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라는 골이 아닌, 연애의 과정 – 러브로마 [기획회의 314호]

!@#… 완간 기념. 직선으로 전력질주의 느낌이 살아있는 만화.

 

연애라는 골이 아닌, 연애의 과정 – [러브로마]

김낙호(만화연구가)

연애를 다루는 대중서사문화 작품이라면, 십중팔구는 연애의 성사여부가 관심사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명백하게 주인공으로 설정된 두 사람 – 소설이나 만화라면 가장 공들여 묘사된 두 캐릭터,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가장 몸값이 높은 두 배우 – 가 결국 맺어지든 또는 못맺어져서 여운을 남기든 할 것이라고 예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이 어떤 밀고 당기기를 통해서 결국 맺어지는가, 맺어진 이후 어떤 시련을 겪으며 다시 헤어졌다가 또 어떤 우연과 필연이 겹쳐지며 결국 다시 돌아오는가 등이 줄거리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종종 흥미를 위해 전문분야 소재의 몇 가지 요소를 양념 삼아 뿌리기도 하고, 이야기가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흘러 흥미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연들이 연애과정을 더 복잡하게 꼬아서 삼각관계 사각관계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즉 연애에 이르는 과정의 드라마가 중요하지, 연애 자체는 일종의 골인 것이다.

반면 어떤 소수의 작품들은 연애 자체에 집중하는 반전을 꾀한다. 연애에 이르는 여정이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는 과정 자체가 바로 탐구대상이다. 그러다보니 드라마로서의 굴곡이 적어지기 쉽기에, 허영만/김세영의 [사랑해] 같이 아예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옴니버스형 사색으로 빠질 수도 있다. 난다의 [어쿠스틱 라이프] 같이 순간에 대한 통찰을 주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관찰의 내역을 전달하기 위해 작가의 설명조 독백이 들어갈수록 극적 전개 자체로 움직이는 재미는 덜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자체를 탐구하면서도 극적 전개 과정, 아예 성장물로 만들어 버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 아마도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흥미로운 커플이 있어야 하고 그들 사이의 나름대로 티격태격하는 긴장 속에 무언가 조금씩 더 쌓여가며 성장의 모습이 보여야 한다. 그리고 깔끔한, 그러나 살짝 열린 마무리의 계기가 있으면 더욱 좋다.

[러브로마](토요다 미노루 / 세미콜론 / 전5권)는 그런 까다로운 조건을 잘 충족한 연애만화의 수작이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커플인데, 남자 주인공 호시노는 오로지 지나칠 정도로 감정 전달을 직선적으로 하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여자 주인공 네기시는 기본 성격은 더 평범하지만, 씩씩하고 솔직하며 문제가 있을 때 괄괄하게 당장 화내고 바로잡는 사람이다. 직선적이고 이성 넘치며 다른 사람들 같은 조심성이나 우유부단함과는 담을 쌓은 “마이페이스” 남자와, 감정표현에 확실히 솔직하고 수줍어하기보다는 뚜렷하게 상황을 직면해버리는 여자라는 조합은, 주류 장르물에서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신선한 조합이다. 우유부단하지만 성실하고 착한 성격 때문에 의도치 않게 다양한 이성(때로는 동성)을 다수 끌어들이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애정을 가졌지만 다른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새침하게 숨기는 여자 주인공과 엮는 방식이 일본 연애 장르만화에서 일종의 기본 공식이 된지 오래다. 혹은 한국 연애물이라면 적당히 마초적 구석이 있는 남자가 순정을 바치고, 강한 척 하지만 사실은 의지할 상대를 찾는 여자가 주인공을 하는 것이 흔하다. 그런 전형과 다른, 마초적이지도 우유부단하지도 않고 그저 직선적으로 솔직하게 모르는 것을 묻고 함께 알아나가자 제안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새침하지도 않고, 의지할 희망을 품지도 않은 알아서 잘 살아 나갈 든든한 여자가 주인공이다. 만화는 이들이 처음 사귀는 순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겪는 여러 일상과 그 속에서 쌓아가는 성장의 과정을 경쾌하게 담아낸다.

이 이야기가 연애를 성사시키기 위한 밀고 당기기가 아님을, 첫 권 첫 장부터 이미 밝혀버린다. 남자는 사귀어달라고 밑도 끝도 없이 직설적으로 교실에서 공개제안하고, 여자는 감동하거나 수줍어 하기보다 딱 적당히 난처해하다가 바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후 모든 이야기는 이들이 겪는 여러 상황들에서 어떻게 함께 의미를 만들어나가는지에 관한 것이다. 호시노는 대놓고 물어보고, 네기시는 그의 무신경함에 난처해하며 뒷통수를 갈기면서도 함께 답을 찾아나간다. 해답을 던지는 것은 전지적 시점의 작가나 박사 같은 극중 해설자가 아니라, 딱 본인들이 스스로 찾아내는 만큼씩 자신들의 대화로 풀어낸다. 이것은 일본 2인조 만담 형식에서 흔히 쓰는 보케와 츳코미, 즉 바보스러운 소리를 하는 사람과 그것을 야단스럽게 지적하는 사람의 구도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듯한 감도 있다. 바보스러운 것이 사실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고,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내리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결국 그 사이에서 어떤 대답을 찾는다는 결론이 매력적이다.

여기에는 삼각 사각 관계의 혼란스러운 조마조마함도 없고, 소위 ‘모에’ 취향 독자들이 종종 요구하는 코드화된 캐릭터 매력 요소들의 기계적 조합도 없다. 그저 세부적 일상의 에피소드 속에서 두 사람의 상호작용이 만드는 새로운 통찰들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삶의 진리나 인생의 교훈이 아니라,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 서로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일상 속에서 느껴내는 방법들 말이다. 그렇게 해서 연애의 여러 일면들을 줄기차게 탐구하고, 저자가 후기에 남긴 말 그대로 “사소한데 각자에게 소중한 일상의 무엇”을 떠올려볼 수 있게 만든다.

그것도 엄청나게 유쾌하게 말이다. 연애하는 일상의 관찰과 통찰을 이야기하지만, 이 작품은 가라앉은 성찰적 분위기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발랄하게 즐겁고, 경쾌하다. 여기에는 두 주인공이 성격이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의 코믹함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표현해내는 그림체와 연출의 힘이 크다. 뻔하게 공식화된 미형 그림체도, 그런 것을 억지로 벗어던지기 위해 잔뜩 왜곡한 심각한 그림체도 아니다. 마치 미술가 키스 해링의 그림들처럼, 기본적으로 왁자지껄한 느낌의 캐릭터들이 분방한 구도 속에서 동적으로 뛰어노는 인상을 준다.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시각디테일을 넣는 것도 아니고, 그저 편안하게 이번 화의 일상을 발견해낼 수 있을 정도까지만 구현한다. 칸의 흐름에는 난잡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장난끼가 넘치며, 낙천적 정서가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이런 세상 안에서 그려지기에, 호시노와 네기시의 연애는 깨질 것 같은 위험에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번 궁금증은 어떻게 해답을 낼까 궁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를 속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물론 작품 성격상 처음부터 끝까지 ‘염장질’이기 때문에, 여느 러브코미디들처럼 적당히 별볼 일 없는 주인공에 감정이입하거나 잘난 주인공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혹은 그들의 좌절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런 식의 만족은 없다. 하지만 조금씩 더 성숙해지며 더 많은 의미를 함께 만들어내는 그런 연애를 훔쳐보는 즐거움만은, 확실하다.

러브로마 세트 – 전5권
토요다 미노루 지음, 김동욱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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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책내서평을 기반, 기획회의 리뷰용으로 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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