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충만, 달라이 라마 강연 듣고 오다.

!@#… 티벳 불교의 최고 승려이자 임시정부 수장인 14대 달라이 라마가 위스콘신 매디슨을 방문해서 ‘긍휼: 행복의 근원‘이라는 제목으로 대중 강연. 알 사람은 다 알다시피 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벳을 무단점령해서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완전히 뒤엎어버린 후(뭐 뻔한 레파토리… 강제이주, 종교금지, 자국어 사용금지, 전통문화 부정, 당에 의한 개발정책 등등) 59년에 정부인사 및 12만 티벳인들과 인도로 탈출하여 망명 임시정부 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임시정부 활동의 방식은 정치투쟁보다는 티벳의 정신과 문화를 보존/육성하기 위한 정착촌과 학교 설립 위주로, 철저한 비폭력주의. 그 덕분에 6-70년대 히피이즘의 와중에서 아이콘적 지위로 올라서고, 90년대에는 구습을 타파하고 티벳의 민주화를 위한 정치체제 개혁도 다수 강행. 그 사이 중국은 티벳땅에 괴뢰정권을 수립운영. 이런 험난한 와중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전 세계를 돌며 평화에 대한 강연을 하고 기금을 모아 학교, 사원, 박물관 등을 건립하기를 수십년.

!@#… 매디슨 시와 위스콘신 대학과는 이래저래 좋은 인연이 좀 있어서, 이번이 지난 30년 동안 무려 다섯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리베럴리스트 성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네 분위기 상, 강연장에는 12000석이 깨끗이 매진. 물론 회장 바깥에는 왠 중국인 처자가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일인시위하고 있고, 다른 구석에는 왠 아저씨가 커다란 성경을 들고 뭐라고 열정적으로 떠드는 풍경도 연출. 매디슨시는 국빈을 맞이하기 위해 시청 국기게양대에 티벳기를 걸어놓겠다고 발표했는데, 시카고 중국영사관에서 위협서한을 보내고 인근 보수단체들이 우리 시청에 외국기가 왠말이냐 항의를 했으나 시장 이하 직원들과 시민들의 지지로 그냥 깡으로 강행. 그리고 위스콘신 대학측은 티켓 중 몇천장을 일괄 구입하여 학생들에게 선착순으로 무료 배부. 어느 눈내리는 2월의 추운 겨울날, capcold는 긴 줄에 영원의 시간을 기다리며 티켓 확보했던 바 있다. 그리고 마침내, 5월 4일에 강연회.

!@#…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강의 내용 자체의 훌륭함은 차치하고서라도 1) 역시 한 시대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인간이란, 정말 몸에서 포스가 쏟아져나오는구나 2) 소설 속 불교계열 초특급 고수들은 항상 다소 땡초스러운 면이 있는데… 그게 뻥이 아니었구나 3) 진짜 평생 공부와 수행을 쌓아온 사람은 그 속의 진리를 가장 쉽게 모두와 나눌 수 있는 사람이구나 4) 정진정명 러브 앤 피쓰, 라는 정도는 거리낌 없이 단언할 수 있다. 강의 본편은 긍휼의 마음이 어떻게 해서 인간 행복의 근원이 되는지 발달심리학과 종교철학과 불교를 함께 갈아넣은 특급 엑기스 (이쪽 대학의 심리학 교수들과 공동연구 진행도 여럿 하고 있다). 더듬더듬 영어지만, 덕분에 그만큼 더욱 쉬운 말로 설명.

!@#… 역시 지난 하워드진 강연에서도 그랬지만, 라이브 강연의 매력은 Q&A 세션. 번역은 적당히 요약과 의역.

Q: 저는 애 둘의 엄마입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애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요.
A: 많은 사랑을 기울여주세요. 그런데 뭐 제가 키워본 적이 있어야 알죠.

Q: 하루 일과에 대해서…
A: (전략)… 점심 이후로는 식사를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밤에 배고프면 비스킷 몇개 몰래 먹곤 하죠. 부처님은 자비로우니까 뭐 그정도는…핫핫. 그래서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는데, 아침밥 먹을 때 참 감사하죠. (후략)

Q: 티벳 독립운동의 상황에 대해서… (이것이 이 날의 유일한 ‘정치적’ 언급)
A: (전략)… 티벳인들이 원하는 것은 문화와 정신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것을 특별히 파고들려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중국정부가 티벳인들이 정치적으로 살기를 강요합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문화와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진정한 자치genuine autonomy이고, 특별히 (국가로서의) 독립soverignty이 아닙니다. 티벳의 문화와 정신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국정부 입장에서도 중화사상에서 강조하는 조화라는 미덕을 드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 티벳의 문화와 정신은 중국에 있는 티벳이라는 땅이 아닌, 그곳 바깥의 전세계에 펼쳐 있습니다. (후략)

Q: 세계의 폭력과 전쟁 등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앞날을 낙관적으로 보십니까.
A: 저는 아주 낙관적입니다. (중략)…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man-made 문제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죠. (중략)… 기도와 명상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야해요. 지능도 활용하고. 저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교육을 꼽습니다. 세상을 크고 전체적인 시각으로 보는 법, 내면과 세상의 평화의 가치, 조화의 중요성 등에 대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다 보면 그들이 자라나고 생각이 축적되어 정치인들도 그것에 반응할 수 밖에 없고, 세상이 점차 바뀌어 나갑니다.

!@#… 앞으로도 오래오래 활기차게 돌아다니며 세상을 조금씩 바꿔주시길.

[그리고, 덤]

*위스콘신 공영방송에서 호스팅하는 강의 동영상(주의: 영어)은 여기.

*강의 내용 관련 세부 취재 기사(주의: 영어)는 여기.

*달라이라마를 그저 단순한 게릴라 지도자로 그려내지 못해서 안달인, 실제 강의 내용이나 발언 취지 같은 건 전혀 알아볼 노력조차 하지 않고 배경 상황을 취재해볼 최소한의 의욕조차 없는 데다가 덤으로 외신 받아올 때 오역까지 남발한 안습의 왜곡 야매성(헉헉) 연합뉴스 기사는 여기.

*참고로 달라이라마는 2006년에 내한 예정이었으나 한국 외교부에서 중국 눈치보느라 비자를 거부, 입국금지 먹은 바 있다. 당시 그 결정을 내린 외교부 장관은 지금은 유엔대사에 빛나는 반기문. 고작 6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침탈을 당해서 존재 소멸 직전까지 몰렸던 나라치고는 참 골때리는(즉, 쪽팔려 죽어버릴) 처사다. 관련기사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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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포스충만, 달라이 라마 강연 듣고 오다.

Comments


  1.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란 분은 이름뿐이 모르고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 보고 싶네요. 위키피디아 정도면 되겠지요?

  2. !@#… 위키가 비판론까지 포함, 잘 정리되어 있죠. 하지만 항상 명심할 것이, 위키피디아(물론 어떤 종류의 ‘백과사전’도)는 자료찾기의 시작점일 뿐이라는 것. 찾고 싶은 만큼 고구마줄기 캐듯 파내가는 재미를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3. 오오. 고맙습니다(어제는 20분 오늘은 15분…)
    그런데 이 블로그 재미있는 부분이 있네요. 지우기 마크가 없는 대신 빠른 속도로 코멘트를 달면 너무 빠르다고 경고하는군요.

  4. 입국비자 거부건은 놀랍군요. 전 한국의 현재 어린애들만.신국수주의 경향으로 ‘인류 보편적가치로서의 인권과 민주주의 및 세계평화’ 보다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돌머리들로 자라난줄 알았는데.(관련 카테고리기사에 달리는 리플이 월드컵뉴스에 달리는 리플과 구분이 안감)

    원래 위도 철저하게 굳어있군요.

  5. 예전에 불교계에서 노략했지만… 중국 눈치본다고 어려웠죠.
    현실 외교 관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선택지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면 절대 할 짓이 아니죠… 정말로 씁쓸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