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만화: 절대적 힘을 바라보는 관점 [문화저널 백도씨/0610]

!@#… 청강대 문화저널 ‘백도씨’ 지난호에 실린 글. 폭력 특집. 당연히, 밑의 글에서 ‘힘’을 모두 ‘폭력’으로 대체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뭐랄까, 이건 슈퍼히어로라면 인간적 고뇌 어쩌고는 양념이고 진짜 핵심은 역시 호쾌한 힘자랑 활극이라는 취향의 소유자로서의 소신. -_-; 보통 그렇듯 그림 이미지는 생략.

 

슈퍼히어로 만화: 절대적 힘을 바라보는 관점의 진화

김낙호 (만화연구가)

슈퍼히어로는 힘 그 자체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 한마디로 시작해 보자. 만화 속의 슈퍼히어로는 ‘힘’의 상징이다. 슈퍼 히어로는 두뇌나 권력으로 악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순수한 힘으로 상대를 응징한다. 원래 정체는 브루스 웨인이라는 도시 굴지의 재벌총수인 배트맨일지라도, 권력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발품과 주먹으로 누른다. 별다른 초인적 능력이 없는 배트맨이 그 정도일진데, 아예 인류를 초월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일반적인 슈퍼히어로들은 오죽하랴. 슈퍼히어로들이 인간 세계 질서의 법칙에 따라서 악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세계에서는 단순히 이상향 전설 속 이야기가 되어버린 ‘막강하고 뚜렷한 선의 힘’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독자들은 환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한 이상향의 육체화, 그것이 바로 슈퍼히어로의 존재 의의다.

절대적 힘에 대한 동경의 시대

하지만 그런 절대적인 힘에 대한 시각은 시대와 함께 변해왔다. 절대적인 ‘선’은, 절대적인 ‘악’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처음에 그 악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자연재해, 대형 사고 등이었다. 슈퍼맨이 1938년에 처음 데뷔했을 무렵, 그의 역할은 동네 강도들 몇몇 겁주는 것도 물론 있었지만 주로 산을 옮기고 비행기를 멈추며 불타는 기차를 세우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적’은 금방 식상하기 때문에, 선한 힘의 육체화에 해당하는 슈퍼히어로와 맞먹는 악한 힘의 육체화가 요구되었다. 슈퍼 악당의 탄생이다. 하지만 ‘순수한 힘’이라는 것 자체가 선의 역할이어야 하는 이상향 때문에, 주로 슈퍼 악당은 머리가 뛰어난 기업 총수형 인물이라든지, 많은 병사들을 동원할 수 있다든지 하는 인간의 질서에 합당한 스타일이었다. 이런 패턴 속에서 슈퍼히어로 만화 장르는 소위 ‘골든에이지’를 맞이했는데, 마침 독일과 일본에서는 마치 만화 속 슈퍼악당의 현신 같은 절대악 군단이 등장해서 전쟁을 일으키며 더욱 붐을 탔다. 육체적, 물리적 힘을 나타내기 위하여 히어로들은 전신타이즈를 입고 근육질 몸매를 뽐냈으며, 온갖 상징적인 디자인과 원색으로 치장하고 다녔다. 힘은 때로는 고대 자연 정령들로부터 오고 (캡틴 마블 등), 외계의 출신으로부터 (슈퍼맨 등) 오기도 하는 등 초월적 현상의 결과였다. 그렇기에 힘은 그만큼 불가침의 절대영역이었다.

개인의 재능과 갈등의 시대

그런데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절대적 신성불가침의 힘은 인기가 시들해졌다. 비록 여전히 시대는 냉전이지만, 이미 순수한 절대적 우위의 물리적 힘이 모든 것을 이기는 꿈을 꾸는 시대는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슈퍼히어로 만화의 인기도 시들했는데, 60년대에 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위 ‘실버에이지’라 불리는 이 시대에 등장한 슈퍼히어로들의 힘은, 절대적 물리력이라기보다는 돌연변이, 기형적 발달에 가까운 스타일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 초월적 힘을 얻은 영웅들 역시 그 힘을 얻은 대가로 무언가를 희생할 수 밖에 없다. 평온한 생활과 삼촌을 잃은 스파이더맨, 이성과 정장을 매번 잃어버리는 헐크, 아예 사회로부터 변태 취급 받는 엑스멘들… 힘은 이제 다른 종류의 재능이고, 인간 사회 속에서 잘 안 맞기에 충돌해가면서 살아나가야 하는 개인적 특성이 되었다. 그렇기에 힘에 대한 책임과 갈등이 생겨났다. 골든에이지에 탄생한 슈퍼히어로들의 힘도, 실버에이지에는 한층 개인적 고뇌와 사회적 적응의 이야기가 깊어졌다. 팍스 아메리카나 속 개인주의가 다시 꽃피는 시대가 힘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인 셈이다.

세속적 권력으로서의 힘

하지만 80년대 중반을 넘기자, 슈퍼히어로의 힘이라는 것은 좀 더 미묘한 것이 되었다. 절대적인 선의 현신도, 개인의 ‘남들과 다른 부분’이기에 사회와 개인이 갈등을 하는 상징도 아니다. 바로 통제와 권력의 또 다른 형태로서의 힘, 지극히 세속적인 힘이 된 것이다. 슈퍼히어로 장르를 재발명한 두 작품 ‘다크 나이트의 귀환’(최근 한국에서도 ‘씬시티’ 덕분에 유명한 프랭크 밀러의 작품) 과 ‘워치멘’(어둡고 무거운 현실적 분위기로 장르를 재발명하는 작업의 대가, 앨런 무어의 스토리). ‘다크나이트의 귀환’에서 슈퍼맨은 연방기관의 앞잡이로, 이상향으로서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적 권력 질서를 수호한다. 중년의 배트맨 역시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악이라고 여기는 세력을 고집스럽게 부수어나갈 뿐인 자경단 정신의 화신이다. ‘워치멘’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슈퍼히어로들의 영웅질이 법적으로 금지된 가상의 현대사회를 무대로 한다(이 설정은 2000년대에 애니메이션 ‘인크레디블’에도 그대로 이식된다). 영웅들의 힘은 세속적 질서 앞에서 묶여 있으며, 파시즘적 공포 통치의 수단으로 악용되기까지 한다. 권력이 바로 힘이라는 자조의 시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체제의 힘 앞에 무력한 일반인들, 그것이 바로 냉전 끝물 시대의 초상이다.

초월적 힘을 통제하는 것

그리고 힘에 대한 새로운 해석 보다는 캐릭터성의 반복 소비로 점철된 90년대가 지났다. 그리고 2000년대는 911 테러라는 트라우마로 강렬한 시작을 예고했다. 슈퍼히어로들은 그런 대도시 대낮의 대형 테러를 못 막아내는 상상의 존재들에 불과했지만, ‘힘’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이 생겨나기에는 충분했다. 이 사회 속의 거대한 힘은 언제라도 우리들의 생활공간과 삶의 방식 자체에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힘은 막을 수는 없더라도 조절되고, 규제되어야 할 대상인 셈이다. 스파이더맨 영화판들이 만들어낸 스파이더맨은 그런 의미에서 원래 실버에이지의 그 영웅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굴지의 슈퍼히어로 명가 마블 출판사에서 기존 슈퍼히어로들의 탄생신화를 모두 리셋한 후 현대적으로 새롭게 시작한 ‘얼티미트’ 시리즈는 특히 힘에 대한 사회의 두려움과 규제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최근 이곳의 가장 강력한 대형 프로젝트, ‘시빌 워(내전)’에서는 아예 슈퍼히어로의 활동에 의한 대규모의 도심지 참사 후 히어로들을 연방 공공 요원으로 정식 등록시켜서 안전하게 활동을 시켜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된다. 그러자 슈퍼히어로 진영은 공무원이 되더라도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자는 쪽과, 슈퍼히어로의 본령은 바로 초법적 자유의지의 ‘선’이라는 쪽 사이로 갈라져서 대판 싸움을 벌인다. 그 와중에서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며, 캡틴 아메리카는 지하 반군의 수장이 되는 등 충격적 이벤트의 연속이다. 혹은 또다른 전통의 명가 DC의 신작 ‘The Boys(요원들)’ 은 또 어떤가. 슈퍼히어로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통제하는 정부 비밀조직인 ’더 보이스‘가 주인공이다. 초월적 힘을 지닌 이들을 통제하는 방법이란, 바로 야비한 정보 수집과 협박 등 완전히 조직폭력배 같은 짓을 통해서다. 이제 힘은 절대선의 상징도, 개인의 재능도, 세속적 권력도 아니라, 통제와 조절의 대상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슈퍼히어로 만화에는 힘에 대한 당대의 관점이 담겨있다. 초월적 힘이라는 것이 지니는 함의에 대해서 때로는 동경, 때로는 두려움을 지니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의 상상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스판과 망토 같은 이전 시대의 상징들이 이어져 내려오기는 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시각은 항상 현재적이다. 그것이 바로 동시대의 사람들과 호흡하는 대중문화인 만화의 생명력이니까. 슈퍼히어로들의 앞날에, 무궁한 근육과 쾌활한 활극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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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슈퍼히어로 만화: 절대적 힘을 바라보는 관점 [문화저널 백도씨/0610]

Comments


  1. 마지막 줄이 제일 감동적..T.T/
    슈퍼히어로들의 앞날에, 무궁한 근육과 쾌활한 활극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