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달려보는 히어로물 – 엄브렐라 아카데미 [기획회의 329호]

!@#… 마이케미컬웨이가 망하기를 바라게 되는 만화. 그쪽이 잘나가니, 이거 뭐 3탄이 감감 무소식.

 

끝까지 달려보는 히어로물 – [엄브렐라 아카데미]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에 대한 오랜 편견 가운데 하나가 바로 허황된 상상력이다. 만화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는 이들이 별 생각 없이 “만화 같다”고 내뱉을 때는 그림과 글의 유기적 결합 및 칸 정보의 순차배열이 자아내는 시간 흐름 효과를 활용한 탁월한 전달력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너무 거짓말 같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만화의 장점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 종종 취하는 접근은, 허황된 상상보다는 리얼리즘적 느낌이 강한 작품들을 우수한 작품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편견을 부정함으로써 만화의 복권을 노리는 셈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만화라는 양식의 깊이를 탐구하다보면, 또 다른 접근을 시작한다. 바로, 어떤 허황된 상상력이라도 훌륭하게 표현해내는 힘이 바로 만화의 장점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대중 서사오락으로서의 슈퍼히어로 장르만화에서 이런 점은 더욱 극명해진다. 초능력 영웅들이 초능력 악당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재미있어 하면서도 동시에 유치해하는 편견에 시달리다가, ‘리얼한’ 설정과 전개의 암울한(범죄와 단죄의 이야기니까) 주제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좀 더 심취하다보면, 결국 원래의 매력에 다시 눈을 뜨게 된다. 히어로와 악당들의 기이한 초능력, 화려한 악당, 세계의 운명을 건 대결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왕 한 바퀴를 크게 돌아왔는데 단순하게 원래의 수준에 머물 이유는 없다. 초능력은 한층 더 기이하고, 악당은 훨씬 강력하게 광기 넘치고, 음모론은 한계를 모르며 달려 나가는 것이 좋다. 또한 단순한 선악과 1차원적 인물들로 회귀하지 않고, 복합적 인간관계의 비틀림을 넣으면 더욱 훌륭하다. 물론 결국 호쾌한 폭력으로 히어로 측이 승리를 거두어내는 클라이막스는 필수요소다.

[엄브렐라 아카데미](제라드 웨이 글, 가브리엘 바 그림 / 세미콜론)은 한 바퀴 돌아온 슈퍼히어로물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일곱명의 초능력 히어로들이다. 이들은 하그리브 박사에 의해 태어난 순간에 입양되어 한 가족으로 자라나며 어린 시절부터 ‘엄브렐라 아카데미’라는 특수조직의 슈퍼히어로로서 교육 받고 활동해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어른이 된 이들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누군가는 이미 죽었고, 누군가는 냉소적으로 변했고, 누군가는 일급 암살자의 능력과 자라지 않는 꼬마의 몸을 지닌 채로 시공간을 떠도는 방랑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큰 사고로 몸을 잃은 후 머리만 고릴라의 몸에 붙여서 달 기지에서 살아가고 있다(이 정도로 상상력이 막 나간다). 같은 형제자매로 자라났지만 초능력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아이는 소외 속에서 독립해 그저 그런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간다. 서로 멀어진 이들 주인공들이 아버지격이었던 하그리브 박사의 장례식을 계기로 다시 모여들고, 그간 쌓이고 썩어들어간 감정의 골은 다시금 깊어진다. 물론 그 와중에 세계를 파멸시킬 거대한 음모가 움직이고, 이 세계의 악당들, 시간과 우주를 건너다니며 다가오는 악당들과 대결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 작품은 기존 작품 경력이 있는 만화 작가가 아닌 인기 락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프론트맨 제라드 웨이가 글 작업을 했기에 높은 화제성과 달리 작품 품질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독자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완성되고 나니 뛰어난 것으로 판명난 바 있다. 00년대 후반 당대 슈퍼히어로물의 신규 독자 유입용 캐릭터 구도 정리와 안전한 대결형 초능력 및 로맨스 연속극 같은 요소 등 소위 장르만화의 유행 관습에서 벗어난 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다. 나아가 히어로로서의 팀워크 같은 블록버스터 요소를 가족관계, 성장의 불안 같은 다분히 독립영화나 이모-락음악스러운 요소들과 결합해서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우선 누가 더 빠르게 하늘을 날고 빔을 뿜는지 경쟁하는 선에서 머물지 않는 이질적 초능력의 쾌감이 상당하다. 하늘을 날고 강한 힘을 자랑하는 가장 전형적 초능력의 스페이스보이는, 몸이 고릴라다. 냉소적인 성격의 크라켄은 특기가 칼 던지기고 숨을 멈추는 것이 능력인, 다분히 거친 계열이다. 세이언스는 염동력도 있기는 하지만, 사후세계의 사람을 자기 몸에 끌어오는 것이 능력인 영매다. ‘꼬마’는 시간여행자인데, 정작 시간을 자기가 마음껏 조정하는 것도 아니며 싸움에 도움되는 능력은 탁월하게 잔인한 암살자로서의 실력이다. 그리고 루머라는 히어로의 능력은 “내가 이런 소문을 들었는데…”라고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어떻게든 실제로 일어나버리는 것이다. 초능력들의 상성으로 인기 캐릭터간 균형을 만들고 단선적 승부를 내는 것에 익숙해진 주류 슈퍼히어로 장르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떻게 활용할지 난감한 능력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히어로 장르에 어울리는 격투 속에 녹여낸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콩가루 가족을 지켜보는 재미와 정의의 무력으로 세계를 구하는 모험담의 재미 사이의 균형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다. 누구는 누구를 사실 좋아했고, 성장기의 편애는 깊은 상처와 일탈을 낳으며, 애증이 있는 복수는 더욱 처절하다. 주인공들은 아버지 역할이었던 하그리브 박사보다 삼촌 같은 존재였던 초지능 침팬지 포고 박사의 죽음을 훨씬 비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와중에 초능력은 폭주하고 사람들이 마구 살해되며 지구로 거대 운석이 추락해오는 등 히어로물로서의 모험 또한 조금도 끈을 놓지 않는다.

칙칙하고 질척한 드라마와 호쾌한 히어로 모험극의 결합이라는 이런 이질적 재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쾌한 설정과 화려한 전개에 있다. 고릴라같이 우락부락한 몸의 근육질 히어로가 아닌 아예 고릴라 몸의 히어로, 움직이는 에펠탑으로 습격해오는 슈퍼악당 귀스타브 에펠, 알고보니 엄마는 기계인형이었다는 식의 온갖 기발하게 허황된 설정들이 그냥 천연덕스럽게 펼쳐진다. 이런 세계이기에, 음악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터트려 죽이고 지구를 파멸시킨다는 엄청난 허풍조차 자연스럽다. 웃긴 인형 가면을 쓴 시공간 여행 암살자들이 한계가 없는 잔학함을 선보인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어떤 식으로 절묘하게 만화 속 세계가 독자의 뒤통수를 칠 것인지 기대감이 극대화된다. 물론 직선적이고 호쾌한 동세를 가득 담아낸 그림체, 여러 시간대와 장소의 사건들을 거침없이 교차하며 숨 막히게 몰아치는 빠르고 비약적인 전개 등 표현력의 장점이 없었더라면 좀처럼 성공하기 힘들었을 요인들이기도 하다.

[엄브렐라 아카데미]는 슈퍼히어로물의 순박한 재미를 원하는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도, 진지한 리얼리즘 요소를 찾고자 하는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도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마구 달리는 상상력, 콩가루 가족 드라마, 호쾌한 장르적 재미의 소용돌이에 한껏 휩쓸려버리고 싶다면, 단숨에 다 읽고 왜 작가들이 다음 편을 내놓지 않는지 원망스러워질 것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1 : 종말의 조곡
제라드 웨이.가브리엘 바 지음, 곽경신.김송호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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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피크 / 질풍기획 (함께 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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