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개그의 처절함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기획회의 070115]

학교개그의 처절함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

김낙호(만화연구가)

고등학교라는 공간은 만화, 특히 주류 장르만화와 무척 궁합이 좋다. 청소년 독자들에게는 현재 진형형으로 그 이상 연령대에게는 과거 경험으로 친숙한 공간이라는 장점 위에, 다양한 인간군상이 폐쇄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소우주적 특성이라든지 성장의 모티브라든지 경직된 학교 문화에서 오는 다양한 패러디 가능성이라든지 여러 가지 요소들을 맞물리기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를 무대로 하는 작품들이 종종 의도적으로 피해가는 소재가 바로 ‘입시’다. 대학입시라는 것이 한국 고등학교의 사실상의 존재이유처럼 되어있는 기형적인 교육제도 속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아니,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 입시는 많은 작품 속에서 구체적인 대상이기 보다는 그냥 주인공들의 막연한 고민거리에 불과하다. 사회적 비판을 핵심으로 삼고 있는 진지한 작품이 아니라면, 입시라는 소재는 대체로 개인의 노력과 성취의 차원으로 다루어질 뿐이다. 정작 한국형 입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막나가는 경쟁과 공교육 붕괴으로 대표되는 콩가루스러운 사회체험이라는 고교생활의 진정한 본질은 지나치게 껄끄러운지 기피대상이다. 학생들끼리의 조폭스러운 권력 다툼을 다루는 작품들은 많지만, 정작 동료 학생들, 선생들, 기타 학교측 직원들 및 학부모들이 한데 어울려서 총체적 난국을 만들어내는 아비규환의 장은 찾기 힘들다. 특히 개그만화로서 이런 것을 다루고자 하는 시도들은 종종 균형을 못 잡고 산만하게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에서 온라인 만화로 연재중이며 최근 종이로 단행본이 출간된 개그만화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김규삼/대원CI)는 제목 자체부터가 더할 나위 없이 ‘리얼’하다. 입시명문이라는 천박한 교육가치관, 사립이라는 용어가 주기 쉬운 특유의 권력남용의 이미지, 고교 사회의 요지경을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정글이라는 이름까지. 학원폭력 환타지도 아니고 감동적인 개인 성장물도 아닌 확실한 풍자의 유머를 펼치겠다는 전상서인 셈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작품 자체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솔직하다. 학교 건물은 애초에 피라미드처럼 생겼으며 (정점에 서는 소수를 대다수의 하위층이 떠받드는 구조의 노골적인 상징), 선생들은 몽둥이로 ‘공부’가 아닌 ‘입시’를 부르짖으며, 학생들은 서로 친하기도 경쟁하기도 하면서 황당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사장은 더할 나위 없이 부티가 줄줄 흐르며, 출세가 살 길이라는 철학을 거리낌 없이 주장한다. 이곳에서 입시는 학교생활의 일부이자 개인적 성취목표가 아니라 학교생활 그 자체이며, 동지보다는 경쟁자와 적, 민폐들이 훨씬 많은 문자 그대로 정글이다. 그 흔한 ‘일진’들의 학원폭력이 없어도, 입시가 모든 것이며 선생들이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학교의 권력구도 자체가 폭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진지하게 사회적 발언을 하면서 교훈을 외친다면 아무런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확실하게 웃기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가장 핵심적인 목표는 개그인데, 개그의 소재로 고등학교를 다루면서도 그런 자연스러운 풍자가 베어 나온다는 것이 매력이다. 우선 당장 대단히 현실적인 한국적 입시상황에 있는 고등학교인 주제에,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정말 깨는 설정들이 잔뜩 버무려져 있다. 전형적인 명문학교 답게 미션스쿨이지만 사실 부두교 미션스쿨이라든지 말이다.

『몬스터즈』, 『역전시네마』등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인조인간에 의한 세계정복음모나 영화 패러디 등 다소 매니악한 장르 개그 소재에 심취하여 독자층이 좁았던 것과 달리,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는 친숙하고 현실적인 소재 덕분에 유머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교육제도에 대한 직접적 비판의 발언을 하지 않아도 각종 개그 상황 자체에서 충분히 현실의 모순들이 드러나 준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인지하고 있는 듯, 정색하고 무게 잡지 않는다는 점 역시 한층 작가의 개그 능력이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항상 뭔가 멍하게 당황한 듯 한 표정묘사라든지, 지나친 그림실력 자랑 없이 깔끔하게 전개되는 연출 역시 이를 반영한다.

이런 일관성 있는 전개를 펼치기 위해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캐릭터 개그의 형식을 지니는데, 왠지 따지고 들어가기를 좋아하는 수재형 학생인 불사조군은 진짜로 불사조라든지(모습은 영락없는 닭이지만), 바 모양으로 꾸며진 학생상담실에서 바텐더 복장의 선생님이 학생들을 상담하고 바가지를 씌운다든지, 가장 못되먹은 선생이 젊었을 때는 꽃미남 열혈교사였다든지 하는 식이다. 캐릭터들의 특징 자체를 최대한 활용하는 이 접근은,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 친숙하면서도 황당한 상황의 제시와 그것이 각 캐릭터들의 개성에 의하여 더욱 황당한 방법으로 해결되는 구조를 통해서 펼쳐진다. 웹만화계에서 크게 유행한 바 있는 반전개그물들이 임의의 상황개그를 통해서 마치 ‘개그콘서트’ 같은 쑈프로를 연상시킨다면, 이런 류의 작품은 캐릭터들의 생활이 확실하게 잡혀있는 시트콤 식의 방식인 셈이다. 다만 이런 구도가 성공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여러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등장 자체보다도 그 캐릭터들 사이의 물고 물리는 균형관계가 중요한데, 아직 이 작품은 불사조군 등 일부 캐릭터의 강렬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직 불안정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안정된 캐릭터진으로 이야기를 끌고나가기 쉬운 학원물의 특성상, 후반으로 갈 수록 점점 나아지고 있어서 이 추세로 다음 권 정도에 돌입하면 더 이상 약점이 되지 않을 듯 하다.

참고로 이번에 출간된 단행본은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는데, 컬러 인쇄된 책 자체만 내놓은 일반판 과 교통카드 겸용 입시 부적이 부록으로 들어간 한정판이 있다. 하지만 별책 부록 이외에는 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에, 수집가적 기질이 없다면 5천원이 넘는 추가비용을 지불하고 굳이 한정판을 고를 이유는 그다지 많지 않다. 작품의 코어 팬들을 노리는 한정판이라면 단순히 별도 물품 부록보다는 이왕이면 작품 자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특전 – 예를 들자면 특별 에피소드라든지, 숨겨진 설정이라든지, 작품을 더욱 멋지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패키지 장정이라든지 – 을 집어넣는 것이 정석일텐데, 다소 아쉬운 기획방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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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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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1
김규삼 지음/대원씨아이(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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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학교개그의 처절함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기획회의 070115]

Comments


  1. 적당할 때 연재종결했으면 좋았을 것을….
    정말 최고최고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으나…
    예정연재기간을 넘기고 연재하는 것은 영 재미가 없어지더군요. -.- 작가가 이걸 보고 끝냈으면 해요

  2. !@#… 리건/ “차기작 구상을 아직 못했다!” 라고 온몸으로 소리치는 듯 한;;;

    ulll님, 언럭키즈님/ 헉 2년 넘어서야 발견한 리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