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미디어사용자로 살아가는 것 – 미디어 씹어먹기 [기획회의 317호]

!@#… 이전에 쓴 프레시안 서평의 마이너 변형. 예전 트윗에서도 언급했지만, 90년대 중반 ‘신문읽기의 혁명’ 만큼이나 기본교재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해 마땅한 책. 다만 여전히, 번안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날, 미디어사용자로 살아가는 것 – [미디어 씹어먹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뉴스 정보가 24시간 실시간으로 넘쳐나고, 더욱 복잡하고 긴밀해진 실생활과 온라인의 관계망 속에서, 오늘날의 미디어사용자(즉 누구나)라면 늘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알아야할 듯한 압박에 시달리기 쉽다. 그에 비해서 그 미디어로 전달되는 뉴스는 점점 더 연성화되고, 취재 품질이 형편없어지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내용은 권력층의 의도에 따라 재단되는 냄새가 난다. 정신 없게 넘치는 미디어,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를 미디어로 세뇌시킬 듯한 두려움이 미디어사용자의 숙명으로 보인다.

[미디어 씹어먹기](브룩 글래드스톤 저, 조시 뉴펠트 만화 / 권혁 옮김 / 돋을새김)는 미디어를 둘러싼 문제점들을 차근차근 지목하면서도, 그런 숙명을 반대하는 책이다. 미디어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지배를 뒤집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는 우리 삶의 중요한 도구이며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 작품은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온 더 미디어’의 제작자이자 공동진행자인 브룩 글래드스톤의 미디어관을 농축해 넣은 것으로, 조시 뉴펠트의 만화 작업과 훌륭한 팀웍을 이룬다. 작가가 집대성한 역사적 분석과 현재 사례들에 대한 통찰, 관련 전문가들의 식견의 종합에 의하면, 미디어는 거대한 지배세력과 언론기업의 전능한 의식 세뇌 기계장치가 아니다. 그저 권력층의 향배에도 촉각을 세우고, 자사의 영향력과 이득에도 눈을 두고, 무엇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바로 우리들의 수준과 의향을 반영한다.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되,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때로는 거대하게, 배만 볼록 나오게 보여주는 마술거울이다.

이런 인식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음모론 분쇄의 쾌감을 즐기자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은 상당부분 우리들이 개입하여 통제할 수 있으며,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우리의 생각을 좌우하는 전능한 기계장치(원제 ‘Influencing Machine’의 의미다)로 오해하면 스스로의 책임 부분을 회피하며 무기력에 빠지고, 왜곡된 세계의 모습만 바라보게 된다. 현재의 미디어기술과 관행들은, 우리들이 개입하여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훨씬 더 넓게 열어주었다. 이미 우리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고 읽는 것을 직접 재구성하고 필터링하며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런 당찬 주장이 그저 그런 낙관적 호소 수준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풍부하고 정밀한 근거를 던져주고도 친밀한 전달력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근거로서 마치 ‘온 더 미디어’의 특집방송을 듣는 듯이 많은 역사적 맥락, 미디어학의 연구 내용 소개, 전문가 발언들을 체계적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친밀한 전달력을 위해, 만화라는 양식을 선택한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가 박사에게 한 수 배우는 식의 학습만화 연출이나 나레이션으로 가득 채워놓고는 삽화를 삽입하는 ‘아이콘 총서’류 방식이 아니라, 작가가 작품 속에 출연하여 내용에서 묘사하는 바를 시각적 유머와 함께 성명하는 방식이다. 이 책의 이런 전개방식은 스콧 맥클라우드의 기념비적 만화이론서 [만화의 이해]와 닮아 있다. 조사방법과 의도에 따라서 정치 여론조사가 널뛰기할 수 있다(swing)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작가가 그네를(swing) 타다가 결국 넘어지는 대목은 상징적이고 섬세한 유머감각의 단적인 사례다(비록 온전히 한국어로 번역하기에는 어렵지만). 조시 뉴펠트의 간명하면서도 형상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선은, 전문가들을 인터뷰식으로 인용하는 부분에서 충분히 그들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면서도 동시에 작가인 글래드스톤의 캐릭터는 충분히 카툰화된 모습으로 가볍게 묘사하는 범용성을 지닌다.

내용면에서 근거와 논지를 전개시키는 방식은, 사람들이 어떻게 미디어를 스스로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나씩 힌트를 주는 식이다. 가장 먼저, 우리가 현대 미디어의 폐해라고 여기기 쉬운 것들은 역사적으로 원래 그랬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민적 시각을 대변하지 못하고, 황색 경쟁 속에 천박해지며, 엉뚱한 집착을 부리고, 권력에 아부하는 것으로 보이며, 사업모델이 파탄 나고 결국 사회 정의까지 심각하게 왜곡될 듯한 모습들 말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건국기 미국을 찍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더 심각했던 때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또 사회와 미디어는 굴러갔다.

그리고는 미디어 환경이 잘 정비된 기계가 아니라 난개발된 거울나라임을 보여준다. 어디선가 현실을 굴곡하고, 또 다른 어디선가 굴곡된 상을 다시 굴곡하고, 그런 흐름 속에서 어디에서 현실이 끝나고 상이 시작되는지도 흐릿해진다. 언론 보도 관행에 담겨 있는 여러 편향들, 뉴스환경 변화와 매체 산업의 문제, 팩트 조사보다는 대충 그럴듯한 어림짐작 숫자를 동원하는 “골디락 넘버” 등 여러 언론계의 치부들을 드러내고, 그것을 알고 감안하여 한층 현명하게 사용자들이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정보를 필터링할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결국 미디어 사용자들의 힘을 소개하는 것에 할애한다. 여러 미디어 담론계의 스타들이 진단하는 더욱 자유롭고 능동적인 미디어 활용과 협업의 미래를 논하면서, 결국 “우리는 우리가 얻을 만한 미디어를 얻는 것일 따름”임을 선언한다.

물론 책이 다루는 내용들이 미국 사례 위주라는 것은 한국 독자들에게 있어서 명백한 한계다. 역사적 사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미국 근현대사의 것이며, 수정헌법 1조 같은 뉴스 환경의 가장 기반이 되는 조건들 역시 미국 기준이다. 언론사간의 경쟁과 그에 따른 문제발생 역시 미국이라는 연방제 국가의 지역적으로 분화된 시장을 염두에 둔 형태다. 하지만 베트남전을 광주로, 맥카시즘을 간첩소동과 이념검증 광풍으로, 선정적 보도들은 그냥 그대로 이름들만 바꾸어 보면 한국 언론 상황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다. 특히 온라인 부문은 더욱 그렇고 말이다.

미디어 씹어먹기
브룩 글래드스톤 지음, 권혁 옮김, 조시 뉴펠드 그림/돋을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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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우리 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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