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만화와 교육성, 웹툰에 관하여 [GQ / 1204]

!@#… 보시다시피, 만화에 대한 여전히 꽤 커다란 고정관념으로 작용하는 교육성을 미덕으로 삼는 것에 대해(그리고 그 위에 자라나는 산업논리든 검열논리든) 몇 마디 쓴, 남성스타일 잡지 GQ 지난 호 기고글. 중간에 편집조율에서 좀 초점을 재조정한 관계로(당장, 제목부터…핫핫), 평소처럼 첫 투고버전 말고 중간 퇴고 버전으로.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김낙호(만화연구가)

방송통신심위위원회가 웹툰에 대해 청소년유해물 판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 만화는 여전히 교육용으로 인기가 높다. 만화에 드리운 ‘교육용’이라는 망령은 가시지 않았다.

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의 대표격이었던 “유치하고 불량하다”는 평가는, 좋은 작품들의 지속적 등장, 만화를 읽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바보짓을 그만둔 세대의 성장 등으로 많이 희석되었다. 좀 더 세부적인 고정관념에 시달려도 괜찮을 만큼 주류문화가 된지 오래라는 말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고정관념을 들여다보면, 만화를 ‘교육성’으로 판단하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단 만화가 주류문화가 되었다고는 하나, 일반서점 차트 순위권에 들어가는 큰 히트작은 주로 학습만화에서 나왔다. 지난 수년간 수백만부가 판매된 작품들은 아동 대상 지식만화 계열이다. 내실이야 어쨌든, 교육용 책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지녔다. 이유를 추론하기는 어렵지 않다. 초등학교까지는 자신의 소비생활에 대한 자율이 낮다. 지갑을 여는 것은 부모들이다. (‘교육’ 만화가 어느 정도 자기 용돈을 쓰는 중/고생 대상으로 대상연령을 높여 잡고도 밀리언셀러에 돌입했다는 사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이는 본연적 성향과 동료집단의 압박 등을 종합하여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한 것을 조르면, 부모는 적절히 타협하여 사준다.

아이의 조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부모가 내거는 조건은 하나다. 금새 인식할 수 있는 교육성. 물론, 교육성을 얻을 수 있어야 ‘지적인 만화’라는 생각은 너무 편협하다. 지적인 읽기가 가능한 만화는 모두 지적인 만화다. 하나의 세계나 소재를 ‘충실히’ 그려내는 것이 필수조건이고, 좀 더하자면 그 세계나 소재가 결국 독자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통찰을 줘야 한다. 이를 충족하면 지적 훈련으로서의 교육성은 충분히 갖춰진다. 하지만 ‘지적인 만화책’을 골라주고 그것을 함께 읽고 설명해줄만한 인식력 또는 인지적 여유가 부모에게 부족한 경우가 흔하다. (코믹 메이플스토리를 자녀와 함께 읽으며 우정의 가치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냥 대놓고 교육성이 드러나는 쪽을 선택하기 쉽다. 수학 배우는 만화, 논술실력 좋아지는 만화, 한자 외우는 만화라니, 얼마나 간편한가. 아이가 원하는 즐거움 또는 사회적 안심과 부모에게 주어지는 교육에 대한 안도감의 교집합으로서, 아동 대상 지식만화는 계속해서 고정수요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그렇게 굴러왔지만, 2000년대 들어 한층 세련된 제작기법 및 마케팅 기획, 일반 서점의 유통 확장 덕에 규모가 폭발했다.

하지만 ‘교육성’을 오늘날 인기작이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으로 취급하는 건 곤란하다. 작품을 구매하여 얻을 수 있는 효용, 누가 지갑을 여는가, 등에서 정해지는 소비 형태만 잘 참조하면 학습 만화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가능하다. 예컨대, 2000년대 초반 ‘에세이 툰’의 인기가 그랬다. 시대적으로 문학소년/소녀 감수성을 즐기는 일종의 ‘허세’ 수요가 있었고(당시 수많은 사이월드 미니홈피들에 담겨 있었던 닭살 돋는 내용들), 스스로 사기도 하지만 남에게 그런 취향을 과시하듯 선물하는 것도 큰 유행이었다. 그런 흐름은 정밀한 마케팅 기획의 결과로 나올 수도 있고, 그저 우연의 산물로 나올 수도 있다. 다만 어느 쪽이든 기회가 생기기에 더 유리한 조건은 평소에 종다양성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복합적 과정 속에 어떤 것이 폭발할 수 있다.

종다양성 최대의 적은 원칙과 기준이 모호한 관료적 내용 규제에서 비롯되는 자기검열인데,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자의적 웹툰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같은 설익은 개입은 산업적 측면에서 가장 큰 해악으로 손꼽힐만 하다. 청소년유해물 지정 파동은 만화계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왔다. 그 논지 가운데 하나는, 기존 출판만화가 위축된 것도 검열 때문이었는데, 지금까지 웹툰이 다른 매체로서 구축해온 새로운 판마저 망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분명히 일리가 있다. 화면으로 구현되는 웹툰은 효과적인 그림 밀도도 종이와 다르고, 칸 간 연출 방식은 더 자유로우며, 다양한 기술적 장치들을 심어 넣을 수 있는 미학적 요인이 있다. 또한 제작 유통과 수익모델의 방식을 종이 지면 연재와는 다르게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연속된 칸 그림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 자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여전히 만화라는 공동의 유산 아래 놓인다. 그림에서 오는 표현 수위와 독자들이 그것에서 느끼는 미감 역시 공통이다. 독자층도 많이 겹친다. 이번 검열 파동만 하더라도 웹툰을 실제보다 너무 새로운 것으로 대해서, 즉 ‘만화’로서의 연속성을 너무 무시해서 생겨난 문제에 가깝다. 그간 만화를 관장해온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매체 전달양식 단위로 임무를 부여받았기에 웹툰 부문은 손대지 않았다. 반면 정보통신 콘텐츠를 담당하는 방통위는 명예훼손이나 음란물 차단에 신경 쓰느라 웹툰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일련의 불행한 자살사건으로 인해 주목받은 학교폭력에 대한 손쉬운 대처로서 특정 보수언론이 대중문화 때리기에 나섰고, 그 풍파가 웹툰으로 쏟아졌다. 문제는 지난 십수년간 만화 창작계와의 줄다리기를 통해 좀 더 나은 관행과 기준을 쌓아올리고 있던 간윤이 아니라, 완전히 문외한인 비전문가 집단이 새로 뛰어들어 결국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들을 내렸다는 점이다. 물론 비전문성의 문제는 비단 만화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문화계 전반의 연대로 문제 제기와 심의 틀거지 재구축이 필요하다.

즉, 웹툰의 새로움을 주장할 때는 분리 선언이 아니라 좀 더 세부적일 필요가 있다. 만화 장르의 일부로서 연속되는 것이자, 새로움의 요소가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다양하고 우수한 만화들이 창작될 수 있는 환경에 도움이 되는가에 따라서, 편의적으로 좀 더 연속성을 강조할 부분, 단절을 강조할 부분을 골라 조합하면 된다. 웹툰은, 그냥 계속 만화다. 다만 기존 출판물과는 다른 가능성도 취하는 것이 가능한 세부 분야다.

종다양성 장려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고 비전문적인 이들이 심의의 잣대를 쥘 때, 얄궂게도 기본 기준으로 슬그머니 다시 자리잡게 되는 것은 교육성이다. 웹툰을 다루며 만화문화의 연속성은 무시되고 교육이라는 규범의 연속성만 남는 셈이다. 아직 더 자유로운 가능성을 지닌 웹툰 분야마저 그 익숙한 ‘교육용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의 망령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그렇게 흘러갈 조짐에 일찌감치 저항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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