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만화의 조건들 [무크지 ‘에로틱’ / 0702]

!@#… 앞에서 대중문화의 ‘연애’ 포스트를 올렸으니, 다음 자연스러운 수순은 ‘에로’ 포스트. 아동 신간에도 소개된(핫핫) 만화무크지 ‘에로틱’에 실린 글. 여담이지만 이번 무크지는 키워드가 ‘밥’이었던 지난 호보다 훨씬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_-;;; 에로만화 본연의 매력에 대해서 설파한다는 꽤 난이도 있는 임무를 부여받고 착수했던 물건이다. 그런데 쓰고 보니 (마치 무크지 자체도 그렇듯) 글의 타겟층이 창작자 대상인지, 매니아성 독자 대상인지, ‘만화계’ 외부용인지, 일반 독자 대상인지 좀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 아니 조금씩 다 다루어버렸다. 여튼 여기는 편집을 거치지 않은 탈고버젼. 글을 읽다가 솔깃하면 책을 사서, 에로틱한 수록 작품들을 감상하길. 아마 이 포스트 때문에, 검색엔진에서 에로만화 찾다가 이 엉뚱한 블로그로 흘러들어오는 비극적 사례들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우훗, 좋은 에로만화 – 혹은 에로만화의 조건들

김낙호 (만화연구가)

에로만화의 즐거움

생물의 기본법칙이란 바로 생명 현상의 유지고, 그 목표를 충족하기 위한 의지가 바로 욕망이다. 그 중 식욕이 양분의 흡수를 통해서 개체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성욕은 유전자의 혼합과 번식행위를 통해서 종의 생존을 추구하는 것. 그런데 두 본능 모두 인간사회의 발전 과정 속에서 특유의 사회적 체계화 및 그에 대한 반대급부의 쾌락이 더해졌으니, 식욕은 식사를 통한 모임과 미식의 쾌락이 그것이고 성욕은 연애행위와 에로틱한 쾌락이 그것이다. 식욕이 테이블매너와 요리라는 형식으로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 된다면, 성욕은 법적 연령, 결혼관계, ‘건전한 성관계’ 등의 개념으로 통제되곤 한다. 이런 와중에서 통제와 욕구의 괴리를 극복하며 나름의 쾌락을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매체를 통한 대리만족인데, 그렇기에 에로 장르는 사회의 통제가 고도화됨과 동시에 점점 더 발달하곤 한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결국 하려는 말은 에로물이라는 것은 그만큼 근본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에로를 즐기는 수많은 에로 매체 가운데, 특히 에로 만화는 단연 에로의 꽃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에로만화는 단순한 생식작용을 클로즈업해주는 포르노 비디오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야설에는 없는 시각적 즐거움을 겸비하는 절충적인 에로 매체이기에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때로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도, 때로는 강렬한 시각묘사 한가지에만 집중할 수도 있는 표현의 유연성 역시 만화의 에로적 활용성을 높여주곤 한다. 나아가 편하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사회적으로 금지되었으나 생체적으로는 마구 솟아오르는 정욕을 해소해야 하는 비운의 청소년 시기에 학급에서 돌려보며 책상 밑에 놓고 몰래 읽던 에로만화들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성행위 없이도 성적 에너지를 열심히 소비시켜주는 상상력 풍부한 이미지로 표현되는 이야기들, 그것이 바로 에로 만화의 즐거움이다.

남자들은 성인에로극화나 모에계열 미소녀 능욕물을 보고, 여자들은 야오이를 보며 쾌락의 죄책감을 열심히 즐긴다. 좀 더 하드하게 불타오르는 사람들은 노골적인 묘사가 가득한 뻘건 책들을 뒤적이고, 은근하게 즐기는 사람들은 에로틱한 해학, 질펀한 농담 위주의 작품들을 찾아본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하지만 조금씩 다른 취향으로 에로 만화는 나름의 만족을 주는 셈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저 에로만화의 진짜 목적인 에로틱한 쾌락을 효과적으로 불러일으켜주는지, 아니면 그냥 짜증만 나게 만드는지의 미묘한 경계선 뿐. 그렇다면 그 ‘선’을 판단하는 기준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물론 개별 독자의 본능이 제 1의 기준이겠지만, 그것보다 약간 더 보편적으로 묶어볼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어떨까.

연상성의 힘

효과적인 에로만화를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연상성이다. 효과적인 에로의 핵심적인 특징은 바로 성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연상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 자극을 상상시켜서 독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그냥 보여주고 끝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냥 성적 행위 자체만을 묘사하는 것은 성교육 다큐멘타리, 동물의 왕국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이란 생물 자체가 언제든지 꼴릴 준비가 되어있는 특이한 종이기 때문에,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다소의 자극을 적극적으로 연상하기는 한다. 하지만 독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묘사와, 독자 따위는 그냥 관찰자로 남겨두고 단지 자신의 그림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던져놓는 묘사는 완전히 다르다. 원래 만화라는 매체 자체가 열린 그림과 칸간 구조의 독해를 통해서 독자를 이야기의 관찰자가 아닌 공범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재미를 창조한다는 것은『만화의 이해』이래로 정설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렇다면 에로의 속성에 있어서도 같은 이론이 적용되며, 독자 참여라는 그 공통의 속성이야말로 만화가 에로에 있어서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그림이라는 측면에서, 정확한 신체묘사에 대한 집착은 확실한 패착이다. 굳이 따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에로 만화의 세계에 처음 입문하는 나름대로 데생력 좋은 작가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가 바로 세밀한 인체데생을 하고 강도 높은 성애장면을 묘사하기만 하면 된다는 발상이다. 아무리 일본 에로 사진집의 각종 포즈들을 아무리 흡사하게 묘사하고 리얼한 피부색 묘사를 컴퓨터그래픽으로 칠한다고 할지라도, 신체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면 에로함은 생겨나지 않는다. 에로함은 신체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그 신체를 바라보는 독자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선이란 맥락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훔쳐보기 시점이나 클로즈업을 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인 것이 아니다. 도도하고 무너뜨리기 힘든 상대에게는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갈망의 시점, 청순한 상대에게는 단 한순간 빈틈을 우연히 순간포착하는 시선을 만들어내는 등 캐릭터와 독자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묘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 속에서 비로소 독자는 누군가 다른 이들의 관계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이입으로 상상된 성적 자극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음란한 시선처리의 극단을 달리는 『G-Taste』(야가미 히로키)라든지, 색기 넘치는 여성들이 독자들에게 매 순간 발견 당하곤 하는 유럽 에로만화의 대가 밀로 마나라의 기법들이 이런 측면에서 가히 교과서급이다.

비슷한 이유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맥락과 무관하게 성묘사가 등장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연상 작용을 오히려 방해한다. 주구장창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상관없을 수 있다. 일부러 전혀 예상 못할 순간에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것도 신선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맥락 없이 단지 장르에 대한 의무감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재미없다. 에로하지 않으며,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인체묘사 그림자랑에 불과한 수많은 어설픈 에로만화보다 열린 선의 『고인돌』(박수동)이나 『가루지기전』(고우영) 훨씬 효과적인 에로만화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종일관 질펀한 분위기 속에서 결정적 순간에 성애묘사가 나와서 이야기로서의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훨씬 에로틱한 상상까지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고 뭐고 다 무시하고 그냥 예쁜 여자/남자 그림 하나 오려내어 벽에 붙인 뒤 육체적 쾌락의 나래를 펼치는 경우라면 모를까, 작품을 즐기며 에로틱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함이라면 단연 중요한 요소다.

다행히도 만화는 연상 작용을 효과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표현 장치들 투성이다. 단지 유두의 윤곽선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의도대로 독자들의 시선을 휘어잡을 수 있으며 (‘드래곤볼’ 초반부의 소프트 에로 코드는 가히 최강급이다), 과장된 신체와 극단적 시선처리도 얼마든지 자유롭다. 칸 사이의 연출을 통해서 상상 이상의 강렬한 상황전개를 암시할 수 있고, 캐릭터들의 감정 상태를 정직하게 표정과 배경으로 한껏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원한다면 심지어 글까지 동원해서 알려줄 수도 있고 말이다. 그 가능성을 버리고 그냥 사진집이나 따라하는 것에 머문다면 낭비다.

일상성의 힘

그런데 성적 연상이라는 원칙은, 일상성과 만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성적 구애 활동에서 성행위를 연상하는 것은 솔직히 심심하다. 그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무언가, 성과 별반 관계가 없을 것만 같은 무언가 속에서 성애 코드가 문뜩 연상될 때가 훨씬 더 재밌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공상과 현실 사이의 널뛰기 폭이 더욱 커지고, 그만큼 에로틱한 부분에 대한 집중력과 폭발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든지간에 충분한 힌트만 던져준다면 성적인 부분으로 연결시킬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바나나를 먹는 아가씨의 입을 보는 순간이든, 가게에서 바세린 한통을 사가는 한 꽃미남의 수줍은 표정을 보든지 말이다. 일상성에 숨어든 성적 코드를 아예 시각적으로 확 끄집어내버려서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누들누드』(양영순)을 한번 상상해보라. 지하철 출입구도, 백댄서도, 떡달라는 호랑이의 실랑이도 모두 난데없이 성적 코드의 세계로 한순간에 끌어당겨지고, 덕분에 일상은 성이 되어버리는데, 여기에서 생기는 에로틱한 쾌감은 본능적일 정도다. 『숟가락님이 보고계셔』(박무직) 시리즈 역시 밥과 반찬들이라는 일상적 소품들의 관계가 성적 함의로 한 순간에 돌변하면서 강력한 에로를 발생시키는 좋은 사례다 (게다가 식욕과 성욕은 서로 친척지간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물론 최근 작품들 가운데 이런 계통으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구로막차 오뎅 한 개피』(august25)는 필독 시리즈다.

물론 반대방향도 가능하다. 일상적인 것 속의 성적 코드처럼, 성적 코드를 잔뜩 불러일으키고는 난데없이 일상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고조되었던 에로 에너지가 난데없이 끊겨나감으로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한껏 음탕한 생각을 했던 자신들의 음란한 상상력에 경배를 보내며 더욱 큰 에로틱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본격 에로만화도 그렇지만, 소프트 에로 코드를 겸비한 여타 장르만화들에서 활용하기에 좋은 방식이기도 하다. 실제로 『크레용신짱』(요시토 우스이) 같은 순진함을 가장한 개그만화에서 이미 잘 써먹고 있지 않던가.

일상성 속에서 에로를 추구한다는 것은, 평범한 관계나 설정의 미묘한 비틀기를 통해서도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에 그것을 어기는 것이 ‘금기’에 해당된다면 더욱 더 효과가 좋다. 남매간의 근친애 정도는 이미 에로만화의 세계에서는 흔해빠졌고, 남남 커플링은 야오이 장르의 왕도다. 변장이나 마법 등을 통해서 양성을 오고가는 소위 트랜스물, 익숙한 성적 신체 부위를 변형시키는 각종 초능력 또는 촉수물도 이런 이치다. 그런데 이런 설정들은 건전지향의 평범한 선남선녀들보다는 노골적으로 골수 에로 추구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하고 저렴하게 제작하면서도, 최대한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매체일수록 유리하다. 에로만화가 빛을 또다시 발휘하는 순간이다. 여하튼 일상성의 전복이라는 에로만화의 황금밭을 놔두고 그냥 평범한 남녀의 뻔한 사랑과 육체관계를 그려내느라 지면을 낭비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죄악이다.

적당히 즐기자

어쩌다보니 효과적인 에로만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장르가 그렇듯, 에로만화 역시 만드는 사람보다는 읽는 사람이 많은 법. 그렇다면 어떻게 즐기는 것이 가장 에로만화를 재미있게 즐기는 것일까? 화장실 또는 방에서 혼자 육체적 시뮬레이션과 결합시키기며 읽기라든지 친한 동성 친구들끼리 모여서 키득거리며 보기 같은 방법들을 추천해줄 생각은 그다지 없다. 작품에 따라서, 맥락에 따라서 달라질테니까 말이다. 그보다는 보다 일반적인 차원의 한가지 팁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바로 “적당히 즐기자”다.

뭐, 상상만으로도 방탕하면 안 된다느니 하는 윤리적 이야기는 별로 관심 없다. 다만, 다른 어떤 쾌락 추구 수단들과도 마찬가지로 에로만화 역시 너무 한꺼번에 과도하게 몰두하면 감각이 마비되어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달동안 300편을 탐독하고 장르의 달인이 되보는 것도 나름대로 보람차기는 하겠지만, 자연스러운 쾌감을 잃는 것에 비하면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야!”하다는 느낌이 더 이상 오지 않고, 그림의 구도를 분석하는 것에 매진해야할 정도라면 참 비극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장르의 달인들은 자신들만의 아직 유효한 야 코드를 찾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동인 창작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 그 정도의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혹은 귀찮다면, 그냥 적당히 즐기기를 바란다. 에로만화의 즐거움을 가장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덜 보는 것이다. 온라인 성인만화방에서 24시간 단위 결재를 했다고 해서 무조건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24시간 읽고 있지 말고, 그냥 한 번씩 정말 ‘꼴리고 싶을 때’ 읽으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왕 양으로 승부하는 것을 좀 자제하는 김에, 자신의 ‘취향’을 잘 찾아보는 것도 좋다. 아무거나 그냥 리스트에 올라온 대로 기계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장 재미있어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잘 골라가면서 스스로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라는 것이다. BDSM을 좋아하든 TS를 좋아하든 HG를 좋아하든, 취향은 자기 영역이다. 사회적으로 좀 거시기한 요소들에 대한 에로만화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취향도 없는 것보다 차라리 훨씬 더 바람직하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고 취향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 절제를 하는 모든 행위들은 결국 그 취향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자극이 쎄다고, 화끈하다고 소문났다고 해서 억지로 꾸역꾸역 아무거나 읽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에로만화를 찾아보기 바란다. 심지어 때로는 자기 취향을 찾아나가는 그 과정이 가장 즐거운 에로틱한 쾌감을 줄 수도 있다.

여하튼, 장황하고 재미없게, 무엇보다 하나도 에로틱하지 않게 에로만화에 대한 잡설을 늘어놓았다. 부디 이 무크지에 실린 실제 작품들은 이런 글과는 달리 에로틱한 즐거움으로 가득차있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창작자들도 독자들도 훌륭한 에로만화의 세계로 즐거운 한 걸음 한걸음을 내딛고 앞날에 명랑한 에로만화 생활이 펼쳐지기를.

“…하지 않겠는가” (Mr.Ya / ‘우훗 좋은 남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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