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한미FTA 시대 엿보기 [팝툰 만화프리즘/5호]

!@#… 팝툰 5호부터 연재 시작한 짤막한 칼럼 ‘만화 프리즘‘. 기본적으로는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만화를 한 두편씩 끼워넣는 방식으로, 이전 경향신문 ‘펀’에서 했던 만화풍속사와 비슷한 포맷이되 이왕이면 좀 더 하드한 주제들을 건드릴까 함.

!@#… 이번 원고는 FTA 타결 직후 꺼낸 시스템 근육론의 연장선상에서 꺼낸 이야기. 사실 4호용으로 썼던 것이라서 사람들의 1차적 관심사에서는 좀 벗어났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조만간 있으면 협정문 전문 공개 약속 시한이 다가오는 만큼 한번 다시 화제 토픽으로 이끌어내도 괜찮겠지.

 

포스트-한미FTA 시대 엿보기 – 『꼴찌, 동경대를 가다』

김낙호(만화연구가)

한미FTA 타결 관련 이야기가 한창이다. 미국이 한국을 침탈하는 음모라느니 1세기 전의 쇄국을 피하자니 하는 극단적 주장들을 뒤로 하고 보면, 한 가지 확실한 전망만큼은 뚜렷해진다. 바로, 한층 격해지는 무한 경쟁 말이다. 국경 없는 자본주의의 룰에 따라서 국가정부고 기업이고 개인이고 모두 시장이라는 커다란 시합장의 선수로 참전하여 화려한 배틀로얄을 펼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은 피를 흘리며 퇴장할 것이지만, 룰 자체의 합리성, 즉 자본주의적 실력의 경연에 대해서는 토를 달기 힘든 복잡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것이 그 세상에서는 “옳은 것”이 되니까 말이다.

『꼴찌, 동경대에 가다』라는 만화를 보면 바로 그 ‘포스트-한미FTA’ 시대의 풍경을 그려볼 수 있다. 이 만화는 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나쁜 두 명을 집중적으로 입시공부를 시켜서 동경대에 입학시키고자 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 출신 괴짜 선생 주인공이 고등학교 교육의 위선을 처절하게 후벼 파는 모습이 압권이다. 세상은 약육강식과 실력주의로 돌아가는데 소위 개성 교육을 주장하며 학력을 저하시키고, 학교 교육이라는 방식으로 애당초 이루어질 리가 없는 전인교육을 말로만 강조하여 괴리감을 키울 뿐이라는 것. 그 와중에서 정작 교육의 ‘품질’ 자체는 전혀 학생들의 진짜 수요를 채워주지 못한다. 이에 대한 처방은? 고품질의 효율적 주입식 교육을 실시하고, 동경대 합격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던져주며, 전인교육이니 이후의 인생설계니 하는 것은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라고 던져놓는 것이다.

확실히 정론이다. 합리성과 룰이 모두 갖추어진 발상이고, 그 결과 아마도 우수한 인력이 키워질 것이다. 문자 그대로 ‘승자’를 만들어내는 공식이다. 그런데 의문이 남는다. 승자의 범주에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 ‘발전’의 가속도가 붙을수록, 관성 작용과 원심력은 수많은 성원들과 가치들을 바깥으로 내쳐낸다. 때로는 세계적 경쟁 속에서 비효율적인 산업이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구체적 금전 수익을 위해 희생되는 모호한 문화적 가치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이들 중에는 버려야할만한 것들도 있겠지만, 그저 휩쓸려 나가는 것도 많다. 『꼴찌, 동경대를 가다』에서 입시과외를 하는 두 명의 학생 이외의 모든 다른 이들은 그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들에게는 합리적인 새로운 고등학교 교육의 혜택 따위는 전혀 돌아가지 않는다.

사실, 제정신으로 ‘발전’의 가속도를 반대할 수 있을 만큼 순진한 세상은 아니다. 다만, 가속도만큼이나 브레이크와 안전장치들이 대등하게 갖추어져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일 뿐. 이런 것은 한미FTA 이전에, 사회 발전 방향에 대한 기본적 가치관의 문제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한국사회는 이미 지난 60년간 브레이크고 에어백이고 다 떼고, “닥치고 풀쓰로틀”을 밟아왔다. 이거, ‘고작’ 한미FTA를 반대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큰일이다.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허/영리불허 —

최강입시전설 꼴찌, 동경대 가다! 1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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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thoughts on “포스트-한미FTA 시대 엿보기 [팝툰 만화프리즘/5호]

Trackbacks/Pings

  1. Pingback by 세상을 보는 검은 눈, Skyjet

    「최강입시전설 꼴찌, 동경대 가다!」 – 제대로 알고서 벗어나기…

    기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밝혀둘 부분이 있다. 사실 「최강입시전설 꼴지, 동경대 가다!」(이하 「동경대」)는 학생의 날에 적합한 작품이 전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입식 교육의 입장에 서있는, 지긋지긋한 자기 계발서 형식의 만화이다. 학생의 인권이나 개성 따위는 이 만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만화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번 ‘학생의 날’에 꼭 이 만화를 다루고 싶은 이유는,「동경대」는 ‘주입식 교육의 정점…

  2. Pingback by Nakho Kim

    한국에 불리한 한미FTA 자동차 재협상 결과 덕에, 덤으로 감사하게도 FTA 자체까지 다시 이슈화되는 중인듯. 간만에 07년 당시 썼던 글 http://3.ly/t69h (라이트버전: http://3.ly/THDk)

  3. Pingback by Cho HongKeun_조홍근

    RT @capcold: 한국에 불리한 한미FTA 자동차 재협상 결과 덕에, 덤으로 감사하게도 FTA 자체까지 다시 이슈화되는 중인듯. 간만에 07년 당시 썼던 글 http://3.ly/t69h (라이트버전: http://3.ly/THDk)

  4. Pingback by ECO 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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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Pingback by JSK.김정수

    RT @capcold: 한국에 불리한 한미FTA 자동차 재협상 결과 덕에, 덤으로 감사하게도 FTA 자체까지 다시 이슈화되는 중인듯. 간만에 07년 당시 썼던 글 http://3.ly/t69h (라이트버전: http://3.ly/THDk)

  6.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2011 H당 한미FTA 날치기 사건에 즈음하여.

    […] 각오해야 할 세상에 관하여: 예전에 관련글들을 간간히 남긴 바 있고, 06년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 특별편에 크게 덧붙일 말이 […]

Comments


  1. 기본적으로 한미 FTA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라는 입장이지만, “가속도만큼이나 브레이크와 안전장치들이 대등하게 갖추어져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120% 공감합니다. 지금 필요한 논의는 밀어 붙이기나 그 대척점의 무조건 안돼 오버 마이 데드바디…가 아닌, 안전장치 마련을 위한 사회적인 합의 도출이라고 봅니다.

  2. !@#… Vince님/ 그런데도 그 합의도출이 잘 안되는 것은 ‘뽀대’와도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오버마이데드바디는 투쟁적이고 선명하고 멋져보이지만, 안전장치를 고민하고 합의를 얻으러 돌아다니는 건 훨씬 더 고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수정이고 개량이고 비굴한 타협으로 보일 뿐이니까요. 뭐, 반대쪽 입장도 마찬가지고. 승부에 목매달기보다는 시스템을 진짜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점입니다.

  3. 음, 내용은 마음에 참 드는 글인데. 글의 성격은 마음에 안드는군요. 아시다시피 문화의 담론을 정치나 시사와 섞어서 내는 코너는 자체로 , 문화강박증이나 대중문화순결지향성을 지닌 저같은 까칠한 독자들에게는 불편할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내용은 마음에 들어요.(다시 강조)

  4. 위에 까칠한은 아무래도 변태스런. 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맞는것 같습니다.콜록

  5. !@#… nomodem님/ 아무래도 작품 속의 정치성을 드러내기 위해 작품을 동원하기보다는, 좀 더 세상사에 대한 편리한 이해를 위한 도구로서만 사용하려고 합니다. 까칠한 독자들의 불편을 최대한 덜어드리는 방법은 역시, 좋은 내용으로 상쇄하는 수 밖에요 :-)

  6. 기본적으로 경쟁이 효율성을 달성한다는 가정에 긍정합니다.
    ‘가속도와 안전장치’를 논하는 것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생각하고 싶은건, 무한경쟁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개인수준에서야 ‘남들이 달릴때 나만 안달리면 안되니깐’이라는 죄수의딜레마의 문제지만,
    룸펜의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좀더 도발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룸펜의 사회적 역할아닌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가치차원(the dimension of value)의 저차원화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선호를 가지고 있고 자원은 제한적이라면, 교환이나 생산보다는 분배나 상대우위확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겠죠.

    한국에서는 ‘가치의 일차원화’가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다보니 무한경쟁의 논리가 너무 잘먹히고 감/히/ 대적할 대안논리를 쉬이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대학나오고 어디출신이고 하는 spec들의 랭킹에 놀라울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되어있다는 ‘일차원’ 말이죠.

    세계적 차원에서야 모든 가치가 금전적 환원가능한 자본주의 때문이라 할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는 나라들이 많은 걸 보면 불가능한 게 아닌것 같습니다.

    글이 길어지고 난잡해졌는데 요는…
    1. 다양한 사회적 가치의 존재야 말로 궁극적인 가속도의 브레이크가 될것임. (사회적 안전망 그런거, 중요하지만 결국 미봉책)
    2. 그러한 가치의 다양성을 발굴하고 다듬고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룸펜이라 생각함.
    3. 가치의 다양성와 그들간의 조화를 만들어 낼수 있는 나라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있는 나라임.

    * 가끔 블로그 놀러오는 룸펜인데, 첫 글이 쫌 거시기하게 됐네요…^^

  7. !@#… MinMax님/ 동의합니다. 사회적 가치의 다원화 중요하죠. 정확히는, 오랜 개발독재 드라이브 속에서 일차원화되어버린 가치를 ‘다시’ 쪼개는 것. 취직을 ‘못하는’ 청년실업자들이 아닌, 취직을 ‘안하는’ 룸펜들이 그 역할을 주도해준다면 훌륭하겠죠(그러나 그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조건은 마련해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 정도는 마련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룸펜이 되라고 정책적으로 제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시스템을 논하는 이야기에서는 안전망과 재생산구조, 법적논리, 인재육성체계 같은 재미없는 이야기에 집중하곤 합니다.

  8. 저도 한미FTA가 정부를 비롯한 공적권력을 포함한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무한경쟁의 시장에서 배틀로얄 벌이는 상황을 가리킨다는 지적에 동감합니다.

    사회적 안전망과 재생산구조, 법적논리, 인재육성체계와 같은 것들의 확보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결국 관건은 그것들을 “무엇을 통해서” 이루어낼 것이냐가 되는건데, 현실적으로 보면 공적권력(정책이나 제도의 측면)의 주도적 뒷받침 없이 이루어내기란 힘든 것들이죠. 따라서 저에게 한미FTA찬반의 입장과 연결되는 지점은 무한 배틀로얄에 내세워진 선수의 자격을 가진 공적권력도 “브레이크” 만들기와 유지보수에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는가, 굳이 공적권력의 힘을 안빌려도 다른 방법(사람들 많이 노래부르는 “시장균형?”과 같은 것들, 아니면 “시민사회적 참여”라던가)으로 브레이크 마련이 가능한지 여부죠.

    만약 가능하다면 주인장께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지 여쭈어보아도 될런지요.

  9. !@#… people님/ 제 입장의 큰 방향은, 말씀하신 공적권력도 시장균형도 시민사회적 참여도 모두 써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브레이크 같은 것 달 생각도 하기 전에 그 배틀로얄에서 눈깜짝할사이에 KO당할테니까요. 하지만 시장이야 이상적 목표를 추구하는 어떤 커다란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민사회적 참여는 결국 공적권력의 틀에서 수용해줄 때 비로소 힘을 얻곤 합니다(시민혁명으로 뒤집는 것이 아니고서야). 결국 가장 1차적으로 힘을 실어줘야할 것은 공적 권력에 1) 발전방향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2) 그것을 시장개방, 제도개방의 파고 속에서라도 확실하게 추진할 수 있는 철저한 실력을 공급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가신정치가 아닌 싱크탱크 방식이 더 유리하겠고, 시민사회 역시 이 풀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방향정리를 해야하겠고… (이하생략)

  10. 기사를 블로그에 올리고 TTB에 보내는데, 어쩌다가 캡콜드 님을 글을 발견해서 트랙백을 보내고 댓글을 씁니다. 계속 팝툰을 정기 구독하고 있었지만, 제가 팝툰 발간 초반에는 띄엄띄엄 보았었기에 이 칼럼은 못 보았었거든요. (…) 칼럼 방향도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쓴 기사는 희망은 약간 강조했지만.)

    이 기사가 올라온 2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니, 확실히 캡콜 님의 칼럼처럼 되고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승자 아니면 패자만 존재하는 세상을 MB 정권이 부추긴다고나 할까요. 참, 끔찍합니다.

  11. !@#… Skyjet님/ 독자평가단까지 지낸 정기구독자에게도 안 읽히는 것이 바로 듣보잡 칼럼의 비애(…)ㅜㅜ

  12. 제가 독자평가단을 지낸게 2008년 10월부터 였으니, 5호는 사지 못해서 못 본 것이었는데 (…) 독자평가단/정기구독 이후로는 매번 서점에 갈 필요가 없어서 칼럼은 정독해서 읽고 있습니다 :) 다만, 서점을 구경하는 재미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