바깥에서 다른 식으로 살 수 없다는 인식들이 축적되어 있다. 거대한 공범의식 속에서, 어떻게 하지 못하고 점점 방어적이 되어가는 모습은 비단 작품 속 마을만 가지고 있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권력은 서로 작용하는 관계고, 양면적이고 다층적이며, 그 관계를 어찌되었든 서로 받아들이기에 성립되며, 상당히 종합적으로 작용하곤 한다. 그런 모습들을 발견하고 성찰하기 위해, 그런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작품들을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측면들은 권력관계가 얼마나 당연하게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세상 속에 가득한지를 돌아볼 기회가 되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것 같은 모습에서 하나의 요소만 살짝 바꾼 SF세계를 통해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권력관계에 대한 극명한 풍자를 읽어보면 어떨까. [Y: 더 라스트 맨](브라이언 K 본, 피아 구에라 외)은 현대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한 순간에 모든 포유류 수컷이 괴질로 죽어버리면서 시작한다. 비교적 남녀평등이 이뤄져있다는 미국만 하더라도, 남자들이 모두 죽어서 대통령을 위시한 주요 행정 각료들이 대부분 공석이 되어버린다. 군사 균형도 깨져서, 여성도 전투부대에서 의무복무를 하는 이스라엘이 미국에 군사작전을 하러 침입한다. 오로지 살아남은 남자인 탈출마술사 요릭과 그의 수컷 애완원숭이 앰퍼샌드,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여성 특수요원 355이 미국 전역을 누비며 목격하게 되는 풍경들은, 결국은 묵시록적 멸망의 세계가 아니다. 그저 남자가 사라짐으로써 그간 얼마나 자연스럽게 남성 위주의 사회 권력체계가 짜여져 있었는지를 재발견하고, 시간이 지나고 충격이 가시면서 여성들의 세상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 굴러가는 모습이다. 조금 다른 부분도 있지만, 결국 사람들이 서로 맺는 권력이라는 관계는 웬만한 성찰로는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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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만화잡지 격월간 [싱크]. 이미지프레임 발간. 테마별 만화들을 소개하며 인문사회적 화두를 넌즈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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